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일본의 차문화(茶文化)라고 하면 엄격한 격식에 따라 말차(抹茶)를 저어 마시는 다도(茶道) 즉 차노유(茶湯)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다도는 크게 나누어 차노유와 전다도(煎茶道)라는 두 갈래의 다도형식이 존재하고 있다. 일본 차문화의 역사는 헤이안(平安, 794〜1192)시대 초기 사이초(最澄, 767〜822), 구카이(空海, 774〜835), 에이추(永忠, 743〜816) 등 견당승(遣唐僧)에 의해 중국의 선진문물과 함께 들어와 선원다례(禪院茶禮)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본 차문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가마쿠라(1192〜1333)시대 승려 민난 에이사이(明菴栄西, 1141〜1215)가 송(宋)에 유학 갔다가 귀국하면서 차씨와 말차 제조법을 배워 온 후 그의 제자인 묘에(明惠, 1173〜1232)에게 차씨를 보내서 교토(京都)의 도가노오(栂尾)에 심게 하면서 차문화는 꽃을 피웠다. 이후 차노유는 노아미(能阿弥, ?〜1476), 무라타 슈코(村田珠光, 1422〜1502), 다케노 조오(武野紹鷗, 1502〜1555), 센리큐(千利休, 1522〜1591)를 거치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유파만도 40여개가 넘게 발전을 거듭하는 긴 역사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일본다도계의 가장 큰 유파인 우라센케(裏千家)의 경우 2008년 7월 일본국내에 165지부와 2지소, 해외 35개국에 99개 출장소를 둘 정도로 국제적으로 성장하였음을 우라센케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성장의 원동력은 일본의 다른 전통예능과 마찬가지로 차노유도 이에모토(家元)라는 제도 하에 그 사상과 예법을 계승 발전시켜 온 데 있다. 이에모토 제도란 일본의 예도(芸道) 등을 가전(家伝)으로 계승하는 가계의 이에모토(家元)가 유파를 통솔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이에모토라 불리는 큰 스승과 말단 제자와의 사이에 예능을 전수하는 대행기관 즉, 나토리(名取)라는 사장(師匠)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토리 사장은 이에모토를 대신하여 예능을 교수(敎授)할 수는 있어도 면허장(免許狀)의 발행권한은 인정하지 않는 제도이다. 나토리를 정함으로써 아무리 많은 제자가 생겨나도 이에모토를 통해서만 면허장을 발행하기 때문에 말단 제자까지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간 스승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에모토의 수입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일본의 오랜 전통예능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
흔히 일본의 차문화(茶文化)라고 하면 엄격한 격식에 따라 말차(抹茶)를 저어 마시는 다도(茶道) 즉 차노유(茶湯)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다도는 크게 나누어 차노유와 전다도(煎茶道)라는 두 갈래의 다도형식이 존재하고 있다. 일본 차문화의 역사는 헤이안(平安, 794〜1192)시대 초기 사이초(最澄, 767〜822), 구카이(空海, 774〜835), 에이추(永忠, 743〜816) 등 견당승(遣唐僧)에 의해 중국의 선진문물과 함께 들어와 선원다례(禪院茶禮)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본 차문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가마쿠라(1192〜1333)시대 승려 민난 에이사이(明菴栄西, 1141〜1215)가 송(宋)에 유학 갔다가 귀국하면서 차씨와 말차 제조법을 배워 온 후 그의 제자인 묘에(明惠, 1173〜1232)에게 차씨를 보내서 교토(京都)의 도가노오(栂尾)에 심게 하면서 차문화는 꽃을 피웠다. 이후 차노유는 노아미(能阿弥, ?〜1476), 무라타 슈코(村田珠光, 1422〜1502), 다케노 조오(武野紹鷗, 1502〜1555), 센리큐(千利休, 1522〜1591)를 거치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유파만도 40여개가 넘게 발전을 거듭하는 긴 역사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일본다도계의 가장 큰 유파인 우라센케(裏千家)의 경우 2008년 7월 일본국내에 165지부와 2지소, 해외 35개국에 99개 출장소를 둘 정도로 국제적으로 성장하였음을 우라센케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성장의 원동력은 일본의 다른 전통예능과 마찬가지로 차노유도 이에모토(家元)라는 제도 하에 그 사상과 예법을 계승 발전시켜 온 데 있다. 