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시사에서 1930년대는 중요한 시기로 인식되고 있다. 백석은 그 시대에 활동했던 시인 중 한 사람으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왔는데, 1980년대 들어 재북ㆍ월북 작가 해금을 통해 논의의 물꼬가 트이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는 백석 시에 나타난 언어 미학적 측면, 구조상으로 본 이야기시, 주제에 나타난 상실의식과 귀향의식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특히 기존의 연구에서 미흡하다고 판단했던 백석 시인이 추구했던 전통에 대해 집착하는 독특한 시 세계를 중심으로 시의 완성도 면을 중시하였다. 그의 독특한 시 세계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백석의 언어 미학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방언 사용에 대해 매우 집착한 편이다. 1930년대 ...
한국 현대 시사에서 1930년대는 중요한 시기로 인식되고 있다. 백석은 그 시대에 활동했던 시인 중 한 사람으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왔는데, 1980년대 들어 재북ㆍ월북 작가 해금을 통해 논의의 물꼬가 트이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는 백석 시에 나타난 언어 미학적 측면, 구조상으로 본 이야기시, 주제에 나타난 상실의식과 귀향의식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특히 기존의 연구에서 미흡하다고 판단했던 백석 시인이 추구했던 전통에 대해 집착하는 독특한 시 세계를 중심으로 시의 완성도 면을 중시하였다. 그의 독특한 시 세계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백석의 언어 미학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방언 사용에 대해 매우 집착한 편이다. 1930년대 한글맞춤법이 마련되어 우리표준어가 정착되어 있었을 때 자신의 시에 방언을 활발하게 구사하여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독특한 시작 형태는 다른 시인들처럼 용언(用言)은 거의 없고 체언(體言)에 국한시켜 사용하고 있다. 백서 시의 방언구사는 당시 사회적, 문학적 상황에 대한 소극적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식민지 한국에 있어 1930년대는 민족의 탄압이 심화되던 시기였는데 만주 사변을 고비로 무단ㆍ공포정치로 전환된다. 신간회의 해산, 1ㆍ2차에 걸친 카프의 검거와 해산, 일본어 사용, 조선어 과목 폐지 등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토속어를 지향한 것은 민족 고유의 전통적 정서를 복원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우리말의 고유한 개성과 토착어의 섬세한 감각을 시에서 창조적으로 살려냄으로써 새로운 시의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재래시의 구습을 없애고, 서구시의 개념이나 틀이나 어조를 받아들여 우리 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겠다는 의도나 노력, 이런 흔적은 프랑스 상징주의를 도입하려 했던 안서 김억이나, 황석우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모더니즘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김기림 등에게서 그 극단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석은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민족어를 확대 심화시켜 나간 다른 시인들에 앞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고, ‘민족시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서 그를 경배해야 할 의무를 지닐 만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백석은 당시의 모더니즘의 부정적 요소를 제거시키면서 독창적인 시 세계를 개척해 나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백석의 시는 감각적 시어 구사에 있어서 뛰어난 미학적 효과를 얻는다. 백석의 시에서는 시각적 이미지에 의한 표현이 빈번히 나타난다. 시의 전 편이 이러한 시각적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공감각적 이미지에서도 이 시각적 이미지가 주류를 이루어 다른 이미지와 얽혀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시각의 청각화’ 라는가 ‘청각의 시각화’ 같은 시청각적 이미지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백석의 시에는 고향 음식에 관한 어휘가 많이 들어 있어 미각적, 후각적 이미지가 많이 사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빈도수에서는 시청각적 이미지에는 못 미친다. 이미지즘은 모호한 시어와 주관주의를 배격하고 명확한 심상 제시와 정확한 시어 사용, 그리고 시적 대상에 대한 객관적 태도를 강조하며 새로운 시 형식을 추구한 현대적인 시운동이었다. 이러한 이미지즘의 이론적 바탕이 한국에서는 1934년 최재서와 김기림에 의해 소개되었고,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김기림에 의해 모더니즘이란 개념이 정착하게 된다. 김기림은 정지용의 시에 주목하면서 시의 특징을 무엇보다도 ‘공간성’, 즉 ‘회화성’에 두었다. 미각을 후각화시킨 부분은 미각과 후각이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제외하면, 나머지 공감각적 부분들에는 모두 시각적 이미지가 개입돼 있는 셈이다. 그만큼 백석의 시에서는 사물을 뚜렷하고 명징하게 바라보려는 의도가 짙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내면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에서조차 ‘촉각→시각→청각→촉각’의 다양한 이미지로서 표현하려는 것을 보면 그는 적어도 모더니즘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각적 이미지에 의한 표현 방법이 두드러졌지만,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및 공감각적 이미지가 두루 사용되어 작품성을 높이고 있다. 