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키는 근세의 대표적인 대중문화이다. 1603년 오쿠니(出雲のお國)로부터 가부키가 시작된 이후, 규제에 의해 지금과 같은 가부키가 시작된 것은 1652년경부터이다. 흥행수입이 작가나 배우의 생계로 이어지는 가부키의 특성상, 가부키 작품은 대중의 기호에 맞추어 제작이 되었다. 따라서 가부키 작품에는 당시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825년에 초연이 된 『요쓰야 괴담』은 기제와물의 대표작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그 어느 작품보다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평을 받는 작품이다. 「퇴폐」와 「난숙」, 「황당무계」로 설명이 되어지는 일본 근세 후기의 요쓰야 괴담 은 일본 근세 후기 『요쓰야 괴담』은 일본 근세 후기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가부키와 닌교조투리의 대표작인 『주신구라』의 세카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초연 당시에는 이들에 걸쳐 반반씩 상연이 되는 등, 처음부터 『주신구라』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작품이다. 『주신구라』는 1748년 초연되었던, 일본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인형극이자, 가부키극이자 소설이다. 『주신구라』의 소재가 되었던 『아코사건(赤穗事件)』의 칼부림 사건이 있고 정확히 47년이 흐른 시점에 발표가 되었다. 이와 비교해 『요쓰야 괴담』은 비록 역사가 『주신구라』보다 길지는 않지만, 역시 현대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어 상연되고 새로운 극으로 창조될 정도로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두 작품 모두 탄탄한 줄거리와 극적 재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두 작품의 초연은 80여 년간의 시간차가 존재하고 있고, 『주신구라』는 겐로쿠문화(元祿文化)를 대표하는 작품이고, 『요쓰야 괴담』은 가세이문화(化政文化)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을 동시에 살펴봄으로서 일본 사회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겐로쿠 시대를 뒤흔들었던 사건인 「아코사건」은 유교를 사회와 도덕의 규범으로 정한 막부로서는 판단을 내리기 힘든 사건이었다. 하지만 일반 서민과 극작자(劇作者)들은 이들을 충신으로 받아들여 수많은 『주신구라』 작품군을 배출해 내었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주신구라』를 세카이로 하는 작품들은 「주군의 복수」라는 절대 목표를 기준으로 선악이 뚜렷하게 구분이 되어있다. 그리고 「선」의 편에 있는 충신들은 갖은 고초를 겪고, 희생을 치러가며 「주군의 복수」를 완수한다. 하지만, 『주신구라』의 세카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쓰야 괴담』은 전통적인 『주신구라』의 고정관념을 벗어나고 있다. 즉, 80여년의 시간차에 의해 새롭게 해석 한 가세이판 『주신구라』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본문에서는 두 작품에 공통 소재인 「복수」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주신구라』 세카이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엔야의 복수」와 『요쓰야 괴담』의 소재인 「사몬의 복수」 「요모시치의 복수」「오이와의 복수」로 구분을 해서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난숙」과 「난잡」, 「퇴폐」, 「황당무계」로 설명이 되어지는 가세이기와 『요쓰야 괴담』의 특징에 「상대성」과 「해체」라는 단어를 추가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요쓰야 괴담』은 『주신구라』의 충신들을 해체하고 있다. 『주신구라』에서의 충신들은 「주군의 복수」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나아간다.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목적 외에 다른 것은 필요가 없었고, 그 이외의 윤리적 판단은 불필요 했다.『주신구라』 세카이의 충신들이나, 그 작품을 향유했던 서민들, 그리고 극작품을 끊임없이 배출해 내었던 작자들에게도 이와 같은 기준은 동일하게 이해되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도시가 점점 거대화 되고, 쇄국 속에서도 커다란 관심 속에서 난학(蘭學)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이런 이분법적이고 절대적인 가치 판단은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서민들은 더욱 더 현세 중심적으로 기울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에도를 대표하는 극작자로 우뚝 선 쓰루야 난보쿠는 『요쓰야 괴담』을 발표한다. 『요쓰야 괴담』은 그 동안의 난보쿠 작품의 결정판이라고 ...
