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논문]일제신도시 공간구조의 성장과 변화에 관한 연구 : 군산시의 사례를 중심으로 (An) Analysis on Development and Change of the New Town Spatial Structure With the Use of Space Syntax under the Japanese Imperialism : Focus on the case of Kim-san City원문보기
도시공간구조의 변화를 살펴보는 연구는 20세기 초 산업화(Industralization)라는 패러다임이 도시화(Urbanization)를 이끌어 나가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도시화라는 변화과정 속에서 도시의 근본적인 구조와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Burgess, Hoyt, Harris & Ullman 등의 학자들은 도시구조에 관하여 복잡한 도시의 단면을 비교적 간단·명료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방법론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발전과 더불어 도시라는 공간 속에 도시화와 산업화라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도시의 규모나 기능, 성격 등 도시 내의 사회·경제·물리적 환경 또한 함께 바뀌어 왔다. 특히, 인구증가와 산업집중 등으로 인한 시가지의 면적확산(面積擴散)은 토지이용 변화와 시계(時界)의 물리적 팽창을 가속시키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일제 강점기시기 동안 일제에 의해 자행된 우리나라 식민지정책은 우리 전통도시의 모습도 바꾸어 놓았다고 ...
도시공간구조의 변화를 살펴보는 연구는 20세기 초 산업화(Industralization)라는 패러다임이 도시화(Urbanization)를 이끌어 나가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도시화라는 변화과정 속에서 도시의 근본적인 구조와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Burgess, Hoyt, Harris & Ullman 등의 학자들은 도시구조에 관하여 복잡한 도시의 단면을 비교적 간단·명료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방법론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발전과 더불어 도시라는 공간 속에 도시화와 산업화라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도시의 규모나 기능, 성격 등 도시 내의 사회·경제·물리적 환경 또한 함께 바뀌어 왔다. 특히, 인구증가와 산업집중 등으로 인한 시가지의 면적확산(面積擴散)은 토지이용 변화와 시계(時界)의 물리적 팽창을 가속시키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일제 강점기시기 동안 일제에 의해 자행된 우리나라 식민지정책은 우리 전통도시의 모습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일제의 경제적 자국이익을 위한 신도시 건설은 자생적 전통도시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살펴보면, 일본은 1876년 이후 1910년 합병 시까지 조선의 15개 지역을 강제적으로 개항(開港) 또는 개시(開市)시키고, 이들 중 12개 지역을 1913년 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조치에 따라 부(府)-지금의 시(市)에 해당-로 승격시켰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식민지 도시성장의 외형적 틀은 마련되게 되는데, 일제의 개항 및 부제도(府制度) 채택의 숨은 의도는 분석적 차원에서 ① 군사적 목적, ② 통상·교통·행정 등 장래의 식민지 경영 및 관리의 목적, 그리고 ③ 배후지의 수탈 및 수탈된 자원의 본국 수송의 목적 등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본 연구에서 분석할 대상지인 군산의 개항과 부(府)로의 승격은 이 세 번째 의도와 관련된 것이다. 특히 수탈한 쌀의 원활한 수송과 반출을 목적으로 대단위 토목공사(예를 들어, 호남·군산·장항선 철도 공사, 전주-군산 간 도로 포장 공사, 동진·만경강 수로(水路)공사, 군산항 수축(修築)공사는 인적, 물적 자원의 집적(식민지 도시집적)을 가중시켜 군산부(府)를 호남지역의 중추도시로 성장시켰다. 따라서 본 연구는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일제신도시로서 현재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군산시를 대상으로 일제강점기 신도시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에 따르는 도시공간구조 분석을 하였고, 해방이후 도시의 사회·경제 및 기반 산업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결과와 그에 수반하는 도시·사회·경제의 변화, 그리고 전통적으로 일어난 우리나라 자생적 도시 의정부시와의 비교를 통한 일제신도시의 특징을 Space Syntax를 통하여 분석 값을 도출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었다. 연구의 흐름은 1단계로 군산시의 역사적 현황과 사건, 그리고 사회경제구조에 대한 기초조사를 거쳐 2단계로 각 시대별 공간구조의 특성을 정량적으로 분석, 마지막으로 이를 종합 고찰하여 정성적으로 비교 해석함으로서 군산의 도시적 특징과 군산시의 도시·사회·경제적 쇠퇴의 원인에 대해 진단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본 연구는 제 4장에서 군산시 지역경제의 흐름과 역사적 전개과정을 근간으로 ① 일제강점기 시기인 '개항과 수탈의 시기'와 ② 급격한 도시성장 단절과 지역경제에 대한 모색의 시기로서 해방 이후 1945년부터 현재까지를 '쇠퇴와 도약의 시기'로 나누었다. 