백석은 시어의 나열과 반복, 의태어ㆍ의성어의 빈번한 사용, 직유에 의한 수사등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운율은 시 창작의 의도를 전제하면서부터 생성된 시적동인의 하나이고 그 성격상 음악적 욕구라고 할 수 있으며 율격 형성의 모형적 인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운율의 존재는 다양한 시적 구성인자들과 결합이 전제되며이로 인해 실현된 율격은 형태 구성이나 전언 등과의 관련을 가지며 시작품의 미적가치에 개입하게된다. 운율의 생성은 관습적 자질, 언어적 자질, 개인적 자질 등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백석의 시에는 반복과 열거의 수법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작품성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더러 잠복해 있어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의심가게 하는 부분도 많다. 백석의 시가 몇몇 이미지로만 형상화시킨 작품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이야기시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 속에는 기층 민중과 평범한 인물이 농촌 배경 속에 자주 등장하고, 따라서 속신(俗神)의 세계가 빈번히 드러나고 있으며, 결국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향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백석의 시는 주제상, 상실의식과 귀향의식이 작품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일제 치하에 의한 조국상실은 고향상실, 가족상실, 자아상실의 결과를 낳았고, 그로 말미암아 그는 줄곧 방황의 길을 걷게 된다. 그와 동시에 고향을 그리워 하는 귀향의식에 집착하게 된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토대로 필자 나름대로 그의 대표작을 선정해 본다면, 이미지 중심의 시 :「夏畓」,「定州城」 이야기 중심의 시 :「가즈랑집」,「여우난골族」,「北方에서」,「許俊」 이미지와 이야기 중심의 시 :「女僧」,「旌門村」,「국수」 내면세계 중심의 시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등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미지 중심의 시「夏畓」,「定州城」과 이미지와 이야기 중심의 시「女僧」,「旌門村」,「국수」등은 백석 문학을 대표함과 동시에 내용과 형식 면에서 시적 완성도가 뛰어난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한국 현대시사의 한가운데 백석이 있고, 백석은 이상과 같은 이유로 충분히 한국 현대문학사의 한 복판에 놓일 자격이 있다. 이제까지 저평가 받아왔던 그늘에서 벗어나 동시대의 모더니즘 시인 계열군인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과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함은 물론, 더 나아가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준 독특한 모더니스트”로 당당히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한국 현대 시사에서 1930년대는 중요한 시기로 인식되고 있다. 백석은 그 시대에 활동했던 시인 중 한 사람으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왔는데, 1980년대 들어 재북ㆍ월북 작가 해금을 통해 논의의 물꼬가 트이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필자는 백석 시에 나타난 언어 미학적 측면, 구조상으로 본 이야기시, 주제에 나타난 상실의식과 귀향의식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특히 기존의 연구에서 미흡하다고 판단했던 백석 시인이 추구했던 전통에 대해 집착하는 독특한 시 세계를 중심으로 시의 완성도 면을 중시하였다. 그의 독특한 시 세계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백석의 언어 미학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방언 사용에 대해 매우 집착한 편이다. 1930년대 한글맞춤법이 마련되어 우리표준어가 정착되어 있었을 때 자신의 시에 방언을 활발하게 구사하여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독특한 시작 형태는 다른 시인들처럼 용언(用言)은 거의 없고 체언(體言)에 국한시켜 사용하고 있다. 백서 시의 방언구사는 당시 사회적, 문학적 상황에 대한 소극적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식민지 한국에 있어 1930년대는 민족의 탄압이 심화되던 시기였는데 만주 사변을 고비로 무단ㆍ공포정치로 전환된다. 신간회의 해산, 1ㆍ2차에 걸친 카프의 검거와 해산, 일본어 사용, 조선어 과목 폐지 등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토속어를 지향한 것은 민족 고유의 전통적 정서를 복원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우리말의 고유한 개성과 토착어의 섬세한 감각을 시에서 창조적으로 살려냄으로써 새로운 시의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재래시의 구습을 없애고, 서구시의 개념이나 틀이나 어조를 받아들여 우리 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겠다는 의도나 노력, 이런 흔적은 프랑스 상징주의를 도입하려 했던 안서 김억이나, 황석우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모더니즘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김기림 등에게서 그 극단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석은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민족어를 확대 심화시켜 나간 다른 시인들에 앞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고, ‘민족시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서 그를 경배해야 할 의무를 지닐 만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백석은 당시의 모더니즘의 부정적 요소를 제거시키면서 독창적인 시 세계를 개척해 나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백석의 시는 감각적 시어 구사에 있어서 뛰어난 미학적 효과를 얻는다. 