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툴리안에게서 우리는 라틴서방세계에서 나타난 신학 가운데가장 세련된 신학적 사상을 만나게 된다. 터툴리안의 『프락세아스에 반박함』(Against Praxeas)은 삼위일체 교리와 그 발전사를 공부하는 학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책에서 우리는 터툴리안이 생각하는 중심적인 삼위일체의 문제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한 이단에 대응하여 어떻게 기독교적인 견해를 피력하는지 만나게 된다. 이설들에 반박하여 터툴리안은 라틴어로 삼위일체와 관련된 용어들을 만들어 사용하였고 현재까지 그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터툴리안은 처음으로 삼위 일체적 관계를 분석하면서 "위격"(person)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처음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삼위일체란 의미가 담긴 라틴어 Trinita를 사용하였다. 또한 그는 처음으로 "세 위격 안에 하나의 실체"란 삼위 일체적 표현을 전개하였다. 터툴리안은 여타 다른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도전에 직면하였다. 기독교적 양태론의 유형들이 위협했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사이의 위격적 구별을 견지한다. 동시에 영지 주의적 다신론 자들에 반대해 기독교적 유일신론의 입장을 어떻게 지킬 수 있었을까? 『프락세아스에 반박함』(Against Praxeas)에서 터툴리안의 대표적인반대자 프락세아스는 하나님 존재에 대한 "하나의 원리"(one principle)를 철저하게 옹호하였다. 말하자면 프락세아스는 하나님의 존재 안에 어떤 구분과 구원의 경륜속에 나타나는 구분이 하나님아버지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세 양식들임에 틀림없다고 하였다. 이와 달리주장하면 당연히 일관된 유일신론을 무너지게 할 것이라고 프락세아스는 주장하였다. 따라서 아버지만이 존재론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십자가 위에서 실제로 죽은 것이다.(성부수난설, patripassianism) 그 후3세기에 사벨리우스는 비슷하지만 약간 수정된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는 구원의 역사를 세 기간으로 나누어 각 기간마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으로 생각하였다. 곧 구약은 아버지의 시대로 보았다. 터툴리안은 영지주의적 다신론(gnostic polytheism)과 기독교적 양태론(Christian modalism)에 대응하여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모델을 하나의 실체(substantia)와 세 개의 구별된 위격들(persona)구성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곧 하나의 실체라 가르쳤고, 이를 오콜린스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의해 공유된 공동의 근본적인 실재" 라고 하였다. 터툴리안은 하나님에 대해 뭔가 더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실체는 유비를 통해서만 분석될 수 있다. 신비롭고도 언표 불가능한 복잡성을 특징으로 한다. 세 구분된 위격들은 하나님의 한 실체를 공유하였다. 불행하게도 실체(substantia)라는 말을 헬라어 휘포스타시스 위격들에 적용되기에 중대한 혼돈을 초래하였다. 어떤 유비들이 이들 신비로운 구분을 잘 설명할 수 있는가? 터툴리안은 이미 우리가 앞서 보았던 교부신학자들 중 한 사람이 표현한 태양과 그 빛의 유비를 사용한다. 물론 터툴리안은 이 유비를 좀 더 발전시켜 전개한다. 태양이신 아버지는 성령이란 특별한 초점을 가진 빛이신 아들을 내신다. 터툴리안은 또한 싹을 내고 열매를 맺게 하는 뿌리의 예와 실개천이 강을 이루어 마침내 운하가 되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이들 예에서 볼 수 있는 바는, 빛, 열매, 운하 등은 "이들 자체의 속성이 그 기원과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는 계속적이며 연결된 단계들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안에 존재하는 구분은 다신론(polytheism)이나 삼신론(tritheism)으로 귀결되는 실체적인 구분이 아니고 위격적 구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터툴리안의 위격이란 말을 현대의 인격(person)이란 말로 잘못 이해해서 사용한다. 마치 아버지, 아들, 성령을 분리된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을 소유한 것으로, 혹은 자율적인 개체 존재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안에 존재하는 위격적 구분들은 분리나 자율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로 터툴리안은 아들 혹은 삼위일체의 제2위격을 아버지의 이성 혹은 합리성으로 표현한다. 첫째는 아버지의 생각에 존재하였다. 둘째는 그분의 말씀에 표현된다. 우리는 여기서 자율과 분리보다는 동시적인 구분과 통일성을 갖는다. 때때로 터툴리안은 삼위 일체적 관계를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실수를 범한다. 그는 아버지를 "신성의 전 실체(the godhead substance of deity)로 표현한다. 반면 아들은 파생된 것으로 전체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묘사 한다…" 이처럼 방심한 표현은 아들이 다소 아버지보다 신성에 있어서 열등하다는 인상을 갖게끔 할 수도 있다. 