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거리 경주의 황제라 불리는 자메이카 출신의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Usain Bolt)가 세계 정상 자리를 되찾았다. 지난 1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4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미터 결승에서 9초7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멕시코 국립자치대(NAUM) 연구진이 볼트의 경기 기록을 분석해 ‘폭발적인 힘’이 비결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레이저 장비로 기록한 데이터를 수학 방정식으로 전환해 분석 모델을 만들었다.
수평으로 이동하면서 속도를 높일 때는 땅을 박차고 나가야만 한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항력(drag force)이다. 속도를 높이는 데 방해가 되는 힘이다.
볼트는 보통 사람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막대한 에너지를 생성함으로써 항력을 이겨내고 기록적인 속도를 낸다. 경기중에 볼트의 근육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81.58킬로줄(kJ)에 달한다. 44구경 권총에서 발사되는 총알이 만드는 에너지도 1.6kJ에 불과하다.
연구결과는 학술지 ‘유럽 물리학 저널(European Journal of Physics)’에 게재되었다. 논문의 제목은 ‘On the performance of Usain Bolt in the 100m sprint’이다.


1968년에야 ‘마의 10초 벽’ 깨고 9초대 진입

‘100미터 달리기’는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하계 올림픽이 개최될 때부터 시행된 육상 경기다. 100미터의 직선거리를 빠른 속도로 달려 최단 시간으로 경쟁하는 종목이다.
공인기록은 1912년 제5회 스웨덴 스톡홀름 올림픽 때부터 시작되었다. 7월 6일 미국의 육상선수 도널드 리핀콧(Donald Lippincott)이 세운 10초6이 최초의 100미터 기록이다. 이후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록 아무도 10초의 벽을 넘지 못했다. 스포츠 전문가들은 물리학적으로 또한 심리학적으로 100미터를 10초 이내에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예측했다.
1960년 6월 2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세계대회에서 독일의 육상선수 아르민 하리(Armin Harry)가 처음으로 10.0초로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이후 10초 기록을 세운 선수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60년대에 세워진 공인기록만 10개에 달한다.
‘마의 벽’이라 불리던 10초대 기록이 깨진 것은 1968년이다. 6월 20일 미국 새크라멘토에서 열린 대회에서 미국 선수 짐 하인스(Jim Hines)가 9초9를 기록한 것이다. 불가능을 현실로 바꾼 육상선수의 기록 하나로 세계는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러나 이 기록이 갱신될 때까지 세계는 3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1991년 8월 2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3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미국 선수 칼 루이스(Carl Lewis)가 하리의 기록을 0.04초 단축시켜 9초86이라는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세계는 다시 100미터 달리기의 신기록 행진에 빠져들었다.
벤 존슨(Ben Johnson), 팀 몽고메리(Tim Montgomery), 저스틴 게이틀린(Justin Gatlin)의 기록이 금지약물 사용으로 줄줄이 무효화되면서 새로운 영웅에 대한 기대가 커지기 시작했다.
2005년 아테네에서 자메이카 선수 아사파 파월(Asafa Powell)이 9초77의 신기록을 세운 이후 몇 년 동안 왕좌에 올랐지만, 2008년 우사인 볼트(Usain Bolt)라는 자메이카의 영웅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볼트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리복 그랑프리 경기에서 9초72의 기록을 세워 주목받는 신예가 되었다. 이후 2008년 8월 16일 베이징 하계올림픽에서는 0.03초 더 단축시켜 9초69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이듬해인 2009년 8월 16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0.11초나 단축시킨 9.58의 기록으로 부동의 1위에 올랐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에서도 9초63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려 지난 18일 폐막한 제14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볼트는 단연 돋보였다. 100미터 결승에서 9초77로 금메달, 200미터 결승에서 19초66으로 다시 금메달, 남자 400미터 계주 결승에서도 37초36이라는 시즌 최고기록을 달성하는 등 총 3개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아직까지 볼트를 대체할 만한 인재가 발견되지 않고 있어 신기록과 금메달 행진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단거리 달리기의 황제’ 우사인 볼트가 왕좌를 놓치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볼트의 비결은 ‘폭발적인 근육력’

멕시코 국립자치대 연구진은 수학과 물리학의 관점에서 볼트의 비밀을 풀어냈다. 데이터로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운용하는 레이저 감지장치가 측정한 10분의1초 단위의 위치 및 속도 자료값을 사용했다. 또한 육상선수의 근육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힘을 측정해서 방정식을 구성했다.
경기중에 볼트가 생성하는 에너지는 81.58kJ에 달한다. 44구경 권총이 총알을 발사할 때 생기는 에너지가 1.6kJ이므로 볼트는 그보다 50배나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물론 속도는 총알이 더 빠르다. 볼트가 100미터 구간을 달리는 동안 최고속도에 이르렀을 때의 시속은 43킬로미터지만 총알은 시속 1천600킬로미터 즉 37배의 속도로 날아간다.
공기의 저항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볼트는 키가 195센티미터에 달해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공기 저항을 받는다. 자동차나 비행기로 치면 공기역학적이지 않은 디자인을 갖춘 셈이다.
총알은 공기 저항을 덜 받기 때문에 적은 에너지로도 높은 속도를 낼 수 있지만 볼트는 공기에 의한 항력을 헤치고 나가는 데에만 전체 에너지의 92.21퍼센트인 75.22kJ을 소모한다. 속도를 높이는 데 사용된 에너지는 7.79퍼센트에 불과한 6.36kJ뿐이다.
논문은 볼트의 항력계수(drag coefficient)를 산출해 방정식에 적용했다. 그러자 볼트가 폭발적인 위력의 힘을 내뿜는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100미터 달리기 신기록이 탄생하기가 힘든 이유는 항력에 맞서서 속도를 높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볼트는 꾸준히 자신의 기록을 갱신했다.
최고속도의 절반에 다다르는 지점은 출발 후 0.89초가 지난 순간이다.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2천619.5와트로 3.5마력에 해당한다. 보통 사람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그러나 항력의 힘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 정도의 에너지로도 최고속도에 다다르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린다.
뒷바람(tailwind)이라 불리는 순풍이 불었기 때문에 신기록을 달성한 것은 아닐까. 연구진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베를린 대회를 비교했다.
베이징에서는 뒷바람이 불지 않았고 9초69의 기록을 남겼다. 베를린에서는 초당 0.9미터의 뒷바람이 불어서 9초58로 결승선에 들어왔다. 그러나 뒷바람 효과를 제거해 계산한 값이 9초68로 베이징 올림픽의 기록을 충분히 깰 수 있었다.
연구진은 지난 18일까지 열린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의 데이터를 추가해서 방정식을 개선하고 정확도를 높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