백석의 시에서는 시각적 이미지에 의한 표현이 빈번히 나타난다. 시의 전 편이 이러한 시각적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공감각적 이미지에서도 이 시각적 이미지가 주류를 이루어 다른 이미지와 얽혀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시각의 청각화’ 라는가 ‘청각의 시각화’ 같은 시청각적 이미지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백석의 시에는 고향 음식에 관한 어휘가 많이 들어 있어 미각적, 후각적 이미지가 많이 사용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빈도수에서는 시청각적 이미지에는 못 미친다. 이미지즘은 모호한 시어와 주관주의를 배격하고 명확한 심상 제시와 정확한 시어 사용, 그리고 시적 대상에 대한 객관적 태도를 강조하며 새로운 시 형식을 추구한 현대적인 시운동이었다. 이러한 이미지즘의 이론적 바탕이 한국에서는 1934년 최재서와 김기림에 의해 소개되었고,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김기림에 의해 모더니즘이란 개념이 정착하게 된다. 김기림은 정지용의 시에 주목하면서 시의 특징을 무엇보다도 ‘공간성’, 즉 ‘회화성’에 두었다. 미각을 후각화시킨 부분은 미각과 후각이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제외하면, 나머지 공감각적 부분들에는 모두 시각적 이미지가 개입돼 있는 셈이다. 그만큼 백석의 시에서는 사물을 뚜렷하고 명징하게 바라보려는 의도가 짙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내면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에서조차 ‘촉각→시각→청각→촉각’의 다양한 이미지로서 표현하려는 것을 보면 그는 적어도 모더니즘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각적 이미지에 의한 표현 방법이 두드러졌지만,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및 공감각적 이미지가 두루 사용되어 작품성을 높이고 있다. 백석은 시어의 나열과 반복, 의태어ㆍ의성어의 빈번한 사용, 직유에 의한 수사등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운율은 시 창작의 의도를 전제하면서부터 생성된 시적동인의 하나이고 그 성격상 음악적 욕구라고 할 수 있으며 율격 형성의 모형적 인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운율의 존재는 다양한 시적 구성인자들과 결합이 전제되며이로 인해 실현된 율격은 형태 구성이나 전언 등과의 관련을 가지며 시작품의 미적가치에 개입하게된다. 운율의 생성은 관습적 자질, 언어적 자질, 개인적 자질 등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백석의 시에는 반복과 열거의 수법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작품성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더러 잠복해 있어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의심가게 하는 부분도 많다. 백석의 시가 몇몇 이미지로만 형상화시킨 작품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이야기시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 속에는 기층 민중과 평범한 인물이 농촌 배경 속에 자주 등장하고, 따라서 속신(俗神)의 세계가 빈번히 드러나고 있으며, 결국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향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백석의 시는 주제상, 상실의식과 귀향의식이 작품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일제 치하에 의한 조국상실은 고향상실, 가족상실, 자아상실의 결과를 낳았고, 그로 말미암아 그는 줄곧 방황의 길을 걷게 된다. 그와 동시에 고향을 그리워 하는 귀향의식에 집착하게 된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토대로 필자 나름대로 그의 대표작을 선정해 본다면, 이미지 중심의 시 :「夏畓」,「定州城」 이야기 중심의 시 :「가즈랑집」,「여우난골族」,「北方에서」,「許俊」 이미지와 이야기 중심의 시 :「女僧」,「旌門村」,「국수」 내면세계 중심의 시 :「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등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미지 중심의 시「夏畓」,「定州城」과 이미지와 이야기 중심의 시「女僧」,「旌門村」,「국수」등은 백석 문학을 대표함과 동시에 내용과 형식 면에서 시적 완성도가 뛰어난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한국 현대시사의 한가운데 백석이 있고, 백석은 이상과 같은 이유로 충분히 한국 현대문학사의 한 복판에 놓일 자격이 있다. 이제까지 저평가 받아왔던 그늘에서 벗어나 동시대의 모더니즘 시인 계열군인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과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함은 물론, 더 나아가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준 독특한 모더니스트”로 당당히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It is perceived as an insignificant period in the history of modern poetics in 1930s. Paek Suk, one of poets who had been playing an active part at that time had not been evaluated justly. Actually, it was not until 1980's that there was an activating argument about the removal of a ban on writers "...
