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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大韓建築學會論文集 = Journal of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v.12 no.10, 1996년, pp.203 - 213
김지민
본 연구는 한국유교건축의 여러 테마중 정려 부분을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정리한 논문이다. 정려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기르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이나 마을 입구에 일종의 문 내지는 정려을 세워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정려에 대한 기록은 신라시대부터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대적으로는 향교보다도 앞선다. 본격적인 정려 건립은 역시 유교의 영향으로 조선시대(15세기~19세기)이다. 한편으로는 20세기에 들어서도 꾸준히 건립되 는 시대적 특성을 갖는다. 전남지방의 경우 현재 약1,400개의 정려가 있으나 이중 약200개의 정려만이 조선 시대에 건립된 목조정각으로서 건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정려건축은 다른 유교건축과는 달리 기능성이 배제된 상징성이 강한 건축이다. 즉 조선시대 삼강윤리에 기 초한 중,효,열의 산 현장이 되고 있다. 따라서 기념물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건축의 규모는 정면1칸, 측면 1 칸이 절대적으로 많으나 정려자수가 많은 경우에는 정면이 3칸,5칸 정도로 커진다. 가구 구조는 3량 가구의 맞배집 내지는 팔작집이다. 의장은 주로 익공식으로 화려하고 번잡하다. 건물4면은 벽체로 하지 않고 홍살을 일정한 간격으로 꽂아 내부를 개방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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