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 마태복음 1장을 고찰하여 본 결과 마태가 계보를 통하여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논자는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구조주의적 시각에서 본문을 살펴본 결과 마태의 계보를 아브라함과 연결시키는 기존의 학자들과는 달리 그 계보를 창세기 3장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약속"과 "약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즉, 마태복음1:18-23에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고 논자는 주장...
이 논문에서 마태복음 1장을 고찰하여 본 결과 마태가 계보를 통하여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논자는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구조주의적 시각에서 본문을 살펴본 결과 마태의 계보를 아브라함과 연결시키는 기존의 학자들과는 달리 그 계보를 창세기 3장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약속"과 "약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즉, 마태복음1:18-23에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고 논자는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남의 약속(창 3:15)에서부터 아브라함의 후손,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만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믿음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믿음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논자는 마태가 마태복음 1장을 통하여 "임마누엘의 하나님 즉, 모든 족속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라"고 우리들에게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논자는 마태복음 1장에 근거하여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다음과 같은 교차 대칭 구조로 그려본다. A 인간의 타락, 하나님이 떠나심(창 3장) B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창 3:15) C 아브라함에게서 번성되어가고 있는 약속(마 1:2-5) D 다윗 왕에게서 번성된 하나님 약속(마 1:6) E 임마누엘의 하나님(마 1:23) D′쇠퇴하여가는 다윗 왕국(마 1:6b-11) C′바벨론 포로에서 쇠약해가는 약속(마 1:12-17) B′성령으로 오셔서 약속을 성취(마 1:18-21) A′모든 족속의 회복, 영원히 함께 하심(마 28:19-20) 논자는 위 교차 대칭 구조에서 살펴본 결과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타락, 하나님이 떠나심(창 3장)에서-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창 3:15)-아브라함에게서 번성되어 가는 하나님의 약속(창 12:1.3; 마 1:2-5)-다윗 왕에게서 번성된 하나님의 약속(삼하 7:16; 마 1:6a)-임마누엘의 예언(사 7:14)-쇠퇴하여가는 다윗 왕국(마 1:6b-11)-바벨론 포로에서 쇠약해가는 약속(1:12-17)-성령으로 오셔서 약속을 성취하신 하나님(마 1:18-25)-모든 족속의 회복,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하심(마 28:19-20)으로 점진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대칭구조를 이루어 "임마누엘의 하나님"에서 절정을 이룬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논자는 마태가 계보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언약 사상에 근거한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본다. 논자는 구조주의적 시각으로 마태복음 1장의 심층구조를 분석해 볼 결과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창세기 3장 15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 약속이 아브라함과의 약속에서 성취되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마태가 이스라엘 후손의 믿음보다는 이방인들인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신앙을 더 부각 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마태가 계보에 이방인들인 다말, 라합, 룻, 우리아를 등장 시킨 의도는 무엇일까? 논자는 마태가 이 이방인들을 계보에 기록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순수 유대인의 혈통으로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이방인의 믿음으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본다. 물론 논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는데 주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논자가 구조주의적 시각으로 마태복음 1장을 분석해본 결과에 의하면 마태는 이스라엘 후손보다는 이방인의 믿음을 더 부각시키려는 흔적을 남겼다고 본다. 특히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라엘 왕 시대에 와서 후손에 대한 "씨"가 희망이 사라져가고 있을 때, 이방인들인 여인들의 믿음을 통해서 후손을 이어가게 되는 사건은 그 사실을 분명히 입증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논자는 마태가 독자들에게 메시아는 유대인들의 구원자만이 아니라, 이방인 즉, 모든 민족(마 28:19-20)에게로 나아가라고 하신 이방인 편향성(21:4; 21:28-32; 21:33-43; 22:1-14)이 강하게 스며들어 있는 구원의 "희소식"이라는 신학적 의도가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복음은 열려져 있다. 그러나 그 복음은 믿음(마 28:20) 즉,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반응하는 후손들에게만 주어지게 된다고 본다. 이런 의도에서 마태가 복음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하셨던 약속이 다윗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모든 인류의 구원의 희소식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논자는 본다. 지금까지 논자는 마태복음 1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사는 창세기 3:15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러므로 논자는 마태가 1:1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라고 서술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창 3:15)으로 오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미리 암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a 여자의 후손 ↔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함.............창 3:15 ↕ ↕ a′성령으로 잉태됨 ↔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마 1:18, 21 이에 논자는 창세기 3:15에서 선포된 "여자의 후손"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구원의 약속이 마태복음 1:18, 21과 대칭구조를 이루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성취됨을 주장했다. 이제 현시대를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무한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신앙의 틀에 묶어놓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라면 그 속에서 뛰쳐나와 믿음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행동으로 반응하라! 