가부키는 근세의 대표적인 대중문화이다. 1603년 오쿠니(出雲のお國)로부터 가부키가 시작된 이후, 규제에 의해 지금과 같은 가부키가 시작된 것은 1652년경부터이다. 흥행수입이 작가나 배우의 생계로 이어지는 가부키의 특성상, 가부키 작품은 대중의 기호에 맞추어 제작이 되었다. 따라서 가부키 작품에는 당시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825년에 초연이 된 『요쓰야 괴담』은 기제와물의 대표작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그 어느 작품보다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평을 받는 작품이다. 「퇴폐」와 「난숙」, 「황당무계」로 설명이 되어지는 일본 근세 후기의 요쓰야 괴담 은 일본 근세 후기 『요쓰야 괴담』은 일본 근세 후기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가부키와 닌교조투리의 대표작인 『주신구라』의 세카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초연 당시에는 이들에 걸쳐 반반씩 상연이 되는 등, 처음부터 『주신구라』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작품이다. 『주신구라』는 1748년 초연되었던, 일본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인형극이자, 가부키극이자 소설이다. 『주신구라』의 소재가 되었던 『아코사건(赤穗事件)』의 칼부림 사건이 있고 정확히 47년이 흐른 시점에 발표가 되었다. 이와 비교해 『요쓰야 괴담』은 비록 역사가 『주신구라』보다 길지는 않지만, 역시 현대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어 상연되고 새로운 극으로 창조될 정도로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두 작품 모두 탄탄한 줄거리와 극적 재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두 작품의 초연은 80여 년간의 시간차가 존재하고 있고, 『주신구라』는 겐로쿠문화(元祿文化)를 대표하는 작품이고, 『요쓰야 괴담』은 가세이문화(化政文化)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을 동시에 살펴봄으로서 일본 사회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겐로쿠 시대를 뒤흔들었던 사건인 「아코사건」은 유교를 사회와 도덕의 규범으로 정한 막부로서는 판단을 내리기 힘든 사건이었다. 하지만 일반 서민과 극작자(劇作者)들은 이들을 충신으로 받아들여 수많은 『주신구라』 작품군을 배출해 내었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주신구라』를 세카이로 하는 작품들은 「주군의 복수」라는 절대 목표를 기준으로 선악이 뚜렷하게 구분이 되어있다. 그리고 「선」의 편에 있는 충신들은 갖은 고초를 겪고, 희생을 치러가며 「주군의 복수」를 완수한다. 하지만, 『주신구라』의 세카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쓰야 괴담』은 전통적인 『주신구라』의 고정관념을 벗어나고 있다. 즉, 80여년의 시간차에 의해 새롭게 해석 한 가세이판 『주신구라』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본문에서는 두 작품에 공통 소재인 「복수」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주신구라』 세카이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엔야의 복수」와 『요쓰야 괴담』의 소재인 「사몬의 복수」 「요모시치의 복수」「오이와의 복수」로 구분을 해서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난숙」과 「난잡」, 「퇴폐」, 「황당무계」로 설명이 되어지는 가세이기와 『요쓰야 괴담』의 특징에 「상대성」과 「해체」라는 단어를 추가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요쓰야 괴담』은 『주신구라』의 충신들을 해체하고 있다. 『주신구라』에서의 충신들은 「주군의 복수」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나아간다.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목적 외에 다른 것은 필요가 없었고, 그 이외의 윤리적 판단은 불필요 했다.『주신구라』 세카이의 충신들이나, 그 작품을 향유했던 서민들, 그리고 극작품을 끊임없이 배출해 내었던 작자들에게도 이와 같은 기준은 동일하게 이해되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도시가 점점 거대화 되고, 쇄국 속에서도 커다란 관심 속에서 난학(蘭學)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이런 이분법적이고 절대적인 가치 판단은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서민들은 더욱 더 현세 중심적으로 기울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에도를 대표하는 극작자로 우뚝 선 쓰루야 난보쿠는 『요쓰야 괴담』을 발표한다. 『요쓰야 괴담』은 그 동안의 난보쿠 작품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전의 작품들의 슈코가 작품의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데뷔 때부터 『주신구라』의 세카이를 종종 사용해 왔던 난보쿠로서는 『주신구라』를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 이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 특징 중의 하나가 「충신들의 해체」에 있다. 무사의 귀감이던 충신들은 난보쿠에 의해 서민과 다름없이 고민하고, 실수를 하며, 사창가를 찾아가기도 한다. 