이에 수반하여 두 시기의 도시 전반적인 역사적 배경과 경제의 흐름을 통한 물리적인 도시 분석과 동시에 Space Syntax를 통하여 보다 객관적인 도시공간구조의 정량적 분석 값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분석된 결과를 간략히 기술하면, 첫째, 군산의 도로체계는 「현 금동 군산 서 초등학교 앞 - KT 군산지사 앞 도로」와 「현 내항사거리 - 명산사거리」로 이루어진 십자(十字)축을 기준으로 격자형 형태를 기반으로 명확한 도시체계를 형성하였다. 둘째, 일제강점기 도시의 중심지였던 내항 일대(영화동, 월명동, 장미동대)는 쇠락하였고, 해방 이후 동부지역인 조촌동과 경암동 일대로 도시의 중심이 이동하였다. 셋째,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과거 거류지역의 도시성은 현재에 와서 크게 쇠락하였으나, 당시 일제에 의해 계획된 격자형의 도시체계는 현재 도시의 중심지인 조촌동과 경암동의 동부지역과 신흥 주거 및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나운동과 문화동 일대로 연장되어 동한 격자형 가로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넷째, 서해안 고속도로와 외곽 고속화도로의 신설로 인하여 도시 내의 교통량이 크게 분산되었다. 동시에 외곽고속화도로에 통합도 역시 크게 높아져 외부에서 시로 들어오는 접근성 또한 분산되었다. 위와 같은 분석 결과 군산시의 가로체계와 현 도시경제의 쇠퇴, 도시 중심지 이동에 대한 물리적 해석이 공간통사론에 의한 정량적 분석과 대부분 일치하였으나, 통사론적 분석에서 높은 통합도를 나타내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내항 일대의 쇠락화는 증명해내지 못했다. 이와 같이 통합도의 높은 예측율에도 불구하고 도시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시대적 배경에 근거하여 도시사회적인 요인으로서 그 원인을 분류할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군산시의 물리적 도시공간분석과 정량적 공간분석으로서 다음의 두 가지 결론을 얻어낼 수 있었다. 첫째, 도시공간의 활성화이다. 즉, 과거 군산은 통사론적 분석 결과 대체로 높고 고른 통합도 분포(int=0.9393)와 높은 명료도 값(R^2=0.4078)을 나타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가로축의 「현 금동 군산 서초등학교 앞 - KT 군산지사 앞 도로」(int=1.6088)와 세로축인 「현 내항사거리 - 명산사거리 」(int=1.5254)의 통합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 이 가로를 기본구조로 십자(十字)축을 이루었고, 이를 기준으로 격자형의 도시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어떠한 공간으로부터 시작하여도 공간간의 접근성이 용이하여 도시전체의 통행량과 인지도, 상권 등이 활성화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지속적인 도시성장에 실패이다. 해방 이후 동일지역의 도시공간구조는 해방 이전과 비교하여 현재에 이르러 통합도(int=4.71)는 크게 높아져, 물리적 또는 인지적 접근성은 매우 효과적이지만, 공간구조 명료도 (R^2=0.2133)에서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격히 떨어져있어 공간인지도와 공간구조 및 공간이용패턴에 대한 예측률이 크게 떨어졌다. 분석 결과 이 지역은 도시 전체와의 유기적 결합을 이루지 못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고, 도시 성장에 외면 받고 있는 낙후된 지역성장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본 연구에서 분석된 바에 따르면 일제 신도시 군산은 해방 전후기 도시성장의 극명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분히 군산은 일제에 의해 계획된 도시체계이고 이는 일본인의 자국이기주의로서 이뤄진 계획이었기 때문에 강점기 시기의 큰 도시경제적 성장으로서 근대화 도시로 도약하게 되었으나, 해방이후의 군산은 일본경제의 단절로 크게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현재까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고 도시발전은 급격히 후퇴하고 있는 모습이 통사론적 분석에서도 현격히 드러났다. 또한 최근 경주와 경합을 벌였던 방사선 폐기물 처리장 유치에도 실패하여 새로운 도시발전의 기대감마저 잃은 상태이다. 이는 자생적으로 발전된 우리나라 전통도시들의 성장세와 비교하여 생각한다면 일제개항도시로서의 상처는 실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정부차원에서 계획 및 실행하고 있는 「서해안지역개발사업계획」(1980)과 「군산자유무역지역지정」(2000), 군산 산업단지(1994),「새만금 사업」 과 비응 관광어항(2007) 등으로 군산을 미래 서해안의 또 다른 거점도시로서 작은 기대감은 주고는 있으나, 향후 군산시가 과거 최대 근대도시의 계보를 잇는 발전된 도시화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경제개발 사업과 현재 남아있는 일제 근대적 도시성과 도시성장에서 외면 받고 있는 일제의 흔적들에 대해 새로운 관심과 도시적 계획이 필요하다 하겠다.