이에모토 제도란 일본의 예도(芸道) 등을 가전(家伝)으로 계승하는 가계의 이에모토(家元)가 유파를 통솔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이에모토라 불리는 큰 스승과 말단 제자와의 사이에 예능을 전수하는 대행기관 즉, 나토리(名取)라는 사장(師匠)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토리 사장은 이에모토를 대신하여 예능을 교수(敎授)할 수는 있어도 면허장(免許狀)의 발행권한은 인정하지 않는 제도이다. 나토리를 정함으로써 아무리 많은 제자가 생겨나도 이에모토를 통해서만 면허장을 발행하기 때문에 말단 제자까지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간 스승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에모토의 수입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일본의 오랜 전통예능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전해 온 것은 이에모토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그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다도 본연의 자세 즉 선(禪)의 세계와 다도가 동일하다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세속의 이익을 쫓는데 이에모토 제도가 일조를 한다는 점이다. 제자는 이에모토에게 교습비와 면허장을 받을 때의 공식적인 수수료와는 별도로 비공식적인 사례금과 각종행사에 드는 비용, 도구의 구입비용 등으로 상당한 지출을 해야 한다. 특히 이에모토의 싸인 하나에 물건의 평가가 급격히 높아지는 하코가키(箱書)라는 시스템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이에모토 제도하에서 발전했던 차노유의 부패를 비판하고 부패한 선승(禪僧)계를 비판하여 생겨난 것이 전다도(煎茶道)라 할 수 있다. 이 전다도의 원류를 살펴보면 정행검덕(精行儉德)의 차정신에 바탕을 둔 육우의『다경(茶經)』에서 찾을 수 있다. 당(唐), 송(宋)에서 명(明)대에서도『다경』류의 차를 감상하면서 음다 풍습은 계속되어 문인고사(文人高士)들 사이에서 선경에 노니는 경지를 이상으로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다풍은 중국 당(唐)대의 시인 노동(盧仝, 〜835)을 통하여 이어졌고 이 풍습을 일본에 전한 것은 일본의 3대 선종(禪宗)의 하나인 황벽종(黃檗宗)의 시조 은원(隱元)선사로 알려져 있다. 이 새로운 전다풍을 선승들과 지식인 사이에 유행 시킨 것은 바이사오(賣茶翁, 1675〜1763)라 불리는 인물이다. 바이사오가 전다풍의 시조로 불리며 에도(江戶, 1603〜1868)말기부터 메이지(明治, 1868〜1912)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종래의 다도에 비하여 형식면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 전다도 유파의 이름에‘바이사’라는 글자가 많은 것은 그가 일본 전다도의 시조(始祖)라는 이유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차를 팔던 노인 바이사오에 의해 시작되어 전다도는 지식인 문인들 사이에서 유행하여, 일본의 거대 예능집단으로 자리 잡게 된다. 현재 전일본전다도연맹(全日本煎茶道聯盟)에 등록된 39개의 유파와 미등록 유파를 모두 합하면 100여개의 유파가 활동하는 전다도 문화를 형성하였다. 무엇보다도 전다도의 중요성은 차의 정신이다. 차노유의 규범화된 형식은 배제하지 않았지만 문인고사(文人高士)들이 즐기던 고고한 차정신은 전다도가 지향하는 중심사상이다. 또한 전다도는 유(儒)․불(佛)․도(道)의 사상이 내재되어있는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다. 문방장식으로 선비들의 애완품인 붓, 벼루 등을 다실에 갖추고 매난국죽 등 선비취향의 꽃 장식을 함으로써 차노유와 차별화했다. 또한 다양한 꽃, 나무, 과일 등 자연을 실내에 옮겨와 불로불사의 도교사상을 표현했으며 도교에서 지향하는 불로장생의 단약(丹藥)이 바로 차였기 때문에 차를 마심으로써 불로장생을 꿈꾸는 도교사상이 내재되어있다. 