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주택’은 1920년대 이후 생활개선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등장한 용어로서, 당시의 일간신문과 대중잡지들을 살펴보면 주택의 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매우 廣義的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학술적으로 문화주택은 도시주거의 한 유형으로 소수의 자본가 계층에서 발생된 고급주택으로 취급되고 있으나, 문화주택 용어의 의미나 학술적인 정의를 종합해 볼 때,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문화주택은 일부 자본가 계층에서 발견되는 주거유형임과 동시에, 당시 언론매체에서는 새로운 주택으로서 생활개선운동과 함께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대상이었다....
‘문화주택’은 1920년대 이후 생활개선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등장한 용어로서, 당시의 일간신문과 대중잡지들을 살펴보면 주택의 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매우 廣義的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학술적으로 문화주택은 도시주거의 한 유형으로 소수의 자본가 계층에서 발생된 고급주택으로 취급되고 있으나, 문화주택 용어의 의미나 학술적인 정의를 종합해 볼 때,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문화주택은 일부 자본가 계층에서 발견되는 주거유형임과 동시에, 당시 언론매체에서는 새로운 주택으로서 생활개선운동과 함께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대상이었다.
본 연구는 문화주택이 특정한 시기에 출현한 주택유형으로서가 아니라 언론매체에서 나타나는 주거변천을 대변하는 개념적 대상임을 주목하여, 문화주택에서 발견되는 사상적 이념과 주거계획적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문화주택을 통하여 한국 주거 근대화의 사상적 배경을 규명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한다. 문화주택의 이념적 바탕으로서, 생활개선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고찰하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각종 신문과 대중잡지의 생활개선 관련기사들을 수집, 분석하고, 한인건축가 및 在鮮 일본인 건축가들의 주택개량론과 주택계획안, 각종 박람회와 주택현상설계 그리고 실제 건설되었던 문화주택 사례들을 중심으로 문화주택의 계획개념과 건축특성을 분석하였다. 본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문화주택을 중심으로 생활개선론과 주택개량론이 가장 왕성하게 전개되었던 일제강점기로 제한하였다. 한국인이 발행한 일간신문 2종과 대중잡지 24종 그리고 학회지 8종을 대상으로 총 409건의 기사를 수집·분석하였고, 부가적으로 在鮮 일본인들이 발행한 일간신문 1종과 대중잡지 8종에서도 기사를 수집하여 분석에 활용하였다. 본 연구는 모두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정리될 수 있다.
1장에서는 연구의 문제의식으로서 문화주택의 용어적 쓰임과 관련연구들에서 문화주택의 학술적 정의를 살펴보고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연구의 진행과 분석에 사용된 간행물의 종류를 명시하였다.
2장에서는 문화주택의 개념이 발생되어 한반도로 유입되고 일반대중들에게 문화주택이 인식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문화주택은 1922년 동경에서 열린 평화기념박람회의 文化村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실물로서의 문화주택은 서구식 외관과 의장을 갖춘 양풍주택이었으며 거실과 식당을 중심으로 하는 거실중심형의 실 배치를 취하였고 의자식 생활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재래주택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응접실과 서재와 같은 새로운 기능의 실이 생겨나고 테이블, 의자, 침대, 아동용 책상, 책장, 커텐, 카펫 등 실내는 서구식을 지향한 완전히 새로운 생활양식이 제안되고 있었다. 문화주택은 전래에는 볼 수 없었던 이국적인 외관과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洋式주택으로서 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언론매체를 통하여 문화주택이 한반도에도 알려지게 되면서 문화주택은 주거계획적인 측면보다는 방갈로풍의 외양에 대중들은 강한 인상을 받게 되었다. 대중들은 문화주택이라고 하면 2~3층의 양옥집, 양풍의 응접실과 발코니가 있는 주택, 서양식 가구, 교양 있는 생활이 가능한 주택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즉, 한반도에서의 문화주택은 주택양식으로서 아니라, 새로운 주택으로서의 양풍화에 대한 강한 이미지를 대중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3장에서는 1920년대를 전후하여 문화주택이 실물로서 등장하기 전까지 그 사상적 바탕이 되는 생활개선운동의 이념과 내용을 살펴 보았다. 일제강점기의 생활개선은 위생개념과 과학지식의 탐구를 기반으로 하여 개인의 생활문제에서부터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의 총체적인 개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특히, 절약과 검소를 기본으로 하는 경제개념은 물자와 소비를 절약하고 시간과 노동을 절약하여 가정경제의 기초를 마련하고 생활능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규범으로 작용하였으며 주택개량론에 있어서도 공간을 간소화하고 공간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주거계획적 개념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또한, 물질적인 개선과 함께 생활개선의 정신적 요건으로서 개인 내면의 도덕적 수양과 타인의 인격존중이 강조되었고, 재래의 가족제도에서 벗어나 여성과 아동을 중심으로 간소화된 가정의 구조는 생활의 편리와 경제, 취미, 여가, 가족단란 등의 새로운 가정덕목들의 실천이 요구되었다. 의복양식의 통일문제나 규칙적인 식습관의 문제는 여성의 가사노동절약과 직결되는 중요한 개선사항이었으며 주택개량론에서도 온돌개량의 문제나 주택 내 동선문제와 결부되어 문화주택의 중요한 계획개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4장에서는 생활개선운동의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건축가들의 주택개량론을 살펴보았다. 일제강점기의 주택개량론은 주택의 위생적, 구조적 개선에 대한 논의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생활습관과 주택의 사용법 그리고 생활양식의 개선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장되었다. 위생과 경제개념에 입각하여 재래주택의 채광·환기개선, 부엌의 설비개선, 온돌개량의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었고, 건축가들은 주택개량의 연구를 통하여 합리적인 개량주택으로서의 새로운 주택양식을 찾고자 하였다. 이것은 행랑채의 폐지, 사랑채와 안채의 통합관계, 안방과 부엌의 위치변화, 부엌과 온돌의 개량 등 다양한 주택개량의 논제들이 수렴되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사랑채와 안채를 통합하는 문제와 안방과 부엌의 위치를 변경하는 문제는 새로운 주택의 평면형을 창안해 내기 위한 가장 중추적인 평면계획적 개념이었다.
5장에서는 건축가들이 제안한 문화주택 계획안을 통하여 문화주택의 평면계획과 절충양식이 성립되어가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건축가들의 문화주택 계획안은 재래주택의 불합리한 결점들을 근본적으로 실 배치를 개선하여 집중식 평면으로 집약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개선문제였으며, 집중식 평면으로의 개선은 실용성과 과학성, 공간의 경제성, 생활능률의 향상 등 지극히 합리주의적인 건축이념이 바탕이 되고 있었다. 문화주택 계획안은 각 실의 유기적인 연결을 위하여 현관과 복도를 도입하고 욕실과 세면실, 부엌과 같은 설비공간은 한 곳으로 집중시켜 주택공간을 가능한 한 경제적이고 능률적으로 계획하고자 하였다. 특히, 가족실로서의 안방과 아동실, 주인실, 주부실 등을 남향으로 배치하여 채광과 통풍의 위생적 문제를 해결하고 부엌과 변소, 욕실, 현관 등의 부속공간들은 주택 후면에 배치함으로써, 가족본위의 근대적인 주거계획적 개념을 확립하였다. 거실중심형 주택은 가족본위를 실현하기 위하여 서구식 주택을 그대로 답습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평면계획적 요인보다는 서구식 주택, 특히 방갈로 주택의 박공지붕과 돌출창, 벽돌조의 구조와 같은 평면계획의 외적 요소만을 남겨두고 지속되지 못하였다. 한인건축가들에게 있어서 집중식 평면으로의 개량은 주택의 樣式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였으며, 재래주택 안채의 공간구조를 유지하여 각 기능실을 부가하는 분산형의 계획안과 중복도를 이용하여 실 간의 동선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가장 효율적으로 배치가 가능한 중복도형의 계획안들이 제안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인건축가들의 문화주택 계획안은 중복도형 주택의 평면배치수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었으며 가족본위의 집중식 평면계획 개념을 확립하였다.