도시공간구조의 변화를 살펴보는 연구는 20세기 초 산업화(Industralization)라는 패러다임이 도시화(Urbanization)를 이끌어 나가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도시화라는 변화과정 속에서 도시의 근본적인 구조와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Burgess, Hoyt, Harris & Ullman 등의 학자들은 도시구조에 관하여 복잡한 도시의 단면을 비교적 간단·명료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방법론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발전과 더불어 도시라는 공간 속에 도시화와 산업화라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도시의 규모나 기능, 성격 등 도시 내의 사회·경제·물리적 환경 또한 함께 바뀌어 왔다. 특히, 인구증가와 산업집중 등으로 인한 시가지의 면적확산(面積擴散)은 토지이용 변화와 시계(時界)의 물리적 팽창을 가속시키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일제 강점기시기 동안 일제에 의해 자행된 우리나라 식민지정책은 우리 전통도시의 모습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일제의 경제적 자국이익을 위한 신도시 건설은 자생적 전통도시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살펴보면, 일본은 1876년 이후 1910년 합병 시까지 조선의 15개 지역을 강제적으로 개항(開港) 또는 개시(開市)시키고, 이들 중 12개 지역을 1913년 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조치에 따라 부(府)-지금의 시(市)에 해당-로 승격시켰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식민지 도시성장의 외형적 틀은 마련되게 되는데, 일제의 개항 및 부제도(府制度) 채택의 숨은 의도는 분석적 차원에서 ① 군사적 목적, ② 통상·교통·행정 등 장래의 식민지 경영 및 관리의 목적, 그리고 ③ 배후지의 수탈 및 수탈된 자원의 본국 수송의 목적 등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본 연구에서 분석할 대상지인 군산의 개항과 부(府)로의 승격은 이 세 번째 의도와 관련된 것이다. 특히 수탈한 쌀의 원활한 수송과 반출을 목적으로 대단위 토목공사(예를 들어, 호남·군산·장항선 철도 공사, 전주-군산 간 도로 포장 공사, 동진·만경강 수로(水路)공사, 군산항 수축(修築)공사는 인적, 물적 자원의 집적(식민지 도시집적)을 가중시켜 군산부(府)를 호남지역의 중추도시로 성장시켰다. 따라서 본 연구는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일제신도시로서 현재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군산시를 대상으로 일제강점기 신도시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에 따르는 도시공간구조 분석을 하였고, 해방이후 도시의 사회·경제 및 기반 산업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결과와 그에 수반하는 도시·사회·경제의 변화, 그리고 전통적으로 일어난 우리나라 자생적 도시 의정부시와의 비교를 통한 일제신도시의 특징을 Space Syntax를 통하여 분석 값을 도출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었다. 연구의 흐름은 1단계로 군산시의 역사적 현황과 사건, 그리고 사회경제구조에 대한 기초조사를 거쳐 2단계로 각 시대별 공간구조의 특성을 정량적으로 분석, 마지막으로 이를 종합 고찰하여 정성적으로 비교 해석함으로서 군산의 도시적 특징과 군산시의 도시·사회·경제적 쇠퇴의 원인에 대해 진단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본 연구는 제 4장에서 군산시 지역경제의 흐름과 역사적 전개과정을 근간으로 ① 일제강점기 시기인 '개항과 수탈의 시기'와 ② 급격한 도시성장 단절과 지역경제에 대한 모색의 시기로서 해방 이후 1945년부터 현재까지를 '쇠퇴와 도약의 시기'로 나누었다. 이에 수반하여 두 시기의 도시 전반적인 역사적 배경과 경제의 흐름을 통한 물리적인 도시 분석과 동시에 Space Syntax를 통하여 보다 객관적인 도시공간구조의 정량적 분석 값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분석된 결과를 간략히 기술하면, 첫째, 군산의 도로체계는 「현 금동 군산 서 초등학교 앞 - KT 군산지사 앞 도로」와 「현 내항사거리 - 명산사거리」로 이루어진 십자(十字)축을 기준으로 격자형 형태를 기반으로 명확한 도시체계를 형성하였다. 