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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민가의 공간구성과 거주관행
Spatial Composition and Residence Practices of Traditional Houses in Ulleung Island

比較民俗學 = Asian Comparative Folklore, v.43, 2010년, pp.421 - 465  

이재완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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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울릉도 민가가 울릉도의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지역의 사회ㆍ문화적 흐름과 어떻게 연관되어 건축되었으며, 울릉도 민가의 공간구성과 거주관행은 육지와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시계열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사용된 자료는 문헌자료와 현지조사 자료이며, 분석방법은 육지에서 모집된 울릉도 이주민의 개척과정과 울릉도 민가건축의 역사ㆍ정치ㆍ경제ㆍ환경적 측면과 서로 연관지어 해석하는 것이다.

이 연구로 인해, 울릉도 민가의 변화과정은 개척민의 이주, 벌채금지령, 함석과 판재의 보급, 우데기 외벽화 과정의 4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었다.

1단계는 1882년 고종의 울릉도 개척령(開拓令)이 결정되고, 육지의 주민들이 울릉도에 이주하여 살기 시작한 때이다. 이곳의 이주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화전개간이 이루어졌고, 이들은 울릉도의 풍부한 목재를 이용하여 투막구조의 벽체에 너와를 얹은 우진각지붕 양식의 집을 지었다. 하지만 울릉도에 강풍과 폭설이 자주 발생하자, 주민들은 돌담을 쌓거나 너와에 넓은 돌을 얹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그 결과, 이곳에서는 우데기라는 독특한 시설물이 탄생하게 되었다.

우데기를 설치함으로써 주거생활은 획기적으로 변화하였다. 우데기의 설치는 부엌을 넓게 활용할 수 있었으며, 부엌에 장독대를 비롯한 뒤주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다. 우데기와 본채 사이의 죽땜이(죽담)와 뒤안에는 겨울철 난방을 위해 땔감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울릉도 이주민들은 변화무쌍한 생태환경에 대응ㆍ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으며, 이중 우데기의 설치는 그들의 주거생활을 옥내집중식으로 바꾸어 놓기도 하였다.

2단계는 조선총독부의 산림보호구 설치 이후 민가의 변화과정이다. 1919년 조선총독부의 산림보호구 설치로 인해 주민들의 무차별적인 벌채행위는 금지되었고, 이는 곧 울릉도 민가의 건축양식에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투막구조의 벽체와 너와지붕의 민가양식은 점차 화통구조와 억새지붕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후 너와는 부잣집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재료로 자리잡게 되었다.

3단계는 함석과 판재의 보급 이후 민가의 변화과정이다. 1940년대 이후 함석과 판재의 보급은 울릉도 민가의 벽체와 지붕재료를 바꾸어놓았다. 함석과 판재는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권위적 잔재물이었지만, 이것은 곧 고급재료였다. 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비교적 부유한 주민들은 함석과 판재를 구입하며, 우데기와 지붕재료로 활용하였다. 새마을운동과 교통의 발달로 인해 울릉도에는 대량의 함석을 비롯한 고급 건축재료가 수입된다. 함석과 판재의 사용은 우데기를 견고한 벽체로 탈바꿈하게 되었으며, 견고하게 된 우데기는 민가의 벽체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4단계는 우데기의 외벽화 과정이다. 주민들은 함석과 판재를 우데기의 재료로 사용하면서, 죽담에 마루를 놓아 생활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데기가 본채의 최외곽의 벽으로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벽돌시멘트와 같은 현대식 건축재료가 도입됨으로써 우데기는 개축시 실내공간의 벽체가 됨으로써 집의 실내면적이 훨씬 넓어지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위의 4단계로 구분해 본 결과, 울릉도 개척초기의 민가 양식은 투막집의 벽체양식에 너와지붕 그리고 초재를 이용한 우데기를 사용한 민가임이 밝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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