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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는 잦은 비로 민물이 바다로 밀려들고 수온도 높아 낙지가 다 숨어버려서 아예 잡을 수 없다는 기사가 실리더니, 카드뮴 논란이 연이어 터지면서 낙지와 문어를 파는 식당은 개점 휴업 상태다. 낙지와 문어로서는 다행이겠지만 말이다. 문어라고 질 수 없다. 문어는 월드컵 경기가 한창일 때 승패를 예측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임으로써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린 바 있다.
오징어, 뼈오징어, 낙지, 문어는 연체동물 중 두족류에 속한다. 머리 두(頭)에 발 족(足)이라는 이름 그대로 머리와 발만 보이는 동물들이다. 이들은 생김새도 특이하지만, 연체동물 중에서 유달리 머리가 좋다. 게다가 놀랍게도 피부에 갖가지 무늬를 만들어내면서 의사 소통을 한다.
두족류의 놀라운 색깔 변화
죽은 상태의 문어나 오징어는 밋밋하게 흰색 바탕에 갈색이나 회색 반점이 나 있을 뿐이지만, 해양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살아있는 문어는 현란하기 그지없다. 끊임없이 색깔과 무늬를 바꾸며, 먹이를 앞에 두고 있을 때는 마치 홀리려는 양 물결치듯이 온몸에서 빛의 무늬가 요동친다.
사람은 피부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거나, 핏기가 가시거나, 햇볕에 타서 빨개졌다가 거멓게 변할 때 외에는. 그나마 그런 변화도 마음먹은 대로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동물계에는 몸의 색깔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물이 많다. 가장 먼저 카멜레온이 떠오른다. 칠면조도 목의 색깔이 바뀐다. 몇몇 개구리도 몸 색깔이 바뀌며, 몸에 난 줄무늬의 색깔을 바꿀 수 있는 물고기도 있다.
포유류는 드물지만,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중에는 이렇게 비교적 빠르게 몸 색깔을 바꿀 수 있는 종들이 있다. 이 동물들의 체색 변화는 주로 호르몬이나 신경 전달 물질의 통제를 받는다. 놀라거나 겁을 먹거나 상대와 맞서거나 짝 후보와 의사 소통을 하거나 할 때 호르몬이 분비되어 색깔이나 무늬가 변한다.
카멜레온도 감정 변화에 따라 체색이 다양하게 변한다. 이런 동물들은 세포 안에서 색소의 위치를 옮기는 방법을 써서 색깔과 무늬를 바꾼다. 색소들을 한 곳에 모으면 짙은 점무늬가 생기고, 넓게 펼치면 옅은 색깔이 되는 식이다.
하지만 체색 변화의 대가는 사실 카멜레온이 아니라 두족류이다. 두족류는 다른 동물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현란하게 체색과 무늬를 바꿀 수 있다. 그것은 두족류의 색소체가 다른 동물과 다른 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두족류의 색소체도 세포이지만, 특이하게 여러 근육과 연결돼 있으며, 그 근육들은 신경을 통해 뇌와 이어져 있다.
일종의 복합 기관인 셈이다. 색소체 안에는 탄성이 있는 주머니가 있고, 그 안에 색소 알갱이가 들어 있다. 색소는 노랑, 주황, 빨강, 갈색, 흑색이 있으며, 파랑이나 초록은 없다. 어떤 색깔의 색소가 있는지는 종에 따라 다르다.
색깔을 바꾸고자 할 때, 두족류는 근육을 수축시켜서 이 주머니의 모양이나 크기를 바꾼다. 그럼으로써 원하는 대로 빠르게 색깔을 바꿀 수 있다. 몸의 끝에서 끝까지 마치 물결치듯이 연달아 빠르게 색깔을 바꿀 수도 있다. 빠르게 다리를 쭉 뻗고 몸을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육을 써서 색깔을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색깔과 무늬를 뇌와 신경을 통해 근육에 전달해 피부에 그려야 하니, 두족류가 영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체색과 무늬 변화는 위장, 의사 소통, 위협이나 포식 활동에 쓰인다.