또한 하나님의 실체를 나눌 수 있거나 혹은 분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그릇에 담긴, 삶아 으깨진 감자를 나누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종종 실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툴리안은 일반적으로 381년의 콘스탄티노플공의회 즉, 제2차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아리우스 논쟁의 종결로 이해된다. 공의회의 협상에서 사용된 신앙고백서는 이와 함께 달성된 교리적 일치의 표현으로 파악된다. 이 점은 대체로 사실과도 완전히 일치하므로, 그리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서는 서방과 동방의 교회가 공유하는 유일한 세 마디의 신조이다. 여기서 전문을 옮겨 적고자 한다. "우리는 한 분의 하나님, 전능한 아버지,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창조주를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한 분 주님 예수 그리스도, 시간이 있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출생한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사오니, 이는 빛에서 나온 빛이며, 참 하나님에서 나온 참 하나님이며, 출생되었고 창조되지 않았으며, 아버지와 한 본질(homousios)이니,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조성되었다. 그는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오사 육신이 되었고,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사람이 되었으며, 우리를 위하여 폰티우스 빌라도 아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 받고 장사되었다가 성서 말씀에 따라서 사흘 만에 부활했다.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사, 산자들과 죽은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영광중에 다시 오신다. 그분의 나라는 주님이요 살리는 분이다. 아버지로부터 나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 받고 경배 받는 분이니, 이는 예언자들이 증언한 바라,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가톨릭 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 우리는 죄를 용서하는 세례를 믿고,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과 내세의 영생을 얻었다. 삼위일체에 관한 대타적 측면의 연구로서 경세적 삼위일체론은 구원론적으로 이해하려고한 서방교회교부들의 이해였다. 그들의 사고구조에 의하면 하나님은 한분이신데 그 한 분 안에 세 분의 신적 '...
터툴리안에게서 우리는 라틴서방세계에서 나타난 신학 가운데가장 세련된 신학적 사상을 만나게 된다. 터툴리안의 『프락세아스에 반박함』(Against Praxeas)은 삼위일체 교리와 그 발전사를 공부하는 학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책에서 우리는 터툴리안이 생각하는 중심적인 삼위일체의 문제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한 이단에 대응하여 어떻게 기독교적인 견해를 피력하는지 만나게 된다. 이설들에 반박하여 터툴리안은 라틴어로 삼위일체와 관련된 용어들을 만들어 사용하였고 현재까지 그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터툴리안은 처음으로 삼위 일체적 관계를 분석하면서 "위격"(person)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처음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삼위일체란 의미가 담긴 라틴어 Trinita를 사용하였다. 또한 그는 처음으로 "세 위격 안에 하나의 실체"란 삼위 일체적 표현을 전개하였다. 터툴리안은 여타 다른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도전에 직면하였다. 기독교적 양태론의 유형들이 위협했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사이의 위격적 구별을 견지한다. 동시에 영지 주의적 다신론 자들에 반대해 기독교적 유일신론의 입장을 어떻게 지킬 수 있었을까? 『프락세아스에 반박함』(Against Praxeas)에서 터툴리안의 대표적인반대자 프락세아스는 하나님 존재에 대한 "하나의 원리"(one principle)를 철저하게 옹호하였다. 말하자면 프락세아스는 하나님의 존재 안에 어떤 구분과 구원의 경륜속에 나타나는 구분이 하나님아버지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세 양식들임에 틀림없다고 하였다. 이와 달리주장하면 당연히 일관된 유일신론을 무너지게 할 것이라고 프락세아스는 주장하였다. 따라서 아버지만이 존재론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십자가 위에서 실제로 죽은 것이다.(성부수난설, patripassianism) 그 후3세기에 사벨리우스는 비슷하지만 약간 수정된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는 구원의 역사를 세 기간으로 나누어 각 기간마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으로 생각하였다. 곧 구약은 아버지의 시대로 보았다. 터툴리안은 영지주의적 다신론(gnostic polytheism)과 기독교적 양태론(Christian modalism)에 대응하여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모델을 하나의 실체(substantia)와 세 개의 구별된 위격들(persona)구성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곧 하나의 실체라 가르쳤고, 이를 오콜린스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의해 공유된 공동의 근본적인 실재" 라고 하였다. 