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동학의 시천주 신앙과 기독교의 성령체험의 상호조명을 통해 생명세계의 다양한 차원 가운데 드러난 영적인 임재체험과 존재양식을 살펴보았다. 즉, 인간의 몸은 그 자신을 심령적, 심리학적, 정신적 존재로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영적 차원의 임재체험과 존재양식을 '하느님의 영', '성령'으로 체험하고 고백하며 응답한다. 이에 논자는 인간의 심령현상 안에서 신비로운 영적 체험이 생명세계의 다양한 차원 중에서 창조적인 '의미'와 '힘'으로 통전되며 전일적 생명의 변화를 이끌어 냄을 살펴보았다. Ⅰ장에서는 연구동기와 목적, 전개과정, 그리고 동학의 시천주 신앙과 기독교의 성령체험을 상호조명하기 위해 방법론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종교의 외형적 특징과 종교현상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역동적 유형론'에서 볼 때 대극적 실재로서 대극을 초월통전하려는 전일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Ⅱ장에서는 동학을 동학답게 하는 핵심적 내용이 시천주 신앙에 있음을 설명했다. '시천주'는 동학의 여러 교리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동학의 핵심되는 내용이며 본질적인 힘의 원친이 된다. 그러한 이유는 수운의 '한울님 체험'이 그 이전의 유교적 전통이나 불교적 종교관과 구별시켜주는 결정적 특징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울님을 모든 사람이 그의 생명체 몸에 '모신다'(侍)는 체험적 신앙을 기반으로 하기때문이다. 이러한 수운의 체험적 신앙은 영적 체험을 동반하면서 경험과학적 사실세계의 실증적 논리를 부정하지 않으며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시천주 신앙을 통해 발현된 인내천 사상이 어떤 점에서 다르고 연관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것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었던 수운의 '시천주' 신앙과의 연관 속에서 조명되고 이해될 때 '인내천' 사상의 의미가 분명해진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Ⅲ장에서는 동학의 '시천주'라는 말이 동학을 동학되게 하는 핵심적 종교체험이지만, 동시에 동학의 '본주문'과 '강령주문'이라는 21자 속에 시천주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시천주의 신앙체험에서 내유신령, 외유기화, 각지불이의 체험을 통한 모심은 한울님을 모시는 영적 체험과 그 영적 체험을 모시는 전일적 몸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았다. 한울님을 모시는 몸이 단순히 생물학적인 신체만이 아니라, 사람다움의 생명체인 몸의 존재 가능성을 실현하는 영성적 존재로서의 지성소가 될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즉, 동학의 한울님 체험은 구체적인 몸을 통해 전일적인 생명체로서 체험되고 경험되는 총체적 종합기능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자는 통전된 생명체인 지성소를 통해 신령한 궁극적 실재가 몸 안에서 현존한다는 체험적 신앙이 발현할 수 있음을 말하였다. Ⅳ장에서 논자는 ...
본 논문에서는 동학의 시천주 신앙과 기독교의 성령체험의 상호조명을 통해 생명세계의 다양한 차원 가운데 드러난 영적인 임재체험과 존재양식을 살펴보았다. 즉, 인간의 몸은 그 자신을 심령적, 심리학적, 정신적 존재로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영적 차원의 임재체험과 존재양식을 '하느님의 영', '성령'으로 체험하고 고백하며 응답한다. 이에 논자는 인간의 심령현상 안에서 신비로운 영적 체험이 생명세계의 다양한 차원 중에서 창조적인 '의미'와 '힘'으로 통전되며 전일적 생명의 변화를 이끌어 냄을 살펴보았다. Ⅰ장에서는 연구동기와 목적, 전개과정, 그리고 동학의 시천주 신앙과 기독교의 성령체험을 상호조명하기 위해 방법론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종교의 외형적 특징과 종교현상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역동적 유형론'에서 볼 때 대극적 실재로서 대극을 초월통전하려는 전일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Ⅱ장에서는 동학을 동학답게 하는 핵심적 내용이 시천주 신앙에 있음을 설명했다. '시천주'는 동학의 여러 교리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동학의 핵심되는 내용이며 본질적인 힘의 원친이 된다. 