6장은 본 연구의 결론으로서, 문화주택을 통해본 한국 주거 근대화의 사상적 배경과 일제강점기에 출현한 문화주택의 계획이념과 주거계획적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920년대 생활개선운동이 본격화 되기 이전부터 근대적 위생개념과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한 생활개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당시 지식인들의 의식수준이 아직 성숙되지는 못하였지만, 위생과 과학에 입각하여 재래주택을 바라보기 시작한 시각은 새로운 주거에 대한 요구가 형성되고 장차 근대화라고 하는 주거변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주택개량론은 ‘경제생활’의 사상과 ‘가족본위’의 사상이 바탕이 되어 진행되었다. 특히, 가족본위사상은 1920년대 초반 생활개선운동이 시작될 무렵, 洋式化의 경향과 맞물려 나타났다. 이것은 같은 시기에 문화주택의 실물이 등장하고 문화주택의 개념이 한반도로 유입되면서, ‘문화생활’ 혹은 ‘문화주택’에 담겨져 있는 가족본위의 계획개념이 당시 급격한 가족제도의 변화와 함께 발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경제개념은 재래주택의 채광·환기개선, 부엌의 설비개선, 온돌개량의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건축가들에 의한 합리적인 개량주택으로서 합당한 주택양식의 모색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계획이념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주택개량론은 문화주택을 지향하고 있었다. 문화주택이 외래로부터 유입된 것이었지만, 그 바탕에는 생활개선과 주택개량의 이념들이 중첩되어 있었으며, 건축가에 의해 자생적으로 도시주거의 새로운 유형을 확립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문화주택 계획안에서 한인건축가들은 재래주택의 분산된 공간구조를 가장 큰 결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재래주택에서 사랑채와 안채로 대별되는 성별에 따른 공간분화를 하나의 평면으로 집약된 구조에서 지속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통합된 공간 내에서 각 실간의 유기적인 연결과 공간의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검토되었으며, 이것은 현관과 복도를 평면계획의 요소로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 배치에 있어서 가족본위의 근대적인 주거계획적 이념은 재래주택의 개량에 있어서 안방의 위치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가족구성원 간의 존중과 화합은 곧 실의 명칭을 달리하게 하였으며, 가족생활공간은 점차 주부실, 주인실, 아동실, 노인실 등으로, 그 외에 응접실, 서재, 하인실 등의 기능에 따라 주거공간이 분화하게 되었다. 한인건축가들은 이와 같은 재래주택의 개선방안에 대해 집중식의 평면구조를 주택개량을 위한 하나의 틀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랑채와 안채의 통합문제, 성별에 따른 공간구조의 분화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실과 주부실의 개념을 수용하였고, 재래주택의 행랑채가 소멸함에 따라 사랑채의 기능과 행랑채의 기능이 통합되어 문간채의 기능을 갖는 영역이 생겨났다. 현관 주변으로 응접실과 하인실을 두어 공간의 능률을 향상시키고, 변소, 욕실과 세면실과 같은 부속공간도 현관 주변에 배치하여 위생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간결한 평면구조의 계획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공간효율의 문제와 각 실간의 연결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청을 폐지하고 복도를 활용하였다. 가족실로서의 內房과 아동실, 주인실, 주부실 등 주요실은 남향으로 배치하여 채광과 환기의 위생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부엌과 변소, 욕실, 현관 등의 부속공간들은 기능에 따라 각기 합당한 향으로 배치되었다.
집중식 평면의 계획개념은 1930년대부터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으며, 평면유형으로는 중복도를 채용한 집중식 평면이 주택개량의 가장 이상적인 주거계획으로서 건축가들에게 받아 들여졌다. 사랑채와 안채의 통합문제, 집중식 평면구조, 현관과 복도의 도입, 대청의 폐지, 가족실과 아동실, 주부실 등 문화주택에서 발견된 다양한 계획개념은 광복 이후 도시주거의 전형적 요소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며, 나아가 오늘날 현대의 도시주거로 변모하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고 확대 해석할 수 있다.
‘문화주택’은 1920년대 이후 생활개선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등장한 용어로서, 당시의 일간신문과 대중잡지들을 살펴보면 주택의 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매우 廣義的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학술적으로 문화주택은 도시주거의 한 유형으로 소수의 자본가 계층에서 발생된 고급주택으로 취급되고 있으나, 문화주택 용어의 의미나 학술적인 정의를 종합해 볼 때,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문화주택은 일부 자본가 계층에서 발견되는 주거유형임과 동시에, 당시 언론매체에서는 새로운 주택으로서 생활개선운동과 함께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대상이었다.
본 연구는 문화주택이 특정한 시기에 출현한 주택유형으로서가 아니라 언론매체에서 나타나는 주거변천을 대변하는 개념적 대상임을 주목하여, 문화주택에서 발견되는 사상적 이념과 주거계획적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문화주택을 통하여 한국 주거 근대화의 사상적 배경을 규명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한다. 문화주택의 이념적 바탕으로서, 생활개선운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고찰하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각종 신문과 대중잡지의 생활개선 관련기사들을 수집, 분석하고, 한인건축가 및 在鮮 일본인 건축가들의 주택개량론과 주택계획안, 각종 박람회와 주택현상설계 그리고 실제 건설되었던 문화주택 사례들을 중심으로 문화주택의 계획개념과 건축특성을 분석하였다. 본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문화주택을 중심으로 생활개선론과 주택개량론이 가장 왕성하게 전개되었던 일제강점기로 제한하였다. 한국인이 발행한 일간신문 2종과 대중잡지 24종 그리고 학회지 8종을 대상으로 총 409건의 기사를 수집·분석하였고, 부가적으로 在鮮 일본인들이 발행한 일간신문 1종과 대중잡지 8종에서도 기사를 수집하여 분석에 활용하였다. 본 연구는 모두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정리될 수 있다.
1장에서는 연구의 문제의식으로서 문화주택의 용어적 쓰임과 관련연구들에서 문화주택의 학술적 정의를 살펴보고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연구의 진행과 분석에 사용된 간행물의 종류를 명시하였다.
2장에서는 문화주택의 개념이 발생되어 한반도로 유입되고 일반대중들에게 문화주택이 인식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문화주택은 1922년 동경에서 열린 평화기념박람회의 文化村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실물로서의 문화주택은 서구식 외관과 의장을 갖춘 양풍주택이었으며 거실과 식당을 중심으로 하는 거실중심형의 실 배치를 취하였고 의자식 생활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재래주택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응접실과 서재와 같은 새로운 기능의 실이 생겨나고 테이블, 의자, 침대, 아동용 책상, 책장, 커텐, 카펫 등 실내는 서구식을 지향한 완전히 새로운 생활양식이 제안되고 있었다. 문화주택은 전래에는 볼 수 없었던 이국적인 외관과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洋式주택으로서 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언론매체를 통하여 문화주택이 한반도에도 알려지게 되면서 문화주택은 주거계획적인 측면보다는 방갈로풍의 외양에 대중들은 강한 인상을 받게 되었다. 대중들은 문화주택이라고 하면 2~3층의 양옥집, 양풍의 응접실과 발코니가 있는 주택, 서양식 가구, 교양 있는 생활이 가능한 주택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즉, 한반도에서의 문화주택은 주택양식으로서 아니라, 새로운 주택으로서의 양풍화에 대한 강한 이미지를 대중들의 마음 속에 심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3장에서는 1920년대를 전후하여 문화주택이 실물로서 등장하기 전까지 그 사상적 바탕이 되는 생활개선운동의 이념과 내용을 살펴 보았다. 일제강점기의 생활개선은 위생개념과 과학지식의 탐구를 기반으로 하여 개인의 생활문제에서부터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의 총체적인 개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특히, 절약과 검소를 기본으로 하는 경제개념은 물자와 소비를 절약하고 시간과 노동을 절약하여 가정경제의 기초를 마련하고 생활능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규범으로 작용하였으며 주택개량론에 있어서도 공간을 간소화하고 공간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주거계획적 개념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또한, 물질적인 개선과 함께 생활개선의 정신적 요건으로서 개인 내면의 도덕적 수양과 타인의 인격존중이 강조되었고, 재래의 가족제도에서 벗어나 여성과 아동을 중심으로 간소화된 가정의 구조는 생활의 편리와 경제, 취미, 여가, 가족단란 등의 새로운 가정덕목들의 실천이 요구되었다. 의복양식의 통일문제나 규칙적인 식습관의 문제는 여성의 가사노동절약과 직결되는 중요한 개선사항이었으며 주택개량론에서도 온돌개량의 문제나 주택 내 동선문제와 결부되어 문화주택의 중요한 계획개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4장에서는 생활개선운동의 차원에서 진행되었던 건축가들의 주택개량론을 살펴보았다. 일제강점기의 주택개량론은 주택의 위생적, 구조적 개선에 대한 논의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생활습관과 주택의 사용법 그리고 생활양식의 개선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장되었다. 위생과 경제개념에 입각하여 재래주택의 채광·환기개선, 부엌의 설비개선, 온돌개량의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었고, 건축가들은 주택개량의 연구를 통하여 합리적인 개량주택으로서의 새로운 주택양식을 찾고자 하였다. 이것은 행랑채의 폐지, 사랑채와 안채의 통합관계, 안방과 부엌의 위치변화, 부엌과 온돌의 개량 등 다양한 주택개량의 논제들이 수렴되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사랑채와 안채를 통합하는 문제와 안방과 부엌의 위치를 변경하는 문제는 새로운 주택의 평면형을 창안해 내기 위한 가장 중추적인 평면계획적 개념이었다.
