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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궤도 비행을 성공시킨 나사의 숨겨진 인물들

2021-05-17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숨겨진 숫자’ 혹은 ‘숨겨진 인물’을 뜻하는 이 영화는 현대 사회에 들어서도 인종차별이 암암리에 존재하던 1960년대 나사에서 일하던 흑인 여성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다. 영화 속 세 여성인 캐서린 존슨과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은 실존 인물이다.
이들은 남성, 백인 중심의 조직에서 각기 뛰어난 실력으로 1960년대 나사 최초의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 성공에 커다란 공헌을 한다. 미국 최초 유인 우주 비행 계획인 머큐리 프로젝트의 기반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성이자 흑인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그 뛰어난 활약상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나사에 숨겨진 인간 컴퓨터, 캐서린 존슨
나사에서 ‘인간 컴퓨터’로 불리던 캐서린 존슨(Katherine Johnson, 1918~2020)은 어렸을 때부터 천부적인 수학 실력을 지닌 천재였다. 그는 뛰어난 수학 실력으로 불과 6살에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할 정도였다. 하지만 10년 후 그는 그저 세 딸을 키우는 평범한 워킹맘으로 하루를 살고 있다.
존슨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전산원의 보조 계산원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백인 남성들이 주도하는 우주 프로젝트의 수학 계산이 맞는지 검산하는 일이었다. 파일은 기밀이라는 이유로 상당 부분이 지워져서 알아보기 힘들게 전달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여성이자 흑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나사(NASA) 전산원의 근무 여건은 좋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존슨의 모습이 표현된다. 프로젝트 리더는 화를 내며 왜 이렇게 자주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냐며 존슨에게 화를 낸다. 존슨은 항변한다.
“이곳에는 제가 갈 화장실이 없어요. 이 건물엔 유색인종 화장실이 없어서 800m를 나가야 해요. 알고 계셨어요?”
존슨이 근무하는 사무실 건물에는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었다. 그는 화장실은 사무실 건물 밖 800m 떨어진 곳에 있는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까지 가야 했다. 심지어 커피포트에도 차별이 존재했다. 더러운 커피포트에는 ‘유색인종 전용’이라는 이름표가 낙인처럼 붙어있다.
하지만 존슨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뛰어난 수학 실력으로 인정받게 된다.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난항을 겪게 되자 존슨은 새로운 수학 공식을 찾아 이를 해결하기에 이른다. 당시에는 우주 궤도를 계산하기 위해 IBM 컴퓨터가 처음 들어온 시기였다. 컴퓨터가 해내지 못한 계산을 존슨이 정확히 밝혀내면서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는 성공을 거둔다.
기계 컴퓨터의 시대를 간파한 도로시 본
캐서린 존슨과 함께 일하는 또 다른 흑인 여성 도로시 본(Dorothy Johnson Vaughan, 1910 ~2008) 또한 뛰어난 리더십과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능력으로 컴퓨터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는 나사 전산원의 슈퍼 바이저였다. 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급여와 대우는 일반 사원과 다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나사에 대형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본과 그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일자리마저 위태로운 상태가 됐다.
본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는 나사에 IBM 컴퓨터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빠르게 컴퓨터를 다룰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공부한다. 그리고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부하 직원들에게도 교육한다. IBM 컴퓨터가 나사에 들어온 후 컴퓨터가 이들 전산원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본과 그의 부하 직원들은 IBM 직원들보다 능숙하게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은 결국 IBM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슈퍼바이저로 승진한다. 그는 나사 역사상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부서 관리자이자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된 것이다. 본은 28년 동안 나사에 재직하며 흑인 여성이 공식 감독관이 되는 역사를 만들었다. 본은 이러한 능력을 기반으로 비행경로, 우주 발사체인 스카우트(Scout) 프로젝트 등으로 우주개발 프로그램에 기여했다.
도로시 본은 지난 2008년도에 캐서린 존슨은 지난해 10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영화는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라고 말한다. 인종과 성별을 떠나 험난한 시대의 장벽을 넘은 이들의 이야기에 딱 들어맞는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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