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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원전’은 20여 년 노력의 결실

2010-01-07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월성원전 1호기는 발전용량이 58만7천KW였던 고리 1호기보다 발전용량이 10만 KW가 더 많은 67만8,000KW에 달했으며, 경수로가 아닌 중수로였다. 중수로(Heavy water reactors)는 중수(D2O)를 감속재로 사용하는 원자로를 말한다.

원자로에 연료를 농축 우라늄으로 해서 핵반응을 일으키면 온도가 급속히 올라간다. 이 핵반응의 감속을 위해 보통 사용하고 있는 물, 즉 경수를 사용하게 되는데, 중수로는 경수 대신 수소 동위원소와 산소 복합체인 중수를 사용한다.
중수로는 연료를 농축하지 않고 천연 우라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농축공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원자로들에 비해 열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요소, 즉 플루토늄과 삼중수소를 부산물로 많이 생산하기 때문에 핵 확산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본격 추진된 원전 기술자립계획

이 같은 상황에서 당시 과학기술처는 중수로 핵연료 사업을 특정 연구과제로 채택한다. 한국원자력연구소가 확보하고 있었던 정련·변환·성형가공 시설과 연구 기술능력을 바탕으로 국산화를 추진한 결과 1987년 7월부터 월성원자력발전소에서 소요되는 중수로핵연료 전량을 국산 핵연료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
경수로 핵연료 분야에 있어서는 1980년 국산화 사업에 대한 타당성 검사를 거쳐 1982년 11월 한국핵연료주식회사를 설립했으며, 1985년 8월에는 독일 시멘스-KWU 사와 함께 기술개발을 추진, 1988년부터 200톤 규모의 성형가공공장을 가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한편으로는 원자로 설계기술 자립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나갔다. 당시 동력자원부는 1984년 4월 ‘원자력발전소 기술자립계획’ 구상을 통해 각 기술 분야별로 전담기관을 지정하고 상호 역할분담을 통해 원자력발전소 표준화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역할분담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1985년 7월 원자력위원회는 한국에너지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가 핵연료 설계 및 원자로 계통설계를 맡아 추진토록 했으며, 이후 한국에너지연구소는 컴버스쳔 엔지니어링(CE) 사로부터 원자로 계통 설계기술 이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85년 다목적 연구용원자로 설계 착수

원자로 설계기술과 핵연료 개발 분야에서 기술자립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한국은 재료시험로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외국의 기술예속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문제점을 해결하고, 기술을 개량해, 원전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실험과 경험을 통한 기술축적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핵연료 주기시험시설 등과 함께 열 출력이 수십 MW급에 이르는 시험로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이에 따라 1983년 다목적 연구로에 대한 건설타당성 조사·연구가 시작됐고, 그 결과 다목적 연구용량은 20MW 이상으로 하되 조기 건설이 필요하며, 소요되는 기술 중 설계 엔지니어링은 80%, 소요 부품은 75%까지 자체 조달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목적 연구용원자로의 설계는 1985년 시작됐다. 그러나 설계일정의 조정, 부지매입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사업기간이 수차례 연장됐고, 1995년에 와서 ‘하나로’의 준공을 보게 된다. 30MW급의 ‘하나로’는 세계 183개 연구용 원자로 중 10위권에 해당하는 고성능 연구로다.
하나로가 완공됨으로써 1960년대 중반부터 의료용 및 산업용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해 의료·연구기관 및 산업체에 공급해온 원자력연구원의 소형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 2호와 3호(2㎿급)는 운전을 중단했다.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원전 건설도 계속 이어졌다. 1978년 고리 1호기가 가동을 시작한 이후 고리 2, 3, 4호기, 월성 1호기, 영광 1, 2호기, 울진 1호기 등 8개가 건설됐다.
자신감을 얻은 한국 기술진은 1989년 원전 11, 12호기(영광 3, 4호기) 발주 시부터 종전과는 달리 핵심기술 이전을 의무화하고, 국내 관련 업체·기관의 역할 분담을 통해 분야 별로 자체 기술개발과 이전기술의 소화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한국형 원전 표준화 사업 마침내 결실

특히 핵심 기술인 원자로 계통(NSSS) 설계를 담당한 당시 한국에너지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는 우수한 연구 인력을 동원, 자체 기술개발을 수행하면서, 뛰어난 기술자들을 미국 CE사에 파견, 설계 작업에 직접 참여토록 했다.
이 같은 노력들은 한국형 원전 표준화 사업과 병행해 이루어졌다. 표준화 사업이란 한국 실정에 맞는 표준화된 원전을 설계·건설하기 위한 작업으로 1983년 수립된 원전 기술자립계획과 병행해 추진되고 있었다.
이 사업은 1989년 발주한 영광 3, 4호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한국 실정에 맞는 표준원전 설계를 완성하는 한편, 이후에 건설되고 있던 원전에 이 표준설계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안전성과 경제성을 지속적으로 높여나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사업 중심에는 정부와 한국전력공사, 한국에너지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력기술, 한국중공업, 한국핵연료 등 민·관의 협력이 있었다. 이들 기관들은 각기 역할을 분담해, 주요 원자력발전 관련 기술들을 1990년대 중반까지 95% 이상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이 노력은 1990년대 들어 결실을 보게 된다.
무엇보다 큰 성과를 거둔 분야는 안정성이다. 1987년 6월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설기관으로 설치된 원자력안전센터(1990년 별도 법인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으로 독립)는 안전 규제 기준 개발과 함께 원전 가동의 안전성 연구에 주력해 한국형 원전이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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