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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藏書閣 = Journal of Jangseogak archives, v.25, 2011년, pp.52 - 77
양승률
이 글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 舟村 申㬅(1620〜1669)의 생애 및 의료 활동과 그가 저술한 것으로 전하는 의약서인 『舟村新方』과 『保幼新編』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주촌신방』은 原本이 없이 筆寫本, 鉛活字本, 『宜彙』, 『(增補)單方新編』 등에 전하고 있어 원본의 복원에 어려움이 있었다. 필자는 새로 발굴한 『舟村集』과 『保幼新編』 필사본 등을 통해서 신만의 생애와 의료 활동, 그의 저서로 전하는 『주촌신방』의 원본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신만은 아버지 申翊隆의 병환 치료 목적으로 復泉 姜鶴年에게서 醫術을 배운 후 의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의서를 섭렵했다. 1639년경에는 아버지와 함께 懷德 宋村(현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에 이주한 후 同春堂 宋浚吉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醫局(舍)에 깊이 관여했다. 더 나아가 의국과 관련하여 의료 활동을 하였고 이를 토대로 의서 편찬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신의 아이를 천연두로 잃은 뼈아픈 경험은 『보유신편』을 편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신만은 1659년경 鎭岑 舟村(현 대전광역시 유성구 용계동 일대)에 거주하면서부터는 직접 약초 재배와 臨床을 거치면서 1669년 죽을 때까지 새로운 의서의 완성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추정된다. 『주촌신방』 서문을 포함하고 있는 『보유신편』 범례는 그의 저술 의도와 향촌민을 위한 실용적인 경험 처방의 생성 과정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보유신편』 필사본은 그동안 그의 저서로 알려진 『주촌신방』의 원본일 것이며, 明(成)無忌가 편찬한 것으로 전하는 『보유신편』 판본은 신만이 편찬한 것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결국 그동안 신만의 저서로 알려진 『주촌신방』은 이를 포함하는 『보유신편』이고, 『보유신편』은 신만이 그의 아버지와 자식의 치료과정에서 얻은 처방과 일반 백성을 치료하면서 지은 의서로 전래 古方과 민간 처방과 임상을 통한 方門의 집대성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보유신편』의 원본 복원은 현존 『보유신편』 필사본과 『주촌신방』의 필사본, 연활자본, 『의휘』, 『(증보)단방신편』 등에 대한 정밀한 비교 검토로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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