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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통일인문학논총 = The journal of humanities for unification, v.53, 2012년, pp.201 - 222
정상봉
예로부터 지금까지 개인과 개인·집단과 집단·국가와 국가 사이에 옳고 그름을 가리는 논쟁은 끊임이 없다. 본고에서는 원효(617~686년)의 화쟁사상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어떻게 당시 불교이론 간에 상호 충돌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소하였는지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삼론종과 유식종 즉 중관학파와 유식학파는 유무(有無)와 진속(眞俗) 문제 에 대하여 각기 서로 다르게 말하였지만 원효는 『대승기신론소』와『금강삼매경론』에서 염정(染淨)·유무(有無)·진속(眞俗)이 원래 둘은 혼융되지만 하나인 것도 아니며 종국에는 일시(一心)의 근원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눈뜬이의 관점에서 『십문화쟁론』을 지어 교리상의 열 가지 문제를 상론하였다. 원효의 일심화쟁사상은 “전체[總]는 개별[別]에 즉 [卽]하고, 개별은 전체에 즉한다.”는 상호 연계성과 “전체 속의 개별, 개별 속의 전체”라는 상호 포섭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철학사상은 삼국의 통일에 그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오늘날 남북한이 비록 모두 한반도의 통일을 주장하지만 쌍방의 입장과 사상이념은 크게 다르다. 마치 눈먼 이들이 각기 코끼리를 얘기할 때 코끼리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온전하게 실상을 말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원효의 일심화쟁사상에 주목한다면 전체와 개별의 연계성과 포섭성에 근거하여 일편의 편견을 대던지고 서로 포용의 노력을 기울일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원효화쟁사상의 현대적 의의 소재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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