그러한 이유는 수운의 '한울님 체험'이 그 이전의 유교적 전통이나 불교적 종교관과 구별시켜주는 결정적 특징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울님을 모든 사람이 그의 생명체 몸에 '모신다'(侍)는 체험적 신앙을 기반으로 하기때문이다. 이러한 수운의 체험적 신앙은 영적 체험을 동반하면서 경험과학적 사실세계의 실증적 논리를 부정하지 않으며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시천주 신앙을 통해 발현된 인내천 사상이 어떤 점에서 다르고 연관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것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었던 수운의 '시천주' 신앙과의 연관 속에서 조명되고 이해될 때 '인내천' 사상의 의미가 분명해진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Ⅲ장에서는 동학의 '시천주'라는 말이 동학을 동학되게 하는 핵심적 종교체험이지만, 동시에 동학의 '본주문'과 '강령주문'이라는 21자 속에 시천주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시천주의 신앙체험에서 내유신령, 외유기화, 각지불이의 체험을 통한 모심은 한울님을 모시는 영적 체험과 그 영적 체험을 모시는 전일적 몸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았다. 한울님을 모시는 몸이 단순히 생물학적인 신체만이 아니라, 사람다움의 생명체인 몸의 존재 가능성을 실현하는 영성적 존재로서의 지성소가 될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즉, 동학의 한울님 체험은 구체적인 몸을 통해 전일적인 생명체로서 체험되고 경험되는 총체적 종합기능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자는 통전된 생명체인 지성소를 통해 신령한 궁극적 실재가 몸 안에서 현존한다는 체험적 신앙이 발현할 수 있음을 말하였다. Ⅳ장에서 논자는 바울의 몸의 신학을 통해 인간의 몸은 통째로서의 전일적 인간을 나타내며 몸 자체가 창조적 목적 지향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기독교 생활신앙은 올바른 몸 이해를 통해 하느님의 영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며, 또한 피조세계 안에서 피조물과 더불어 이 세계의 고난과 투쟁 속에서 사람담게,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피조물답게 살아가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또한 성령이 내주하는 전일적인 몸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어떤 몸으로 품격을 품으며 존재하는지 고찰해 보았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주와 단순히 윤리적 또는 법적 관계만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구조상으로 또는 유기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 오메가 포인트의 우주적 전체 진화에 지성소로써 온전한 몸을 이루게 됨을 말하였다. 결국 이러한 유기적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우주적 그리스도를 향한 창조적 자유 에너지와 사랑 에너지를 담지하는 생명 진화과정 속에, 그 과정과 더불어 일하며 전 우주적인 '온생명'을 이루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몸은 영혼과 육체의 전일적 · 동시적 존재를 지닌 통전적 존재로서 성령에 의하여 온전한 인간의 생명이 체현할 수 있고 생명원리를 구현해 낼 수 있음을 말했다. 즉, 영육 통일체의 몸은 세계 속에 있으면서 세계에 함몰되지 않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몸으로서, 인식의 주체이자 실존의 주체이고 체험의 주체인 몸으로서 다른 몸을 만나 상호주체성을 이루는 통전적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Ⅴ장에서는 동학의 한울님 체험과 기독교의 성령체험의 상호조명을 시도하였다. 바울이 몸을 성령의 성전이라고 이해한 것이나 시천주 신앙에서 한울님을 모시는 곳이라는 표현 사이에 몸의 신성성과 정결성을 강조하는 공통분모가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학의 한울님 신앙이 인간의 주체적 의식이나 참여를 강조하지만, 기독교의 성령체험은 인간의 성숙한 삶을 가능케하는 근원적 기반으로서 부각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역사 이해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도, 동학의 역사이해는 지금 · 여기(here and now)의 구체적 삶을 역사의 원점 또는 기점으로 삼고 우주의 질적 · 양적 확산 진화과정을 실천해가는 삶의 운동과정이다. 