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현대교회에서 추구해야 할 부분을 모색해 보려는 작업의 하나로 존 웨슬리의 교회론을 연구하게 되었다. 본 장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웨슬리 교회론의 연구 결과를 요약하고, 웨슬리의 교회론에 대한 평가를 함으로 결론을 맺으려고 한다. 2장에서 웨슬리의 교회론의 기반이 되었던 형성 배경과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교회론 형성 배경으로는 그의 가족 대대로 내려온 청교도적 영향과 그에 따른 가정교육의 영향 그리고 그가 영국 국교회(성공회)가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성경적인 구조를 갖춘 교회로 믿었던 영국 교회의 영향, 웨슬리 교회관에 많은 영향을 미쳐 신학적 교훈과 실제적 교훈을 받았던 모라비안 교도의 영향이 있었다. 그의 교회론 형성 과정에는 토마스 아 켐피스와 윌리암 로, 제레미 테일러가 저술한 영적 서적의 영향과 조지아 선교지에서의 교회의 직제 문제의 연구 그리고 선교지에서 돌아온 후 그의 회심이 교회론 형성과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3장 웨슬리의 교회본질을 살펴보았다. 웨슬리는 교회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성례전이 온전히 거행되는 곳으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공동체로 이해하였다. 그는 교회의 본질로 니케아 신조에 정의된 초대교회의 대표적 교회론의 특성을 중요시하였다. 아우틀러는 웨슬리의 성숙한 교회관을 "메도디스트의 고전적 교회론"으로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는데, 첫째는 교회의 단일성은 성령 안에서 기독교인의 친교(Koinonia)를 기초로 한다. 둘째, 교회의 거룩성은 은총의 훈련에 근거한다. 이 훈련을 통하여 신자들의 생활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데서부터 온전한 성화에 이르도록 지도하고 성숙시킨다. 셋째, 교회의 보편성은 모든 참된 신자들의 보편적인 공동체가 구속을 우주적으로 전개해 나가는데서 이해된다. 넷째, 교회의 사도성은 사도적 증언에 충실했던 사람들 가운데서 사도적 교리가 계승되는 것에 의해서 측정 된다. 고 하였다. 4장에서는 웨슬리의 교회의 직제와 성례전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웨슬리는 신약성서와 초대교회에 제시된 교회형태에 따라 두 종류의 교직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설교하고 전도하는 책임이 있는 교직자이고, 둘째는 교회를 다스리고 성례전과 안수를 집행하는 교직자이다. 웨슬리는 전통적으로 교역자를 감독(bishop), 장로(presbyter, or priest), 그리고 집사(deacon)의 세 서열로 구분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감독과 장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함으로서, 그 본질에서는 두 서열로 이해했다. 즉 성례전과 안수를 집행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교역자(감도, 장로)와 설교와 복음전도를 주 임무로 하는 아래 서열의 교역자(집사)이다. 웨슬리는 전자는 공적인 사제직으로, 후자는 특별 교역자로 구분했다. 이러한 구분이 웨슬리에게 두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첫째, 메도디스트 평신도 설교자를 임명한 것에 대해 비난을 피하고 정당화 시켰다. 둘째, 평신도 설교자들이 성례전을 집행하지 않으므로 메도디스트회가 영국교회서 분리된 종파가 아니라 영국교회 내의 한 운동으로 남아있게 하는 열괴가 된 것이다. 교회의 조직은 신도회, 속회, 조(Band), 특별 신도회가 있으며, 소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신도회는 웨슬리의 복음 운동에 의해 회심한 자들이 각기 자기 지역에서 영적 함양을 위해 모일 것을 웨슬리에게 청하여 조직되었다. 속회는 교회의 재정적인 문제로 생겨나게 되었는데, 헌금 모으는 일 이상의 중요한 일로 각 회원을 방문하여 그들의 모든 사정을 알고 돌보고 특별히 그들의 영적인 형편을 조사하여 웨슬리에게 보고하였다. 조모임은 속회 회원들 중에 자신의 영혼의 내적인 완전성결(inward holiness)과 외적인 완전성결(outward holiness)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다 더 친밀한 영적 고백을 위한 연합의 수단이 필요하게 되어, 좀 더 높은 영적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온전한 성화의 단계까지 이끌려는 데 목표를 둔 모임이다. 선발 신도회는 메도디스트 체계의 가장 핵심부에 위치한 조직으로, 이 조직은 내적인 성결과 외적인 성결을 이루는 데 현저한 발전을 보인 사람들을 위해 조직된 것이다. 또한 웨슬리는 은혜의 수단으로 성례전을 이해하였다. 