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대 모더니즘 시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20년대의 시가 가진 낭만파의 감상주의와 경향파의 편내용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출발했다. 김기림, 정지용 등은 자신들의 작품속에서 보여준 감정의 절제를 통한 이미지즘 시들을 통해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으나 역사나 사회에 대한 인식이 빈약한 한계를 가진다. 또한 당시의 전위적 문학운동가 이상은 다다나 초현실주의적인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우리의 문학의 범위를 한 차원 넓혔다. 이들의 작품세계는 전시대의 문학과 비교하여 감정의 발로보다는 감정의 절제를, 시의 이미지에 있어서 음악성보다는 회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시각적 이미지의 중시가 당시의 도시를 나타냄에 있어서 그들의 삶 속의 생활공간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사물이나 풍경으로 드러나는 한계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후 모더니즘 작가들의 극복의 대상이 된다. 50년대 모더니즘시는 당시의 문단이 경향문학의 편내용주의가 사라짐으로 인해, 당시의 문단의 중심이던 인생파와 청록파를 비판하면서 출발한다. 「후반기」 동인 등을 중심으로 당시의 문단이 정치주의에 오염되어 싫음을 비판하고, 정치중립을 선언하고 예술에 충실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정치중립을 선언하였음에도 시대상황과 현실인식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진보의식은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 그러한 문학적 신념은 이론과 창작을 통해 표출되었다.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이 해방된 조국의 새로운 도시에서 창작하려했던 것은 정치적 당파주의가 아닌 시민정신이 드러난 문학이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확고한 역사적인 인식이 나타나는 시들을 창작하고있지 못하고 있다. 해방정국의 혼란이나 6.25전쟁 등 50년대 한국이라는 공간의 특성들을 작품 속에서 전망과 극복의 공간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한계들을 보인다. 60년대의 모더니즘시는 전시대 문학적 성과들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고 불 수 있다. 4.19나 5.16의 역사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역사적 주체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었고, 군사정권의 몰개성주의와 천민 자본주의의 산업화가 가져온 소외 의식은 60년대 작가들이 서구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만족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해있는 1960년대 한국이라는 공간에 발을 밀고 있었으며 자신의 일상 공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 사물들을 통해 현실을 그려내려 노력했다. 이러한 시도들이 일군의 사물시와 일상을 제시하는 시들로 나타나게 되었고, 현실속에서 존재의 문제를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적 인식은 계속적으로 물화되고 상품화되어 가는 사회 현실과 만나면서, 구체적 현실과의 연관을 상실하고, 언어 체계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가져오며, 무의미·무의식의 시로 나타났음을 살펴보았다. 본고에서는 1960년대 모더니즘에 속하는 세 명의 시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시세계를 살펴보았다. 이들은 기존의 시적 질서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자신의 시세계를 계속적으로 변모시켜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기존의 전통서정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졌다는데 공통점이있다. 이러한 과거의 전통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작품이나 시론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의 시의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김춘수의 경우 그의 대표작인 「꽃」에서 기존 서정시들이 가지고 있던 꽃의 이미지를 부정한다. 꽃은 더 이상 그에게 아름다움이나 여성성을 나타내는 존재가 아니라 일반적인 인식의 대상인 사물일 뿐이다. 이 같이 기존 사회·윤리적 관념을 배제한 순수한 이미지의 추구는 이후 「처용」연작에 이르러서는 객관적인 ...
30년대 모더니즘 시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20년대의 시가 가진 낭만파의 감상주의와 경향파의 편내용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출발했다. 김기림, 정지용 등은 자신들의 작품속에서 보여준 감정의 절제를 통한 이미지즘 시들을 통해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으나 역사나 사회에 대한 인식이 빈약한 한계를 가진다. 또한 당시의 전위적 문학운동가 이상은 다다나 초현실주의적인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우리의 문학의 범위를 한 차원 넓혔다. 이들의 작품세계는 전시대의 문학과 비교하여 감정의 발로보다는 감정의 절제를, 시의 이미지에 있어서 음악성보다는 회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시각적 이미지의 중시가 당시의 도시를 나타냄에 있어서 그들의 삶 속의 생활공간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사물이나 풍경으로 드러나는 한계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후 모더니즘 작가들의 극복의 대상이 된다. 50년대 모더니즘시는 당시의 문단이 경향문학의 편내용주의가 사라짐으로 인해, 당시의 문단의 중심이던 인생파와 청록파를 비판하면서 출발한다. 