5장에서는 건축가들이 제안한 문화주택 계획안을 통하여 문화주택의 평면계획과 절충양식이 성립되어가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건축가들의 문화주택 계획안은 재래주택의 불합리한 결점들을 근본적으로 실 배치를 개선하여 집중식 평면으로 집약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개선문제였으며, 집중식 평면으로의 개선은 실용성과 과학성, 공간의 경제성, 생활능률의 향상 등 지극히 합리주의적인 건축이념이 바탕이 되고 있었다. 문화주택 계획안은 각 실의 유기적인 연결을 위하여 현관과 복도를 도입하고 욕실과 세면실, 부엌과 같은 설비공간은 한 곳으로 집중시켜 주택공간을 가능한 한 경제적이고 능률적으로 계획하고자 하였다. 특히, 가족실로서의 안방과 아동실, 주인실, 주부실 등을 남향으로 배치하여 채광과 통풍의 위생적 문제를 해결하고 부엌과 변소, 욕실, 현관 등의 부속공간들은 주택 후면에 배치함으로써, 가족본위의 근대적인 주거계획적 개념을 확립하였다. 거실중심형 주택은 가족본위를 실현하기 위하여 서구식 주택을 그대로 답습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평면계획적 요인보다는 서구식 주택, 특히 방갈로 주택의 박공지붕과 돌출창, 벽돌조의 구조와 같은 평면계획의 외적 요소만을 남겨두고 지속되지 못하였다. 한인건축가들에게 있어서 집중식 평면으로의 개량은 주택의 樣式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였으며, 재래주택 안채의 공간구조를 유지하여 각 기능실을 부가하는 분산형의 계획안과 중복도를 이용하여 실 간의 동선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가장 효율적으로 배치가 가능한 중복도형의 계획안들이 제안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인건축가들의 문화주택 계획안은 중복도형 주택의 평면배치수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었으며 가족본위의 집중식 평면계획 개념을 확립하였다.
6장은 본 연구의 결론으로서, 문화주택을 통해본 한국 주거 근대화의 사상적 배경과 일제강점기에 출현한 문화주택의 계획이념과 주거계획적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920년대 생활개선운동이 본격화 되기 이전부터 근대적 위생개념과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한 생활개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당시 지식인들의 의식수준이 아직 성숙되지는 못하였지만, 위생과 과학에 입각하여 재래주택을 바라보기 시작한 시각은 새로운 주거에 대한 요구가 형성되고 장차 근대화라고 하는 주거변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주택개량론은 ‘경제생활’의 사상과 ‘가족본위’의 사상이 바탕이 되어 진행되었다. 특히, 가족본위사상은 1920년대 초반 생활개선운동이 시작될 무렵, 洋式化의 경향과 맞물려 나타났다. 이것은 같은 시기에 문화주택의 실물이 등장하고 문화주택의 개념이 한반도로 유입되면서, ‘문화생활’ 혹은 ‘문화주택’에 담겨져 있는 가족본위의 계획개념이 당시 급격한 가족제도의 변화와 함께 발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경제개념은 재래주택의 채광·환기개선, 부엌의 설비개선, 온돌개량의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건축가들에 의한 합리적인 개량주택으로서 합당한 주택양식의 모색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계획이념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주택개량론은 문화주택을 지향하고 있었다. 문화주택이 외래로부터 유입된 것이었지만, 그 바탕에는 생활개선과 주택개량의 이념들이 중첩되어 있었으며, 건축가에 의해 자생적으로 도시주거의 새로운 유형을 확립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문화주택 계획안에서 한인건축가들은 재래주택의 분산된 공간구조를 가장 큰 결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재래주택에서 사랑채와 안채로 대별되는 성별에 따른 공간분화를 하나의 평면으로 집약된 구조에서 지속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통합된 공간 내에서 각 실간의 유기적인 연결과 공간의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검토되었으며, 이것은 현관과 복도를 평면계획의 요소로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 배치에 있어서 가족본위의 근대적인 주거계획적 이념은 재래주택의 개량에 있어서 안방의 위치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가족구성원 간의 존중과 화합은 곧 실의 명칭을 달리하게 하였으며, 가족생활공간은 점차 주부실, 주인실, 아동실, 노인실 등으로, 그 외에 응접실, 서재, 하인실 등의 기능에 따라 주거공간이 분화하게 되었다. 한인건축가들은 이와 같은 재래주택의 개선방안에 대해 집중식의 평면구조를 주택개량을 위한 하나의 틀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랑채와 안채의 통합문제, 성별에 따른 공간구조의 분화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실과 주부실의 개념을 수용하였고, 재래주택의 행랑채가 소멸함에 따라 사랑채의 기능과 행랑채의 기능이 통합되어 문간채의 기능을 갖는 영역이 생겨났다. 현관 주변으로 응접실과 하인실을 두어 공간의 능률을 향상시키고, 변소, 욕실과 세면실과 같은 부속공간도 현관 주변에 배치하여 위생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간결한 평면구조의 계획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공간효율의 문제와 각 실간의 연결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청을 폐지하고 복도를 활용하였다. 가족실로서의 內房과 아동실, 주인실, 주부실 등 주요실은 남향으로 배치하여 채광과 환기의 위생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부엌과 변소, 욕실, 현관 등의 부속공간들은 기능에 따라 각기 합당한 향으로 배치되었다.
집중식 평면의 계획개념은 1930년대부터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으며, 평면유형으로는 중복도를 채용한 집중식 평면이 주택개량의 가장 이상적인 주거계획으로서 건축가들에게 받아 들여졌다. 사랑채와 안채의 통합문제, 집중식 평면구조, 현관과 복도의 도입, 대청의 폐지, 가족실과 아동실, 주부실 등 문화주택에서 발견된 다양한 계획개념은 광복 이후 도시주거의 전형적 요소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며, 나아가 오늘날 현대의 도시주거로 변모하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고 확대 해석할 수 있다.
「文化住宅」とは1920年代以後、生活改善運動が最も活発に展開されていた時期に登場した用語であり、当時の日刊新聞や大衆雑誌の中で住宅の形式に拘らず非常に広義的な意味で使われていた。学術的に文化住宅は都市住宅の一つの類型で、一部の資本家階層から発生された高級住宅として扱われているが、文化住宅の用語の意味や学術的な定義を総合してみれば、当時の言論媒体では新しい住宅として生活改善運動とともに大衆の注目の的であった。
本研究は文化住宅が特定の時期に現...
「文化住宅」とは1920年代以後、生活改善運動が最も活発に展開されていた時期に登場した用語であり、当時の日刊新聞や大衆雑誌の中で住宅の形式に拘らず非常に広義的な意味で使われていた。学術的に文化住宅は都市住宅の一つの類型で、一部の資本家階層から発生された高級住宅として扱われているが、文化住宅の用語の意味や学術的な定義を総合してみれば、当時の言論媒体では新しい住宅として生活改善運動とともに大衆の注目の的であった。
本研究は文化住宅が特定の時期に現れた住宅類型ではなく、言論媒体の中で現れる住居変遷を代弁する概念的な対象であることに着目し、文化住宅から発見される思想的理念と住居計画的な特徴を把握することで韓国住居の近代化の思想的な背景を明らかに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文化住宅の理念的な背景として生活改善運動の具体的な内容を考察するため、日帝強占期に発刊された各種新聞と大衆雑誌の生活改善に関わる記事を収集・分析し、韓人建築家及び在鮮日本人建築家たちの住宅改良論と住宅計画案、各種博覧会と住宅懸賞設計、そして実際に建設された文化住宅の事例を中心に文化住宅の計画概念と建築特徴を分析した。本研究の時間的範囲は、文化住宅を中心に生活改善運動と住宅改良論が最も盛んで展開されていた日帝強占期に限る。韓国人が発刊していた日刊新聞2種と大衆雑誌24種、そして学会誌8種を対象とし総計409件の記事を収集․分析して、付加的に在鮮日本人が発刊した日刊新聞1種と大衆雑誌8種からも記事を収集して分析に活用した。本研究は全て六つの章で構成されていて、その内容は次のように要約・整理される。
1章では研究の問題意識として文化住宅の用語的使いと文化住宅に関する研究から文化住宅の学術的な定義を明らかにして、その問題点を指摘した。そして研究の進行と分析に使った刊行物の種類を述べた。
