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룻기 1장부터 4장까지 나오는 사람들은 이름만 언급하든 혹은 이름조차 언급되지 못하든 한가지로 딱 정해진 성격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어떤 사람이든 그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다중 인격자이거나 혹은 변덕이 심한 사람들인 것은 아니다 모두 개인이 가진 특성이며,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이뤄나가는 기질일 것이다. 1. 가볍게 등장하는 인물들 : 엘리델렉, 말론과 기룐, 오르바, '아무' 책의 주인공 쯤은 되어야 하지만 이름만 등장하고 죽었다는 기사가 전해지는 엘리멜렉의 경우는 이름은 대단하지만 그에 반해 신앙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고, 그의 기사를 읽는 히브리인들이 그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을 왕으로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혹은 자신의 자녀들을 그와 같은 이름을 주자는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부모들의 신앙이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님을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말론과 기룐을 통해, 특별히 그들이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고 하는 사실을 통해 역시 신앙이 완전히 대물림을 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신학자들은 이 기록 시대를 에스라-느헤미야의 시대로 생각하고있고, 그들의 생각이 역사적으로 사실이라고 한다면, 독자들은 이 글을 읽으며 에스라와-느헤미야의 정책에 조금은 반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칭찬했던 선왕 다윗이 이방 여인 룻의 자녀라는 사실이 언급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신앙이 좋은 조상이 아니라 연약한 몸뚱이에 활동성마저 없었을 법한 조상으로부터 나왔다고 하는 사실, 그러나 그런 남자와 결혼한 이방여인의 노력에 의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들이 이방 여인과의 결합을 합리화 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름밖에 언급되지 않은 두 남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독자들은 룻기의 결말까지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름의 의미를 우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을 테니 말론과 기룐이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우리보다 깊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후에 이름만 언급된 것이 아니라 룻기를 이뤄 가는 과정 속에서 한 획들을 담당했던 엑스트라들, 오르바, '아무'로 표현된 기업무를 자의 모습들을 보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자기 자신만 돌보며, 혼자 잘 살겠다고 아둥바둥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가 봐도 인간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그리고 보편적인 선택을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아무런 기여도 못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이뤄 가는 일에도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특히 기업무를 자의 사건에 있어서, 그의 선택에 있어서는 더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문화가 다르고 법에 차이가 있기에 신발을 벗는 다는 것, 기업무를 의무를 다하지 않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우리보다는 잘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 가운데서 당연히 해야하는 의무를 게을리 할 때, 자녀들에게조차 이름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고, 하나님이 그와 같은 삶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도 느꼈을 것이다. 2. 비중 있는 등장 인물들 (1) 보아스 : 그에 반해 보아스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는 한 마을의 유지이지만, 그리고 제법 신분도 높은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는 거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일꾼들을 대할 때도, 친 가족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듯 그렇게 대해주는 겸손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신분, 자신의 재력으로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려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인간의 왕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이스라엘의 생각을 실천하는 것처럼, 자신 또한 누구의 머리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단순히 다정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보아스는 하나님이 주신 재력을 자기 혼자 가지려하지 않고, 즉 소유주로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재산을 관리하는 자로서 생활했다. 