웨슬리는 1756년에 출판된 「세례에 대한 논문」(A Treatise On Baptism)에서 "세례는 승천 전에 그리스도가 제정한 은혜의 수단으로서 구약의 하나님의 계약의 상징이요 표식이었던 할례에 대치할 만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성만찬에 대하여, 웨슬리는 그의 설교 "성찬을 규칙적으로 시행해야 할 의무"(The duty of Constant Communion)에서 성찬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것이 예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기 때문이며, 성경에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나타나 있는 대로 성만찬은 예수님의 직접적 명령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5장에서는 웨슬리 교회론의 현대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첫째는 소그룹 운동으로 웨슬리가 신도회, 속회, Band, 선발신도회 등 다양한 소그룹을 조직한 이유는 관리 목적이나 친교, 성경공부와 같이 단편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그것을 통해 교회나 교단을 성장시키려는 것이 결코 아닌 "소그룹"은 곧 "성화"를 위한 것이었을 알 수 있다. 둘째는 교회일치 운동으로 웨슬리는 본래적인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관용 정신'(Catholic ...
본 논문은 현대교회에서 추구해야 할 부분을 모색해 보려는 작업의 하나로 존 웨슬리의 교회론을 연구하게 되었다. 본 장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웨슬리 교회론의 연구 결과를 요약하고, 웨슬리의 교회론에 대한 평가를 함으로 결론을 맺으려고 한다. 2장에서 웨슬리의 교회론의 기반이 되었던 형성 배경과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교회론 형성 배경으로는 그의 가족 대대로 내려온 청교도적 영향과 그에 따른 가정교육의 영향 그리고 그가 영국 국교회(성공회)가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성경적인 구조를 갖춘 교회로 믿었던 영국 교회의 영향, 웨슬리 교회관에 많은 영향을 미쳐 신학적 교훈과 실제적 교훈을 받았던 모라비안 교도의 영향이 있었다. 그의 교회론 형성 과정에는 토마스 아 켐피스와 윌리암 로, 제레미 테일러가 저술한 영적 서적의 영향과 조지아 선교지에서의 교회의 직제 문제의 연구 그리고 선교지에서 돌아온 후 그의 회심이 교회론 형성과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3장 웨슬리의 교회본질을 살펴보았다. 웨슬리는 교회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성례전이 온전히 거행되는 곳으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공동체로 이해하였다. 그는 교회의 본질로 니케아 신조에 정의된 초대교회의 대표적 교회론의 특성을 중요시하였다. 아우틀러는 웨슬리의 성숙한 교회관을 "메도디스트의 고전적 교회론"으로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는데, 첫째는 교회의 단일성은 성령 안에서 기독교인의 친교(Koinonia)를 기초로 한다. 둘째, 교회의 거룩성은 은총의 훈련에 근거한다. 이 훈련을 통하여 신자들의 생활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데서부터 온전한 성화에 이르도록 지도하고 성숙시킨다. 셋째, 교회의 보편성은 모든 참된 신자들의 보편적인 공동체가 구속을 우주적으로 전개해 나가는데서 이해된다. 넷째, 교회의 사도성은 사도적 증언에 충실했던 사람들 가운데서 사도적 교리가 계승되는 것에 의해서 측정 된다. 고 하였다. 4장에서는 웨슬리의 교회의 직제와 성례전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웨슬리는 신약성서와 초대교회에 제시된 교회형태에 따라 두 종류의 교직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설교하고 전도하는 책임이 있는 교직자이고, 둘째는 교회를 다스리고 성례전과 안수를 집행하는 교직자이다. 웨슬리는 전통적으로 교역자를 감독(bishop), 장로(presbyter, or priest), 그리고 집사(deacon)의 세 서열로 구분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감독과 장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함으로서, 그 본질에서는 두 서열로 이해했다. 즉 성례전과 안수를 집행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교역자(감도, 장로)와 설교와 복음전도를 주 임무로 하는 아래 서열의 교역자(집사)이다. 웨슬리는 전자는 공적인 사제직으로, 후자는 특별 교역자로 구분했다. 이러한 구분이 웨슬리에게 두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첫째, 메도디스트 평신도 설교자를 임명한 것에 대해 비난을 피하고 정당화 시켰다. 둘째, 평신도 설교자들이 성례전을 집행하지 않으므로 메도디스트회가 영국교회서 분리된 종파가 아니라 영국교회 내의 한 운동으로 남아있게 하는 열괴가 된 것이다. 교회의 조직은 신도회, 속회, 조(Band), 특별 신도회가 있으며, 소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신도회는 웨슬리의 복음 운동에 의해 회심한 자들이 각기 자기 지역에서 영적 함양을 위해 모일 것을 웨슬리에게 청하여 조직되었다. 속회는 교회의 재정적인 문제로 생겨나게 되었는데, 헌금 모으는 일 이상의 중요한 일로 각 회원을 방문하여 그들의 모든 사정을 알고 돌보고 특별히 그들의 영적인 형편을 조사하여 웨슬리에게 보고하였다. 조모임은 속회 회원들 중에 자신의 영혼의 내적인 완전성결(inward holiness)과 외적인 완전성결(outward holiness)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다 더 친밀한 영적 고백을 위한 연합의 수단이 필요하게 되어, 좀 더 높은 영적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온전한 성화의 단계까지 이끌려는 데 목표를 둔 모임이다. 