반면에, 몰트만의 역사이해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경험을 통해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선취의 종말론을 말하고 있다. 이 종말론적 소망이란 도달 가능한 목표와 가시적 변화를 향하는 소망이 아니라, 궁극적 새로움이며 부활의 신에 의한 만물의 새롭게 하심을 바라는 소망이다. 결국 그의 역사이해를 통해 희망의 차원과 미래의 차원이 현재를 역동적인 종말론적 사상으로 조명할 수 있음을 말했다. Ⅵ장에서는 동학의 생명사상과 기독교의 구원을 통해 동학의 한울님에 대한 이해와 기독교의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관의 문제를 짚어보았다. 무엇보다 동학의 생명사상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생태학적 위기에 생명의 신성성을 담보하는 해방적 모티브를 가능케한다. 물론 기독교의 창조주 하느님 신앙도 세계의 시작과 종말을 하느님의 주되심으로 선포하는데 있음을 말했다. 즉, 만유 안에서 만유를 통하여 만유를 넘어서 활동하시지만 창조주로서의 주성(主性)과 피조물의 실재성을 혼돈의 파국 속으로 몰아 넣지 않으시며, 오직 참 하느님다움을 실현하시는 온전한 창조행위에 있음을 보았다. 위와 같이 동학의 시천주 신앙과 기독교의 성령체험을 통해 본 새로운 영적 비전은 모호한 삶으로 분열되었던 몸이 하느님의 영의 임재체험과 존재양식으로 전일적인 몸으로 통전되는 것이다. 이처럼 전일적인 몸을 통해 생명의 화해와 창조적인 힘의 동력이 분출하여 온전한 생명으로 변용(transfiguration)되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영의 임재는 인간의 몸의 원리를 통해 실현되는 생명의 눈뜨임과 모호한 삶을 넘어서 전체생명,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며 소망하는 존재양식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하느님이 몸 안에 내주하시는 은총의 사건이라는 생의 신비의 체험을 동반하며, 인간의 생명을 새롭게 흔들어 깨우고 보다 높은 온전한 생명의 완성을 위해 인간의 참여를 촉구하는 것이다. 오늘의 삶 속에서 내일의 소망을 두는 신앙의 삶은 전통적인 창조주 하느님의 초월적 유신론도 아니고, 통속적인 범신론이나 내재신론도 아니다. 오히려 논자는 우주전체와 피조세계의 역사와 더불어 살아가는 오늘의 인류는 신비로운 생명을 경험하는 과정에 있는 과정신학적 범재신론의 신관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신앙과 상호 교류, 상호침투, 상호의존할 수 있음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논자가 전일적인 몸의 원리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몸의 신학을 전개하는 이유는, 종교의 구경(究竟) 목적이 생명을 살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즉, 몸은 다차원적인 우주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적 한울을 담지한 소우주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동학의 한울님을 모시는 지성소와 성령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는 성령의 성전은 성령에 속한 생명과 평화를 얻는 생명의 바닥이고 뿌리이며 하늘이 머문 자리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온전한 몸을 통한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성령의 체험이 고백되고 증언되며, 그리스도의 파루시아(Parusie)가 임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온전히 임하는 전우주적인 '온생명'의 삶의 자리를 증언하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논자가 주제로 삼은 하느님의 임재와 존재양식이 거하는 전일적 지성소인 몸을 통해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을 온전히 기쁘게 하려는 몸의 신학적 담론으로 공헌하기 위해서이다.
본 논문에서는 동학의 시천주 신앙과 기독교의 성령체험의 상호조명을 통해 생명세계의 다양한 차원 가운데 드러난 영적인 임재체험과 존재양식을 살펴보았다. 즉, 인간의 몸은 그 자신을 심령적, 심리학적, 정신적 존재로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영적 차원의 임재체험과 존재양식을 '하느님의 영', '성령'으로 체험하고 고백하며 응답한다. 