즉 모범(手本)이었던 충신들을 에도의 저잣거리(下町=四谷町)로 끌어 내린 것이다. 해체와 함께 생각 해 볼 수 있는 것이 「가치와 주체의 역전」이다. 메카타키우치가 일반적이던 사회에 바람을 피운 남편에게 복수를 하는 오이와는 그 자체로써 사회의 가치를 역전 시키는 상징이다. 이 가치의 역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난보쿠는 「사몬의 복수」와 「요모시치의 복수」라는 『주신구라』적인 복수를 병치 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복수는 결국 등장인물에게 부정되어지고 잊혀지는 등 「오이와의 복수」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리고 오이와는 자신의 복수를 개체의 확장을 통해 직접 행하고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2003년 8월에 도쿄(東京)의 가부키자(歌舞伎座)에서 이치카와 엔노스케(市川猿之助)에 의해 상연이 되었던 『가나데혼 요쓰야 괴담(假名手本四谷怪談)』에서도 엔야가 마지막 「습격」부분에서 유령으로 등장해서 모로나오에게 직접 복수를 하고 있다. 『요쓰야 괴담』 이 『주신구라』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이 된다. 이러한 『주신구라』의 새로운 해석은 난보쿠나 몇몇 배우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즉 『주신구라』의 선과 악의 절대적인 구분은 난보쿠를 필두로 하는 가세이기의 조닌들에게 해체되고 상대화 되어졌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상대화와 해체는 사회와 인간에 대해 다면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여, 폭넓고 보다 정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메이지 초기에 인기를 얻었던 독부물(毒婦物)도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탄생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대표작이라고는 하나 몇 개의 작품만으로 사회의 변화를 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주신구라물」을 중심으로 충신들의 모습이 점점 어떻게 변하여 가는지 살펴보고 싶다. 그리고 상대화와 해체가 구체적으로 사회와 어떠한 관련을 갖고 있는지, 근대의 독부물에 미친 구체적인 영향은 어떤 것인지 등은 다음 연구의 과제로 삼고자 한다.
가부키는 근세의 대표적인 대중문화이다. 1603년 오쿠니(出雲のお國)로부터 가부키가 시작된 이후, 규제에 의해 지금과 같은 가부키가 시작된 것은 1652년경부터이다. 흥행수입이 작가나 배우의 생계로 이어지는 가부키의 특성상, 가부키 작품은 대중의 기호에 맞추어 제작이 되었다. 따라서 가부키 작품에는 당시 사회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825년에 초연이 된 『요쓰야 괴담』은 기제와물의 대표작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그 어느 작품보다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평을 받는 작품이다. 「퇴폐」와 「난숙」, 「황당무계」로 설명이 되어지는 일본 근세 후기의 요쓰야 괴담 은 일본 근세 후기 『요쓰야 괴담』은 일본 근세 후기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가부키와 닌교조투리의 대표작인 『주신구라』의 세카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초연 당시에는 이들에 걸쳐 반반씩 상연이 되는 등, 처음부터 『주신구라』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작품이다. 『주신구라』는 1748년 초연되었던, 일본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인형극이자, 가부키극이자 소설이다. 『주신구라』의 소재가 되었던 『아코사건(赤穗事件)』의 칼부림 사건이 있고 정확히 47년이 흐른 시점에 발표가 되었다. 이와 비교해 『요쓰야 괴담』은 비록 역사가 『주신구라』보다 길지는 않지만, 역시 현대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어 상연되고 새로운 극으로 창조될 정도로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두 작품 모두 탄탄한 줄거리와 극적 재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두 작품의 초연은 80여 년간의 시간차가 존재하고 있고, 『주신구라』는 겐로쿠문화(元祿文化)를 대표하는 작품이고, 『요쓰야 괴담』은 가세이문화(化政文化)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을 동시에 살펴봄으로서 일본 사회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겐로쿠 시대를 뒤흔들었던 사건인 「아코사건」은 유교를 사회와 도덕의 규범으로 정한 막부로서는 판단을 내리기 힘든 사건이었다. 하지만 일반 서민과 극작자(劇作者)들은 이들을 충신으로 받아들여 수많은 『주신구라』 작품군을 배출해 내었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주신구라』를 세카이로 하는 작품들은 「주군의 복수」라는 절대 목표를 기준으로 선악이 뚜렷하게 구분이 되어있다. 그리고 「선」의 편에 있는 충신들은 갖은 고초를 겪고, 희생을 치러가며 「주군의 복수」를 완수한다. 