선발 신도회는 메도디스트 체계의 가장 핵심부에 위치한 조직으로, 이 조직은 내적인 성결과 외적인 성결을 이루는 데 현저한 발전을 보인 사람들을 위해 조직된 것이다. 또한 웨슬리는 은혜의 수단으로 성례전을 이해하였다. 웨슬리는 1756년에 출판된 「세례에 대한 논문」(A Treatise On Baptism)에서 "세례는 승천 전에 그리스도가 제정한 은혜의 수단으로서 구약의 하나님의 계약의 상징이요 표식이었던 할례에 대치할 만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성만찬에 대하여, 웨슬리는 그의 설교 "성찬을 규칙적으로 시행해야 할 의무"(The duty of Constant Communion)에서 성찬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것이 예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기 때문이며, 성경에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나타나 있는 대로 성만찬은 예수님의 직접적 명령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5장에서는 웨슬리 교회론의 현대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첫째는 소그룹 운동으로 웨슬리가 신도회, 속회, Band, 선발신도회 등 다양한 소그룹을 조직한 이유는 관리 목적이나 친교, 성경공부와 같이 단편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그것을 통해 교회나 교단을 성장시키려는 것이 결코 아닌 "소그룹"은 곧 "성화"를 위한 것이었을 알 수 있다. 둘째는 교회일치 운동으로 웨슬리는 본래적인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관용 정신'(Catholic Spirit)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웨슬리는 교리의 완전한 일치를 이 세상에서 기대하는 것이 어렵다 할지라도 우리를 분리시키는 제반 문제에 관하여 관용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웨슬리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공동체가 아닌 사회 속의 공동체, 사회를 변화시키는 열린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관을 가지고 있었다. 셋째는 사회활동에 앞장서는 교회로 이것은 웨슬리의 성화사상이 개인적 성화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사회적 성화로 발전하여 나아가는 것임을 제시할 수가 있다. 기독교의 사회윤리는 개인윤리의 확장된 것이라 하였다. 웨슬리에게 사회의 변화는 개인의 구원으로부터 시작되고, 개인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로 나아간다. 이런 점에서 크리스천은 사회 변화의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평신도 지도자 양성으로 웨슬리는 평신도의 참된 의미와 중요성을 알았고 만인제사장직을 몸소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설교자들 중 일부를 포함해서 지도자들 가운데 여자들도 다수가 있었다. 그래서 베브(Bebb)같은 사람은 웨슬리를 18세기 가장 두각을 나타낸 여성 해방론자라고 평가하였다. 웨슬리의 신학의 특징은 성화와 복음전파를 위한 교회 갱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교회자체를 새롭게 한 교회갱신이었음을 역사를 통하여 알 수가 있었다. 웨슬리는 18세기 부패하고, 타락한 영국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켜야겠다는 목표아래 운동을 벌였던 것보다는 단지 무기력하여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영국교회를 대신하여 그 자신이 영적 부흥에 앞장서게 되었다. 이러한 웨슬리의 교회갱신운동은 모든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현대교회는 웨슬리가 말한 교회의 3가지 표적처럼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되고 살아있는 믿음과 정당한 성례전의 집행을 회복하므로 진정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조차 변해져 가는 현대교회에서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웨슬리의 교회 갱신으로서 소그룹 운동은 대형화와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기업화되어 가는 현대 교회에 진정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운동은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우쳐 영혼구원을 소홀히 하는 지금의 교회에 대한 하나의 외침이며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이다. 