2章では文化住宅の概念が発生し韓半島に流入され一般大衆に文化住宅が認識されていく過程を明らかにした。文化住宅という用語は1922年東京で開かれた平和記念博覧会の文化村で実物とともに始めて登場した。実物としての文化住宅は欧米式の外観と儀装を備えた洋風住宅であって、居間と食堂を中心にする居間中心型の間取りを取り、いす式生活を基本とした。また、在来の住宅からは見られなっかた応接室や書斎という新しい機能の部屋が現れ、テーブル、いす、ベッド、児童用机、本棚、カーテン、カーペットなど、室内は欧米式を目指す完全に新しい生活様式が提案されていた。文化住宅は以前は見かけなかった異国的は外観と田園的且つ牧歌的な雰囲気を漂わせる洋式住宅として始まった。特に、言論媒体を通して文化住宅が韓半島に知り渡るようになり、文化住宅は住居計画的な側面よりバンガロー風の外観から大衆に強い印象を与えることになる。大衆は文化住宅と言えば、2-3階建ての洋館、洋風の応接室とバルコニーがある住宅、西洋式家具、教養のある生活ができる住宅としてイメージしていた。詰り、韓半島での文化住宅は住宅洋式としてではなく、新しい住宅としての洋風化という強いイメージを大衆の心に刻み付けていた。
3章では1920年代を前後に文化住宅が実物として現れるまでその思想的な根拠となる生活改善運動の理念と内容を明らかにした。日帝強占期の生活改善は衛生概念と科学知識の探求をもとに個人の生活問題から家庭生活と社会生活に至るまで生活全般の総体的な改革を意味していた。特に、節約と質素を基本にする経済概念は物資と消費を節約し時間と労働を節約して家庭経済の基礎を整え生活の能率を向上させる規範として働いた。また、住宅改良論でも空間を単純化し空間の効率を増進させるための住居計画的概念の思想的な根拠となった。そして、物質的な改善とともに生活改善の精神的な要件として個人の内面の道徳的修養と他人の人格尊重が協調され、在来の家族制度から抜け出して女性と児童を中心に単純化された家庭の構造は生活の便利と経済、趣味、余暇、家族団らんなどの新しい家庭徳目の実践が要求された。衣服様式の統一問題や規則的な食習慣の問題は女性の家事労働節約とつながる重要な改善事項であって、住宅改良論でもオンドル改良の問題や住宅内の動線問題と結び付けられ文化住宅の重要な概念として発展させるもととなった。
4章では生活改善運動の考え方から行われていた建築家たちの住宅改良論について考察した。日帝強占期の住宅改良論は住宅の衛生的、構造的改善に関する論議だけでなく不都合な生活習慣と住宅の使い方、そして生活様式の改善に関わる論議にまで広がった。衛生と経済概念に基いて在来住宅の採光・換気改善、台所の設備改善、オンドル改良の問題を重要に扱ったし、建築家たちは住宅改良の研究を通じて合理的な改良住宅としての新しい住宅様式を見つけようとした。之は行廊の廃止、外廊と内廊の統合関係、内房と台所の位置変更、台所とオンドルの改良など、あらゆる住宅改良の論題がまとまってこそ可能なことであった。特に、外廊と内廊を統合する問題と内房と台所の位置を変更する問題は新たな住宅の平面を作り出すための最も中点的な平面計画的概念であった。
5章では建築家たちが提案した文化住宅計画案を通じて文化住宅の平面計画と折衷様式が成り立っていく過程を考察した。建築家たちの文化住宅計画案は在来住宅の不都合は欠点を根本的に間取りを改善し集中式平面に絞ることで解決するのが最も重要な改善の問題であった。集中式平面への改善は実用性と科学性、空間の経済性、生活能率の向上など、極合理的な建築理念を根拠としていた。文化住宅計画案は各室の有機的なつながりのため玄関を廊下を導入し、浴室と洗面所、台所のような設備空間は一ヶ所に集中して住宅空間をできる限り経済的且つ能率的に計画しようとした。特に、家族室としての内房と児童室、主人室、婦人室などを南向きに配置し採光と換気などの衛生問題を解決し、台所と便所、浴室、玄関などの付属空間は住宅の後方に配置することで家族本位の近代的な住居計画的概念を確立した。居間中心型住宅は家族本位を実現するため欧米式住宅をそのまま取り入れた形で現れることになり、平面計画的要素より欧米式住宅、特にバンガロー住宅の切妻と出窓、連歌造りのような平面計画の外的要素だけ残して長く続くことはできなかった。韓人建築家たちにおいて集中式平面への改良は住宅の様式を決める大事な問題であったゆえ、在来住宅の内廊の空間
構造を維持しつつ各機能室を追加する分散型の計画案と、中廊下を利用して各部屋の間の動線問題を解決すると同時に最も効率的に配置できる中廊下型の計画案などが提案された。このような流れの中、韓人建築家たちの文化住宅計画案は中廊下型住宅の平面配置手法を部分的に取り入れていて家族本位の集中式平面計画の概念を確立させた。
6章は本研究の結論であり、文化住宅を通じて見た韓国住居の近代化の思想的な背景と、日帝強占期に出現された文化住宅の計画理念と住居計画的な特長は次のようである。
1920年代に本格的に生活改善運動が展開される以前から近代的な衛生概念と科学知識に基いた生活改善に関する新しい認識が現れていた。無論、当時の知識人たちの意識は未だ成熟していないのであったが、衛生と科学に基いた在来住宅に関する考え方は新しい住居に対する要求を形成させ、近代化という住居変遷の出発点となったと言える。日帝強占期の住宅改良論は「経済生活」の思想と「家族本位」の思想がもととなって進んでいた。特に、家族本位思想は1920年代の初め、生活改善運動が始まる頃、様式化の傾向とかみ合って現れた。之は文化住宅の概念が韓半島へ流入されて、「文化生活」または「文化住宅」に込められている家族本位の計画概念が、当時急激な家族制度の変化とともに現れていたのであった。また、経済概念は在来住宅の採光・換気改善、台所の設備改善、オンドル改良の問題でだけでなく、建築家たちによる合理的な改良住宅として妥当な住宅様式の模索に至るまで最も重要な概念であった。
日帝強占期の住宅改良論は文化住宅を目指していた。文化住宅は外来から流入されたものではあったが、その背景として生活改善と住宅改良の理念が重なっていて、建築家によって自生的に都市住居の新たな類型を確立する土台となった。文化住宅計画案の中、韓人建築家たちは在来住宅の分散されている空間構造を最も大きな欠点として捉えていて、在来住宅で外廊と内廊のよう性別によって取り分けられる空間分化を一つの平面に集約された構造の中でも生かす方法を模索していた。ついては、統合された空間の中、各室の間の有機的なつながりと空間の無駄を無くす方法が検討され、之は玄関と廊下を平面計画の要素として受け入れるきっかけとなった。間取りにおいて家族本位の近代的な住居計画的理念は内房の位置変更に重大な影響を与えた。家族構成員の間の尊重と化合は、つまり各室の呼び名の変更という形で現れて、家族生活空間は婦人室、主人室、児童室、老人室など、その他応接室、書斎、書生室などという機能に応じて住居空間が分化しつつあった。このように韓人建築家たちは在来住宅の改善方案の一つの枠としてとして集中式の平面構造を受け入れていた。
外廊と内廊の統合問題、性別による空間構造の分化を解決するため、主人室と婦人室の概念を受容した。また、在来住宅の行廊を除いたため外廊の機能と行廊の機能が統合され玄関の機能を持つ領域が生まれた。玄関周辺に応接室と書生室を配置して空間の能率を向上させ、便所、浴室と洗面所のような付属空間も玄関周辺に配置して衛生問題を解決すると同時に簡潔な平面構造の計画ができるようにした。そして、空間効率の問題と各室の間のつながりのため大庁を廃止し廊下を取り入れた。家族室としての内房と児童室、主人室、婦人室などの重要室は南向きに配置して採光と換気などの衛生問題を解決した。台所と便所、浴室、玄関などの付属空間は機能によって各自妥当な向きに配置された。
集中式平面の計画概念は1930年代からもっと確実に現れていて、平面類型は中廊下を採用した集中式平面が住宅改良の最も理想的な住居計画として建築家たちに受け入れられた。外廊と内廊の統合問題、集中式の平面構造、玄関と廊下の導入、大庁の廃止、家族室と児童室、婦人室など、文化住宅から発見された多様な計画概念は光複以後の都市住居の典型的な要素を説明するに当たって重要な根拠となり、ついては現在の都市住居と変貌させる基盤となったと拡大解釈できる。“文化住宅”一词出现在1920年后生活改善运动最为活跃的时期。查看当时的日刊报纸和大众杂志,“文化住宅”不仅仅局限在住宅形式的层面上词义非常广泛。学术上认为文化住宅作为城市住宅的一个类型产生于少数资本家阶层的高级住宅;但综合考虑文化住宅的用语和学术定义文化住宅既是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出现的资本家阶层的一种住宅类型同时又是当时言论媒体上作为一种新式住宅同生活改善运动大众比较关心的对象之一。
本论文认为文化住宅不是特定时期出现的住宅类型而是言论媒体上出现的阐释住居变迁的概念对象。本论文的研究目的是通过分析文化住宅中的思想理念和住宅计划特性阐明韩国住宅近代化过程的思想背景。生活改善运动作为文化住宅的理论基础为了考察其具体的内容和方式将研究范围限定在生活改善论和住宅改良论最活跃的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收集分析该时期发刊的各种报纸和大众杂志中关于生活改善的记录并分析韩人建筑师及在鲜日本
建筑师的住宅改良理论和住宅计划案各类博览会和住宅现象设计及已建成的文化住宅等事例。其中有韩国人发行的日刊报纸2种和大众杂志24种会刊8种共409件记事。此外还收集了在鲜日本人发行的日刊报纸1种和大众杂志8种引用于论文的分析当中。
本论文分为6个章节,具体内容如下:
第一章提出问题,分析文化住宅的用语及相关研究中对文化住宅的定义,并指出在本论文研究,分析中所涉及到的刊物的类型。
第二章分析文化住宅概念的产生及引入韩半岛并为大众所吸收的整个过程。文化住宅始于1922年代在东京开展的和平纪念博览会的文化村。当时实际建成的文化住宅采用了欧式外观和内部装修:平面形式为起居室和饭厅为中心的起居中心型的布局,并以椅子式生活为基本;室内出现在过去住宅中从未见现过的接待室,书斋等新的功能空间;桌子,椅子,床,儿童书桌,书架,窗帘,地毯等陈设完全体现欧式生活方式。当时在媒体的作用下,文化住宅陆续传入韩国,并广泛传播。但文化住宅在住宅计划方面的影响比较薄弱,相反国外bungalow式住宅形态带给人们强烈的印象。提及文化住宅,人们想到的是2-3层的洋屋,具有洋风接待室和阳台的住宅,欧式家具的陈设,比较有文化教养生活的那种住宅。从上述分析可以看出,韩半岛内的文化住宅并不是发于一种住宅形式,而是将欧式新住宅概念灌输到人们的思想中。
第三章考察1920年代前后在文化住宅出现之前的思想背景即生活改善运动的理念和内容。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的生活改善运动以卫生概念和科学知识的探求为基础,涉及个人生活问题到家庭生活及社会生活的全面改革。特别强调以节俭为基本的经济概念。节俭作为家庭经济的基础和提高生活效率的规范,可以节约物资和消费,时间和劳动,并且可以简化空间,增强空间效率,为住宅改良提供住宅计划方面的思想基础。物质改善要求强调个人内在的道德修养和对他人的人格尊重,要求人们脱离传统的家族制度,形成以女人和儿童为中心的简单的家庭模式,从而带来生活的便利和经济,趣味,余暇,家庭团乐等新的家庭德目。而且衣服样式的统一和规律性的饮食习惯等问题与女性的家庭劳动节约紧密相连,同样是重要的改善项目,在住宅改良中与温突改良及内部动线相结合,成为发展文化住宅的重要的基础。
