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단어 이상 선택하여야 합니다.
최대 10 단어까지만 선택 가능합니다.
다음과 같은 기능을 한번의 로그인으로 사용 할 수 있습니다.
NTIS 바로가기美國史硏究 = Studies in American history, v.16, 2002년, pp.187 - 217
Jin Hee Kim
대공황기는 미국이 현대 국가로 자리 매김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유례없는 경제적 파국은 이전까지 지속되었던 개인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자유방임적 가치와 질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치ㆍ경제ㆍ사회 각 분야에서 대 수술이 감행되었던 1930년대에 문화와 정체성 논의 역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혼란과 위기의 시기였던 만큼, 정치적․이데올로 기적으로 다양한 영역에 속했던 이들이 미국사회, 미국문화 및 미국인에 대해 재정의를 시도했던 시기였다.
본 논문은 인민전선, 노동문화, 그리고 뉴딜 행정부의 문화 정책을 통해 대공황기 노동진영과 진보적 지식인들이 미국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그 결과 서서만(Warren G. Susman)이나 르바인(Lawrence Levine) 같은 기존 문화사가들이 대공황기를 ‘도피적 경향’과 ‘중산층의 문화’가 지배했다고 결론 내렸던 것과 달리, 노동진영과 진보진영은 가장 미국적인 형태와 과거 미국의 진보전통을 통해 지배문화와 차별화 되는 문화와 정체성을 확립시켰고, 이 것은 1930년대를 설명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뉴딜 행정부의 문화 정책은 그 이전이나 이후 정부정책과는 달리, 정치적 신념을 망라하여 예술가와 작가들을 지원함으로 인해서 미국적 정체성과 미국 문화가 진보적 색채를 띄게 하는 데에 일조 했다.
결과적으로 1930년대 ‘미국주의’와 ‘미국인’의 개념은 단지 지배이데올로기나 보수주의자들의 반공주의, 혹은 국가 주도하의 국민주의적 통합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그 개념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 미국시민으로서의 존엄을 찾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마찬가지로 ‘인민(people)’이 대공황기의 가장 중요한 상징체로 등장하면서, 1920년대의 개인주의(rugged individualism) 와는 차별화 되는, 공동의 해결 모색이 동반되는 개인주의(cooperative individualism)가 발전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체성의 모색은 이후 여과 없이 미국 사회에서 지속되지 못했다. 뉴딜개혁의 쇠퇴,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인민전선의 후퇴와 냉전기 ‘빨갱이 사냥’은 모두 1930년대 문화와 미국주의 논의에 내재했던 진보성을 상당부분 상실케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미국문화 속에서 ‘인민’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것이나 대중문화가 미국적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은 대공황기 진보진영과 노동진영의 정체성 모색과 문화가 변형된 형태로나마 잔존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 AI-Helper는 부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