이와 동시에 현대의 감리교회는 이 소그룹운동이 감리교의 영적능력과 부흥의 비결임을 깨달아 교회 안에 작은 교회의 활성을 통해 성도간의 교제와 영적성숙을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초기 감리교의 대 부흥이 소그룹 모임을 통한 평신도 지도자 양성에 있었음을 살펴보았듯이 오늘날 교회가 이 영적인 원리를 다양한 소그룹 사역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적용한다면 웨슬리 시대의 영적 대각성을 다시 한 번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웨슬리의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는 현재 제도화된 교회 속에서 웨슬리의 기능적인 여러 요소들을 잘 소화하여 새롭게 교회의 모습을 바꾸어 나가야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웨슬리의 교회 갱신운동은 선교 2세기를 향한 한국교회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본 논문은 현대교회에서 추구해야 할 부분을 모색해 보려는 작업의 하나로 존 웨슬리의 교회론을 연구하게 되었다. 본 장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웨슬리 교회론의 연구 결과를 요약하고, 웨슬리의 교회론에 대한 평가를 함으로 결론을 맺으려고 한다. 2장에서 웨슬리의 교회론의 기반이 되었던 형성 배경과 과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교회론 형성 배경으로는 그의 가족 대대로 내려온 청교도적 영향과 그에 따른 가정교육의 영향 그리고 그가 영국 국교회(성공회)가 그 당시 유럽에서 가장 성경적인 구조를 갖춘 교회로 믿었던 영국 교회의 영향, 웨슬리 교회관에 많은 영향을 미쳐 신학적 교훈과 실제적 교훈을 받았던 모라비안 교도의 영향이 있었다. 그의 교회론 형성 과정에는 토마스 아 켐피스와 윌리암 로, 제레미 테일러가 저술한 영적 서적의 영향과 조지아 선교지에서의 교회의 직제 문제의 연구 그리고 선교지에서 돌아온 후 그의 회심이 교회론 형성과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3장 웨슬리의 교회본질을 살펴보았다. 웨슬리는 교회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성례전이 온전히 거행되는 곳으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공동체로 이해하였다. 그는 교회의 본질로 니케아 신조에 정의된 초대교회의 대표적 교회론의 특성을 중요시하였다. 아우틀러는 웨슬리의 성숙한 교회관을 "메도디스트의 고전적 교회론"으로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는데, 첫째는 교회의 단일성은 성령 안에서 기독교인의 친교(Koinonia)를 기초로 한다. 둘째, 교회의 거룩성은 은총의 훈련에 근거한다. 이 훈련을 통하여 신자들의 생활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데서부터 온전한 성화에 이르도록 지도하고 성숙시킨다. 셋째, 교회의 보편성은 모든 참된 신자들의 보편적인 공동체가 구속을 우주적으로 전개해 나가는데서 이해된다. 넷째, 교회의 사도성은 사도적 증언에 충실했던 사람들 가운데서 사도적 교리가 계승되는 것에 의해서 측정 된다. 고 하였다. 4장에서는 웨슬리의 교회의 직제와 성례전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웨슬리는 신약성서와 초대교회에 제시된 교회형태에 따라 두 종류의 교직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설교하고 전도하는 책임이 있는 교직자이고, 둘째는 교회를 다스리고 성례전과 안수를 집행하는 교직자이다. 웨슬리는 전통적으로 교역자를 감독(bishop), 장로(presbyter, or priest), 그리고 집사(deacon)의 세 서열로 구분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감독과 장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함으로서, 그 본질에서는 두 서열로 이해했다. 즉 성례전과 안수를 집행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교역자(감도, 장로)와 설교와 복음전도를 주 임무로 하는 아래 서열의 교역자(집사)이다. 웨슬리는 전자는 공적인 사제직으로, 후자는 특별 교역자로 구분했다. 이러한 구분이 웨슬리에게 두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첫째, 메도디스트 평신도 설교자를 임명한 것에 대해 비난을 피하고 정당화 시켰다. 둘째, 평신도 설교자들이 성례전을 집행하지 않으므로 메도디스트회가 영국교회서 분리된 종파가 아니라 영국교회 내의 한 운동으로 남아있게 하는 열괴가 된 것이다. 교회의 조직은 신도회, 속회, 조(Band), 특별 신도회가 있으며, 소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신도회는 웨슬리의 복음 운동에 의해 회심한 자들이 각기 자기 지역에서 영적 함양을 위해 모일 것을 웨슬리에게 청하여 조직되었다. 속회는 교회의 재정적인 문제로 생겨나게 되었는데, 헌금 모으는 일 이상의 중요한 일로 각 회원을 방문하여 그들의 모든 사정을 알고 돌보고 특별히 그들의 영적인 형편을 조사하여 웨슬리에게 보고하였다. 조모임은 속회 회원들 중에 자신의 영혼의 내적인 완전성결(inward holiness)과 외적인 완전성결(outward holiness)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보다 더 친밀한 영적 고백을 위한 연합의 수단이 필요하게 되어, 좀 더 높은 영적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온전한 성화의 단계까지 이끌려는 데 목표를 둔 모임이다. 선발 신도회는 메도디스트 체계의 가장 핵심부에 위치한 조직으로, 이 조직은 내적인 성결과 외적인 성결을 이루는 데 현저한 발전을 보인 사람들을 위해 조직된 것이다. 또한 웨슬리는 은혜의 수단으로 성례전을 이해하였다. 