그랬기에 나그네와 같은 존재인 룻을 대할 때, 자신이 가진 재물을 나눠주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그 뿐인가? 자신보다 가까운 친족은 분명 손해를 볼 듯하여, 무르기를 거절했던 그 엘리멜렉의 밭을 물러주었고, 또한 그녀의 며느리 룻과 결혼하여 자신이 무른 밭을 유산으로 물려줄 자녀를 낳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재산을 관리하는 관리자로서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는 은혜 베풀기에 힘쓰는 남자였다. 그 뿐인가? 밤 늦게 자신의 침상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여인이 있음에도, 젊은 여인이 있음에도, 자신의 욕정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할 의무를 하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남자였다. 자신을 찾아 구원을 요구하는 여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약속을 하고, 그 요구를 들어주마, 안심시키고 아침이 되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는 부지런한 남자이기까지 했다. 보아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나눌 줄 아는 참다운 관리자의 모습이었다. (2) 나오미 : 나오미는 어떠한 사람이었나? 그녀는 훌륭한 믿음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 당시 여인에게 모든 것이랄 있는 남편도 잃고, 아들들까지 잃은 여인, 그것도 자신의 마을에서 잃은 것이 아니라 잘 살자고 떠난 타향의 생활 가운데 잃은 여인이었다. 누구라도 그와 같은 삶에 빠지게 된다면 당황하고 좌절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나오미는 좌절하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의 고백, 혹은 자신의 믿음일지도 모르는 불분명한 것을 확신하고 과감히 쉽지 않은 길을 떠난다. 오직 한가지 자신을 불행 가운데 빠뜨린 하나님의 회복을 믿는 마음으로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길을 떠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아울러 그녀는 자신에게 속했던 사람, 즉 며느리들을 끝까지, 뜨겁게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쉽지 않은 길, 누구라도 의지할 사람과 함께 떠나고 싶을텐데, 그녀는 자신의 슬픔,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끌어드리고 싶지 않았던 듯, 한 사람이 아쉬운 떼에 모두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회복시킬 때까지의 여정이 나그네의 여정과 같을 것임을 짐작한 듯 사랑하는 며느리들에게는 나그네의 삶을 떠나 정착된 삶을 가지라고 기꺼이 권할 줄 아는 사랑이 가득한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
이처럼 룻기 1장부터 4장까지 나오는 사람들은 이름만 언급하든 혹은 이름조차 언급되지 못하든 한가지로 딱 정해진 성격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어떤 사람이든 그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다중 인격자이거나 혹은 변덕이 심한 사람들인 것은 아니다 모두 개인이 가진 특성이며,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이뤄나가는 기질일 것이다. 1. 가볍게 등장하는 인물들 : 엘리델렉, 말론과 기룐, 오르바, '아무' 책의 주인공 쯤은 되어야 하지만 이름만 등장하고 죽었다는 기사가 전해지는 엘리멜렉의 경우는 이름은 대단하지만 그에 반해 신앙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고, 그의 기사를 읽는 히브리인들이 그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을 왕으로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혹은 자신의 자녀들을 그와 같은 이름을 주자는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부모들의 신앙이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님을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말론과 기룐을 통해, 특별히 그들이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고 하는 사실을 통해 역시 신앙이 완전히 대물림을 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신학자들은 이 기록 시대를 에스라-느헤미야의 시대로 생각하고있고, 그들의 생각이 역사적으로 사실이라고 한다면, 독자들은 이 글을 읽으며 에스라와-느헤미야의 정책에 조금은 반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칭찬했던 선왕 다윗이 이방 여인 룻의 자녀라는 사실이 언급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신앙이 좋은 조상이 아니라 연약한 몸뚱이에 활동성마저 없었을 법한 조상으로부터 나왔다고 하는 사실, 그러나 그런 남자와 결혼한 이방여인의 노력에 의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들이 이방 여인과의 결합을 합리화 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름밖에 언급되지 않은 두 남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독자들은 룻기의 결말까지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름의 의미를 우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을 테니 말론과 기룐이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우리보다 깊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후에 이름만 언급된 것이 아니라 룻기를 이뤄 가는 과정 속에서 한 획들을 담당했던 엑스트라들, 