전자 종이의 활약상
두족류가 이렇게 피부를 화면 삼아 수월하게 하는 일을 사람이라고 하지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사람도 한다. 복잡하고 섬세하기 그지없는 전자 기기의 화면을 통해서 말이다.
의사를 전달하고 읽는다는 측면에서는 컴퓨터 화면보다 전자책 단말기가 더 두족류의 피부 색깔 및 무늬에 알맞은 비유가 될 듯하다. 전자책 단말기는 전자 종이를 쓰며, 전자 종이는 전자 잉크를 이용한다.
비스킷, 커버스토리, 킨들 같은 전자책 단말기는 본래부터 종이책을 대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수백 수천 장에 달하는 종이를 한 장의 전자 종이로 대체한다면 들고 다니기도 편하고, 환경 파괴도 줄이고, 여러 면에서 유익할 것이다. 연구자들은 수십 년에 걸친 연구 끝에 이윽고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쓰고 지울 수 있는 전자 잉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전자 잉크의 원리는 단순하다. 일종의 아주 작은 구슬인 마이크로캡슐을 진짜 종이나 잘 접혔다 펴지거나 휘어지는 플라스틱 같은 매체에 바른다. 마이크로캡슐 안에는 검은 색소와 하얀 입자가 들어 있다. 색소는 음전하를, 입자는 양전하를 띠고 있다.
캡슐이 붙어 있는 매체에 전류를 흘려 보내 음전하를 띠게 하면, 음전하끼리는 밀어내므로 검은 색소는 캡슐의 위쪽으로 올라가고, 하얀 입자는 밑으로 내려온다. 그러면 종이에 글자가 인쇄되듯이 검은 색깔이 나타난다. 반대로 매체에 양전하를 띠게 하면, 음전하를 띤 검은 색소가 밑으로 내려오면서 그 부분의 글자가 사라지면서 백지가 된다.
게다가 전류를 끊어도 색소와 입자는 그 위치에서 변하지 않으므로 글자는 인쇄된 듯이 그대로 유지된다. 따라서 계속 전원을 공급해야 글자를 볼 수 있는 LCD 화면 같은 매체와 달리, 전자 종이는 전원이 공급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글을 읽을 수 있다. 또 오래 읽어도 눈이 쉬 피로하지 않다. 다만 종이책과 마찬가지로 자연광이나 인공 조명이 있어야 글을 읽을 수 있다. 지금은 흑백 전자 종이만 판매되고 있지만, 컬러 전자 종이의 연구와 개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므로 머지 않아 천연색으로 인쇄된 그림책도 전자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두족류가 더 뛰어나다
하지만 전자책 단말기든 태블릿이든 간에 두족류의 능력에는 못 미치는 듯하다. 단순히 말하자면 전자 종이, LCD, LED 같은 화면은 그저 정해진 크기의 색소 입자를 바른 뒤에 조명을 비추거나 스스로 빛을 내게 하는 것이다.
두족류의 피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선 두족류의 피부에는 색소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색소체 밑에는 광택세포와 백색소세포라는 것이 있고, 반사 세포를 지닌 종류도 있다. 근육을 이용해 색소체를 펼치거나 오므리면, 그 아래의 광택세포나 백색소세포에 닿는 빛의 파장과 양도 달라진다.
투과해서 들어간 빛은 이 피부 안쪽에서 빛이 흡수되거나 반사된다. 여기에 피부의 근육까지 합세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고 현란한 색깔과 무늬를 만들어낸다. 그토록 복잡한 첨단 기술의 산물인 전자 기기의 화면이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저자 | 이한음 과학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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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사이언스타임즈 |
출처 | https://www.sciencetimes.co.kr/?p=87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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