第四章介绍生活改善运动中建筑师的住宅改良论。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的生活改良论,不仅涉及住宅的卫生,构造改善,还论及对不合理生活习惯及住宅使用方法,生活样式的改良。建筑师们通过对住宅改良的研究,探索新的合理的住宅样式,他们从卫生和经济概念切入,重点分析过去住宅的采光,通风,厨房设备改善,温突改良等问题。这些问题的解决需要考虑废止行廊,统合外栋和内栋,改变内室和厨房的位置,改良厨房和温突等诸方面改良的论题。特别是统合外栋和内栋,变换内室和厨房位置的问题是,创造新式住宅平面类型的最重要的平面计划概念之一。
第五章根据建筑师提出的文化住宅计划方案,考察文化住宅的平面计划和折衷样式形成的过程。当时建筑师们提出的文化住宅计划方案,重点为改善过去住宅中存在的缺点,将住宅平面改为集中式布局,以实用性,科学性,空间的经济性,生活效率的提高等合理的建筑理念作为背景。文化住宅计划方案为了实现各个房间的有机连接,导入玄关和走廊,把浴室,洗面室,厨房等设备空间集中于一处,使住宅空间计划尽可能经济化,效率化。尤其是内室,儿童室,主人室,主妇室等空间南向布置,解决采光,通风等卫生问题;厨房和厕所,浴室,玄关等附属空间布置在住宅背面,形成以家庭为中心的近代住宅计划概念。起居中心型住宅以家族本位为目的,照搬欧式住宅,侧重于外部形态,特别是局限在模仿bungalow式住宅的屋顶和凸窗,砖混构造等外部要素上。而韩人建筑师却把过去平面向集中式平面改良,成为决定住宅样式的重要因素。具体形式有:保留过去住宅中内栋的空间,在此基础上附加其它功能空间,形成分散型的平面;还有利用中廊解决各个房间的动线的中廊型平面,可以最有效地布置内部空间。在此过程中,韩人建筑师部分采纳中廊型平面,并确立集中式平面计划的概念。
第六章为本研究的结论部分。通过文化住宅整理韩国近代化的思想背景和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出现的文化住宅的计划理念及特性。具体如下:
在1920年代的生活改善运动之前,就已经有了以近代卫生概念和以科学知识为背景的对生活改善的新认识。虽然当时知识阶层的意识水准尚未成熟,但他们开始从卫生和科学的角度观察过去住宅,这可以说是新的住宅要求随着近代化住宅变迁的一个出发点。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的住宅改良论以“经济生活”的思想和“家族本位”思想为基础并行。尤其是“家族本位”思想,是在1920年代初生活改善运动的初始阶段伴随着洋风化一同出现。这是因为当时出现文化住宅实物的同时文化住宅的概念流入韩半岛,包含在“文化生活”或“文化住宅”内的家族本位的概念,在当时激变的家族制度下逐渐被发现。此外,经济概念不仅涉及过去住宅的采光,通风,厨房改善,温突改良等问题,而且也是建筑师们通过改良住宅摸索合理的住宅样式的一个重要计划理念。
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的住宅改良论向往一种文化住宅。虽然当时文化住宅从国外引进,但其背景下生活改善及住宅改良等理念相互重叠,并通过建筑师铺垫形成城市住宅新类型的基础。在文化住宅计划方案中,韩人建筑师们认为过去住宅中分散式空间结构为最大的缺点,并努力摸索如何将过去住宅中按性别划分的内栋和外栋统合为一个集中式平面等问题。同时,检讨在统合的空间内如何将各室有机联系而减少空间的浪费的问题,这成为平面计划中引入玄关和走廊的一个契机。而且在各个房间的布置中,“家族本位”之近代住宅计划理念对过去住宅里内室的位置变化产生巨大影响。家庭成员之间的尊重和和睦改变了房间的名称,家庭生活空间逐渐划分为主妇室,主人室,儿童室,老人室,并且还出现接待室,书斋,下人房等空间。韩人建筑师们把集中式平面作为对过去住宅改良的一种模式所接受。
为了解决外栋和内栋的统合及性别空间结构的分化问题,采用了主人室和主妇室的概念;并随着行廊的消失,外栋和行廊的功能被统一,形成具有门厅功能的新的领域。在玄关周边布置接待室和下人房,提高空间的效率;厕所,浴室,洗面室等附属空间也布置在玄关周边,从而解决卫生问题的同时将平面结构简捷化。为了解决空间的效率化和个房间的联系问题,取消大厅并活用走廊空间。内房,儿童室,主人室,主妇室等家庭内部使用的主要房间南向布置,解决采光和换气等卫生问题;厨房和厕所,浴室,玄关等附属空间按照功能沿合理方向布置。
从1930年代开始,集中式平面的计划概念更为明显,大多数建筑师们采用的理想方案为中间设有走廊的集中式平面。外栋和内栋的统合问题,集中式平面结构,玄关和走廊的导入,大厅的取消及家族室,儿童室,主妇室的产生等这些在文化住宅中所体现的计划概念,不仅是解释光复以后城市住宅典型要素的重要根据,而且可以认为它是向现代城市住宅变化的基石。The word of 'Mun-Hwa' residence emerged in 1920s when the movement for improving living conditions was carried out actively among the intellectuals in Korea. Originally 'Mun-Hwa' is the word composed of chinese letters which means 'Culture'. But the name of 'Mun-Hwa' residence of those days meant modern or cultured residence planned by architects.
In most of academic researches, 'Mun-Hwa' residence was generally considered as one of urban dwellings which a few higher class persons could possess and live in. But the word of 'Mun-Hwa' residence in newspapers or periodicals of those days was used in a broader meaning which did not set limits to a specific form of residence. 'Mun-Hwa' residence became the center of public interest as a modern residence in social atmosphere which the general public gave a great attention to the movement for improving living conditions.
This study takes notice of the meaning of 'Mun-Hwa' residence in the press of those days and aims to make a close inquiry into the ideological background of modernization of korean urban dwellings through analyzing the architectural concepts and characteristics of 'Mun-Hwa' residence. For investigating into the contents of the movement for improving living conditions to catch various architectural concepts of planning 'Mun-Hwa' residence, this study collected 409 articles related to the movement among newspapers and periodicals published by korean and japanese publishing companies in Japanese colonial times. And this study analyzed the architectural concepts and characteristics of 'Mun-Hwa' residence which korean and japanese architects dealt with those of planning modern residences for the discussion of improving conventional residences and preparation of housing exhibitions and housing plan competitions. The contents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below ;
'Mun-Hwa' residence was introduced for the first time in the exposition held at Tokyo of Japan in 1922. The name of 'Mun-Hwa' which showed modern residences exhibited in this exposition derived from calling the exhibition grounds as 'Mun-Hwa' village. 'Mun-Hwa' residences as the actual objects were western style residence equipped by western architectural order and decoration, and put a living room at the heart of residence for accounting family life as one of important ideological factor of planning modern residence. The interior of living room or reception room(parlour) was decorated with western style furnitures as like chairs, tables, bookshelves, curtains, carpets and so on.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Mun-Hwa' residence was planned to create newly western style living at the beginning. Simultaneously, These 'Mun-Hwa' residences were introduced to the general public of Korea by way of the press, and people began to think 'Mun-Hwa' residence as western style house. The initial impression about 'Mun-Hwa' residence was very strong and maintained for a long time, giving a great influences on the planning of modern residences by architects.
