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은 우리나라의 봉건체제와 외세침략을 극복하려는 농민 중심의 민중운동으로서 근대시기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주요 사건이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어떻게 학습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광복 이후의 남북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해당 부분 서술을 확인하였고, 이를 위해 먼저 그간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고 그 성과의 교과서 반영에 대해 검토하였다. 교과서 고찰 결과, 무엇보다도 동학농민운동을 칭하는 용어가 각 시기마다 다양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남한의 경우, 교수요목기와 1차 교육과정기 교과서에서는 ‘동학란’이란 용어가 사용...
동학농민운동은 우리나라의 봉건체제와 외세침략을 극복하려는 농민 중심의 민중운동으로서 근대시기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주요 사건이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어떻게 학습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광복 이후의 남북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해당 부분 서술을 확인하였고, 이를 위해 먼저 그간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고 그 성과의 교과서 반영에 대해 검토하였다. 교과서 고찰 결과, 무엇보다도 동학농민운동을 칭하는 용어가 각 시기마다 다양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남한의 경우, 교수요목기와 1차 교육과정기 교과서에서는 ‘동학란’이란 용어가 사용되어 왕조나 체제에 대한 반란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2차 교육과정기 교과서들에서는 ‘동학 혁명’을, 3차 교육과정기 교과서들에서는 ‘동학 혁명 운동’과 ‘동학 농민 혁명 운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동학란’이라는 부정적 시각에서 혁명론적 관점으로 변한 것이지만 학문적 성과보다는 당시 집권 세력과 관계된 정치적 이유가 더 컸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4차 교육과정기 교과서에서는 ‘동학 운동’을, 5차 교육과정기부터 현재의 7차 교육과정기까지의 교과서에서는 ‘동학 농민 운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반란’도 ‘혁명’도 아닌 입장이 ‘교육내용 전개 준거안’에 채택된 데서 연유한다. 북한의 고등중학교 『조선력사』를 보면, 1955년판에서는 ‘농민 전쟁’을, 1958년판에서는 ‘갑오 농민 전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명칭에서는 농민전쟁론의 입장으로 보이지만, 사실 교과서 서술에서는 종교적 외피론의 입장임을 확인할 수 있다. 1982년판에서는 ‘1894년농민전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당시 북한 사학계의 치열한 동학 농민 운동에 대한 성격 논쟁의 합의 결과인 ‘농민 전쟁론’이 교과서 서술에 반영된 것이다. 2002년판에서는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전과 다름없는 농민전쟁론의 지속이다. 다만 최근의 학문적 연구 성과에서 동학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어 차기의 교과서에서는 새로운 입장의 용어가 사용될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과 북한의 역사관이나 교과서 서술은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고 나면 서로 다가설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을 보는 관점도 남한에서는 부정적 인식에서 긍정적 인식으로 변하였고, 학술면에서는 남북이 유사한 관점도 도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은 우리나라의 봉건체제와 외세침략을 극복하려는 농민 중심의 민중운동으로서 근대시기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주요 사건이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어떻게 학습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광복 이후의 남북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해당 부분 서술을 확인하였고, 이를 위해 먼저 그간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고 그 성과의 교과서 반영에 대해 검토하였다. 교과서 고찰 결과, 무엇보다도 동학농민운동을 칭하는 용어가 각 시기마다 다양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남한의 경우, 교수요목기와 1차 교육과정기 교과서에서는 ‘동학란’이란 용어가 사용되어 왕조나 체제에 대한 반란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2차 교육과정기 교과서들에서는 ‘동학 혁명’을, 3차 교육과정기 교과서들에서는 ‘동학 혁명 운동’과 ‘동학 농민 혁명 운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동학란’이라는 부정적 시각에서 혁명론적 관점으로 변한 것이지만 학문적 성과보다는 당시 집권 세력과 관계된 정치적 이유가 더 컸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4차 교육과정기 교과서에서는 ‘동학 운동’을, 5차 교육과정기부터 현재의 7차 교육과정기까지의 교과서에서는 ‘동학 농민 운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반란’도 ‘혁명’도 아닌 입장이 ‘교육내용 전개 준거안’에 채택된 데서 연유한다. 북한의 고등중학교 『조선력사』를 보면, 1955년판에서는 ‘농민 전쟁’을, 1958년판에서는 ‘갑오 농민 전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명칭에서는 농민전쟁론의 입장으로 보이지만, 사실 교과서 서술에서는 종교적 외피론의 입장임을 확인할 수 있다. 1982년판에서는 ‘1894년농민전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당시 북한 사학계의 치열한 동학 농민 운동에 대한 성격 논쟁의 합의 결과인 ‘농민 전쟁론’이 교과서 서술에 반영된 것이다. 2002년판에서는 ‘갑오농민전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전과 다름없는 농민전쟁론의 지속이다. 다만 최근의 학문적 연구 성과에서 동학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어 차기의 교과서에서는 새로운 입장의 용어가 사용될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과 북한의 역사관이나 교과서 서술은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고 나면 서로 다가설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을 보는 관점도 남한에서는 부정적 인식에서 긍정적 인식으로 변하였고, 학술면에서는 남북이 유사한 관점도 도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다.