둘째, 일제강점기 도시의 중심지였던 내항 일대(영화동, 월명동, 장미동대)는 쇠락하였고, 해방 이후 동부지역인 조촌동과 경암동 일대로 도시의 중심이 이동하였다. 셋째,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과거 거류지역의 도시성은 현재에 와서 크게 쇠락하였으나, 당시 일제에 의해 계획된 격자형의 도시체계는 현재 도시의 중심지인 조촌동과 경암동의 동부지역과 신흥 주거 및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나운동과 문화동 일대로 연장되어 동한 격자형 가로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넷째, 서해안 고속도로와 외곽 고속화도로의 신설로 인하여 도시 내의 교통량이 크게 분산되었다. 동시에 외곽고속화도로에 통합도 역시 크게 높아져 외부에서 시로 들어오는 접근성 또한 분산되었다. 위와 같은 분석 결과 군산시의 가로체계와 현 도시경제의 쇠퇴, 도시 중심지 이동에 대한 물리적 해석이 공간통사론에 의한 정량적 분석과 대부분 일치하였으나, 통사론적 분석에서 높은 통합도를 나타내고 있지만,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내항 일대의 쇠락화는 증명해내지 못했다. 이와 같이 통합도의 높은 예측율에도 불구하고 도시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시대적 배경에 근거하여 도시사회적인 요인으로서 그 원인을 분류할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군산시의 물리적 도시공간분석과 정량적 공간분석으로서 다음의 두 가지 결론을 얻어낼 수 있었다. 첫째, 도시공간의 활성화이다. 즉, 과거 군산은 통사론적 분석 결과 대체로 높고 고른 통합도 분포(int=0.9393)와 높은 명료도 값(R^2=0.4078)을 나타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가로축의 「현 금동 군산 서초등학교 앞 - KT 군산지사 앞 도로」(int=1.6088)와 세로축인 「현 내항사거리 - 명산사거리 」(int=1.5254)의 통합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 이 가로를 기본구조로 십자(十字)축을 이루었고, 이를 기준으로 격자형의 도시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어떠한 공간으로부터 시작하여도 공간간의 접근성이 용이하여 도시전체의 통행량과 인지도, 상권 등이 활성화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지속적인 도시성장에 실패이다. 해방 이후 동일지역의 도시공간구조는 해방 이전과 비교하여 현재에 이르러 통합도(int=4.71)는 크게 높아져, 물리적 또는 인지적 접근성은 매우 효과적이지만, 공간구조 명료도 (R^2=0.2133)에서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격히 떨어져있어 공간인지도와 공간구조 및 공간이용패턴에 대한 예측률이 크게 떨어졌다. 분석 결과 이 지역은 도시 전체와의 유기적 결합을 이루지 못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고, 도시 성장에 외면 받고 있는 낙후된 지역성장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본 연구에서 분석된 바에 따르면 일제 신도시 군산은 해방 전후기 도시성장의 극명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분히 군산은 일제에 의해 계획된 도시체계이고 이는 일본인의 자국이기주의로서 이뤄진 계획이었기 때문에 강점기 시기의 큰 도시경제적 성장으로서 근대화 도시로 도약하게 되었으나, 해방이후의 군산은 일본경제의 단절로 크게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현재까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고 도시발전은 급격히 후퇴하고 있는 모습이 통사론적 분석에서도 현격히 드러났다. 또한 최근 경주와 경합을 벌였던 방사선 폐기물 처리장 유치에도 실패하여 새로운 도시발전의 기대감마저 잃은 상태이다. 이는 자생적으로 발전된 우리나라 전통도시들의 성장세와 비교하여 생각한다면 일제개항도시로서의 상처는 실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정부차원에서 계획 및 실행하고 있는 「서해안지역개발사업계획」(1980)과 「군산자유무역지역지정」(2000), 군산 산업단지(1994),「새만금 사업」 과 비응 관광어항(2007) 등으로 군산을 미래 서해안의 또 다른 거점도시로서 작은 기대감은 주고는 있으나, 향후 군산시가 과거 최대 근대도시의 계보를 잇는 발전된 도시화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경제개발 사업과 현재 남아있는 일제 근대적 도시성과 도시성장에서 외면 받고 있는 일제의 흔적들에 대해 새로운 관심과 도시적 계획이 필요하다 하겠다.