Korean architects put ideological factors for the planning of 'Mun-Hwa' residences as like advancing to the cultured(modern) life, respecting for family life, respecting for privacy of family members, the sense of economy, hygienic awareness and so on.
First of all, the architects suggested 'Mun-Hwa' residence as the direction of the improvement of dwelling spaces which focused on making harmonious home life. The architects respected the personality of women and juveniles, and composed cultured(modern) family system which regarded family member's interests, leisures(hobbies) or pastimes, casting off the conventional family system.
The sense of economy and hygienic awareness were very important ideological factors of the movement for improving living conditions and also influenced korean architects to plan 'Mun-Hwa' residence. Korean architects discussed about improving conventional dwelling spaces and made an effort to simplify dwelling spaces and improve hygienic conditions of conventional dwelling spaces. Increasing spatial efficiency became one of ideological background of architectural planning of 'Mun-Hwa' residence. Especially, unreasonable organization of conventional residences which separated dwelling spaces according to the distinction of sexuality had to be improved. Korean architects planned 'Mun-Hwa' residence as single structure(mass) to unite scattered dwelling spaces into integrated housing plan.
In regarding to hygienic awareness, when korean architects planned 'Mun-Hwa' residence, they arranged important rooms as like living(family) room or dining room to be faced south and well lighted and well ventilated for improving hygienic conditions of dwelling spaces. Also, korean architects made various inquiries and discussed about improving kitchen equipments and traditional floor heating equipment(On-Dol).
After all, korean architects wanted to create a new style of residence to improve an unreasonableness of conventional residences, and 'Mun-Hwa' residence had specific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as a modern residence which korean architects headed to plan ;
First, 'Mun-Hwa' residence introduced as centralized housing plan as a model of the improvement of conventional residence. Second, architectural orders of western or japanese style mingled with ones of korean traditional style in 'Mun-Hwa' residence as entrance hall, western style reception room(parlour), maid's room, bathroom for example. And a manner of seating using chairs was brought into the style of living which would be assumed in 'Mun-Hwa' residence. Third, traditional way of composing dwelling spaces was maintained, receiving the characteristics of dwelling spaces of japanese style simultaneously, which central corridor was put at the heart of house for improving arrangement of rooms and flow lines. Fourth, lavatory and bathroom were placed inside of the house.
These conceptual factors of planning 'Mun-Hwa' residence remarkably appeared from early 1930s among the examples of 'Mun-Hwa' residence planned by architects. Th architectural concept of 'Mun-Hwa' residence as like union and integration of dwelling spaces, adopting architectural orders from western or japanese style(entrance hall, central corridor), abolishing traditional floored room, making harmonious home life and so on formed ideological background of modernization of korean urban dwellings after Japanese colonial period. 'Mun-Hwa' residence is very important historic evidence which can explain the process of variation of conventional residence into formal urban dwellings in present times.
「文化住宅」とは1920年代以後、生活改善運動が最も活発に展開されていた時期に登場した用語であり、当時の日刊新聞や大衆雑誌の中で住宅の形式に拘らず非常に広義的な意味で使われていた。学術的に文化住宅は都市住宅の一つの類型で、一部の資本家階層から発生された高級住宅として扱われているが、文化住宅の用語の意味や学術的な定義を総合してみれば、当時の言論媒体では新しい住宅として生活改善運動とともに大衆の注目の的であった。
本研究は文化住宅が特定の時期に現れた住宅類型ではなく、言論媒体の中で現れる住居変遷を代弁する概念的な対象であることに着目し、文化住宅から発見される思想的理念と住居計画的な特徴を把握することで韓国住居の近代化の思想的な背景を明らかに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文化住宅の理念的な背景として生活改善運動の具体的な内容を考察するため、日帝強占期に発刊された各種新聞と大衆雑誌の生活改善に関わる記事を収集・分析し、韓人建築家及び在鮮日本人建築家たちの住宅改良論と住宅計画案、各種博覧会と住宅懸賞設計、そして実際に建設された文化住宅の事例を中心に文化住宅の計画概念と建築特徴を分析した。本研究の時間的範囲は、文化住宅を中心に生活改善運動と住宅改良論が最も盛んで展開されていた日帝強占期に限る。韓国人が発刊していた日刊新聞2種と大衆雑誌24種、そして学会誌8種を対象とし総計409件の記事を収集․分析して、付加的に在鮮日本人が発刊した日刊新聞1種と大衆雑誌8種からも記事を収集して分析に活用した。本研究は全て六つの章で構成されていて、その内容は次のように要約・整理される。
1章では研究の問題意識として文化住宅の用語的使いと文化住宅に関する研究から文化住宅の学術的な定義を明らかにして、その問題点を指摘した。そして研究の進行と分析に使った刊行物の種類を述べた。
2章では文化住宅の概念が発生し韓半島に流入され一般大衆に文化住宅が認識されていく過程を明らかにした。文化住宅という用語は1922年東京で開かれた平和記念博覧会の文化村で実物とともに始めて登場した。実物としての文化住宅は欧米式の外観と儀装を備えた洋風住宅であって、居間と食堂を中心にする居間中心型の間取りを取り、いす式生活を基本とした。また、在来の住宅からは見られなっかた応接室や書斎という新しい機能の部屋が現れ、テーブル、いす、ベッド、児童用机、本棚、カーテン、カーペットなど、室内は欧米式を目指す完全に新しい生活様式が提案されていた。文化住宅は以前は見かけなかった異国的は外観と田園的且つ牧歌的な雰囲気を漂わせる洋式住宅として始まった。特に、言論媒体を通して文化住宅が韓半島に知り渡るようになり、文化住宅は住居計画的な側面よりバンガロー風の外観から大衆に強い印象を与えることになる。大衆は文化住宅と言えば、2-3階建ての洋館、洋風の応接室とバルコニーがある住宅、西洋式家具、教養のある生活ができる住宅としてイメージしていた。詰り、韓半島での文化住宅は住宅洋式としてではなく、新しい住宅としての洋風化という強いイメージを大衆の心に刻み付けていた。
3章では1920年代を前後に文化住宅が実物として現れるまでその思想的な根拠となる生活改善運動の理念と内容を明らかにした。日帝強占期の生活改善は衛生概念と科学知識の探求をもとに個人の生活問題から家庭生活と社会生活に至るまで生活全般の総体的な改革を意味していた。特に、節約と質素を基本にする経済概念は物資と消費を節約し時間と労働を節約して家庭経済の基礎を整え生活の能率を向上させる規範として働いた。また、住宅改良論でも空間を単純化し空間の効率を増進させるための住居計画的概念の思想的な根拠となった。そして、物質的な改善とともに生活改善の精神的な要件として個人の内面の道徳的修養と他人の人格尊重が協調され、在来の家族制度から抜け出して女性と児童を中心に単純化された家庭の構造は生活の便利と経済、趣味、余暇、家族団らんなどの新しい家庭徳目の実践が要求された。衣服様式の統一問題や規則的な食習慣の問題は女性の家事労働節約とつながる重要な改善事項であって、住宅改良論でもオンドル改良の問題や住宅内の動線問題と結び付けられ文化住宅の重要な概念として発展させるもととなった。
4章では生活改善運動の考え方から行われていた建築家たちの住宅改良論について考察した。日帝強占期の住宅改良論は住宅の衛生的、構造的改善に関する論議だけでなく不都合な生活習慣と住宅の使い方、そして生活様式の改善に関わる論議にまで広がった。衛生と経済概念に基いて在来住宅の採光・換気改善、台所の設備改善、オンドル改良の問題を重要に扱ったし、建築家たちは住宅改良の研究を通じて合理的な改良住宅としての新しい住宅様式を見つけようとした。之は行廊の廃止、外廊と内廊の統合関係、内房と台所の位置変更、台所とオンドルの改良など、あらゆる住宅改良の論題がまとまってこそ可能なことであった。特に、外廊と内廊を統合する問題と内房と台所の位置を変更する問題は新たな住宅の平面を作り出すための最も中点的な平面計画的概念であった。
5章では建築家たちが提案した文化住宅計画案を通じて文化住宅の平面計画と折衷様式が成り立っていく過程を考察した。建築家たちの文化住宅計画案は在来住宅の不都合は欠点を根本的に間取りを改善し集中式平面に絞ることで解決するのが最も重要な改善の問題であった。集中式平面への改善は実用性と科学性、空間の経済性、生活能率の向上など、極合理的な建築理念を根拠としていた。文化住宅計画案は各室の有機的なつながりのため玄関を廊下を導入し、浴室と洗面所、台所のような設備空間は一ヶ所に集中して住宅空間をできる限り経済的且つ能率的に計画しようとした。特に、家族室としての内房と児童室、主人室、婦人室などを南向きに配置し採光と換気などの衛生問題を解決し、台所と便所、浴室、玄関などの付属空間は住宅の後方に配置することで家族本位の近代的な住居計画的概念を確立した。居間中心型住宅は家族本位を実現するため欧米式住宅をそのまま取り入れた形で現れることになり、平面計画的要素より欧米式住宅、特にバンガロー住宅の切妻と出窓、連歌造りのような平面計画の外的要素だけ残して長く続くことはできなかった。韓人建築家たちにおいて集中式平面への改良は住宅の様式を決める大事な問題であったゆえ、在来住宅の内廊の空間