터툴리안은 하나님에 대해 뭔가 더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실체는 유비를 통해서만 분석될 수 있다. 신비롭고도 언표 불가능한 복잡성을 특징으로 한다. 세 구분된 위격들은 하나님의 한 실체를 공유하였다. 불행하게도 실체(substantia)라는 말을 헬라어 휘포스타시스 위격들에 적용되기에 중대한 혼돈을 초래하였다. 어떤 유비들이 이들 신비로운 구분을 잘 설명할 수 있는가? 터툴리안은 이미 우리가 앞서 보았던 교부신학자들 중 한 사람이 표현한 태양과 그 빛의 유비를 사용한다. 물론 터툴리안은 이 유비를 좀 더 발전시켜 전개한다. 태양이신 아버지는 성령이란 특별한 초점을 가진 빛이신 아들을 내신다. 터툴리안은 또한 싹을 내고 열매를 맺게 하는 뿌리의 예와 실개천이 강을 이루어 마침내 운하가 되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이들 예에서 볼 수 있는 바는, 빛, 열매, 운하 등은 "이들 자체의 속성이 그 기원과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는 계속적이며 연결된 단계들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안에 존재하는 구분은 다신론(polytheism)이나 삼신론(tritheism)으로 귀결되는 실체적인 구분이 아니고 위격적 구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터툴리안의 위격이란 말을 현대의 인격(person)이란 말로 잘못 이해해서 사용한다. 마치 아버지, 아들, 성령을 분리된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을 소유한 것으로, 혹은 자율적인 개체 존재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안에 존재하는 위격적 구분들은 분리나 자율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로 터툴리안은 아들 혹은 삼위일체의 제2위격을 아버지의 이성 혹은 합리성으로 표현한다. 첫째는 아버지의 생각에 존재하였다. 둘째는 그분의 말씀에 표현된다. 우리는 여기서 자율과 분리보다는 동시적인 구분과 통일성을 갖는다. 때때로 터툴리안은 삼위 일체적 관계를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실수를 범한다. 그는 아버지를 "신성의 전 실체(the godhead substance of deity)로 표현한다. 반면 아들은 파생된 것으로 전체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묘사 한다…" 이처럼 방심한 표현은 아들이 다소 아버지보다 신성에 있어서 열등하다는 인상을 갖게끔 할 수도 있다. 또한 하나님의 실체를 나눌 수 있거나 혹은 분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그릇에 담긴, 삶아 으깨진 감자를 나누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종종 실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툴리안은 일반적으로 381년의 콘스탄티노플공의회 즉, 제2차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아리우스 논쟁의 종결로 이해된다. 공의회의 협상에서 사용된 신앙고백서는 이와 함께 달성된 교리적 일치의 표현으로 파악된다. 이 점은 대체로 사실과도 완전히 일치하므로, 그리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서는 서방과 동방의 교회가 공유하는 유일한 세 마디의 신조이다. 여기서 전문을 옮겨 적고자 한다. "우리는 한 분의 하나님, 전능한 아버지,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창조주를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한 분 주님 예수 그리스도, 시간이 있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출생한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사오니, 이는 빛에서 나온 빛이며, 참 하나님에서 나온 참 하나님이며, 출생되었고 창조되지 않았으며, 아버지와 한 본질(homousios)이니,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조성되었다. 그는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오사 육신이 되었고,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사람이 되었으며, 우리를 위하여 폰티우스 빌라도 아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 받고 장사되었다가 성서 말씀에 따라서 사흘 만에 부활했다.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사, 산자들과 죽은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영광중에 다시 오신다. 그분의 나라는 주님이요 살리는 분이다. 아버지로부터 나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 받고 경배 받는 분이니, 이는 예언자들이 증언한 바라,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가톨릭 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 우리는 죄를 용서하는 세례를 믿고,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과 내세의 영생을 얻었다. 삼위일체에 관한 대타적 측면의 연구로서 경세적 삼위일체론은 구원론적으로 이해하려고한 서방교회교부들의 이해였다. 그들의 사고구조에 의하면 하나님은 한분이신데 그 한 분 안에 세 분의 신적 '페르소나'(Persona)가 있다. 이 세 페르소나는 각기 맡은 분야가 있어서 아버지는 창조와 그 후의 모든 일을 지배하면서 인류에게 구원을 허락해 주었다. 