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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美術史學硏究 = Korean journal of art history, 2010 no.265 = no.265, 2010년, pp.43 - 71
정은우
고려 중기의 불교조각은 요나 송 등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유입된 외래요소가 많이 반영된 점이 특징이다. 통견이나 오른쪽 어깨에 편삼을 입은 착의 형식을 비롯하여 선정인을 한 여래좌상, 보관에는 화불이 있으면서 손에 연꽃을 든 관음상, 백의관음, 두건을 쓴 나한상의 유행 등은 이 시기에 새롭게 보이는 형식과 도상들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대체로 중국과 관련되며 요와 금으로 이어지는 북방적 요소와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가운데 머리에 두건을 쓴 작품과 보관에 화불이 있으면서 손에 연꽃 을 든 보살상은 여러 도상과 서로 결합하면서 공유한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먼저 두건을 쓴 작품을 살펴 보면, 고려시대에는머리에 두건을 쓴 나한상이 유난히 많이 제작되었다. “ 第一賓度盧尊者靈通寺”라는 명문이 있는 청동빈도로 나한상, 강화 출토 석조나한상,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석조나한상 등은 모두 어깨까지 내려오는 짧은 두건을 쓴 나한상들인 점에서 공통된다. 머리에 쓴 두건은 나한상만이 아니라 보살상에도 보인다. 강원도 지역의 한송사나 신복사, 월정사 등에 남아 있는 보살상들은 높은 보관 밑으로 어깨까지 닿은 두건을 쓰고 있어 흥미롭다. 높은 보관 형식은 요대의 보살상들에도 보이는 특징이며, 두건 또한 나한상이나 상경 지역의 보살상에 보이는 요대의 특징이다. 요대에는 북쪽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보온을 위해 두건의 착용이 유행하였으며, 황후의 예복에도 두건이 착용되는 듯 관례화되기도 하였다.
두건은 원래 10세기 돈황 지역을 중심으로 제작된 피건지장보살상에서 처음 보이는데 이러한 형식이 요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여기에 요대 황실에서부터 승려, 일반인들까지 폭넓게 유행했던 두건 착용과 더불어 더욱 유행하면서 요대의 불상 작품에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려에서 유행한 두건을 쓴 나한상 도상은 요를 통해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음은 보관에 화불이 있으며 손에 연꽃을 든 보살상이다. 손에 연꽃을 든 보살상은 당대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인 유행은 요대이다. 요대에는 화불과 연꽃을 든 관음상과 보관에 탑이 있으면서 손에 군지(정병)를 든 미륵상이『팔대보살만다라경』에 의거하여 제작되었다. 고려시대에는 화불과 연꽃을 든 관음보살상이 작은 소금동불 형식으로 제작되었고 대형석불에도 보인다. 화불과 연꽃을 든 은진미륵으로 불리는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이나 연꽃만을 든 중원 미륵대원의 석조여래입상 등은 대표적인 사례로서 대형의 크기와 그 명칭에서 미륵으로 인식된다. 화불이 있는 미륵상은 통일신라시대인 719년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상에서 처음 보이는데 점차 연꽃을 든 불상과 결합되면서 고려만의 새로운 미륵도상이 성립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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