構造を維持しつつ各機能室を追加する分散型の計画案と、中廊下を利用して各部屋の間の動線問題を解決すると同時に最も効率的に配置できる中廊下型の計画案などが提案された。このような流れの中、韓人建築家たちの文化住宅計画案は中廊下型住宅の平面配置手法を部分的に取り入れていて家族本位の集中式平面計画の概念を確立させた。
6章は本研究の結論であり、文化住宅を通じて見た韓国住居の近代化の思想的な背景と、日帝強占期に出現された文化住宅の計画理念と住居計画的な特長は次のようである。
1920年代に本格的に生活改善運動が展開される以前から近代的な衛生概念と科学知識に基いた生活改善に関する新しい認識が現れていた。無論、当時の知識人たちの意識は未だ成熟していないのであったが、衛生と科学に基いた在来住宅に関する考え方は新しい住居に対する要求を形成させ、近代化という住居変遷の出発点となったと言える。日帝強占期の住宅改良論は「経済生活」の思想と「家族本位」の思想がもととなって進んでいた。特に、家族本位思想は1920年代の初め、生活改善運動が始まる頃、様式化の傾向とかみ合って現れた。之は文化住宅の概念が韓半島へ流入されて、「文化生活」または「文化住宅」に込められている家族本位の計画概念が、当時急激な家族制度の変化とともに現れていたのであった。また、経済概念は在来住宅の採光・換気改善、台所の設備改善、オンドル改良の問題でだけでなく、建築家たちによる合理的な改良住宅として妥当な住宅様式の模索に至るまで最も重要な概念であった。
日帝強占期の住宅改良論は文化住宅を目指していた。文化住宅は外来から流入されたものではあったが、その背景として生活改善と住宅改良の理念が重なっていて、建築家によって自生的に都市住居の新たな類型を確立する土台となった。文化住宅計画案の中、韓人建築家たちは在来住宅の分散されている空間構造を最も大きな欠点として捉えていて、在来住宅で外廊と内廊のよう性別によって取り分けられる空間分化を一つの平面に集約された構造の中でも生かす方法を模索していた。ついては、統合された空間の中、各室の間の有機的なつながりと空間の無駄を無くす方法が検討され、之は玄関と廊下を平面計画の要素として受け入れるきっかけとなった。間取りにおいて家族本位の近代的な住居計画的理念は内房の位置変更に重大な影響を与えた。家族構成員の間の尊重と化合は、つまり各室の呼び名の変更という形で現れて、家族生活空間は婦人室、主人室、児童室、老人室など、その他応接室、書斎、書生室などという機能に応じて住居空間が分化しつつあった。このように韓人建築家たちは在来住宅の改善方案の一つの枠としてとして集中式の平面構造を受け入れていた。
外廊と内廊の統合問題、性別による空間構造の分化を解決するため、主人室と婦人室の概念を受容した。また、在来住宅の行廊を除いたため外廊の機能と行廊の機能が統合され玄関の機能を持つ領域が生まれた。玄関周辺に応接室と書生室を配置して空間の能率を向上させ、便所、浴室と洗面所のような付属空間も玄関周辺に配置して衛生問題を解決すると同時に簡潔な平面構造の計画ができるようにした。そして、空間効率の問題と各室の間のつながりのため大庁を廃止し廊下を取り入れた。家族室としての内房と児童室、主人室、婦人室などの重要室は南向きに配置して採光と換気などの衛生問題を解決した。台所と便所、浴室、玄関などの付属空間は機能によって各自妥当な向きに配置された。
集中式平面の計画概念は1930年代からもっと確実に現れていて、平面類型は中廊下を採用した集中式平面が住宅改良の最も理想的な住居計画として建築家たちに受け入れられた。外廊と内廊の統合問題、集中式の平面構造、玄関と廊下の導入、大庁の廃止、家族室と児童室、婦人室など、文化住宅から発見された多様な計画概念は光複以後の都市住居の典型的な要素を説明するに当たって重要な根拠となり、ついては現在の都市住居と変貌させる基盤となったと拡大解釈できる。“文化住宅”一词出现在1920年后生活改善运动最为活跃的时期。查看当时的日刊报纸和大众杂志,“文化住宅”不仅仅局限在住宅形式的层面上词义非常广泛。学术上认为文化住宅作为城市住宅的一个类型产生于少数资本家阶层的高级住宅;但综合考虑文化住宅的用语和学术定义文化住宅既是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出现的资本家阶层的一种住宅类型同时又是当时言论媒体上作为一种新式住宅同生活改善运动大众比较关心的对象之一。
本论文认为文化住宅不是特定时期出现的住宅类型而是言论媒体上出现的阐释住居变迁的概念对象。本论文的研究目的是通过分析文化住宅中的思想理念和住宅计划特性阐明韩国住宅近代化过程的思想背景。生活改善运动作为文化住宅的理论基础为了考察其具体的内容和方式将研究范围限定在生活改善论和住宅改良论最活跃的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收集分析该时期发刊的各种报纸和大众杂志中关于生活改善的记录并分析韩人建筑师及在鲜日本
建筑师的住宅改良理论和住宅计划案各类博览会和住宅现象设计及已建成的文化住宅等事例。其中有韩国人发行的日刊报纸2种和大众杂志24种会刊8种共409件记事。此外还收集了在鲜日本人发行的日刊报纸1种和大众杂志8种引用于论文的分析当中。
本论文分为6个章节,具体内容如下:
第一章提出问题,分析文化住宅的用语及相关研究中对文化住宅的定义,并指出在本论文研究,分析中所涉及到的刊物的类型。
第二章分析文化住宅概念的产生及引入韩半岛并为大众所吸收的整个过程。文化住宅始于1922年代在东京开展的和平纪念博览会的文化村。当时实际建成的文化住宅采用了欧式外观和内部装修:平面形式为起居室和饭厅为中心的起居中心型的布局,并以椅子式生活为基本;室内出现在过去住宅中从未见现过的接待室,书斋等新的功能空间;桌子,椅子,床,儿童书桌,书架,窗帘,地毯等陈设完全体现欧式生活方式。当时在媒体的作用下,文化住宅陆续传入韩国,并广泛传播。但文化住宅在住宅计划方面的影响比较薄弱,相反国外bungalow式住宅形态带给人们强烈的印象。提及文化住宅,人们想到的是2-3层的洋屋,具有洋风接待室和阳台的住宅,欧式家具的陈设,比较有文化教养生活的那种住宅。从上述分析可以看出,韩半岛内的文化住宅并不是发于一种住宅形式,而是将欧式新住宅概念灌输到人们的思想中。
第三章考察1920年代前后在文化住宅出现之前的思想背景即生活改善运动的理念和内容。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的生活改善运动以卫生概念和科学知识的探求为基础,涉及个人生活问题到家庭生活及社会生活的全面改革。特别强调以节俭为基本的经济概念。节俭作为家庭经济的基础和提高生活效率的规范,可以节约物资和消费,时间和劳动,并且可以简化空间,增强空间效率,为住宅改良提供住宅计划方面的思想基础。物质改善要求强调个人内在的道德修养和对他人的人格尊重,要求人们脱离传统的家族制度,形成以女人和儿童为中心的简单的家庭模式,从而带来生活的便利和经济,趣味,余暇,家庭团乐等新的家庭德目。而且衣服样式的统一和规律性的饮食习惯等问题与女性的家庭劳动节约紧密相连,同样是重要的改善项目,在住宅改良中与温突改良及内部动线相结合,成为发展文化住宅的重要的基础。
第四章介绍生活改善运动中建筑师的住宅改良论。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的生活改良论,不仅涉及住宅的卫生,构造改善,还论及对不合理生活习惯及住宅使用方法,生活样式的改良。建筑师们通过对住宅改良的研究,探索新的合理的住宅样式,他们从卫生和经济概念切入,重点分析过去住宅的采光,通风,厨房设备改善,温突改良等问题。这些问题的解决需要考虑废止行廊,统合外栋和内栋,改变内室和厨房的位置,改良厨房和温突等诸方面改良的论题。特别是统合外栋和内栋,变换内室和厨房位置的问题是,创造新式住宅平面类型的最重要的平面计划概念之一。
第五章根据建筑师提出的文化住宅计划方案,考察文化住宅的平面计划和折衷样式形成的过程。当时建筑师们提出的文化住宅计划方案,重点为改善过去住宅中存在的缺点,将住宅平面改为集中式布局,以实用性,科学性,空间的经济性,生活效率的提高等合理的建筑理念作为背景。文化住宅计划方案为了实现各个房间的有机连接,导入玄关和走廊,把浴室,洗面室,厨房等设备空间集中于一处,使住宅空间计划尽可能经济化,效率化。尤其是内室,儿童室,主人室,主妇室等空间南向布置,解决采光,通风等卫生问题;厨房和厕所,浴室,玄关等附属空间布置在住宅背面,形成以家庭为中心的近代住宅计划概念。起居中心型住宅以家族本位为目的,照搬欧式住宅,侧重于外部形态,特别是局限在模仿bungalow式住宅的屋顶和凸窗,砖混构造等外部要素上。而韩人建筑师却把过去平面向集中式平面改良,成为决定住宅样式的重要因素。具体形式有:保留过去住宅中内栋的空间,在此基础上附加其它功能空间,形成分散型的平面;还有利用中廊解决各个房间的动线的中廊型平面,可以最有效地布置内部空间。在此过程中,韩人建筑师部分采纳中廊型平面,并确立集中式平面计划的概念。
第六章为本研究的结论部分。通过文化住宅整理韩国近代化的思想背景和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出现的文化住宅的计划理念及特性。具体如下:
在1920年代的生活改善运动之前,就已经有了以近代卫生概念和以科学知识为背景的对生活改善的新认识。虽然当时知识阶层的意识水准尚未成熟,但他们开始从卫生和科学的角度观察过去住宅,这可以说是新的住宅要求随着近代化住宅变迁的一个出发点。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的住宅改良论以“经济生活”的思想和“家族本位”思想为基础并行。尤其是“家族本位”思想,是在1920年代初生活改善运动的初始阶段伴随着洋风化一同出现。这是因为当时出现文化住宅实物的同时文化住宅的概念流入韩半岛,包含在“文化生活”或“文化住宅”内的家族本位的概念,在当时激变的家族制度下逐渐被发现。此外,经济概念不仅涉及过去住宅的采光,通风,厨房改善,温突改良等问题,而且也是建筑师们通过改良住宅摸索合理的住宅样式的一个重要计划理念。
日本帝国主义强占时期的住宅改良论向往一种文化住宅。虽然当时文化住宅从国外引进,但其背景下生活改善及住宅改良等理念相互重叠,并通过建筑师铺垫形成城市住宅新类型的基础。在文化住宅计划方案中,韩人建筑师们认为过去住宅中分散式空间结构为最大的缺点,并努力摸索如何将过去住宅中按性别划分的内栋和外栋统合为一个集中式平面等问题。同时,检讨在统合的空间内如何将各室有机联系而减少空间的浪费的问题,这成为平面计划中引入玄关和走廊的一个契机。而且在各个房间的布置中,“家族本位”之近代住宅计划理念对过去住宅里内室的位置变化产生巨大影响。家庭成员之间的尊重和和睦改变了房间的名称,家庭生活空间逐渐划分为主妇室,主人室,儿童室,老人室,并且还出现接待室,书斋,下人房等空间。韩人建筑师们把集中式平面作为对过去住宅改良的一种模式所接受。
为了解决外栋和内栋的统合及性别空间结构的分化问题,采用了主人室和主妇室的概念;并随着行廊的消失,外栋和行廊的功能被统一,形成具有门厅功能的新的领域。在玄关周边布置接待室和下人房,提高空间的效率;厕所,浴室,洗面室等附属空间也布置在玄关周边,从而解决卫生问题的同时将平面结构简捷化。为了解决空间的效率化和个房间的联系问题,取消大厅并活用走廊空间。内房,儿童室,主人室,主妇室等家庭内部使用的主要房间南向布置,解决采光和换气等卫生问题;厨房和厕所,浴室,玄关等附属空间按照功能沿合理方向布置。
从1930年代开始,集中式平面的计划概念更为明显,大多数建筑师们采用的理想方案为中间设有走廊的集中式平面。外栋和内栋的统合问题,集中式平面结构,玄关和走廊的导入,大厅的取消及家族室,儿童室,主妇室的产生等这些在文化住宅中所体现的计划概念,不仅是解释光复以后城市住宅典型要素的重要根据,而且可以认为它是向现代城市住宅变化的基石。The word of 'Mun-Hwa' residence emerged in 1920s when the movement for improving living conditions was carried out actively among the intellectuals in Korea. Originally 'Mun-Hwa' is the word composed of chinese letters which means 'Culture'. But the name of 'Mun-Hwa' residence of those days meant modern or cultured residence planned by architects.
In most of academic researches, 'Mun-Hwa' residence was generally considered as one of urban dwellings which a few higher class persons could possess and live in. But the word of 'Mun-Hwa' residence in newspapers or periodicals of those days was used in a broader meaning which did not set limits to a specific form of residence. 'Mun-Hwa' residence became the center of public interest as a modern residence in social atmosphere which the general public gave a great attention to the movement for improving living conditions.