찻자리에 향을 피워 주위를 맑게 하는 불교사상도 전다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다도 역시 이에모토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본래의 의미를 잃어가게 되어 비판 받게 되었다. 일정한 형식 없음을 표방하였던 전다도는 수많은 종류의 다도구를 구비해야 하는 등 형식화 되었으며, 매년 열리는 전다도 대회장은 다도구 판매장을 방불케 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기는 차노유와 별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일본인이 격식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 신분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평등사상을 주창(主唱)하던 불교사상의 연장선상에 있던 센리큐의 와비차 정신은 약화되고, 다도의 사상은 막부의 정치이념에 맞추어 불교적 다도관에서 유교적(儒敎的) 다도관으로 변화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요소를 수입하였으나 형이하학적 형태로 변화시킨 일본의 주자학은 바꾸어 말하면 성선설(性善說)적 사유형태를 수입하여 그것을 성악설(性惡說)적 사유형태로 변환시킨 모습으로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오늘날 격식을 중요시하는 일본의 독특한 다도 문화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전다도는 일본의 다도문화의 한 흐름으로 당당히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의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풍류로서 즐기던 차문화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40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일본의 전다도의 배경에는 이에모토 제도가 있으며 이 제도는 일본인의 정신의 근간(根幹)을 이루고 있다. 겉으로 보여지는 절제된 미의식 뒤에는 이에모토 제도라는 거대한 피라밋 형태의 조직체가 있어서 내면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또한 오늘날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로 다도를 꼽는 이유도 이에모토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일본의 전다도 문화를 이에모토 제도를 중심으로 고찰함으로써 일본의 다도문화 발전사를 규명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흔히 일본의 차문화(茶文化)라고 하면 엄격한 격식에 따라 말차(抹茶)를 저어 마시는 다도(茶道) 즉 차노유(茶湯)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다도는 크게 나누어 차노유와 전다도(煎茶道)라는 두 갈래의 다도형식이 존재하고 있다. 일본 차문화의 역사는 헤이안(平安, 794〜1192)시대 초기 사이초(最澄, 767〜822), 구카이(空海, 774〜835), 에이추(永忠, 743〜816) 등 견당승(遣唐僧)에 의해 중국의 선진문물과 함께 들어와 선원다례(禪院茶禮)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본 차문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가마쿠라(1192〜1333)시대 승려 민난 에이사이(明菴栄西, 1141〜1215)가 송(宋)에 유학 갔다가 귀국하면서 차씨와 말차 제조법을 배워 온 후 그의 제자인 묘에(明惠, 1173〜1232)에게 차씨를 보내서 교토(京都)의 도가노오(栂尾)에 심게 하면서 차문화는 꽃을 피웠다. 이후 차노유는 노아미(能阿弥, ?〜1476), 무라타 슈코(村田珠光, 1422〜1502), 다케노 조오(武野紹鷗, 1502〜1555), 센리큐(千利休, 1522〜1591)를 거치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유파만도 40여개가 넘게 발전을 거듭하는 긴 역사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일본다도계의 가장 큰 유파인 우라센케(裏千家)의 경우 2008년 7월 일본국내에 165지부와 2지소, 해외 35개국에 99개 출장소를 둘 정도로 국제적으로 성장하였음을 우라센케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성장의 원동력은 일본의 다른 전통예능과 마찬가지로 차노유도 이에모토(家元)라는 제도 하에 그 사상과 예법을 계승 발전시켜 온 데 있다. 