웨슬리는 1756년에 출판된 「세례에 대한 논문」(A Treatise On Baptism)에서 "세례는 승천 전에 그리스도가 제정한 은혜의 수단으로서 구약의 하나님의 계약의 상징이요 표식이었던 할례에 대치할 만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성만찬에 대하여, 웨슬리는 그의 설교 "성찬을 규칙적으로 시행해야 할 의무"(The duty of Constant Communion)에서 성찬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것이 예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기 때문이며, 성경에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나타나 있는 대로 성만찬은 예수님의 직접적 명령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5장에서는 웨슬리 교회론의 현대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첫째는 소그룹 운동으로 웨슬리가 신도회, 속회, Band, 선발신도회 등 다양한 소그룹을 조직한 이유는 관리 목적이나 친교, 성경공부와 같이 단편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그것을 통해 교회나 교단을 성장시키려는 것이 결코 아닌 "소그룹"은 곧 "성화"를 위한 것이었을 알 수 있다. 둘째는 교회일치 운동으로 웨슬리는 본래적인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관용 정신'(Catholic Spirit)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웨슬리는 교리의 완전한 일치를 이 세상에서 기대하는 것이 어렵다 할지라도 우리를 분리시키는 제반 문제에 관하여 관용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웨슬리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공동체가 아닌 사회 속의 공동체, 사회를 변화시키는 열린 신앙 공동체로서의 교회관을 가지고 있었다. 셋째는 사회활동에 앞장서는 교회로 이것은 웨슬리의 성화사상이 개인적 성화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사회적 성화로 발전하여 나아가는 것임을 제시할 수가 있다. 기독교의 사회윤리는 개인윤리의 확장된 것이라 하였다. 웨슬리에게 사회의 변화는 개인의 구원으로부터 시작되고, 개인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로 나아간다. 이런 점에서 크리스천은 사회 변화의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평신도 지도자 양성으로 웨슬리는 평신도의 참된 의미와 중요성을 알았고 만인제사장직을 몸소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설교자들 중 일부를 포함해서 지도자들 가운데 여자들도 다수가 있었다. 그래서 베브(Bebb)같은 사람은 웨슬리를 18세기 가장 두각을 나타낸 여성 해방론자라고 평가하였다. 웨슬리의 신학의 특징은 성화와 복음전파를 위한 교회 갱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교회자체를 새롭게 한 교회갱신이었음을 역사를 통하여 알 수가 있었다. 웨슬리는 18세기 부패하고, 타락한 영국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켜야겠다는 목표아래 운동을 벌였던 것보다는 단지 무기력하여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영국교회를 대신하여 그 자신이 영적 부흥에 앞장서게 되었다. 이러한 웨슬리의 교회갱신운동은 모든 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현대교회는 웨슬리가 말한 교회의 3가지 표적처럼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되고 살아있는 믿음과 정당한 성례전의 집행을 회복하므로 진정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조차 변해져 가는 현대교회에서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웨슬리의 교회 갱신으로서 소그룹 운동은 대형화와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기업화되어 가는 현대 교회에 진정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운동은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우쳐 영혼구원을 소홀히 하는 지금의 교회에 대한 하나의 외침이며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이다. 이와 동시에 현대의 감리교회는 이 소그룹운동이 감리교의 영적능력과 부흥의 비결임을 깨달아 교회 안에 작은 교회의 활성을 통해 성도간의 교제와 영적성숙을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초기 감리교의 대 부흥이 소그룹 모임을 통한 평신도 지도자 양성에 있었음을 살펴보았듯이 오늘날 교회가 이 영적인 원리를 다양한 소그룹 사역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적용한다면 웨슬리 시대의 영적 대각성을 다시 한 번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웨슬리의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는 현재 제도화된 교회 속에서 웨슬리의 기능적인 여러 요소들을 잘 소화하여 새롭게 교회의 모습을 바꾸어 나가야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웨슬리의 교회 갱신운동은 선교 2세기를 향한 한국교회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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