아들은 그 구원을 수행하기 위하여 성육신 하였고 성령을 아들이 수행한 구원을 결실하도록 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역의 대외적인 측면을 중요시 했다. 대다수 교부가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견해는 삼신론(Tritheism)과 종속주의(Subordinationism)이라는 비판을 우려하여 전체의 교회에서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신학도 차이가 났다. 우선 동방교회는 서방교회의 연옥교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아울러 서방교회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성령에 관한문구 뒤에 "필리오쿠에(filioque, 아들로부터)"삽입하여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고"고 했다. 하지만 동방교회는 그러한 표현을 이단적이라고 생각했다. 수세기동안 존재해 오던 이런 차이점들이 두 인물의 등장으로 한번에 폭발했다. 미카일 케룰라리우스가 1043년에 동방교회의 총대주교가 되었고, 레오9세가 서방교회의 교황이 되었다. 레오는 미카일과 동방교회가 로마에 복종하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교황이 콘스탄티노플에 사절을 보냈다. 미카일은 그들을 만나기를 거절했다. 따라서 사절단은 교황을 대신하여 미카일을 파문했다. 미카일 총대주교는 사절단을 파문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 참 기독교인이 아님을 선언함으로써 분열이 표현화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열에는 그들만 책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배후에는 오랫동안 서로 다투어 오던 역사가 있었다. 분열은 그러한 역사를 인정하는 최종적인 행위였다. 신조에 따르면, 양축은 모두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하나의 교회"를 믿었다. 1089년에 교황 우르바누스가 총대주교에 대한 파문을 철회함으로써 분열을 치유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또한 동방과 서방 교회를 재통합할 생각으로 제1차 십자군 운동을 주도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후에도 교회를 통합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모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1204년에 잠시 통합의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오히려 서로의 적대감만 더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1453년에 이슬람을 믿던 투르크족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 동방교회의 사람들 가운데는 가톨릭보다 이슬람이 더 낫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교회의 통합이 전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두 교회의 차이는 근본적이라기보다는 지엽적인 것에 있었다. 그 배후에는 숨은 진정한 문제는 권위 다툼이었다. 주교의 권한이 교회의 안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두 교회가 동일한 권위를 주장 할 수는 없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서로 의견을 통합하는 데에 실패 했고,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터툴리안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용어에서 동·서방의 세위체 통일점을 보고 325년 제1차 니케아 회의에서 삼위일체의 한 본질 하나의 실체에서 동일한 속성을 가지는 그는 삼위일체의 도식으로 수립한 그 때를 회상하며, 지금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신앙과 신학이 혼란 중에 깊은 잠을 자는 이때에 동·서방교회가 삼위일체의 하나님 이름으로 깨어서 있다면, 통일점을 에큐메니칼 협의회를 터툴리안 삼위 안에 일체, 일체 안에 실체의 포스트모드니, 삼위일체의 하나님사랑으로 인류가 에큐메니칼 공의회의에서, 만남을 갖는 일이 희망적 가치이다.
터툴리안에게서 우리는 라틴서방세계에서 나타난 신학 가운데가장 세련된 신학적 사상을 만나게 된다. 터툴리안의 『프락세아스에 반박함』(Against Praxeas)은 삼위일체 교리와 그 발전사를 공부하는 학자에게는 피할 수 없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책에서 우리는 터툴리안이 생각하는 중심적인 삼위일체의 문제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한 이단에 대응하여 어떻게 기독교적인 견해를 피력하는지 만나게 된다. 이설들에 반박하여 터툴리안은 라틴어로 삼위일체와 관련된 용어들을 만들어 사용하였고 현재까지 그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터툴리안은 처음으로 삼위 일체적 관계를 분석하면서 "위격"(person)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처음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삼위일체란 의미가 담긴 라틴어 Trinita를 사용하였다. 또한 그는 처음으로 "세 위격 안에 하나의 실체"란 삼위 일체적 표현을 전개하였다. 터툴리안은 여타 다른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도전에 직면하였다. 기독교적 양태론의 유형들이 위협했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사이의 위격적 구별을 견지한다. 동시에 영지 주의적 다신론 자들에 반대해 기독교적 유일신론의 입장을 어떻게 지킬 수 있었을까? 