그리하면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강조하신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마태복음에 대한 응답 즉,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논문에서 마태복음 1장을 고찰하여 본 결과 마태가 계보를 통하여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논자는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구조주의적 시각에서 본문을 살펴본 결과 마태의 계보를 아브라함과 연결시키는 기존의 학자들과는 달리 그 계보를 창세기 3장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약속"과 "약속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즉, 마태복음1:18-23에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고 논자는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남의 약속(창 3:15)에서부터 아브라함의 후손,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만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믿음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믿음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논자는 마태가 마태복음 1장을 통하여 "임마누엘의 하나님 즉, 모든 족속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라"고 우리들에게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논자는 마태복음 1장에 근거하여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다음과 같은 교차 대칭 구조로 그려본다. A 인간의 타락, 하나님이 떠나심(창 3장) B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창 3:15) C 아브라함에게서 번성되어가고 있는 약속(마 1:2-5) D 다윗 왕에게서 번성된 하나님 약속(마 1:6) E 임마누엘의 하나님(마 1:23) D′쇠퇴하여가는 다윗 왕국(마 1:6b-11) C′바벨론 포로에서 쇠약해가는 약속(마 1:12-17) B′성령으로 오셔서 약속을 성취(마 1:18-21) A′모든 족속의 회복, 영원히 함께 하심(마 28:19-20) 논자는 위 교차 대칭 구조에서 살펴본 결과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타락, 하나님이 떠나심(창 3장)에서-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창 3:15)-아브라함에게서 번성되어 가는 하나님의 약속(창 12:1.3; 마 1:2-5)-다윗 왕에게서 번성된 하나님의 약속(삼하 7:16; 마 1:6a)-임마누엘의 예언(사 7:14)-쇠퇴하여가는 다윗 왕국(마 1:6b-11)-바벨론 포로에서 쇠약해가는 약속(1:12-17)-성령으로 오셔서 약속을 성취하신 하나님(마 1:18-25)-모든 족속의 회복,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하심(마 28:19-20)으로 점진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대칭구조를 이루어 "임마누엘의 하나님"에서 절정을 이룬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논자는 마태가 계보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언약 사상에 근거한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본다. 논자는 구조주의적 시각으로 마태복음 1장의 심층구조를 분석해 볼 결과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창세기 3장 15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 약속이 아브라함과의 약속에서 성취되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마태가 이스라엘 후손의 믿음보다는 이방인들인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신앙을 더 부각 시키려고 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마태가 계보에 이방인들인 다말, 라합, 룻, 우리아를 등장 시킨 의도는 무엇일까? 논자는 마태가 이 이방인들을 계보에 기록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순수 유대인의 혈통으로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이방인의 믿음으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본다. 물론 논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는데 주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논자가 구조주의적 시각으로 마태복음 1장을 분석해본 결과에 의하면 마태는 이스라엘 후손보다는 이방인의 믿음을 더 부각시키려는 흔적을 남겼다고 본다. 특히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라엘 왕 시대에 와서 후손에 대한 "씨"가 희망이 사라져가고 있을 때, 이방인들인 여인들의 믿음을 통해서 후손을 이어가게 되는 사건은 그 사실을 분명히 입증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논자는 마태가 독자들에게 메시아는 유대인들의 구원자만이 아니라, 이방인 즉, 모든 민족(마 28:19-20)에게로 나아가라고 하신 이방인 편향성(21:4; 21:28-32; 21:33-43; 22:1-14)이 강하게 스며들어 있는 구원의 "희소식"이라는 신학적 의도가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복음은 열려져 있다. 그러나 그 복음은 믿음(마 28:20) 즉,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반응하는 후손들에게만 주어지게 된다고 본다. 이런 의도에서 마태가 복음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하셨던 약속이 다윗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모든 인류의 구원의 희소식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논자는 본다. 지금까지 논자는 마태복음 1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사는 창세기 3:15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러므로 논자는 마태가 1:1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라고 서술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창 3:15)으로 오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미리 암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a 여자의 후손 ↔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함.............창 3:15 ↕ ↕ a′성령으로 잉태됨 ↔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마 1:18, 21 이에 논자는 창세기 3:15에서 선포된 "여자의 후손"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구원의 약속이 마태복음 1:18, 21과 대칭구조를 이루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성취됨을 주장했다. 이제 현시대를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무한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신앙의 틀에 묶어놓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라면 그 속에서 뛰쳐나와 믿음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행동으로 반응하라! 그리하면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강조하신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마태복음에 대한 응답 즉,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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