The study on the changes to the urban spatial structure began with the industrialization happening along with urbanization in the early 20th century. At that time, there had been constant needs for research into the fundamental structure and mechanism of a city in the changing process called urbaniz...
The study on the changes to the urban spatial structure began with the industrialization happening along with urbanization in the early 20th century. At that time, there had been constant needs for research into the fundamental structure and mechanism of a city in the changing process called urbanization. Many scholars including Burgess, Hoyt, and Harris and Ullman suggested methodology to look at the complex aspects of the urban structure in a relatively simple and clear manner. Korea witnessed the urban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in the city along with the economic growth that began in the 1960s. Since then there have been social, economic, and physical changes to the environment in addition to the size, function and character of the city. In particular, the expanding of urban areas due to increasing population and industrial concentration caused the changes to the land uses and physical expansion of the field of vision. The colonial policies applied by the Japanese empire during its rule altered the traditional Korean cities completely. Especially they built new cities to promote their economic benefits and thus made huge impacts on the autogenous and traditional city structure. To elaborate, the Japanese empire force 15 areas of Korea to open the harbor or city from 1876 to 1910 of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Among them total 12 areas were elevated to the status of bu-corresponding to a city today- according to the reform policies of administrative districts by the Chosun Government General in 1913. With the reform, the exterior framework of growth of Korea's colonial cities was established. The Japanese rulers surely had hidden intentions behind the opening harbor and introduction of the bu system; they analysis results identified them as ①military purposes, ②future colonial management and supervision in commerce, transportation, and administration, and ③exploitation of the hinterland and transportation of the exploited resources to Japan. The opening of Gunsan harbor and the elevation of its status as bu had something to do with the third intention. In particular, the Japanese rulers carried out large-scale public works(for example, the construction of Honam, Gunsan, and Janghang Railroads, road pavements between Jeonju and Gunsan, construction of the waterways in River Dongjin and Mangyeong, and repair of the Gunsan Harbor) in order to make the transportation and transfer process smoother for the exploited rice. The public works in turn reinforced the human and physical concentration of the city(the urban concentration in the colony) and made Gunsan-bu grow as the core city in the Honam area. Thus this study set out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new towns made during the Japanese rule by investigating Gunsan City, which still had the traces of its being built and grown as one of those new cities since 1910 of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t also aimed to analyze the city's urban spatial structure, examine the impacts of the changes during the colonial days on the city in the social, economic, and infrastructure level, and compare the city with Uijeongbu, which was an autogenous city of Korea. The final goal was to produce the analysis values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new cities built by the Japanese rulers through the Space Syntax. The research procedures were as follows; the Stage 1 conducted the preliminary research in to the historical development, events, and social and economic structure of Gunsan City. In the Stage 2 a quantitative analysis was conducted of the characteristics of its spatial structure for each period. The final stage consisted of the overall consideration, comparison and interpretation of the results in a qualitative manner to understand the urban characteristics of Gunsan and the causes of its degeneration in the urban, social, and economic contexts. As a result, the new city built by the Japanese ruler, Gunsan, showed extreme contrasts in its growth before and after Korean took back its independence. Since it's the truth that Gunsan was a planned city for the sake of the purely egoistic schemes of the ruling Japanese, the foundation established during the Japanese rule helped it make a huge leap in the urban and economic field after the independence day. But there has been an ongoing downward stream for the city since then as the economic exchanges were cut completely with Japan. Even today it's hard to observe constant growth spurts in the city. The syntax analysis results show that its development as a city has actually made a huge move backwards. It also failed to win the competition for the radioactive wastes facilities against Gyeongju recently and its citizens have lost the expectations for the new leap into the future. Compared to the dramatic growth of the traditional cities that have developed in an autogenous way, it's very unfortunate that it still has the wounds as the harbor that was forced to open by the Japanese empire. The central government has laid out various plans to help it grow including the "Development Plans for the West Coastal Area,"(1980) "Appointment as a free trade zone,"(2000) "Gunsan Industrial Complex, "(1994) "Saemangeum Project," and "Bieung Tourist Port(2007)." They do make the citizens have a hope for their city growing as one of the strategic points in the future of West Coast. But there are many things to take care of in order for it to go through urbanization following its heritage as the biggest modern city of Korea; it should take an active approach to the economic development projects and take new interest in the Japanese traces that were left from the Japanese ruling and have been ignored in the growing process in making new urban plans.