하지만, 『주신구라』의 세카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쓰야 괴담』은 전통적인 『주신구라』의 고정관념을 벗어나고 있다. 즉, 80여년의 시간차에 의해 새롭게 해석 한 가세이판 『주신구라』가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본문에서는 두 작품에 공통 소재인 「복수」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주신구라』 세카이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엔야의 복수」와 『요쓰야 괴담』의 소재인 「사몬의 복수」 「요모시치의 복수」「오이와의 복수」로 구분을 해서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난숙」과 「난잡」, 「퇴폐」, 「황당무계」로 설명이 되어지는 가세이기와 『요쓰야 괴담』의 특징에 「상대성」과 「해체」라는 단어를 추가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요쓰야 괴담』은 『주신구라』의 충신들을 해체하고 있다. 『주신구라』에서의 충신들은 「주군의 복수」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나아간다.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목적 외에 다른 것은 필요가 없었고, 그 이외의 윤리적 판단은 불필요 했다.『주신구라』 세카이의 충신들이나, 그 작품을 향유했던 서민들, 그리고 극작품을 끊임없이 배출해 내었던 작자들에게도 이와 같은 기준은 동일하게 이해되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도시가 점점 거대화 되고, 쇄국 속에서도 커다란 관심 속에서 난학(蘭學)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이런 이분법적이고 절대적인 가치 판단은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서민들은 더욱 더 현세 중심적으로 기울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에도를 대표하는 극작자로 우뚝 선 쓰루야 난보쿠는 『요쓰야 괴담』을 발표한다. 『요쓰야 괴담』은 그 동안의 난보쿠 작품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전의 작품들의 슈코가 작품의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데뷔 때부터 『주신구라』의 세카이를 종종 사용해 왔던 난보쿠로서는 『주신구라』를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 이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 특징 중의 하나가 「충신들의 해체」에 있다. 무사의 귀감이던 충신들은 난보쿠에 의해 서민과 다름없이 고민하고, 실수를 하며, 사창가를 찾아가기도 한다. 즉 모범(手本)이었던 충신들을 에도의 저잣거리(下町=四谷町)로 끌어 내린 것이다. 해체와 함께 생각 해 볼 수 있는 것이 「가치와 주체의 역전」이다. 메카타키우치가 일반적이던 사회에 바람을 피운 남편에게 복수를 하는 오이와는 그 자체로써 사회의 가치를 역전 시키는 상징이다. 이 가치의 역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난보쿠는 「사몬의 복수」와 「요모시치의 복수」라는 『주신구라』적인 복수를 병치 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개의 복수는 결국 등장인물에게 부정되어지고 잊혀지는 등 「오이와의 복수」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리고 오이와는 자신의 복수를 개체의 확장을 통해 직접 행하고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2003년 8월에 도쿄(東京)의 가부키자(歌舞伎座)에서 이치카와 엔노스케(市川猿之助)에 의해 상연이 되었던 『가나데혼 요쓰야 괴담(假名手本四谷怪談)』에서도 엔야가 마지막 「습격」부분에서 유령으로 등장해서 모로나오에게 직접 복수를 하고 있다. 『요쓰야 괴담』 이 『주신구라』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이 된다. 이러한 『주신구라』의 새로운 해석은 난보쿠나 몇몇 배우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즉 『주신구라』의 선과 악의 절대적인 구분은 난보쿠를 필두로 하는 가세이기의 조닌들에게 해체되고 상대화 되어졌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상대화와 해체는 사회와 인간에 대해 다면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여, 폭넓고 보다 정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메이지 초기에 인기를 얻었던 독부물(毒婦物)도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탄생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대표작이라고는 하나 몇 개의 작품만으로 사회의 변화를 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주신구라물」을 중심으로 충신들의 모습이 점점 어떻게 변하여 가는지 살펴보고 싶다. 그리고 상대화와 해체가 구체적으로 사회와 어떠한 관련을 갖고 있는지, 근대의 독부물에 미친 구체적인 영향은 어떤 것인지 등은 다음 연구의 과제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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