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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 세계 최고 지키는 이유

2010-04-0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전 국민의 94%가 고속통신망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지만,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미국의 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65%에 불과하다.
또한 인터넷 트래픽 분석업체인 아카마이(Akamai)는 최근 발표에서 “미국의 고속통신망 속도가 한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이용요금은 더 비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미국에서는 한달 평균 45.5달러를 지불해야 하지만 한국은 28.5달러면 고속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최소 17달러 차이가 날뿐만 아니라 더 빠르기까지 하다.
한국은 어떻게 초고속 통신망 보급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 것일까? CNN 인터넷판은 지난 31일 “왜 한국의 인터넷이 가장 빠를까(Why Internet connections are fastest in South Korea?)”라는 기사를 통해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 구축 비결을 밝혔다.


인터넷 속도는 한국이 1위, 미국은 중위권



지난달 15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인터넷 통신망의 접속 속도와 보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360페이지짜리 ‘국가 광대역통신망 계획(National Broadband Plan)’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계획은 앞으로 10년 동안 120~160억 달러를 인터넷 인프라에 집중 투자하여 모든 미국인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목표는 1억 가구에 초당 100메가비트 속도의 인터넷망을 보급하고, 학교·병원 등에는 초당 1기가비트 시설을 갖추며, 농촌지역과 도서관 등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고속통신망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OECD 국가 중 ‘인터넷 속도’에 있어 중간 순위에 머물러 있었다. 아카마이 보고서에 따르면 △1위 한국 14.58Mbps △2위 일본 7.92Mbps △3위 루마니아 6.18Mbps 등이다. 이어 스웨덴(5.74), 아일랜드(5.32), 스위스(4.95), 캐나다(4.25) 등이 뒤를 이었다.
미국은 3.88Mbps로 독일(3.72), 영국(3.48), 프랑스(3.28)와 나란히 중위권에 속해 있다. 충격적인 것은 동유럽 국가인 체코(4.76)나 슬로바키아(4.39)보다도 느리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인터넷 환경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버드대 버크먼 센터(Berkman Center)의 로버트 패리스(Robert Faris) 연구팀장은 “한국과 미국은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며, 지리적 요건도 역사도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통신망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CNN은 그 원인으로 5가지 요소를 꼽았다.


◆ 경쟁 구도가 선택 폭 넓힌다



인터넷 접속이 빠르고 저렴한 나라들은 공통점이 있다. ‘경쟁이 심하다’는 것이다. 한국 등의 국가에서는 선택의 폭이 다양하지만, 미국의 소비자들은 전화회사나 케이블 회사 중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골라야 한다.
이번 FCC의 계획이 경쟁구도를 만드는 데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요카이 벤클러(Yochai Benkler) 버크먼센터 부소장은 ‘구식 인터넷 전쟁을 끝내자(Ending the Internet’s Trench Warfare)’는 제목의 뉴욕타임즈 논설에서 “다른 나라에서는 경쟁이 당연하지만, 이번 광대역통신망 계획은 미국 내 경쟁 환경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비판했다.
벤클러 부소장은 “경쟁을 만들면 소비자들의 인터넷 사용료가 낮아질 것”이라 지적하며, “경쟁을 허용하도록 정책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 뒤쳐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 교육 중시하는 문화를 정책이 뒷받침한다



문화적 차이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의 로버트 앳킨슨(Robert Atkinson) 이사장은 “한국의 부모들은 교육의 가치를 높게 두기 때문에 자녀들의 인터넷 사용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정책의 차이도 크다. 한국은 저소득층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여 고속 통신망 보급을 장려한다. 주부들을 위한 인터넷 교육 프로그램도 정부 주도로 실시한다.
패리스 연구팀장은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해 인터넷 접속 욕구를 자극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결국에는 소비자들의 수요가 통신망 사업자의 노력을 부추기게 된다. 또한 미국은 개인소송이 빈번해서 FCC의 규제력이 크지 못한 것도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초고속 통신망의 성장을 촉진할 정책이 통과되기 어렵다는 의미다.


◆ 개방적인 자세로 통신망 공유한다

인터넷 인프라를 개방해서 통신망을 공유해야 한다는 논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오픈 네트워크(open network)’를 구축해 각 가정의 인터넷 전용선을 나눠 쓰자는 움직임이다. 물론 통신망 사업자들은 공유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유럽 일부국가 등은 새로운 사업자를 끌어들여 경쟁을 유발하는 ‘인프라 공유(infrastructure-sharing)’를 시도해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도 한국처럼 새로운 사업자가 통신망 구축에 거액을 투자하지 않고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 인구밀도 높을수록 인프라 구축비용 낮아진다




광통신망을 이용하면 인터넷 속도를 빠르게 유지할 수 있지만, 각 가정까지는 구리선이 신호를 전달한다. 구리선은 길이가 길어질수록 전달 속도가 느려진다. 미국은 광통신망에서 가정까지의 거리가 1마일을 넘지만, 한국은 아파트 단지가 많아 구리선의 길이를 줄이기가 용이하다.
또한 한국은 제곱마일당 거주인구가 1천2백명으로 88명인 미국에 비해 인구밀도가 훨씬 높다.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면 고속통신망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이 낮아진다. 미국의 주택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며, 교외지역과 비도시지역의 면적도 한국에 비해 상당히 넓다.


◆ 10년 전부터 꾸준히 준비했다



한국은 이미 1990년대부터 인터넷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우선적으로 실행해 왔다. OECD 소속 경제학자인 테일러 레놀즈(Taylor Reynolds)는 “미국이 아무리 따라잡으려 해도 한국은 이미 4~5년 앞서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4~5년간 한국이 사용해온 VDSL 기술을 미국의 AT&T는 이제야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각 가정까지 광통신망을 직접 연결할 계획입니다. 곧 VDSL 기술도 구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버크먼 센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광통신망이 완성되면 한국의 인터넷은 지금보다 10배나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를 위해 정부 예산을 대거 투자하지만, 미국에서는 ‘인터넷은 개인이 알아서 처리할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
다른 국가들이 열심히 추격하고는 있지만, 한국이 초고속 인터넷 보급에 있어 1위를 내주는 일은 당분간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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