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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부흥운동과 길선주 영성의 도교적 영향
Spiritual Seismic Shifts among the Daoist-Christians in Pyongyang : Kil Sun-Ju"s Daoist-Evangelical Spirituality during the Great Revival Movement

한국기독교와 역사= Christianity and history in Korea, 2006 no.25 = no.25, 2006년, pp.57 - 95  

옥성득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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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주지는 평양의 도교적 기독교 영성이 한국 (장로) 교회의 주류를 형성했고 그 중심에 도교(선도)에서 개종한 길선주의 영적 지도력(설교와 기도)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평양의 도교인들에게 일어난 미미한 영적 지각 변동은 한국 전역에 파문을 일으키며 번져가서 한국 교회의 복음주의 영성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종교의 전체 지형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켰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평양 장로교회의 첫 지도자들이 되었고 1907년까지 대부분 장로나 목사로 안수를 받았던 일군의 도교인들--송인서, 김종섭, 길선주, 김성택, 옥경숙, 정익노, 이재풍, 김찬성 등--이 청일전쟁 전후에 개종한 과정을 먼저 살펴보았다. 이들은 북한 개신교의 급성장과 부흥 운동, 나아가 한국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엄청난 영향력을 주었다.

이어서 복음주의가 강조하는 중생 체험이 전범의 형태로 나타난 도교 신자였던 길선주의 개종을 자세히 고찰했다. 1895년 청일전쟁 후 그의 개종 체험은 부흥 운동 당시 한국인들의 기독교에로의 개종이 과거 신앙과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무/선교-불교-유교로 발전되어 온 한국인의 종교성이 근대 종교인 개신교를 수용함으로써 한 단계 진화하고 보다 완전한 종교로 성취되는 과정이었음을 예시한 모범이었다. 동시에 그의 개종 동기였던 도교적 개인 구원관을 극복하는 대안으로서의 기독교의 사회 구원관은, 당시 북미 개신교의 근대 복음주의가 가졌던 기독교 문명론이 민족적 위기 속에서 근대 자주 국가 형성을 모색하던 한국 사회에 접목된 사례였다.

길선주가 중심이 되어 도교에서 기독교로 토착화한 새벽기도와 통성기도는 1910년 이전에 거의 한국교회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사적인 소원을 빌었던 도교의 기도와 비교하면, 개신교의 기도는 민족적 위기에 교회와 민족 공동체를 위한 공공성을 지니고 있었다.

1907년 대부흥운동은 한국 개신교의 무게 중심과 지도력을 평양으로 고정시켰고, 이후 개신교의 주류는 해방 이전까지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한에 있게 되었다. 물론 부흥운동 이전부터 개신교인의 대다수가 북한 지역에 있었지만, 대부흥운동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 목회자 군이 형성되면서 개신교 주류는 북한으로 넘어갔고, 길선주의 영적 지도력은 그 흐름을 고정시키는 교회사적 의미를 지녔다. 동시에 개신교에서 평양 지도력의 우위 확보는 한국사에서 500년간 조선 왕국에서 그 지도력을 행사해 온 서울 양반층에 대한 새로운 지도층의 형성이라는 사회사적 의미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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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eries of minor spiritual seismic shifts among the Daoist-Christians in Pyongyang sent shock waves rippling through the turn-of-the-twentieth century Korea with far reaching effect of the transformation of the religious landscape of Korea as well as the formation of the mainstream evangelical sp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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