「후반기」 동인 등을 중심으로 당시의 문단이 정치주의에 오염되어 싫음을 비판하고, 정치중립을 선언하고 예술에 충실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정치중립을 선언하였음에도 시대상황과 현실인식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진보의식은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 그러한 문학적 신념은 이론과 창작을 통해 표출되었다.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이 해방된 조국의 새로운 도시에서 창작하려했던 것은 정치적 당파주의가 아닌 시민정신이 드러난 문학이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확고한 역사적인 인식이 나타나는 시들을 창작하고있지 못하고 있다. 해방정국의 혼란이나 6.25전쟁 등 50년대 한국이라는 공간의 특성들을 작품 속에서 전망과 극복의 공간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한계들을 보인다. 60년대의 모더니즘시는 전시대 문학적 성과들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고 불 수 있다. 4.19나 5.16의 역사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역사적 주체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었고, 군사정권의 몰개성주의와 천민 자본주의의 산업화가 가져온 소외 의식은 60년대 작가들이 서구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만족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해있는 1960년대 한국이라는 공간에 발을 밀고 있었으며 자신의 일상 공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 사물들을 통해 현실을 그려내려 노력했다. 이러한 시도들이 일군의 사물시와 일상을 제시하는 시들로 나타나게 되었고, 현실속에서 존재의 문제를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적 인식은 계속적으로 물화되고 상품화되어 가는 사회 현실과 만나면서, 구체적 현실과의 연관을 상실하고, 언어 체계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가져오며, 무의미·무의식의 시로 나타났음을 살펴보았다. 본고에서는 1960년대 모더니즘에 속하는 세 명의 시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시세계를 살펴보았다. 이들은 기존의 시적 질서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자신의 시세계를 계속적으로 변모시켜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기존의 전통서정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졌다는데 공통점이있다. 이러한 과거의 전통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작품이나 시론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의 시의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김춘수의 경우 그의 대표작인 「꽃」에서 기존 서정시들이 가지고 있던 꽃의 이미지를 부정한다. 꽃은 더 이상 그에게 아름다움이나 여성성을 나타내는 존재가 아니라 일반적인 인식의 대상인 사물일 뿐이다. 이 같이 기존 사회·윤리적 관념을 배제한 순수한 이미지의 추구는 이후 「처용」연작에 이르러서는 객관적인 의미망을 의식적으로 해체하고 이미지만이 존재하는 '무의미시'를 창작하는 언어실험의 미학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또한 여기서 나타나는 존재와 대상사이의 단절은 당시의 물화된 사회의 반영이며, 모더니즘 시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규원의 경우는 실제로 시작품에서 소월과 만해를 비판하면서 기존의 서정시를 반성한다. 현대사회를 산문의 사회라고 인식하면서 산문의 사회는 기존의 서정시 양식으로 담아낼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기존 언어들의 내부에 실재하고 있는 관념으로부터 철저히 언어를 분리시키는 노력을 시도한다. 황동규 역시 전통서정시에 나타나는 '한'의 문제를 극복하고자하는 노력을 보여주며 수동적으로 눈물흘리는 여성화자가 아닌 자신의 사람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이성적 화자를 자신의 시속에 등장시킨다. 이러한 세 시인의 공통점으로 기존 전통에 대한 반성에서 그들의 시가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고민했던 한의 문제나 여성성의 문제, 감상적 정서의 과잉문제들은 이후의 작가들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서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구의 모더니즘은 다양한 전개양상을 보여왔다. 우리 문학에서도 1960년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작가들이 같은 시대를 살면서 시에서 다양한 문학의 변주를 보여왔는데 필자는 그것을 존재, 언어, 일상에 대한 인식의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러한 다양한 현상은 각기 시인들의 세계인식의 방법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김춘수의 경우 일제시대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 50년대 전쟁을 거치면서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신과 세계속에서 존재에 대한 탐구의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왔고, 오규원은 사물에서 출발하여 언어에 이르는 시적 지향을 보여왔다. 