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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용감한 행동은 ‘두려움’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뛰어넘는 숭고하고 영예로운 태도로 칭송받기 마련이다. 이와 반대로 ‘겁이 많다’는 평가는 불명예와 부끄러움을 불러 일으킨다. 조지 캐테브(George Kateb)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치욕은 겁쟁이라 불리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도 지혜, 정의, 겸손과 더불어 용기를 4대 덕목으로 꼽았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심리적 행동을 ‘용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뇌의 특정 부위가 고장이 나서 선천적으로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이른바 ‘겁이 전혀 없는’ 사람이 발견돼 화제다.
지난달 16일 생물학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는 ‘뇌 속 편도체와 공포 경험(The Human Amygdala and the Induction and Experience of Fear)’이라는 보고서가 실렸다. 미국 아이오와대 소속 저스틴 파인스타인(Justin Feinstein) 연구원 등이 SM(44세)이라는 가명의 여인을 연구한 결과다.
뇌 편도체 손상으로 두려움 전혀 못 느껴
연구진은 SM을 애완동물 가게에 데려가 뱀과 거미를 만지게 했다. 그러나 SM은 아무렇지도 않게 뱀과 거미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귀신이 나타난다고 소문이 자자한 흉가를 한밤중에 찾아가서 미리 준비한 요원들이 괴물 분장을 한 채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게 했지만 SM은 놀라긴 커녕 웃음만 터뜨려 요원들을 머쓱하게 했다. ‘양들의 침묵’이나 ‘할로윈’처럼 공포를 유발하는 영화를 봐도 SM은 시큰둥할 뿐이었다.
연구진은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SM의 특이한 사례가 뇌 속 편도체(amygdala)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 선천적인 유전질환을 앓고 있는 SM은 뇌의 측두엽에 위치한 편도체 부위가 텅 빈 상태로 태어났다. 편도체는 감정이나 정서 등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M은 즐거움이나 우울함 등 기본적인 정서와 기억력 등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오로지 ‘공포’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편도체에 손상을 입은 다른 환자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겁없는’ 성격은 SM에게서만 나타난 것이다.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파인스타인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만 언급했지만, 심리 행동의 원인을 뇌 속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편도체에 영향을 끼쳐서 두려움을 이겨내게 하는 또 다른 뇌 부위도 발견되었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 소속 신경생물학자인 야딘 두다이(Yadin Dudai)의 연구팀은 뱀 공포증을 지닌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물지는 않지만 또아리를 뜬 채 살아 있는 뱀을 상자에 담아서 피실험자들에게 건네며 이들의 뇌를 스캔했다.
피실험자들은 뇌 스캐너 안에 누운 채 버튼을 눌러야 했다. 뱀이 담긴 상자를 더 가까이 둘 것인지 아니면 더 멀리 둘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공포를 억누르고 뱀 상자를 더 가까이 두겠다고 선택한 이들은 뇌 속 슬하전두대상피질(sgACC)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슬하전두대상피질은 감정과 인지 또는 충동과 계산 간의 충돌을 중재함으로써 고민을 줄여주는데, 편도체의 기능을 저하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 결과는 지난 6월 뉴런(Neuron) 학술지에 실렸다.
두려움을 느끼고도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용기
뇌의 특정 부위가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다면, 겁이 많은 사람들도 수술을 통해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용기 있다고 말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스탠리 래크먼(Stanley Rachman)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 등은 1970년대부터 낙하산 부대의 군인들을 대상으로 두려움과 용기에 대해 연구해왔다. 이들은 처음으로 낙하훈련을 받는 부대원들을 심리적 반응에 따라 3개 그룹으로 나누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에 맞닥뜨리면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를 고민하는 싸움-회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을 보인다. 그러나 평범함을 뛰어넘는 용기를 보이는 첫 번째 그룹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두 번째 그룹은 점프 직전에 극단적인 공포 반응을 보이며 낙하를 망설였다. 세 번째 그룹은 공포 반응을 보이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의연한 태도로 뛰어내렸다.
래크먼 교수는 무섭지만 이를 이겨내는 세 번째 그룹이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두려움에 맞서는 행동’이 진정한 용기라는 것이다.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의 피터 무리스(Peter Muris) 교수 등의 연구 결과도 이와 유사하다.
연구진은 8~13세의 아동 320명을 인터뷰한 결과, 아이들도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을 용기와 동일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수영장에 빠진 동생을 구하거나 나무에 올라간 고양이를 내려주거나 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숲을 통과하거나 엄마의 지갑에서 돈을 훔치는 등 ‘용감하다’고 할 만한 행동을 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70퍼센를 넘었다고 밝혔다.
‘두렵지만 피하지 않는 것’이 용감한 행동이라면, 용기는 동물 사회에서도 발견된다. 조엘 버거(Joel Berger) 몬타나대 생물학 교수는 한 살배기 어린 들소에게서 혈액을 채취하는 작업 중에 이들을 지켜보고 서 있는 수컷 들소와 마주친 적이 있다. 어린소의 아비가 아닌데도 이 수소는 연구진의 위협에 맞서서 대담하게 행동했다.
공포는 위험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용기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SM의 사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다. 소설가이자 사회비평가인 매릴린 로빈슨(Marilynne Robinson)은 “각 사회의 문화적 개념에 따라 용기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고 말했다. 종교적 순교를 떠받드는 문화에서는 용감한 순교자가 생겨나고 사회에 대한 저항이 명예로운 행동으로 비치는 문화권에서는 열변가가 인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SM은 우범지대를 지날 때 낯선 이를 무작정 따라갔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이 많다. 통증이 없다면 자신의 몸에서 어느 부위가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하듯, 생리적인 공포 반응은 위험상황을 인지해서 피해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 된다. 겁 없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뇌 손상으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SM의 사례는 오히려 용감하지 못한 자신을 위로하는 쓸모 있는 변명이 된다.
저자 | 임동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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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사이언스타임즈 |
출처 | https://www.sciencetimes.co.kr/?p=90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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