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 7웅이 치열한 각축을 겨루던 전국시대이다. 춘추시대에도 이미 禮樂이 무너지고 인심이 각박하였지만 형식적으로서의 禮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전국시대에는 그 禮마저도 무너지고 전쟁과 혼란,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판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하에서 순자는 하늘을 ‘主宰之天·運命之天’으로 여기기보다 ‘自然之天’으로 보게 되었다. 하늘을 단지 자연적인 대상으로 보게 됨에 따라 자연에 운명을 의탁하기보다 인간 자신의 능동적 노력으로 운명을 개척할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이 ‘天人之分’이다. 그러나 순자는 인간의...
순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 7웅이 치열한 각축을 겨루던 전국시대이다. 춘추시대에도 이미 禮樂이 무너지고 인심이 각박하였지만 형식적으로서의 禮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전국시대에는 그 禮마저도 무너지고 전쟁과 혼란,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판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하에서 순자는 하늘을 ‘主宰之天·運命之天’으로 여기기보다 ‘自然之天’으로 보게 되었다. 하늘을 단지 자연적인 대상으로 보게 됨에 따라 자연에 운명을 의탁하기보다 인간 자신의 능동적 노력으로 운명을 개척할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이 ‘天人之分’이다. 그러나 순자는 인간의 주체적인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그 한계점을 지적하며 천지와 조화를 이룰 것을 강조하였다. 하늘과 인간을 구분하는 관점은 인간 자신을 해석하는 데도 적용하여 인간을 자연적인 性과 인위적인 僞의 존재로 보았다. 순자는 ‘쪽풀보다 푸른 물감이 더 푸르고, 물보다 얼음이 더 차가운 것’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자연적인 것보다 노력하고 학습해야 이루어지는 인위적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性과 僞의 개념이며 전자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의 측면이므로 악하고 후자는 선하다고 하였다. 순자는 性으로 인해 음험하고 편벽되고 이치에 어긋나게 되나 인위적인 노력인 僞를 통해 이러한 혼란이 극복되고 인간은 자기를 완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化性起僞’이며, 性이 부정적인 요소이기는 하나 僞를 가할 터전으로서 그 위상을 인정하였다. 인간이 질박하고 이기적인 性을 극복하고 자기를 완성하며 조화로운 사회를 이룩함에 있어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禮이다. 예는 내면적인 덕이자 사회적 규범이며 인도의 표준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예를 통해 인간은 자기를 완성하며 사회의 질서를 정립되며, 순자는 이것은 성인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예는 分, 節, 中, 養, 文飾의 기능을 하며 인간사회의 원만한 조화인 ‘群居和一’을 완성케 한다. 性을 변화시키고 僞를 일으키는 ‘化性起僞’와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性僞之合’의 과정은 수양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수양의 과정은 인도의 표준인 예를 철저히 인식하는 察道와 이를 실천하는 行道로 구분해볼 수 있으며, 그 방법으로는 배움[學]과 수신을 들 수 있다. 순자는 배움의 구체적 자세로서 쉬지 않고 꾸준히 쌓아가는 ‘積微不已’,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고 뜻을 한결같이 하는 ‘專心一志’, 마음을 바로 두고 고요하게 하는 ‘正錯而勿動’을 강조하였고, 수신의 방법으로 강한 것은 부드럽게 하며, 약한 것은 보완하는 ‘治氣’와 ‘養心’을 언급하였다. 특히 순자는 마음의 虛·壹·靜을 통해 ‘大淸明’에 이르면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를 수 있고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상의 天論, 人性論, 禮論, 修養論을 고찰해 볼 때,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비록 악하게 해석하였지만 누구보다도 인간의 변화 가능성과 완성가능성을 일관되게 논의하였음을 볼 수 있다. 하늘에 의존적인 당시의 통념을 깨고 인간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을 통해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천론에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으며, 일관되게 노력을 통한 인간의 완성가능성을 말한 인성론과 수양론을 통해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볼 수 있다. 자기 수양과 완성의 표준으로서, 그리고 사회질서 정립의 지표로서 예를 강조한 부분에서 순자의 조화로운 사회 실현의 이상을 엿볼 수 있다.
순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 7웅이 치열한 각축을 겨루던 전국시대이다. 춘추시대에도 이미 禮樂이 무너지고 인심이 각박하였지만 형식적으로서의 禮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전국시대에는 그 禮마저도 무너지고 전쟁과 혼란,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판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하에서 순자는 하늘을 ‘主宰之天·運命之天’으로 여기기보다 ‘自然之天’으로 보게 되었다. 하늘을 단지 자연적인 대상으로 보게 됨에 따라 자연에 운명을 의탁하기보다 인간 자신의 능동적 노력으로 운명을 개척할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이 ‘天人之分’이다. 그러나 순자는 인간의 주체적인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그 한계점을 지적하며 천지와 조화를 이룰 것을 강조하였다. 하늘과 인간을 구분하는 관점은 인간 자신을 해석하는 데도 적용하여 인간을 자연적인 性과 인위적인 僞의 존재로 보았다. 순자는 ‘쪽풀보다 푸른 물감이 더 푸르고, 물보다 얼음이 더 차가운 것’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자연적인 것보다 노력하고 학습해야 이루어지는 인위적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性과 僞의 개념이며 전자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의 측면이므로 악하고 후자는 선하다고 하였다. 순자는 性으로 인해 음험하고 편벽되고 이치에 어긋나게 되나 인위적인 노력인 僞를 통해 이러한 혼란이 극복되고 인간은 자기를 완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化性起僞’이며, 性이 부정적인 요소이기는 하나 僞를 가할 터전으로서 그 위상을 인정하였다. 인간이 질박하고 이기적인 性을 극복하고 자기를 완성하며 조화로운 사회를 이룩함에 있어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禮이다. 예는 내면적인 덕이자 사회적 규범이며 인도의 표준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예를 통해 인간은 자기를 완성하며 사회의 질서를 정립되며, 순자는 이것은 성인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예는 分, 節, 中, 養, 文飾의 기능을 하며 인간사회의 원만한 조화인 ‘群居和一’을 완성케 한다. 性을 변화시키고 僞를 일으키는 ‘化性起僞’와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性僞之合’의 과정은 수양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수양의 과정은 인도의 표준인 예를 철저히 인식하는 察道와 이를 실천하는 行道로 구분해볼 수 있으며, 그 방법으로는 배움[學]과 수신을 들 수 있다. 순자는 배움의 구체적 자세로서 쉬지 않고 꾸준히 쌓아가는 ‘積微不已’,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고 뜻을 한결같이 하는 ‘專心一志’, 마음을 바로 두고 고요하게 하는 ‘正錯而勿動’을 강조하였고, 수신의 방법으로 강한 것은 부드럽게 하며, 약한 것은 보완하는 ‘治氣’와 ‘養心’을 언급하였다. 특히 순자는 마음의 虛·壹·靜을 통해 ‘大淸明’에 이르면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를 수 있고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상의 天論, 人性論, 禮論, 修養論을 고찰해 볼 때,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비록 악하게 해석하였지만 누구보다도 인간의 변화 가능성과 완성가능성을 일관되게 논의하였음을 볼 수 있다. 하늘에 의존적인 당시의 통념을 깨고 인간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을 통해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천론에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으며, 일관되게 노력을 통한 인간의 완성가능성을 말한 인성론과 수양론을 통해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볼 수 있다. 자기 수양과 완성의 표준으로서, 그리고 사회질서 정립의 지표로서 예를 강조한 부분에서 순자의 조화로운 사회 실현의 이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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