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멜렉의 가정은 우리가 흔히 혼돈의 시대, 배도의 시대라 부르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질문은 먼저, “과연 그 가정이 여호와의 신앙을 버리고 이방으로 이주하였는가, 그리고 하지 말았어야 할 결혼을 한 것인가?” 두 번째, “과연 그들이 이주하기 전 살던 이스라엘은 정말 공허의 땅이며 배반의 땅이며, 혼돈의 땅인가?”였다. 오히려 성경은 그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의 땅임을 증거하고 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 목적의 땅이다. 그래서 그 땅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인도하신 참으로 평화의 땅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땅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범죄 함으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샬롬’을 경험하지 못 한다.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계약의 파기를 의미하며, 하나님은 그 계약에 의하여 그들 가운데 더 이상 계셔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떠나심’으로 더 이상 그 땅에는 ‘평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불어 닥친 광범위한 기근은 엘리멜렉 가족으로 하여금 아브라함 사촌의 땅인 모압으로 이주토록 한다. 이는 ‘불가항력적’이었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고자 이민을 갔던 엘리멜렉의 가정은 그의 죽음으로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제 그 가정의 중심인물은 어머니 나오미가 된 것이다. 그나마 두 아들을 그 곳에서 결혼 시키고 행복하게 ...
엘리멜렉의 가정은 우리가 흔히 혼돈의 시대, 배도의 시대라 부르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질문은 먼저, “과연 그 가정이 여호와의 신앙을 버리고 이방으로 이주하였는가, 그리고 하지 말았어야 할 결혼을 한 것인가?” 두 번째, “과연 그들이 이주하기 전 살던 이스라엘은 정말 공허의 땅이며 배반의 땅이며, 혼돈의 땅인가?”였다. 오히려 성경은 그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의 땅임을 증거하고 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 목적의 땅이다. 그래서 그 땅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인도하신 참으로 평화의 땅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땅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범죄 함으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샬롬’을 경험하지 못 한다.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계약의 파기를 의미하며, 하나님은 그 계약에 의하여 그들 가운데 더 이상 계셔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떠나심’으로 더 이상 그 땅에는 ‘평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불어 닥친 광범위한 기근은 엘리멜렉 가족으로 하여금 아브라함 사촌의 땅인 모압으로 이주토록 한다. 이는 ‘불가항력적’이었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고자 이민을 갔던 엘리멜렉의 가정은 그의 죽음으로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제 그 가정의 중심인물은 어머니 나오미가 된 것이다. 그나마 두 아들을 그 곳에서 결혼 시키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 여인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두 아들까지 잃게 되자 이 여인과 그에게 속한 두 며느리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기근은 점점 더 ‘심화’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들려온 고향의 소식은 한 가지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땅에 왕으로 ‘돌아 오셨다’는 것이다. 나오미는 더 이상 그 곳에 머물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나오미는 이제 일어나 고향으로 향하려는데, 자기를 따르는 두 며느리가 눈에 밟힌다. 차라리 나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다시 꾸려 행복하게 사는 것이 며느리들에게 좋을 것이다. 게다가 그곳에서 이들을 볼 때마다 기억하고 느끼게 될 삶의 상처를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 나오미는 두 며느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나에게 무슨 소망이 있다고 ‘죽은 자와 같은 나를 따르려고 하는 것일까?’ 나오미와 며느리들은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이며 가슴 아픈 이별의 장면을 장식한다. 느리들은 그 집에서 보고 배웠던 이스라엘 문화의 우월성과 여호와 신앙의 위대함을 경험한 터라 쉽게 포기 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시모로 인하여, 결국 작은 며느리 오르바는 시모에게 입을 맞춘다. 이는 그녀가 결혼하면서 버리고 떠났던 그의 백성과 그의 신에게로 다시 돌아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전히 첫째 며느리 룻은 그의 시모를 붙잡으며 맹세를 한다. 룻은 더 이상 어머니가 자기를 설득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고백을 드려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가 사용했던 용어를 사용하여 어머니의 하나님과 백성에게로 갈 것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어머니와 내가 얼마나 깊은 유대 속에 있을 것인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지언 정 어머니와 함께 하겠노라고 맹세하는 것이다. 나오미는 더 이상 말하기를 그쳤다. 룻의 결심은 완전한 이스라엘이 된 것임을 증거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혼인 ‘계약’의 수준을 넘어서는 혈연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이제 어머니와 함께할 룻은 나오미와 더불어 룻기의 중심인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룻기 서론은 엔샬롬의 땅, 엔샬롬의 교향곡이 흐르는 시대의 한 가정을 우리에게 소개 시키며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안식의 땅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그것은 우리들이 ‘밟을 땅’을 의미하지 않고, 우리가 ‘마음에 품을 땅’을 의미한다. ‘엔샬롬’의 땅에서 그 안식의 땅을 마음에 품은 가정이 바로 엘리멜렉의 가정이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약속이 없는 땅에서조차 샬롬을 경험하며 살았다. 물론 그들의 삶은 기근, 죽음의 공포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들의 짧은 생의 내용은 ‘하나님은 나의 왕’인 것이다. 그 증거는 바로 나오미의 자부, 룻의 고백에서 나타난다. 즉 나오미와 엘리멜렉의 백성은 바로 이스라엘이었고, 그들의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음을 룻의 입을 통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그렇기 때문에 엘리멜렉의 가정은 ‘왕이 없음으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가정으로 보기 어렵다. 그 가정의 이주와 구성원의 죽음은 왕이 없음으로 닥쳐온 기근 때문에 이방으로 튕겨 나온 한가정이 ‘왕을 섬기는 사람’으로 상징되는 엘리멜렉의 죽음으로 인하여 기근이 더욱 심화 되어가는 것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이야기 장치 일 뿐이다. 그러므로 룻기에서 그 신앙의 위대함을 이 본
