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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대 삼물회(三物灰) 도입에 따른 석실릉 구조개선과 의의
A study on the significance and structural improvement of the stone chamber tomb by the application of a compound lime - Mortar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in the Joseon Dynasty 원문보기

文化財 = Annual review in cultural heritage studies, v.55 no.1, 2022년, pp.223 - 242  

신지혜 ((주)건축문헌고고스튜디오)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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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세종대에 삼물회를 조선왕릉에 도입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1446년(세종 28년) 영릉의 구조적 변화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조선초 왕릉은 고려의 석실릉을 답습하여 조성하였다. 조선왕릉으로 처음 지어진 신덕왕후의 정릉은 고려의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정릉·현릉을 건립한 경험을 갖고 있는 김사행이 주도적으로 건립하였다. 이후 박자청이 이어받아 조선 초 석실릉을 건립하였으므로, 고려의 석실구조를 기반으로 조선왕릉이 조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성종대의 『국조오례의』에 기록된 석실의 구조를 살펴보면 고려의 것과는 매우 다르다. 뿐만 아니라 『세종실록』에 기록된 태종과 원경왕후의 석실제도와도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석실에 삼물회를 도입하여 구조적인 보강을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1446년(세종 28년) 소헌왕후의 국상으로 영릉(英陵)을 건립할 때, 석실 내에 물이 스며들거나 고이지 않는 밀실한 구조를 만들고자 했던 세종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1446년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으로 조성된 영릉(英陵)과 1452년에 조성된 문종의 현릉(顯陵)은 석실구조 바깥에 삼물회격을 추가로 시공한 석실과 회격의 복합구조체이다. 이것은 1468년(예종 즉위년) 세조의 유교에 따라 석실을 폐지하고 회격만으로 현궁을 만드는데 구조적 기반이 되었다. 즉, 영릉과 현릉의 구조에서 내부의 석실구조를 제거하고, 바깥의 회격만을 시공함으로써 회격 현궁이 조성된 것이다. 이로써 조선왕릉은 『국조오례의』에 기록된 석실과 회격의 복합 구조체인 회격석실릉에서, 석실을 제거하고 회격만을 조성하는 회격릉으로 정착하게 된다. 이러한 전개과정을 살펴볼 때, 1446년(세종 28)에 삼물회로 만든 회격구조를 석실에 결합한 회격석실릉은 조선만의 특별한 석실구조이며, 조선왕릉의 지하구조가 회격릉으로 변천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음을 논증한다.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out the meaning of structural changes that appeared in the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after the application of a compound lime-mortar(Sammulhoe三物灰: the mortar with lime, sand, ocher).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royal tomb was constructed by foll...

주제어

표/그림 (11)

참고문헌 (16)

  1. 「조선왕조실록」 

  2. 「국조오례의」 

  3. 문화재관리국, 1987, 「헌릉(원경왕후릉)해체실측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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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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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안경호, 2009, 「조선 능제의 회격조성방법-장경왕후 초장지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제32권 제3호, 통권116호, pp.297~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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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전나나, 2012, 「조선왕릉 봉분의 구조적 특징에 대한 일고-문헌에 기록된 석실과 회격의 구조를 중심으로-」, 「문화재」제45권 제1호, pp. 52~69. 

  15. 김버들, 2018, 「왕릉건축을 통해 본 박자청(朴子靑)의 김사행(金師幸)건축 계승」, 「건축역사연구」제27권 제2호, 통권 117호, pp.113~124. 

  16. 신지혜, 2020, 「조선후기 회격릉의 지하구조를 반영한 봉릉의 시공과 형식」, 「건축역사연구」제29권 제2호, 통권 129호, pp.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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