오르바, '아무'로 표현된 기업무를 자의 모습들을 보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자기 자신만 돌보며, 혼자 잘 살겠다고 아둥바둥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가 봐도 인간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그리고 보편적인 선택을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아무런 기여도 못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이뤄 가는 일에도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특히 기업무를 자의 사건에 있어서, 그의 선택에 있어서는 더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문화가 다르고 법에 차이가 있기에 신발을 벗는 다는 것, 기업무를 의무를 다하지 않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우리보다는 잘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 가운데서 당연히 해야하는 의무를 게을리 할 때, 자녀들에게조차 이름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고, 하나님이 그와 같은 삶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도 느꼈을 것이다. 2. 비중 있는 등장 인물들 (1) 보아스 : 그에 반해 보아스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는 한 마을의 유지이지만, 그리고 제법 신분도 높은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는 거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일꾼들을 대할 때도, 친 가족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듯 그렇게 대해주는 겸손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신분, 자신의 재력으로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려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인간의 왕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이스라엘의 생각을 실천하는 것처럼, 자신 또한 누구의 머리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단순히 다정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보아스는 하나님이 주신 재력을 자기 혼자 가지려하지 않고, 즉 소유주로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재산을 관리하는 자로서 생활했다. 그랬기에 나그네와 같은 존재인 룻을 대할 때, 자신이 가진 재물을 나눠주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그 뿐인가? 자신보다 가까운 친족은 분명 손해를 볼 듯하여, 무르기를 거절했던 그 엘리멜렉의 밭을 물러주었고, 또한 그녀의 며느리 룻과 결혼하여 자신이 무른 밭을 유산으로 물려줄 자녀를 낳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재산을 관리하는 관리자로서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는 은혜 베풀기에 힘쓰는 남자였다. 그 뿐인가? 밤 늦게 자신의 침상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여인이 있음에도, 젊은 여인이 있음에도, 자신의 욕정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할 의무를 하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남자였다. 자신을 찾아 구원을 요구하는 여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약속을 하고, 그 요구를 들어주마, 안심시키고 아침이 되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는 부지런한 남자이기까지 했다. 보아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나눌 줄 아는 참다운 관리자의 모습이었다. (2) 나오미 : 나오미는 어떠한 사람이었나? 그녀는 훌륭한 믿음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 당시 여인에게 모든 것이랄 있는 남편도 잃고, 아들들까지 잃은 여인, 그것도 자신의 마을에서 잃은 것이 아니라 잘 살자고 떠난 타향의 생활 가운데 잃은 여인이었다. 누구라도 그와 같은 삶에 빠지게 된다면 당황하고 좌절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나오미는 좌절하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의 고백, 혹은 자신의 믿음일지도 모르는 불분명한 것을 확신하고 과감히 쉽지 않은 길을 떠난다. 오직 한가지 자신을 불행 가운데 빠뜨린 하나님의 회복을 믿는 마음으로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길을 떠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아울러 그녀는 자신에게 속했던 사람, 즉 며느리들을 끝까지, 뜨겁게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쉽지 않은 길, 누구라도 의지할 사람과 함께 떠나고 싶을텐데, 그녀는 자신의 슬픔,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끌어드리고 싶지 않았던 듯, 한 사람이 아쉬운 떼에 모두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회복시킬 때까지의 여정이 나그네의 여정과 같을 것임을 짐작한 듯 사랑하는 며느리들에게는 나그네의 삶을 떠나 정착된 삶을 가지라고 기꺼이 권할 줄 아는 사랑이 가득한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해도 분명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는 강한 믿음의 여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잠잠히 하나님의 회복할 순간을 기다리는 여인이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릴 친족 보아스를 만났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보아스를 찾아가 보아스의 의무에 대하여 요구하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 자신이 움직여야 할 때가 되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잠잠하는 여인이었다. 