東學農民運動は我が国の封建體制と外勢の侵略を克復しようとする農民中心の 民衆運動として、近代時期の重要な位置を占めている。このような主要な事件が我が国の生徒たちにどのように學習されているのか確認する為に、光復以後の南北韓の高等學校の國史敎科書の該當部分の敍述を確認した。この為に先ずこれまでの硏究の成果を調べてみてから、その成果の敎科書への反映に対して檢討した。 敎科書の考察の結果、何よりも東學農民運動を称する用語が各時期ごとに多樣であったのを確認した。南韓の場合、敎授要目期と1次教育課程期の敎科書...
東學農民運動は我が国の封建體制と外勢の侵略を克復しようとする農民中心の 民衆運動として、近代時期の重要な位置を占めている。このような主要な事件が我が国の生徒たちにどのように學習されているのか確認する為に、光復以後の南北韓の高等學校の國史敎科書の該當部分の敍述を確認した。この為に先ずこれまでの硏究の成果を調べてみてから、その成果の敎科書への反映に対して檢討した。 敎科書の考察の結果、何よりも東學農民運動を称する用語が各時期ごとに多樣であったのを確認した。南韓の場合、敎授要目期と1次教育課程期の敎科書では「東學亂」という用語が使用され、王と體制に反する叛亂であるという否定的な視覺を示していた。2次敎育課程期の敎科書には「東學革命」、3次敎育課程期の敎科書には「東學革命運動」と「東學農民革命運動」という用語が使用され、これは「東學亂」という否定的な視覺から革命論的な觀點に變していたが、學問的な成果よりは當時の執權勢力に関わる政治的な理由がより大きかったという限界を抱えている。4次敎育課程期の敎科書では「東學運動」、5次敎育課程期から現在の7次敎育課程期までの敎科書では「東學農民運動」という用語が使用された。これは「叛亂」でも「革命」でもない立場が「敎育內容展開準據案」に採擇されるのに緣由する。 北韓の高等中學校『朝鮮歷史』を調べると、1955年版では「農民戰爭」、1958年版では「甲午農民戰爭」という用語が使用された。名稱には農民戰爭論の立場が見られるが、事實上 敎科書の敍述では宗敎的な外皮論の立場であったのが確認できる。1982年版では「1894年農民戰爭」という用語が使用され、これは當時の北韓の史學界の熾烈な東學農民運動に対する性格論爭の合議結果としての「農民戰爭論」が敎科書の敍述に反映されたのである。2002年版では「甲午農民戰爭」という用語が使用され、以前と同じような農民戰爭論の持續である。ただし、最近の學問的な硏究成果では東學の役割を肯定的に評價しようとする傾向が確認できて、次期の敎科書では新たな立場の用語が使用されると推定できる。南韓と北韓の歷史觀と敎科書の敍述は確かに差異が存在している。にも拘らずこの差異を認定するとお互いに近付ける餘地が確保できると思われる。東學農民運動を眺める觀點も南韓では否定的な認識から肯定的な認識に變し、學術面では南北とも類似な觀點を導き出しているという面から希望が覗き見られる。
東學農民運動は我が国の封建體制と外勢の侵略を克復しようとする農民中心の 民衆運動として、近代時期の重要な位置を占めている。このような主要な事件が我が国の生徒たちにどのように學習されているのか確認する為に、光復以後の南北韓の高等學校の國史敎科書の該當部分の敍述を確認した。この為に先ずこれまでの硏究の成果を調べてみてから、その成果の敎科書への反映に対して檢討した。 敎科書の考察の結果、何よりも東學農民運動を称する用語が各時期ごとに多樣であったのを確認した。南韓の場合、敎授要目期と1次教育課程期の敎科書では「東學亂」という用語が使用され、王と體制に反する叛亂であるという否定的な視覺を示していた。2次敎育課程期の敎科書には「東學革命」、3次敎育課程期の敎科書には「東學革命運動」と「東學農民革命運動」という用語が使用され、これは「東學亂」という否定的な視覺から革命論的な觀點に變していたが、學問的な成果よりは當時の執權勢力に関わる政治的な理由がより大きかったという限界を抱えている。4次敎育課程期の敎科書では「東學運動」、5次敎育課程期から現在の7次敎育課程期までの敎科書では「東學農民運動」という用語が使用された。これは「叛亂」でも「革命」でもない立場が「敎育內容展開準據案」に採擇されるのに緣由する。 北韓の高等中學校『朝鮮歷史』を調べると、1955年版では「農民戰爭」、1958年版では「甲午農民戰爭」という用語が使用された。名稱には農民戰爭論の立場が見られるが、事實上 敎科書の敍述では宗敎的な外皮論の立場であったのが確認できる。1982年版では「1894年農民戰爭」という用語が使用され、これは當時の北韓の史學界の熾烈な東學農民運動に対する性格論爭の合議結果としての「農民戰爭論」が敎科書の敍述に反映されたのである。2002年版では「甲午農民戰爭」という用語が使用され、以前と同じような農民戰爭論の持續である。ただし、最近の學問的な硏究成果では東學の役割を肯定的に評價しようとする傾向が確認できて、次期の敎科書では新たな立場の用語が使用されると推定できる。南韓と北韓の歷史觀と敎科書の敍述は確かに差異が存在している。にも拘らずこの差異を認定するとお互いに近付ける餘地が確保できると思われる。東學農民運動を眺める觀點も南韓では否定的な認識から肯定的な認識に變し、學術面では南北とも類似な觀點を導き出しているという面から希望が覗き見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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