엘리멜렉의 가정은 우리가 흔히 혼돈의 시대, 배도의 시대라 부르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질문은 먼저, “과연 그 가정이 여호와의 신앙을 버리고 이방으로 이주하였는가, 그리고 하지 말았어야 할 결혼을 한 것인가?” 두 번째, “과연 그들이 이주하기 전 살던 이스라엘은 정말 공허의 땅이며 배반의 땅이며, 혼돈의 땅인가?”였다. 오히려 성경은 그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의 땅임을 증거하고 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 목적의 땅이다. 그래서 그 땅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인도하신 참으로 평화의 땅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땅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범죄 함으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샬롬’을 경험하지 못 한다.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계약의 파기를 의미하며, 하나님은 그 계약에 의하여 그들 가운데 더 이상 계셔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떠나심’으로 더 이상 그 땅에는 ‘평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불어 닥친 광범위한 기근은 엘리멜렉 가족으로 하여금 아브라함 사촌의 땅인 모압으로 이주토록 한다. 이는 ‘불가항력적’이었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고자 이민을 갔던 엘리멜렉의 가정은 그의 죽음으로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이제 그 가정의 중심인물은 어머니 나오미가 된 것이다. 그나마 두 아들을 그 곳에서 결혼 시키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 여인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두 아들까지 잃게 되자 이 여인과 그에게 속한 두 며느리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기근은 점점 더 ‘심화’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들려온 고향의 소식은 한 가지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땅에 왕으로 ‘돌아 오셨다’는 것이다. 나오미는 더 이상 그 곳에 머물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나오미는 이제 일어나 고향으로 향하려는데, 자기를 따르는 두 며느리가 눈에 밟힌다. 차라리 나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다시 꾸려 행복하게 사는 것이 며느리들에게 좋을 것이다. 게다가 그곳에서 이들을 볼 때마다 기억하고 느끼게 될 삶의 상처를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 나오미는 두 며느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나에게 무슨 소망이 있다고 ‘죽은 자와 같은 나를 따르려고 하는 것일까?’ 나오미와 며느리들은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이며 가슴 아픈 이별의 장면을 장식한다. 느리들은 그 집에서 보고 배웠던 이스라엘 문화의 우월성과 여호와 신앙의 위대함을 경험한 터라 쉽게 포기 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시모로 인하여, 결국 작은 며느리 오르바는 시모에게 입을 맞춘다. 이는 그녀가 결혼하면서 버리고 떠났던 그의 백성과 그의 신에게로 다시 돌아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전히 첫째 며느리 룻은 그의 시모를 붙잡으며 맹세를 한다. 룻은 더 이상 어머니가 자기를 설득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고백을 드려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가 사용했던 용어를 사용하여 어머니의 하나님과 백성에게로 갈 것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어머니와 내가 얼마나 깊은 유대 속에 있을 것인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지언 정 어머니와 함께 하겠노라고 맹세하는 것이다. 나오미는 더 이상 말하기를 그쳤다. 룻의 결심은 완전한 이스라엘이 된 것임을 증거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혼인 ‘계약’의 수준을 넘어서는 혈연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이제 어머니와 함께할 룻은 나오미와 더불어 룻기의 중심인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룻기 서론은 엔샬롬의 땅, 엔샬롬의 교향곡이 흐르는 시대의 한 가정을 우리에게 소개 시키며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안식의 땅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그것은 우리들이 ‘밟을 땅’을 의미하지 않고, 우리가 ‘마음에 품을 땅’을 의미한다. ‘엔샬롬’의 땅에서 그 안식의 땅을 마음에 품은 가정이 바로 엘리멜렉의 가정이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약속이 없는 땅에서조차 샬롬을 경험하며 살았다. 물론 그들의 삶은 기근, 죽음의 공포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들의 짧은 생의 내용은 ‘하나님은 나의 왕’인 것이다. 그 증거는 바로 나오미의 자부, 룻의 고백에서 나타난다. 즉 나오미와 엘리멜렉의 백성은 바로 이스라엘이었고, 그들의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음을 룻의 입을 통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그렇기 때문에 엘리멜렉의 가정은 ‘왕이 없음으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가정으로 보기 어렵다. 그 가정의 이주와 구성원의 죽음은 왕이 없음으로 닥쳐온 기근 때문에 이방으로 튕겨 나온 한가정이 ‘왕을 섬기는 사람’으로 상징되는 엘리멜렉의 죽음으로 인하여 기근이 더욱 심화 되어가는 것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이야기 장치 일 뿐이다. 그러므로 룻기에서 그 신앙의 위대함을 이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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