This study takes notice of the meaning of 'Mun-Hwa' residence in the press of those days and aims to make a close inquiry into the ideological background of modernization of korean urban dwellings through analyzing the architectural concepts and characteristics of 'Mun-Hwa' residence. For investigating into the contents of the movement for improving living conditions to catch various architectural concepts of planning 'Mun-Hwa' residence, this study collected 409 articles related to the movement among newspapers and periodicals published by korean and japanese publishing companies in Japanese colonial times. And this study analyzed the architectural concepts and characteristics of 'Mun-Hwa' residence which korean and japanese architects dealt with those of planning modern residences for the discussion of improving conventional residences and preparation of housing exhibitions and housing plan competitions. The contents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below ;
'Mun-Hwa' residence was introduced for the first time in the exposition held at Tokyo of Japan in 1922. The name of 'Mun-Hwa' which showed modern residences exhibited in this exposition derived from calling the exhibition grounds as 'Mun-Hwa' village. 'Mun-Hwa' residences as the actual objects were western style residence equipped by western architectural order and decoration, and put a living room at the heart of residence for accounting family life as one of important ideological factor of planning modern residence. The interior of living room or reception room(parlour) was decorated with western style furnitures as like chairs, tables, bookshelves, curtains, carpets and so on.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Mun-Hwa' residence was planned to create newly western style living at the beginning. Simultaneously, These 'Mun-Hwa' residences were introduced to the general public of Korea by way of the press, and people began to think 'Mun-Hwa' residence as western style house. The initial impression about 'Mun-Hwa' residence was very strong and maintained for a long time, giving a great influences on the planning of modern residences by architects.
Korean architects put ideological factors for the planning of 'Mun-Hwa' residences as like advancing to the cultured(modern) life, respecting for family life, respecting for privacy of family members, the sense of economy, hygienic awareness and so on.
First of all, the architects suggested 'Mun-Hwa' residence as the direction of the improvement of dwelling spaces which focused on making harmonious home life. The architects respected the personality of women and juveniles, and composed cultured(modern) family system which regarded family member's interests, leisures(hobbies) or pastimes, casting off the conventional family system.
The sense of economy and hygienic awareness were very important ideological factors of the movement for improving living conditions and also influenced korean architects to plan 'Mun-Hwa' residence. Korean architects discussed about improving conventional dwelling spaces and made an effort to simplify dwelling spaces and improve hygienic conditions of conventional dwelling spaces. Increasing spatial efficiency became one of ideological background of architectural planning of 'Mun-Hwa' residence. Especially, unreasonable organization of conventional residences which separated dwelling spaces according to the distinction of sexuality had to be improved. Korean architects planned 'Mun-Hwa' residence as single structure(mass) to unite scattered dwelling spaces into integrated housing plan.
In regarding to hygienic awareness, when korean architects planned 'Mun-Hwa' residence, they arranged important rooms as like living(family) room or dining room to be faced south and well lighted and well ventilated for improving hygienic conditions of dwelling spaces. Also, korean architects made various inquiries and discussed about improving kitchen equipments and traditional floor heating equipment(On-Dol).
After all, korean architects wanted to create a new style of residence to improve an unreasonableness of conventional residences, and 'Mun-Hwa' residence had specific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as a modern residence which korean architects headed to plan ;
First, 'Mun-Hwa' residence introduced as centralized housing plan as a model of the improvement of conventional residence. Second, architectural orders of western or japanese style mingled with ones of korean traditional style in 'Mun-Hwa' residence as entrance hall, western style reception room(parlour), maid's room, bathroom for example. And a manner of seating using chairs was brought into the style of living which would be assumed in 'Mun-Hwa' residence. Third, traditional way of composing dwelling spaces was maintained, receiving the characteristics of dwelling spaces of japanese style simultaneously, which central corridor was put at the heart of house for improving arrangement of rooms and flow lines. Fourth, lavatory and bathroom were placed inside of the house.
These conceptual factors of planning 'Mun-Hwa' residence remarkably appeared from early 1930s among the examples of 'Mun-Hwa' residence planned by architects. Th architectural concept of 'Mun-Hwa' residence as like union and integration of dwelling spaces, adopting architectural orders from western or japanese style(entrance hall, central corridor), abolishing traditional floored room, making harmonious home life and so on formed ideological background of modernization of korean urban dwellings after Japanese colonial period. 'Mun-Hwa' residence is very important historic evidence which can explain the process of variation of conventional residence into formal urban dwellings in present times.
주제어
#건축환경공학
※ AI-Helper는 부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