It is perceived as an insignificant period in the history of modern poetics in 1930s. Paek Suk, one of poets who had been playing an active part at that time had not been evaluated justly. Actually, it was not until 1980's that there was an activating argument about the removal of a ban on writers "gone to the north Korea" as he. The writer considered centering on aesthetic side of words, narrative poem on the structure, consciousness of loss and homecoming showing at the subject of Paek Suk's poetry. Especially, much importance was given to the attachment of tradition and the completion of poetry that had been sought by the poet, Paek Suk. It was judged by leaving much to be desired in the existing study. That is, his poetic quality is very unique. First, speech aesthetics of Paek Suk is unique in the following respects. One, he has an inclination clinging to the use of dialects. His style of composition of poems is limited by a declinable words instead of using the substantive. Two, he has a good command of sensible poetic word and an excellent aethetic effect. Though he was conspicuous in expressing an image of the sight, the sense of hearing, touching, tasting, smelling and space are using widely, gaining at a high level of works of art. Three, arrangement of poetic words, repetition, a mimicry word, an onomatopoeic word, and the rhetoric by simile are being used frequently. But there might be an uncertain parts in the level of completion of works since there are several latent factors obstacling works of art. Second, there may be a shaped works with only several images but its the main figure is largely narrative poem. Among them, the floor people and the common figures appear in the background of a farming village. Accordingly, a word of earthly divine was disclosed, and eventually it is based on the consciousness of homecoming hoping for the back in to the bosom of the family. Three, from a viewpoint of the subject, the consciousness of loss, homecoming is controlled over all works. The loss of one's fatherland controlled by the Japanese empire leads to that of home, family, self. Because of it, he came to live a wandering life all the time and at the same time, he came to attach to "the consciousness of homecoming" pining for the hometown. As a resuit of the above-mentioned particulars, his representative works are as follows: Image-centered poem : A rice-field of summer, Castle of Jeong-ju Narrative-centered poem : House of GAZrang, A family living in the valley of fox, On the north, Hur Jun Image and story-centered poem : Nun, Village of Jeong moon, Noodle Inner world-centered poem : South of Shin Uhju RyuDong park shi Bong Bang, Above all things, image-centered poem - A rice-field of summer, castleof Jeong-ju and image and story-centered poem - Nun, Village of Jeong Moon, Noodle are the representative and excellent works of Paek Suk at the completion of poetic level in the contents and form. Paek Suk is in the midst of modern poetic history of Korea in 1930s. He deserved to be valued at the core of the history of modern literature in Korea. As a peculia modernist, he shows such an original world as contemporary poets of an order of modernism, together with Kim-Ki Rym, Jeong Ji-Yong, Kim Kwang-Gyun.
It is perceived as an insignificant period in the history of modern poetics in 1930s. Paek Suk, one of poets who had been playing an active part at that time had not been evaluated justly. Actually, it was not until 1980's that there was an activating argument about the removal of a ban on writers "gone to the north Korea" as he. The writer considered centering on aesthetic side of words, narrative poem on the structure, consciousness of loss and homecoming showing at the subject of Paek Suk's poetry. Especially, much importance was given to the attachment of tradition and the completion of poetry that had been sought by the poet, Paek Suk. It was judged by leaving much to be desired in the existing study. That is, his poetic quality is very unique. First, speech aesthetics of Paek Suk is unique in the following respects. One, he has an inclination clinging to the use of dialects. His style of composition of poems is limited by a declinable words instead of using the substantive. Two, he has a good command of sensible poetic word and an excellent aethetic effect. Though he was conspicuous in expressing an image of the sight, the sense of hearing, touching, tasting, smelling and space are using widely, gaining at a high level of works of art. Three, arrangement of poetic words, repetition, a mimicry word, an onomatopoeic word, and the rhetoric by simile are being used frequently. But there might be an uncertain parts in the level of completion of works since there are several latent factors obstacling works of art. Second, there may be a shaped works with only several images but its the main figure is largely narrative poem. Among them, the floor people and the common figures appear in the background of a farming village. Accordingly, a word of earthly divine was disclosed, and eventually it is based on the consciousness of homecoming hoping for the back in to the bosom of the family. Three, from a viewpoint of the subject, the consciousness of loss, homecoming is controlled over all works. The loss of one's fatherland controlled by the Japanese empire leads to that of home, family, self. Because of it, he came to live a wandering life all the time and at the same time, he came to attach to "the consciousness of homecoming" pining for the hometown. As a resuit of the above-mentioned particulars, his representative works are as follows: Image-centered poem : A rice-field of summer, Castle of Jeong-ju Narrative-centered poem : House of GAZrang, A family living in the valley of fox, On the north, Hur Jun Image and story-centered poem : Nun, Village of Jeong moon, Noodle Inner world-centered poem : South of Shin Uhju RyuDong park shi Bong Bang, Above all things, image-centered poem - A rice-field of summer, castleof Jeong-ju and image and story-centered poem - Nun, Village of Jeong Moon, Noodle are the representative and excellent works of Paek Suk at the completion of poetic level in the contents and form. Paek Suk is in the midst of modern poetic history of Korea in 1930s. He deserved to be valued at the core of the history of modern literature in Korea. As a peculia modernist, he shows such an original world as contemporary poets of an order of modernism, together with Kim-Ki Rym, Jeong Ji-Yong, Kim Kwang-G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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