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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룡의 고려신학교 사임 이유에 대한 재고
Reconsideration of the Reason for Park Hyung-Ryong Resignation from Koryo Theological Seminary

한국기독교와 역사= Christianity and history in Korea, 2006 no.25 = no.25, 2006년, pp.201 - 233  

양낙흥

초록

박형룡의 고려신학교 이탈은 1950년대 초 한국 장로교 일차 분열이 발생하는 과정의 결정적 사건이었다. 그의 고신 이탈 직후 1948년 장로교 총회는 고신과 총회는 무관하다고 선언했고, 이 선언에 의해 고려신학교는 사실상 총회에 의해 부정당했으며 따라서 고신과 관계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교회의 법을 범하는 범법자들로 규정당하게 되었다. 총회의 이러한 입장 천명 후 경남노회는 고려신학교에 대한 기존 인가를 취소했고, 따라서 고신은 아무런 배경도 기반도 없는 고사 운명의 학교가 되고 말았다. 신학생을 보내고 추천해 줄 교회들도 없고 경제적 지원을 해 줄 교회도 없었으며, 기존 장로교회와의 대립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교수로 일할 사람이 나타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필사적 심정이 된 고신설립자 한상동 목사는 해방 후 무려 3년 이상을 억제하고 있던 바, 신사참배 주동자들에 대한 처벌을 경남노회에 건의했고 위기를 느낀 김길창 목사는 자기추종자들을 이끌고 기존 적법한 노회를 이탈, 자의적 별도의 노회를 조직함으로써 경남노회가 분열되었다. 경남노회 분규를 다룸에 있어 대부분 신사참배 전력을 가진 총대들로 이루어진 총회는 불법적으로 이탈한 김길창과 그 일파의 본노회 복귀를 명하는 대신 고신측과 그 지지 세력인 소위 경남 법통 노회를 총회에서 축출해 버린다. 그리하여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제1차 분열이 발생한 것이다.

박형룡의 고신 이탈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연구는 한국 장로교 1차 분열의 중요한 분수령이 되는 사건의 경위에 대한 정확한 규명 뿐 아니라, 당시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 자숙, 권징을 주장하던 한상동 목사를 비롯한 출옥 성도들의 신앙 성격 및 그들로 이루어진 고신측의 요구의 정당성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위한 중요한 토대를 제공한다. 김양선은 박형룡이 고신을 이탈한 이유가 한상동의 “신앙 노선 전향 권고”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구 총회를 포기하고 신 총회를 만들자는 분리주의적 주장에 동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신을 떠났다는 것이다. 한편 고신측 사가들 중 허순길은 그러한 주장은 억측에 근거한 것일 뿐 근거가 없다고 일축하면서 박형룡이 고신을 떠난 것은 단지 신학교 운영 방법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신학교의 소재, 그 운영에 있어 총회 및 주한 4대 장로교 선교부와의 협조 여부에 대한 이견이 양자의 결별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고신측 사가들이 인정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면, 신사참배자들에 대한 권징관이 달랐기에 박형룡이 떠났다는 것 정도이다. 즉 박형룡은 신사참배자들에 대한 권징을 유보 내지는 포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한상동은 그것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조건으로 고수했다. 그리고 권징에 대한 견해 차이는 곧 신학교 운영에서 총회와 협조하느냐, 독자적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박형룡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직간접으로 고신이 새로운 교단을 만들려 한다고 불평했다. 그러므로 대답은 박형룡의 진술의 신빙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설사 한상동이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총회 신설론”을 박형룡에게 제안하지 않았고 단지 신사참배자들에 대한 기존의 자숙안을 고집하면서 총회와 무관한 신학교 운영안을 고수했다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교회 분열로 이어질 것으로 박형룡은 예상했었던 것 같다. 그는 고신의 그러한 노선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신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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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Hyung Ryong"s resignation of the presidency of Korea Theological Seminary was crucial for the first great split of Korea Presbyterian Church in the early 1950s. Immediately after his departure from Korea Theological Seminary, the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 Presbyterian Church declared that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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