불행이 닥쳐왔을 때 당황하지 않았듯 자신에게 행운이 왔을 때 들뜨지 않는 잠잠한 여인이었다. 분명히 회복의 때가 되었을 때,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보아스가 타작할 때를 조사하고,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울 줄 아는 멋진 여성이었다. 그 뿐 아니라 지금도 대범한 행동을 계획하고, 어떻게든 보아스라고 하는 남자에게 나오미 자신의 가족을 살리게 하기 위하여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치밀한 계획을 세울 줄 아는 여인이었다. 그렇다 해도 누구에게도 신뢰를 주지 못한 사람이라면 모두 쓸모 없는 일이었을 텐데, 그녀는 그렇지도 않았다. 처음 여행을 떠날 때도 끝까지 따르겠다는 며느리가 있을 만큼, 그리고 대범한 계획을 기꺼이 따르겠다고 말하는 며느리가 있을 만큼 타인에게 신뢰도 쌓은 여인이었다 참으로 행복한 여인이었다. (3) 룻 : 그렇다면 책의 제목에 기록된 여인 룻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녀는 사랑이 넘치는 여인이었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까지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여인이었다. 자신이 겪은 슬픔을 깨닫고, 그 슬픔의 크기를 아는 만큼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타인의 슬픔의 크기를 돌볼 줄 아는 여인이었다. 단순히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슬픔을 함께 나누기를 마다하지 않는 여인이었다. 타인이 슬프든 말든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살길을 찾아나서는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을 뛰어 넘어 자신의 슬픔과 타인의 슬픔을 함께 어우를 줄 아는, 돌보는 여인이었다. 그런가 하면 사랑이 가득한 만큼 잔잔하고 조용한 여인은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가족을 세우기 위해 슬픔을 상쇄시키기 위해 해야할 일을 계획하고 계획한대로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행동파 여성이었다. 분명 고된 일인 것을 알지만 나오미를 따라 나섰듯, 천대받고, 눈총 받을 일인 것을 알면서도 이삭을 주우러 나가는 적극적인 행동파 여성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행동한 하는 여성은 또한 아니었다. 자신이 행동해야 할 때, 그냥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을 짜고 보아스라는 남자의 눈에 뜨이도록 작전도 짤 줄 아는 지혜로운 전략가의 모습도 가지고 있었다. 남들이 일하는 밭에서 혼자 엉뚱한 부탁을 하며 일은 하지 않고 일꾼을 쫓아다니는 여인, 어쩌면 더 많이 줍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확실히 자신이 가진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계획하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그녀는 조용하고 얌전하고, 지혜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범하기까지 한 여인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보아스에게 기업을 무르게 하기 위해 세웠던 계획은 지금도 대범한 계획이었음에도 지금부터 최소 3000년 전의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행동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범한가? 젊은 여인으로 몸파는 직업 여성처럼 보여질지도 모르는 행동, 누구라도 오해하기 쉬운 행동을 시어머니의 말이라지만 반대하기나 거절하지 않고 과감히 행동할 줄 아는 대범한 여성이었다 타인을 사랑할 줄 알고, 행동할 줄 알며, 지혜롭고 대범한 여인! 어떠한 남자에게든 이상형이기에 충분한 멋진 여인이었다
이처럼 룻기 1장부터 4장까지 나오는 사람들은 이름만 언급하든 혹은 이름조차 언급되지 못하든 한가지로 딱 정해진 성격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어떤 사람이든 그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다중 인격자이거나 혹은 변덕이 심한 사람들인 것은 아니다 모두 개인이 가진 특성이며,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이뤄나가는 기질일 것이다. 1. 가볍게 등장하는 인물들 : 엘리델렉, 말론과 기룐, 오르바, '아무' 책의 주인공 쯤은 되어야 하지만 이름만 등장하고 죽었다는 기사가 전해지는 엘리멜렉의 경우는 이름은 대단하지만 그에 반해 신앙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고, 그의 기사를 읽는 히브리인들이 그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을 왕으로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혹은 자신의 자녀들을 그와 같은 이름을 주자는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부모들의 신앙이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님을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말론과 기룐을 통해, 특별히 그들이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고 하는 사실을 