『프락세아스에 반박함』(Against Praxeas)에서 터툴리안의 대표적인반대자 프락세아스는 하나님 존재에 대한 "하나의 원리"(one principle)를 철저하게 옹호하였다. 말하자면 프락세아스는 하나님의 존재 안에 어떤 구분과 구원의 경륜속에 나타나는 구분이 하나님아버지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세 양식들임에 틀림없다고 하였다. 이와 달리주장하면 당연히 일관된 유일신론을 무너지게 할 것이라고 프락세아스는 주장하였다. 따라서 아버지만이 존재론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십자가 위에서 실제로 죽은 것이다.(성부수난설, patripassianism) 그 후3세기에 사벨리우스는 비슷하지만 약간 수정된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는 구원의 역사를 세 기간으로 나누어 각 기간마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으로 생각하였다. 곧 구약은 아버지의 시대로 보았다. 터툴리안은 영지주의적 다신론(gnostic polytheism)과 기독교적 양태론(Christian modalism)에 대응하여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모델을 하나의 실체(substantia)와 세 개의 구별된 위격들(persona)구성하였다. 그는 하나님은 곧 하나의 실체라 가르쳤고, 이를 오콜린스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의해 공유된 공동의 근본적인 실재" 라고 하였다. 터툴리안은 하나님에 대해 뭔가 더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실체는 유비를 통해서만 분석될 수 있다. 신비롭고도 언표 불가능한 복잡성을 특징으로 한다. 세 구분된 위격들은 하나님의 한 실체를 공유하였다. 불행하게도 실체(substantia)라는 말을 헬라어 휘포스타시스 위격들에 적용되기에 중대한 혼돈을 초래하였다. 어떤 유비들이 이들 신비로운 구분을 잘 설명할 수 있는가? 터툴리안은 이미 우리가 앞서 보았던 교부신학자들 중 한 사람이 표현한 태양과 그 빛의 유비를 사용한다. 물론 터툴리안은 이 유비를 좀 더 발전시켜 전개한다. 태양이신 아버지는 성령이란 특별한 초점을 가진 빛이신 아들을 내신다. 터툴리안은 또한 싹을 내고 열매를 맺게 하는 뿌리의 예와 실개천이 강을 이루어 마침내 운하가 되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이들 예에서 볼 수 있는 바는, 빛, 열매, 운하 등은 "이들 자체의 속성이 그 기원과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는 계속적이며 연결된 단계들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안에 존재하는 구분은 다신론(polytheism)이나 삼신론(tritheism)으로 귀결되는 실체적인 구분이 아니고 위격적 구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터툴리안의 위격이란 말을 현대의 인격(person)이란 말로 잘못 이해해서 사용한다. 마치 아버지, 아들, 성령을 분리된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을 소유한 것으로, 혹은 자율적인 개체 존재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안에 존재하는 위격적 구분들은 분리나 자율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로 터툴리안은 아들 혹은 삼위일체의 제2위격을 아버지의 이성 혹은 합리성으로 표현한다. 첫째는 아버지의 생각에 존재하였다. 둘째는 그분의 말씀에 표현된다. 우리는 여기서 자율과 분리보다는 동시적인 구분과 통일성을 갖는다. 때때로 터툴리안은 삼위 일체적 관계를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실수를 범한다. 그는 아버지를 "신성의 전 실체(the godhead substance of deity)로 표현한다. 반면 아들은 파생된 것으로 전체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묘사 한다…" 이처럼 방심한 표현은 아들이 다소 아버지보다 신성에 있어서 열등하다는 인상을 갖게끔 할 수도 있다. 또한 하나님의 실체를 나눌 수 있거나 혹은 분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그릇에 담긴, 삶아 으깨진 감자를 나누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종종 실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툴리안은 일반적으로 381년의 콘스탄티노플공의회 즉, 제2차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아리우스 논쟁의 종결로 이해된다. 공의회의 협상에서 사용된 신앙고백서는 이와 함께 달성된 교리적 일치의 표현으로 파악된다. 이 점은 대체로 사실과도 완전히 일치하므로, 그리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서는 서방과 동방의 교회가 공유하는 유일한 세 마디의 신조이다. 여기서 전문을 옮겨 적고자 한다. "우리는 한 분의 하나님, 전능한 아버지,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창조주를 믿는다. 그리고 우리는 한 분 주님 예수 그리스도, 시간이 있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출생한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사오니, 이는 빛에서 나온 빛이며, 참 하나님에서 나온 참 하나님이며, 출생되었고 창조되지 않았으며, 아버지와 한 본질(homousios)이니,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조성되었다. 그는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오사 육신이 되었고,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사람이 되었으며, 우리를 위하여 폰티우스 빌라도 아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 받고 장사되었다가 성서 말씀에 따라서 사흘 만에 부활했다.