이에모토 제도란 일본의 예도(芸道) 등을 가전(家伝)으로 계승하는 가계의 이에모토(家元)가 유파를 통솔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이에모토라 불리는 큰 스승과 말단 제자와의 사이에 예능을 전수하는 대행기관 즉, 나토리(名取)라는 사장(師匠)이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토리 사장은 이에모토를 대신하여 예능을 교수(敎授)할 수는 있어도 면허장(免許狀)의 발행권한은 인정하지 않는 제도이다. 나토리를 정함으로써 아무리 많은 제자가 생겨나도 이에모토를 통해서만 면허장을 발행하기 때문에 말단 제자까지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간 스승의 수가 늘어날수록 이에모토의 수입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일본의 오랜 전통예능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전해 온 것은 이에모토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그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다도 본연의 자세 즉 선(禪)의 세계와 다도가 동일하다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세속의 이익을 쫓는데 이에모토 제도가 일조를 한다는 점이다. 제자는 이에모토에게 교습비와 면허장을 받을 때의 공식적인 수수료와는 별도로 비공식적인 사례금과 각종행사에 드는 비용, 도구의 구입비용 등으로 상당한 지출을 해야 한다. 특히 이에모토의 싸인 하나에 물건의 평가가 급격히 높아지는 하코가키(箱書)라는 시스템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이에모토 제도하에서 발전했던 차노유의 부패를 비판하고 부패한 선승(禪僧)계를 비판하여 생겨난 것이 전다도(煎茶道)라 할 수 있다. 이 전다도의 원류를 살펴보면 정행검덕(精行儉德)의 차정신에 바탕을 둔 육우의『다경(茶經)』에서 찾을 수 있다. 당(唐), 송(宋)에서 명(明)대에서도『다경』류의 차를 감상하면서 음다 풍습은 계속되어 문인고사(文人高士)들 사이에서 선경에 노니는 경지를 이상으로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다풍은 중국 당(唐)대의 시인 노동(盧仝, 〜835)을 통하여 이어졌고 이 풍습을 일본에 전한 것은 일본의 3대 선종(禪宗)의 하나인 황벽종(黃檗宗)의 시조 은원(隱元)선사로 알려져 있다. 이 새로운 전다풍을 선승들과 지식인 사이에 유행 시킨 것은 바이사오(賣茶翁, 1675〜1763)라 불리는 인물이다. 바이사오가 전다풍의 시조로 불리며 에도(江戶, 1603〜1868)말기부터 메이지(明治, 1868〜1912)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종래의 다도에 비하여 형식면에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 전다도 유파의 이름에‘바이사’라는 글자가 많은 것은 그가 일본 전다도의 시조(始祖)라는 이유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차를 팔던 노인 바이사오에 의해 시작되어 전다도는 지식인 문인들 사이에서 유행하여, 일본의 거대 예능집단으로 자리 잡게 된다. 현재 전일본전다도연맹(全日本煎茶道聯盟)에 등록된 39개의 유파와 미등록 유파를 모두 합하면 100여개의 유파가 활동하는 전다도 문화를 형성하였다. 무엇보다도 전다도의 중요성은 차의 정신이다. 차노유의 규범화된 형식은 배제하지 않았지만 문인고사(文人高士)들이 즐기던 고고한 차정신은 전다도가 지향하는 중심사상이다. 또한 전다도는 유(儒)․불(佛)․도(道)의 사상이 내재되어있는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다. 문방장식으로 선비들의 애완품인 붓, 벼루 등을 다실에 갖추고 매난국죽 등 선비취향의 꽃 장식을 함으로써 차노유와 차별화했다. 또한 다양한 꽃, 나무, 과일 등 자연을 실내에 옮겨와 불로불사의 도교사상을 표현했으며 도교에서 지향하는 불로장생의 단약(丹藥)이 바로 차였기 때문에 차를 마심으로써 불로장생을 꿈꾸는 도교사상이 내재되어있다. 찻자리에 향을 피워 주위를 맑게 하는 불교사상도 전다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다도 역시 이에모토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본래의 의미를 잃어가게 되어 비판 받게 되었다. 