통해 역시 신앙이 완전히 대물림을 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신학자들은 이 기록 시대를 에스라-느헤미야의 시대로 생각하고있고, 그들의 생각이 역사적으로 사실이라고 한다면, 독자들은 이 글을 읽으며 에스라와-느헤미야의 정책에 조금은 반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칭찬했던 선왕 다윗이 이방 여인 룻의 자녀라는 사실이 언급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신앙이 좋은 조상이 아니라 연약한 몸뚱이에 활동성마저 없었을 법한 조상으로부터 나왔다고 하는 사실, 그러나 그런 남자와 결혼한 이방여인의 노력에 의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들이 이방 여인과의 결합을 합리화 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름밖에 언급되지 않은 두 남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독자들은 룻기의 결말까지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름의 의미를 우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을 테니 말론과 기룐이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우리보다 깊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후에 이름만 언급된 것이 아니라 룻기를 이뤄 가는 과정 속에서 한 획들을 담당했던 엑스트라들, 오르바, '아무'로 표현된 기업무를 자의 모습들을 보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자기 자신만 돌보며, 혼자 잘 살겠다고 아둥바둥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가 봐도 인간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그리고 보편적인 선택을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아무런 기여도 못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이뤄 가는 일에도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특히 기업무를 자의 사건에 있어서, 그의 선택에 있어서는 더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문화가 다르고 법에 차이가 있기에 신발을 벗는 다는 것, 기업무를 의무를 다하지 않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우리보다는 잘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 가운데서 당연히 해야하는 의무를 게을리 할 때, 자녀들에게조차 이름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고, 하나님이 그와 같은 삶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도 느꼈을 것이다. 2. 비중 있는 등장 인물들 (1) 보아스 : 그에 반해 보아스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는 한 마을의 유지이지만, 그리고 제법 신분도 높은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는 거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일꾼들을 대할 때도, 친 가족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듯 그렇게 대해주는 겸손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신분, 자신의 재력으로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려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인간의 왕은 하나님 한 분이라는 이스라엘의 생각을 실천하는 것처럼, 자신 또한 누구의 머리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단순히 다정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보아스는 하나님이 주신 재력을 자기 혼자 가지려하지 않고, 즉 소유주로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재산을 관리하는 자로서 생활했다. 그랬기에 나그네와 같은 존재인 룻을 대할 때, 자신이 가진 재물을 나눠주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그 뿐인가? 자신보다 가까운 친족은 분명 손해를 볼 듯하여, 무르기를 거절했던 그 엘리멜렉의 밭을 물러주었고, 또한 그녀의 며느리 룻과 결혼하여 자신이 무른 밭을 유산으로 물려줄 자녀를 낳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재산을 관리하는 관리자로서 가난한 사람을 돌아보는 은혜 베풀기에 힘쓰는 남자였다. 그 뿐인가? 밤 늦게 자신의 침상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여인이 있음에도, 젊은 여인이 있음에도, 자신의 욕정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할 의무를 하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남자였다. 자신을 찾아 구원을 요구하는 여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약속을 하고, 그 요구를 들어주마, 안심시키고 아침이 되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는 부지런한 남자이기까지 했다. 보아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나눌 줄 아는 참다운 관리자의 모습이었다. (2) 나오미 : 나오미는 어떠한 사람이었나? 그녀는 훌륭한 믿음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 당시 여인에게 모든 것이랄 있는 남편도 잃고, 아들들까지 잃은 여인, 그것도 자신의 마을에서 잃은 것이 아니라 잘 살자고 떠난 타향의 생활 가운데 잃은 여인이었다. 