이에 논자는 인간의 심령현상 안에서 신비로운 영적 체험이 생명세계의 다양한 차원 중에서 창조적인 '의미'와 '힘'으로 통전되며 전일적 생명의 변화를 이끌어 냄을 살펴보았다. Ⅰ장에서는 연구동기와 목적, 전개과정, 그리고 동학의 시천주 신앙과 기독교의 성령체험을 상호조명하기 위해 방법론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종교의 외형적 특징과 종교현상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역동적 유형론'에서 볼 때 대극적 실재로서 대극을 초월통전하려는 전일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Ⅱ장에서는 동학을 동학답게 하는 핵심적 내용이 시천주 신앙에 있음을 설명했다. '시천주'는 동학의 여러 교리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동학의 핵심되는 내용이며 본질적인 힘의 원친이 된다. 그러한 이유는 수운의 '한울님 체험'이 그 이전의 유교적 전통이나 불교적 종교관과 구별시켜주는 결정적 특징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울님을 모든 사람이 그의 생명체 몸에 '모신다'(侍)는 체험적 신앙을 기반으로 하기때문이다. 이러한 수운의 체험적 신앙은 영적 체험을 동반하면서 경험과학적 사실세계의 실증적 논리를 부정하지 않으며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시천주 신앙을 통해 발현된 인내천 사상이 어떤 점에서 다르고 연관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것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었던 수운의 '시천주' 신앙과의 연관 속에서 조명되고 이해될 때 '인내천' 사상의 의미가 분명해진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Ⅲ장에서는 동학의 '시천주'라는 말이 동학을 동학되게 하는 핵심적 종교체험이지만, 동시에 동학의 '본주문'과 '강령주문'이라는 21자 속에 시천주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시천주의 신앙체험에서 내유신령, 외유기화, 각지불이의 체험을 통한 모심은 한울님을 모시는 영적 체험과 그 영적 체험을 모시는 전일적 몸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았다. 한울님을 모시는 몸이 단순히 생물학적인 신체만이 아니라, 사람다움의 생명체인 몸의 존재 가능성을 실현하는 영성적 존재로서의 지성소가 될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즉, 동학의 한울님 체험은 구체적인 몸을 통해 전일적인 생명체로서 체험되고 경험되는 총체적 종합기능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자는 통전된 생명체인 지성소를 통해 신령한 궁극적 실재가 몸 안에서 현존한다는 체험적 신앙이 발현할 수 있음을 말하였다. Ⅳ장에서 논자는 바울의 몸의 신학을 통해 인간의 몸은 통째로서의 전일적 인간을 나타내며 몸 자체가 창조적 목적 지향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기독교 생활신앙은 올바른 몸 이해를 통해 하느님의 영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며, 또한 피조세계 안에서 피조물과 더불어 이 세계의 고난과 투쟁 속에서 사람담게,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피조물답게 살아가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또한 성령이 내주하는 전일적인 몸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어떤 몸으로 품격을 품으며 존재하는지 고찰해 보았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주와 단순히 윤리적 또는 법적 관계만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구조상으로 또는 유기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 오메가 포인트의 우주적 전체 진화에 지성소로써 온전한 몸을 이루게 됨을 말하였다. 결국 이러한 유기적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우주적 그리스도를 향한 창조적 자유 에너지와 사랑 에너지를 담지하는 생명 진화과정 속에, 그 과정과 더불어 일하며 전 우주적인 '온생명'을 이루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몸은 영혼과 육체의 전일적 · 동시적 존재를 지닌 통전적 존재로서 성령에 의하여 온전한 인간의 생명이 체현할 수 있고 생명원리를 구현해 낼 수 있음을 말했다. 즉, 영육 통일체의 몸은 세계 속에 있으면서 세계에 함몰되지 않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몸으로서, 인식의 주체이자 실존의 주체이고 체험의 주체인 몸으로서 다른 몸을 만나 상호주체성을 이루는 통전적 존재임을 알 수 있었다. Ⅴ장에서는 동학의 한울님 체험과 기독교의 성령체험의 상호조명을 시도하였다. 