이들이 서로 언어에 집착한 것은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으나 김춘수가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 유년의 세계에서 시를 써왔고, 그의 내면에서 계속적으로 서정성을 유지해 왔음에 비해, 오규원은 언어자체의 무게에서 벗어나 원초적 의미의 언어에의 집착을 보이며, 사회적인 인식을 계속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편 황동규의 경우 그의 시세계가 사회적인 관심을 계속적으로 유지가면서 시인 자신 주변의 작은 소재에서 출발하여 시적대상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일상성차 관련해서는 1930년대 이상이나 김기림의 시에 나타나는 '도시화친 경성의 산책자' 모티브에서 벗어나 60년대 사회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통한 대상과의 거리두기가 특징으로 보여진다. 전대의 모더니즘 시들이 서구적인 이미지들을 단순하게 제시함으로써 작기와의 삶과 유리되어 있었다면 이들은 삶속에서 화된 구체적 현실속에서의 대상을 보며주고 있다. 이상으로 세 명의 모더니즘작가들의 작품을 60년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들의 60년대는 전시대의 부정에서 출발했음을 우리는 살펴보았다. 인간 존재의 문제에서 출발한 이들의 시대인식은 더 나아가 문학자체, 언어 자체의 문제로까지 논의가 심화되었으며 이들만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어 한국모더니즘 문학의 한 획을 긋기에 충분한 문학적인 성과들을 이루어 내었다. 이들의 시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탁원한 인어의식의 바탕에 날카로운 사회적 인식과 인생에 대한 의미들을 실어내고 있으며, 현재는 한극 시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위치들을 화보하고 있다. 세 명의 시인의 시세계를 살펴보는 것으로 6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전체적인 형태를 살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 다루지 못한 김수영과 긍정적 존재 인식의 김춘수와 달리 비극적 존재 인식을 보여주는 김종삼, 언어의 인식에 있어서 오규원과 함께 정현종, 이승훈의 관계, 그리고 일상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오세영 등에 대한 연구도 이후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현대시」나 「평균률」 등의 동인지들에 대한 연구도 다각적으로 이루어져야 60년대 모더니즘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부분은 차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30년대 모더니즘 시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20년대의 시가 가진 낭만파의 감상주의와 경향파의 편내용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출발했다. 김기림, 정지용 등은 자신들의 작품속에서 보여준 감정의 절제를 통한 이미지즘 시들을 통해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으나 역사나 사회에 대한 인식이 빈약한 한계를 가진다. 또한 당시의 전위적 문학운동가 이상은 다다나 초현실주의적인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우리의 문학의 범위를 한 차원 넓혔다. 이들의 작품세계는 전시대의 문학과 비교하여 감정의 발로보다는 감정의 절제를, 시의 이미지에 있어서 음악성보다는 회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시각적 이미지의 중시가 당시의 도시를 나타냄에 있어서 그들의 삶 속의 생활공간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사물이나 풍경으로 드러나는 한계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후 모더니즘 작가들의 극복의 대상이 된다. 50년대 모더니즘시는 당시의 문단이 경향문학의 편내용주의가 사라짐으로 인해, 당시의 문단의 중심이던 인생파와 청록파를 비판하면서 출발한다. 「후반기」 동인 등을 중심으로 당시의 문단이 정치주의에 오염되어 싫음을 비판하고, 정치중립을 선언하고 예술에 충실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정치중립을 선언하였음에도 시대상황과 현실인식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진보의식은 현실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 그러한 문학적 신념은 이론과 창작을 통해 표출되었다.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이 해방된 조국의 새로운 도시에서 창작하려했던 것은 정치적 당파주의가 아닌 시민정신이 드러난 문학이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확고한 역사적인 인식이 나타나는 시들을 창작하고있지 못하고 있다. 해방정국의 혼란이나 6.25전쟁 등 50년대 한국이라는 공간의 특성들을 작품 속에서 전망과 극복의 공간으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한계들을 보인다. 60년대의 모더니즘시는 전시대 문학적 성과들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고 불 수 있다. 4.19나 5.16의 역사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역사적 주체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었고, 군사정권의 몰개성주의와 천민 자본주의의 산업화가 가져온 소외 의식은 60년대 작가들이 서구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만족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이 처해있는 1960년대 한국이라는 공간에 발을 밀고 있었으며 자신의 일상 공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 사물들을 통해 현실을 그려내려 노력했다. 이러한 시도들이 일군의 사물시와 일상을 제시하는 시들로 나타나게 되었고, 현실속에서 존재의 문제를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적 인식은 계속적으로 물화되고 상품화되어 가는 사회 현실과 만나면서, 구체적 현실과의 연관을 상실하고, 언어 체계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가져오며, 무의미·무의식의 시로 나타났음을 살펴보았다. 본고에서는 1960년대 모더니즘에 속하는 세 명의 시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시세계를 살펴보았다. 