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사, 산자들과 죽은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영광중에 다시 오신다. 그분의 나라는 주님이요 살리는 분이다. 아버지로부터 나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 받고 경배 받는 분이니, 이는 예언자들이 증언한 바라,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가톨릭 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 우리는 죄를 용서하는 세례를 믿고,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과 내세의 영생을 얻었다. 삼위일체에 관한 대타적 측면의 연구로서 경세적 삼위일체론은 구원론적으로 이해하려고한 서방교회교부들의 이해였다. 그들의 사고구조에 의하면 하나님은 한분이신데 그 한 분 안에 세 분의 신적 '페르소나'(Persona)가 있다. 이 세 페르소나는 각기 맡은 분야가 있어서 아버지는 창조와 그 후의 모든 일을 지배하면서 인류에게 구원을 허락해 주었다. 아들은 그 구원을 수행하기 위하여 성육신 하였고 성령을 아들이 수행한 구원을 결실하도록 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역의 대외적인 측면을 중요시 했다. 대다수 교부가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견해는 삼신론(Tritheism)과 종속주의(Subordinationism)이라는 비판을 우려하여 전체의 교회에서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신학도 차이가 났다. 우선 동방교회는 서방교회의 연옥교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아울러 서방교회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성령에 관한문구 뒤에 "필리오쿠에(filioque, 아들로부터)"삽입하여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고"고 했다. 하지만 동방교회는 그러한 표현을 이단적이라고 생각했다. 수세기동안 존재해 오던 이런 차이점들이 두 인물의 등장으로 한번에 폭발했다. 미카일 케룰라리우스가 1043년에 동방교회의 총대주교가 되었고, 레오9세가 서방교회의 교황이 되었다. 레오는 미카일과 동방교회가 로마에 복종하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교황이 콘스탄티노플에 사절을 보냈다. 미카일은 그들을 만나기를 거절했다. 따라서 사절단은 교황을 대신하여 미카일을 파문했다. 미카일 총대주교는 사절단을 파문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서로가 상대방에 대해 참 기독교인이 아님을 선언함으로써 분열이 표현화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열에는 그들만 책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배후에는 오랫동안 서로 다투어 오던 역사가 있었다. 분열은 그러한 역사를 인정하는 최종적인 행위였다. 신조에 따르면, 양축은 모두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하나의 교회"를 믿었다. 1089년에 교황 우르바누스가 총대주교에 대한 파문을 철회함으로써 분열을 치유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또한 동방과 서방 교회를 재통합할 생각으로 제1차 십자군 운동을 주도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후에도 교회를 통합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모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1204년에 잠시 통합의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오히려 서로의 적대감만 더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1453년에 이슬람을 믿던 투르크족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 동방교회의 사람들 가운데는 가톨릭보다 이슬람이 더 낫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교회의 통합이 전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두 교회의 차이는 근본적이라기보다는 지엽적인 것에 있었다. 그 배후에는 숨은 진정한 문제는 권위 다툼이었다. 주교의 권한이 교회의 안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두 교회가 동일한 권위를 주장 할 수는 없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서로 의견을 통합하는 데에 실패 했고,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터툴리안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용어에서 동·서방의 세위체 통일점을 보고 325년 제1차 니케아 회의에서 삼위일체의 한 본질 하나의 실체에서 동일한 속성을 가지는 그는 삼위일체의 도식으로 수립한 그 때를 회상하며, 지금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신앙과 신학이 혼란 중에 깊은 잠을 자는 이때에 동·서방교회가 삼위일체의 하나님 이름으로 깨어서 있다면, 통일점을 에큐메니칼 협의회를 터툴리안 삼위 안에 일체, 일체 안에 실체의 포스트모드니, 삼위일체의 하나님사랑으로 인류가 에큐메니칼 공의회의에서, 만남을 갖는 일이 희망적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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