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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 전후는 일본이 근대 중국에 가장 깊고도 넓게 영향을 끼친 시기이다. 유학생과 유력(游歷), 일본인 고문과 교습 등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쳐서 이로 인해 언어, 학술시스템 및 정치, 사회, 교육, 사법, 군사, 재정 각 분야의 제도가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형성된 지식 시스템과 제도 체계는 일찍이 일본이 동아시아에서의 언어 권력과 정신적 지배력을 손에 쥐게끔 만들었고, 청말 이후 중국인의 사유와 행위 방식을 결정지었으니, 그 영향력은 극히 깊고도 넓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모두 진화였던 것은 아니었다. 서학의 뒤를 이어 중국에 영향을 끼친 동학(東學)으로서, 중서 양쪽 모두에게 있어 비교 이해를 통해 억지로 갖다 붙이려는 부작용이 있었고, 이는 서학과 중국에 대한 오독과 착오를 낳았다. 이는 신해혁명 연구를 제약하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신해시기 일본이 중국에 미친 광범위하고도 깊은 영향력에 관해 국내외 학계에서는 일찍부터 고도의 관심을 보여 왔다. 미국 학자인 레이놀즈(Douglas R. Reynolds)는 황금10년과 신정혁명(新政革命)(The Xinzheng Revolution and Japan, Council on East Asian Studies, Harvard University, 1993)에서, 신정 전후로 중국의 지식과 제도 체계가 확연히 양분된다고 주장한다. 이 시기 이전이 하나의 체계로 거의 천 여 년 지속되어 왔고, 이 시기 이후가 또 하나의 체계로서, 점차적인 변동과 조정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고 있다.
1898년 백일유신 전야, 중국의 사상과 체제 모두는 중국인 특유의 고대로부터 내려온 원리만을 기계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겨우 12년이 지난 1910년에 이미 중국인의 사상과 정치 체제는 외국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근본적인 함의에서 볼 때, 이러한 변화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사상적 측면에서, 중국의 신구 저명인사들(고관에서부터 신사계층, 신흥 상공업자와 학생에 이르기까지)은 언어와 사상의 내용을 바꾸었고, 몇몇 기구들부터 주요 언론 매체에 이르기까지 이를 빌려 사상을 표현했다. 체제 측면에서, 그들은 외국의 모델을 좇아 오랜 시간에 걸쳐 중국에서 성립된 정부 조직을 고치고, 국가와 사회를 형성하는 법률과 제도를 바꾸었다. 1910년 중국의 사상과 체제를 1925년 및 현재 중국의 그것과 비교해 본다면, 기본적인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은 동일한 현실 질서에 속해 있다. 또 다른측면에서 1910년과 1989년 초를 비교해본다면 사상과 체제의 양대 영역에서 매우 분명하게 서로 단절되어있으며, 게다가 갈수록 더욱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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