누구라도 그와 같은 삶에 빠지게 된다면 당황하고 좌절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나오미는 좌절하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의 고백, 혹은 자신의 믿음일지도 모르는 불분명한 것을 확신하고 과감히 쉽지 않은 길을 떠난다. 오직 한가지 자신을 불행 가운데 빠뜨린 하나님의 회복을 믿는 마음으로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길을 떠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아울러 그녀는 자신에게 속했던 사람, 즉 며느리들을 끝까지, 뜨겁게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쉽지 않은 길, 누구라도 의지할 사람과 함께 떠나고 싶을텐데, 그녀는 자신의 슬픔,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끌어드리고 싶지 않았던 듯, 한 사람이 아쉬운 떼에 모두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회복시킬 때까지의 여정이 나그네의 여정과 같을 것임을 짐작한 듯 사랑하는 며느리들에게는 나그네의 삶을 떠나 정착된 삶을 가지라고 기꺼이 권할 줄 아는 사랑이 가득한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해도 분명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확신하는 강한 믿음의 여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잠잠히 하나님의 회복할 순간을 기다리는 여인이었다. 자신의 가족을 살릴 친족 보아스를 만났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보아스를 찾아가 보아스의 의무에 대하여 요구하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 자신이 움직여야 할 때가 되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잠잠하는 여인이었다. 불행이 닥쳐왔을 때 당황하지 않았듯 자신에게 행운이 왔을 때 들뜨지 않는 잠잠한 여인이었다. 분명히 회복의 때가 되었을 때,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보아스가 타작할 때를 조사하고,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울 줄 아는 멋진 여성이었다. 그 뿐 아니라 지금도 대범한 행동을 계획하고, 어떻게든 보아스라고 하는 남자에게 나오미 자신의 가족을 살리게 하기 위하여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치밀한 계획을 세울 줄 아는 여인이었다. 그렇다 해도 누구에게도 신뢰를 주지 못한 사람이라면 모두 쓸모 없는 일이었을 텐데, 그녀는 그렇지도 않았다. 처음 여행을 떠날 때도 끝까지 따르겠다는 며느리가 있을 만큼, 그리고 대범한 계획을 기꺼이 따르겠다고 말하는 며느리가 있을 만큼 타인에게 신뢰도 쌓은 여인이었다 참으로 행복한 여인이었다. (3) 룻 : 그렇다면 책의 제목에 기록된 여인 룻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그녀는 사랑이 넘치는 여인이었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까지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여인이었다. 자신이 겪은 슬픔을 깨닫고, 그 슬픔의 크기를 아는 만큼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타인의 슬픔의 크기를 돌볼 줄 아는 여인이었다. 단순히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슬픔을 함께 나누기를 마다하지 않는 여인이었다. 타인이 슬프든 말든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살길을 찾아나서는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을 뛰어 넘어 자신의 슬픔과 타인의 슬픔을 함께 어우를 줄 아는, 돌보는 여인이었다. 그런가 하면 사랑이 가득한 만큼 잔잔하고 조용한 여인은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가족을 세우기 위해 슬픔을 상쇄시키기 위해 해야할 일을 계획하고 계획한대로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행동파 여성이었다. 분명 고된 일인 것을 알지만 나오미를 따라 나섰듯, 천대받고, 눈총 받을 일인 것을 알면서도 이삭을 주우러 나가는 적극적인 행동파 여성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행동한 하는 여성은 또한 아니었다. 자신이 행동해야 할 때, 그냥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을 짜고 보아스라는 남자의 눈에 뜨이도록 작전도 짤 줄 아는 지혜로운 전략가의 모습도 가지고 있었다. 남들이 일하는 밭에서 혼자 엉뚱한 부탁을 하며 일은 하지 않고 일꾼을 쫓아다니는 여인, 어쩌면 더 많이 줍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확실히 자신이 가진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계획하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그녀는 조용하고 얌전하고, 지혜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범하기까지 한 여인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보아스에게 기업을 무르게 하기 위해 세웠던 계획은 지금도 대범한 계획이었음에도 지금부터 최소 3000년 전의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행동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범한가? 젊은 여인으로 몸파는 직업 여성처럼 보여질지도 모르는 행동, 누구라도 오해하기 쉬운 행동을 시어머니의 말이라지만 반대하기나 거절하지 않고 과감히 행동할 줄 아는 대범한 여성이었다 타인을 사랑할 줄 알고, 행동할 줄 알며, 지혜롭고 대범한 여인! 어떠한 남자에게든 이상형이기에 충분한 멋진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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