바울이 몸을 성령의 성전이라고 이해한 것이나 시천주 신앙에서 한울님을 모시는 곳이라는 표현 사이에 몸의 신성성과 정결성을 강조하는 공통분모가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학의 한울님 신앙이 인간의 주체적 의식이나 참여를 강조하지만, 기독교의 성령체험은 인간의 성숙한 삶을 가능케하는 근원적 기반으로서 부각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역사 이해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도, 동학의 역사이해는 지금 · 여기(here and now)의 구체적 삶을 역사의 원점 또는 기점으로 삼고 우주의 질적 · 양적 확산 진화과정을 실천해가는 삶의 운동과정이다. 반면에, 몰트만의 역사이해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경험을 통해 성령 안에서 일어나는 선취의 종말론을 말하고 있다. 이 종말론적 소망이란 도달 가능한 목표와 가시적 변화를 향하는 소망이 아니라, 궁극적 새로움이며 부활의 신에 의한 만물의 새롭게 하심을 바라는 소망이다. 결국 그의 역사이해를 통해 희망의 차원과 미래의 차원이 현재를 역동적인 종말론적 사상으로 조명할 수 있음을 말했다. Ⅵ장에서는 동학의 생명사상과 기독교의 구원을 통해 동학의 한울님에 대한 이해와 기독교의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관의 문제를 짚어보았다. 무엇보다 동학의 생명사상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생태학적 위기에 생명의 신성성을 담보하는 해방적 모티브를 가능케한다. 물론 기독교의 창조주 하느님 신앙도 세계의 시작과 종말을 하느님의 주되심으로 선포하는데 있음을 말했다. 즉, 만유 안에서 만유를 통하여 만유를 넘어서 활동하시지만 창조주로서의 주성(主性)과 피조물의 실재성을 혼돈의 파국 속으로 몰아 넣지 않으시며, 오직 참 하느님다움을 실현하시는 온전한 창조행위에 있음을 보았다. 위와 같이 동학의 시천주 신앙과 기독교의 성령체험을 통해 본 새로운 영적 비전은 모호한 삶으로 분열되었던 몸이 하느님의 영의 임재체험과 존재양식으로 전일적인 몸으로 통전되는 것이다. 이처럼 전일적인 몸을 통해 생명의 화해와 창조적인 힘의 동력이 분출하여 온전한 생명으로 변용(transfiguration)되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영의 임재는 인간의 몸의 원리를 통해 실현되는 생명의 눈뜨임과 모호한 삶을 넘어서 전체생명,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며 소망하는 존재양식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하느님이 몸 안에 내주하시는 은총의 사건이라는 생의 신비의 체험을 동반하며, 인간의 생명을 새롭게 흔들어 깨우고 보다 높은 온전한 생명의 완성을 위해 인간의 참여를 촉구하는 것이다. 오늘의 삶 속에서 내일의 소망을 두는 신앙의 삶은 전통적인 창조주 하느님의 초월적 유신론도 아니고, 통속적인 범신론이나 내재신론도 아니다. 오히려 논자는 우주전체와 피조세계의 역사와 더불어 살아가는 오늘의 인류는 신비로운 생명을 경험하는 과정에 있는 과정신학적 범재신론의 신관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신앙과 상호 교류, 상호침투, 상호의존할 수 있음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논자가 전일적인 몸의 원리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몸의 신학을 전개하는 이유는, 종교의 구경(究竟) 목적이 생명을 살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즉, 몸은 다차원적인 우주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적 한울을 담지한 소우주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동학의 한울님을 모시는 지성소와 성령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는 성령의 성전은 성령에 속한 생명과 평화를 얻는 생명의 바닥이고 뿌리이며 하늘이 머문 자리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온전한 몸을 통한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성령의 체험이 고백되고 증언되며, 그리스도의 파루시아(Parusie)가 임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온전히 임하는 전우주적인 '온생명'의 삶의 자리를 증언하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논자가 주제로 삼은 하느님의 임재와 존재양식이 거하는 전일적 지성소인 몸을 통해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분을 온전히 기쁘게 하려는 몸의 신학적 담론으로 공헌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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