이들은 기존의 시적 질서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자신의 시세계를 계속적으로 변모시켜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기존의 전통서정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졌다는데 공통점이있다. 이러한 과거의 전통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작품이나 시론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의 시의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김춘수의 경우 그의 대표작인 「꽃」에서 기존 서정시들이 가지고 있던 꽃의 이미지를 부정한다. 꽃은 더 이상 그에게 아름다움이나 여성성을 나타내는 존재가 아니라 일반적인 인식의 대상인 사물일 뿐이다. 이 같이 기존 사회·윤리적 관념을 배제한 순수한 이미지의 추구는 이후 「처용」연작에 이르러서는 객관적인 의미망을 의식적으로 해체하고 이미지만이 존재하는 '무의미시'를 창작하는 언어실험의 미학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또한 여기서 나타나는 존재와 대상사이의 단절은 당시의 물화된 사회의 반영이며, 모더니즘 시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규원의 경우는 실제로 시작품에서 소월과 만해를 비판하면서 기존의 서정시를 반성한다. 현대사회를 산문의 사회라고 인식하면서 산문의 사회는 기존의 서정시 양식으로 담아낼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기존 언어들의 내부에 실재하고 있는 관념으로부터 철저히 언어를 분리시키는 노력을 시도한다. 황동규 역시 전통서정시에 나타나는 '한'의 문제를 극복하고자하는 노력을 보여주며 수동적으로 눈물흘리는 여성화자가 아닌 자신의 사람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이성적 화자를 자신의 시속에 등장시킨다. 이러한 세 시인의 공통점으로 기존 전통에 대한 반성에서 그들의 시가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고민했던 한의 문제나 여성성의 문제, 감상적 정서의 과잉문제들은 이후의 작가들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서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구의 모더니즘은 다양한 전개양상을 보여왔다. 우리 문학에서도 1960년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작가들이 같은 시대를 살면서 시에서 다양한 문학의 변주를 보여왔는데 필자는 그것을 존재, 언어, 일상에 대한 인식의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러한 다양한 현상은 각기 시인들의 세계인식의 방법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김춘수의 경우 일제시대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 50년대 전쟁을 거치면서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신과 세계속에서 존재에 대한 탐구의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왔고, 오규원은 사물에서 출발하여 언어에 이르는 시적 지향을 보여왔다. 이들이 서로 언어에 집착한 것은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으나 김춘수가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 유년의 세계에서 시를 써왔고, 그의 내면에서 계속적으로 서정성을 유지해 왔음에 비해, 오규원은 언어자체의 무게에서 벗어나 원초적 의미의 언어에의 집착을 보이며, 사회적인 인식을 계속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편 황동규의 경우 그의 시세계가 사회적인 관심을 계속적으로 유지가면서 시인 자신 주변의 작은 소재에서 출발하여 시적대상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일상성차 관련해서는 1930년대 이상이나 김기림의 시에 나타나는 '도시화친 경성의 산책자' 모티브에서 벗어나 60년대 사회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통한 대상과의 거리두기가 특징으로 보여진다. 전대의 모더니즘 시들이 서구적인 이미지들을 단순하게 제시함으로써 작기와의 삶과 유리되어 있었다면 이들은 삶속에서 화된 구체적 현실속에서의 대상을 보며주고 있다. 이상으로 세 명의 모더니즘작가들의 작품을 60년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들의 60년대는 전시대의 부정에서 출발했음을 우리는 살펴보았다. 인간 존재의 문제에서 출발한 이들의 시대인식은 더 나아가 문학자체, 언어 자체의 문제로까지 논의가 심화되었으며 이들만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어 한국모더니즘 문학의 한 획을 긋기에 충분한 문학적인 성과들을 이루어 내었다. 이들의 시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탁원한 인어의식의 바탕에 날카로운 사회적 인식과 인생에 대한 의미들을 실어내고 있으며, 현재는 한극 시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위치들을 화보하고 있다. 세 명의 시인의 시세계를 살펴보는 것으로 6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전체적인 형태를 살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 다루지 못한 김수영과 긍정적 존재 인식의 김춘수와 달리 비극적 존재 인식을 보여주는 김종삼, 언어의 인식에 있어서 오규원과 함께 정현종, 이승훈의 관계, 그리고 일상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오세영 등에 대한 연구도 이후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현대시」나 「평균률」 등의 동인지들에 대한 연구도 다각적으로 이루어져야 60년대 모더니즘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부분은 차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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