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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철학에서 학문은 현존하는 타자적인 것을 자기화(Sichwerden)함으로써 참된 학문성을 가진다. 이는 자기의식적 정신이 타자와의 대립적인 관계를 지양하고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서 파악하는 것, 즉 대상을 정신의 전개로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에게 있어서 지(知)의 체계로서의 학문이 보편성과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이러한 자기의식적 학문성에 놓여 있으며 이는 달리 표현하자면 철학의 근본 문제인 주객 동일성 또는 사유와 ...

헤겔의 철학에서 학문은 현존하는 타자적인 것을 자기화(Sichwerden)함으로써 참된 학문성을 가진다. 이는 자기의식적 정신이 타자와의 대립적인 관계를 지양하고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서 파악하는 것, 즉 대상을 정신의 전개로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에게 있어서 지(知)의 체계로서의 학문이 보편성과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이러한 자기의식적 학문성에 놓여 있으며 이는 달리 표현하자면 철학의 근본 문제인 주객 동일성 또는 사유와 존재의 통일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 논문은 `정신현상학`의 ‘대상의식’과 ‘자기의식’을 분석하여 참된 학문성의 근거가 어떻게 ‘서술(Darstellung)’의 방법을 통하여 정초될 수 있는지, 또 그것이 자기의식적 학문성으로 주제화 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를 해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헤겔의 체계에서 `정신현상학`은 ‘의식의 경험(Erfahrung)의 학’으로서 학적 토대의 형성과정, 곧 ‘학문 일반의 생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의식의 본성은 대상을 자신의 지와 대립적인 타자로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상 생성의 경험을 겪게 된다. 따라서 의식은 이 과정에서 이러한 대립적 관계를 부정하는 가운데 타자와의 관계를 자기경험으로서 파악해야만 자기의식적 학문성의 절대적 인식에 이를 수 있다. 이를 위한 학적 방법인 ‘서술’의 방법은 ‘규정된 부정(bestimmte Negation)’을 통하여 대립적 규정들을 지양함으로써 개별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에로, 다양한 현상들을 그 근거에로 이행시키는 원리이다. 그 결과 개념과 실재 혹은 지와 대상의 관계는 목적론적인 구조를 가지는 개념의 자기실현 과정으로서 파악되고 학문의 이념은 학적 대상과 그 서술의 내적 통일에 있음이 밝혀진다. 다른 한편 이러한 ‘서술’의 방법은 `정신현상학`이 정신의 입장과 의식의 입장이 분리된 상태에서 양자의 통일로 진행되는 서술 방식의 특성을 지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의식은 그 발전 과정에서 대상 생성의 경험에 따라 여러 의식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한 과정에서 외적 대상을 지양한 대상의식은 대상의 외적 실체성을 의식의 운동에 의해 산출된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자신의 보편적인 근거를 자기의식으로서 인식한다. 그러나 자기의식도 의식의 경험으로 ‘서술’되기 위해서 대상 생성의 경험을 자기로부터 요구하게 되는데, 이는 ‘서술’의 방법은 본질상 경험적 매개에 의해 수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연성으로부터 추론되는 자기의식의 자립성과 비자립성에 대한 경험은 대상이 자기 타자임을 파악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자기의식은 ‘서술’의 방법에 따라 대상 상관적인 형식과 내용을 객관적 실재이자 자기타자로서 파악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의식의 발전은 이성이다. 대상의 외적 실체성을 내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가운데 의식의 운동이 자기 통일적인 구조임을 입증하려 하는 자기의식은 자신의 진리를 이성으로 전개한다. 전 존재 내지 실재의 진리가 이성적인 것으로 파악된다면 자기의식의 근거를 확립하려는 요구는 존재의 이성적 구조로부터 해명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의 이성적 구조는 학문의 토대가 ‘서술’의 방법이라는 의식의 활동으로부터 정립될 때에만 산출될 수 있는 것이다. 참된 학문성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주관과 객관, 개념과 실재의 통일이라는 현실적인 생명력을 가질 수 있으며, 정신의 자기화 혹은 내면화(Er-innerung)의 원칙에 입각한 관념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