The study on the changes to the urban spatial structure began with the industrialization happening along with urbanization in the early 20th century. At that time, there had been constant needs for research into the fundamental structure and mechanism of a city in the changing process called urbanization. Many scholars including Burgess, Hoyt, and Harris and Ullman suggested methodology to look at the complex aspects of the urban structure in a relatively simple and clear manner. Korea witnessed the urban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in the city along with the economic growth that began in the 1960s. Since then there have been social, economic, and physical changes to the environment in addition to the size, function and character of the city. In particular, the expanding of urban areas due to increasing population and industrial concentration caused the changes to the land uses and physical expansion of the field of vision. The colonial policies applied by the Japanese empire during its rule altered the traditional Korean cities completely. Especially they built new cities to promote their economic benefits and thus made huge impacts on the autogenous and traditional city structure. To elaborate, the Japanese empire force 15 areas of Korea to open the harbor or city from 1876 to 1910 of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Among them total 12 areas were elevated to the status of bu-corresponding to a city today- according to the reform policies of administrative districts by the Chosun Government General in 1913. With the reform, the exterior framework of growth of Korea's colonial cities was established. The Japanese rulers surely had hidden intentions behind the opening harbor and introduction of the bu system; they analysis results identified them as ①military purposes, ②future colonial management and supervision in commerce, transportation, and administration, and ③exploitation of the hinterland and transportation of the exploited resources to Japan. The opening of Gunsan harbor and the elevation of its status as bu had something to do with the third intention. In particular, the Japanese rulers carried out large-scale public works(for example, the construction of Honam, Gunsan, and Janghang Railroads, road pavements between Jeonju and Gunsan, construction of the waterways in River Dongjin and Mangyeong, and repair of the Gunsan Harbor) in order to make the transportation and transfer process smoother for the exploited rice. The public works in turn reinforced the human and physical concentration of the city(the urban concentration in the colony) and made Gunsan-bu grow as the core city in the Honam area. Thus this study set out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new towns made during the Japanese rule by investigating Gunsan City, which still had the traces of its being built and grown as one of those new cities since 1910 of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It also aimed to analyze the city's urban spatial structure, examine the impacts of the changes during the colonial days on the city in the social, economic, and infrastructure level, and compare the city with Uijeongbu, which was an autogenous city of Korea. The final goal was to produce the analysis values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new cities built by the Japanese rulers through the Space Syntax. The research procedures were as follows; the Stage 1 conducted the preliminary research in to the historical development, events, and social and economic structure of Gunsan City. In the Stage 2 a quantitative analysis was conducted of the characteristics of its spatial structure for each period. The final stage consisted of the overall consideration, comparison and interpretation of the results in a qualitative manner to understand the urban characteristics of Gunsan and the causes of its degeneration in the urban, social, and economic contexts. As a result, the new city built by the Japanese ruler, Gunsan, showed extreme contrasts in its growth before and after Korean took back its independence. Since it's the truth that Gunsan was a planned city for the sake of the purely egoistic schemes of the ruling Japanese, the foundation established during the Japanese rule helped it make a huge leap in the urban and economic field after the independence day. But there has been an ongoing downward stream for the city since then as the economic exchanges were cut completely with Japan. Even today it's hard to observe constant growth spurts in the city. The syntax analysis results show that its development as a city has actually made a huge move backwards. It also failed to win the competition for the radioactive wastes facilities against Gyeongju recently and its citizens have lost the expectations for the new leap into the future. Compared to the dramatic growth of the traditional cities that have developed in an autogenous way, it's very unfortunate that it still has the wounds as the harbor that was forced to open by the Japanese empire. The central government has laid out various plans to help it grow including the "Development Plans for the West Coastal Area,"(1980) "Appointment as a free trade zone,"(2000) "Gunsan Industrial Complex, "(1994) "Saemangeum Project," and "Bieung Tourist Port(2007)." They do make the citizens have a hope for their city growing as one of the strategic points in the future of West Coast. But there are many things to take care of in order for it to go through urbanization following its heritage as the biggest modern city of Korea; it should take an active approach to the economic development projects and take new interest in the Japanese traces that were left from the Japanese ruling and have been ignored in the growing process in making new urban pl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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