일정한 형식 없음을 표방하였던 전다도는 수많은 종류의 다도구를 구비해야 하는 등 형식화 되었으며, 매년 열리는 전다도 대회장은 다도구 판매장을 방불케 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기는 차노유와 별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일본인이 격식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 신분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평등사상을 주창(主唱)하던 불교사상의 연장선상에 있던 센리큐의 와비차 정신은 약화되고, 다도의 사상은 막부의 정치이념에 맞추어 불교적 다도관에서 유교적(儒敎的) 다도관으로 변화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주자학의 형이상학적 요소를 수입하였으나 형이하학적 형태로 변화시킨 일본의 주자학은 바꾸어 말하면 성선설(性善說)적 사유형태를 수입하여 그것을 성악설(性惡說)적 사유형태로 변환시킨 모습으로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오늘날 격식을 중요시하는 일본의 독특한 다도 문화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전다도는 일본의 다도문화의 한 흐름으로 당당히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과 중국의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풍류로서 즐기던 차문화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40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일본의 전다도의 배경에는 이에모토 제도가 있으며 이 제도는 일본인의 정신의 근간(根幹)을 이루고 있다. 겉으로 보여지는 절제된 미의식 뒤에는 이에모토 제도라는 거대한 피라밋 형태의 조직체가 있어서 내면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또한 오늘날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로 다도를 꼽는 이유도 이에모토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일본의 전다도 문화를 이에모토 제도를 중심으로 고찰함으로써 일본의 다도문화 발전사를 규명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一般的に日本の茶道といえば、厳格な形式に従い抹茶を点てて喫む茶の湯が思い浮かぶ。しかし、日本の茶道は“茶の湯”だけではなく“煎茶道”というもうひとつの大きな茶道形式がある。 日本の茶文化の歴史は平安時代の初め、最澄․空海․永忠など、遣唐僧たちにより先進文明とともにもたらされ、禅院茶礼として始まった。鎌倉時代の僧、明庵栄西が宋に留学し、二度目の帰国時にお茶の種と抹茶の製造方法を持ち帰った。そして弟子の明恵にお茶の種を送り京都の栂尾に植えさせたのが本格的な日本茶文化の始まりだ。 茶の湯は能阿弥、村田珠光、武野紹鷗、千利休を経て現在に至るまで、主な流派だけでも四十を超える発展を重ねた長い歴史を持つだけでなく、日本茶道会で一番大きい裏千家流派の場合、二00八年七月現在、日本国内に一六五支部と二支所、海外三十五カ国に九十九の海外支部を置く程、国際的な発展を遂げた。この成長の源は日本の他の伝統芸能と同じく、茶の湯が家元制という制度の下にその思想と作法を継承․発展させてきたからだ。 家元制度は日本の芸道を家伝として継承する家計の家元が流派を統率する制度である。家元制度の大きな特徴は、家元と呼ばれる大師匠と末端の弟子との間に家元の芸能を伝授する代行機関、つまり「名取」という師匠が置かれている点である。名取師匠は家元の代わりに芸能を教授することは出来ても、免許の発行権限は認めない制度である。名取を定めることによってどんなに多くの弟子がいても、家元を通してのみ免許状を発行するので、末端の弟子まで統制が可能なのである。従って中間の師匠の数が増える程、家元の収入が増えるのである。古い日本の伝統芸能が今まで温存されてきたのは、家元制度のおかげであるという肯定的な面がある反面、その問題点も指摘されている。その一つが茶道本来の姿、つまり禅の世界と茶道が同一であるという「茶禅一味」の精神とは遠い俗世の利益を求める部分が家元制度にはあるという点である。弟子は家元に月謝と免状の公の謝礼とは別に、非公式な謝礼金と各種行事の出費、道具の購入費用などで相当な出費を余儀なくされている。特に家元のサイン一つに茶道具の評価が高まる「箱書き」というシステムも問題点として挙げられる。このような家元制度の元で発展してきた茶の湯の腐敗を批判し、腐敗した禅宗を批判し、その反発で生まれたのが煎茶道である。この煎茶道の源流は静行倹徳のお茶の精神に基づく陸羽の『茶経』に見出せる。 唐․宋の時代、明代にも茶経流の喫茶の風流は受け継がれ、文人高士の間で仙境に遊ぶ境地を理想とする風習があった。この風習は唐代の詩人慮仝を通して受け継がれた。またこれを日本に伝えたのは、日本の三大禅宗の一つである黄檗宗の始祖隠元禅師と言われている。 禅僧たちの間で流行した煎茶風習は売茶翁という人物によって当時の知識人層に拡まり、売茶翁は煎茶道の始祖と呼ばれ、江戸末期から明治時代に全盛期を迎える。従来の茶道に比べ、形式の面で自由を追求する点が発展の契機となった。現在、煎茶道の流派の名前に「売茶」という文字が多いのは、彼が煎茶道の始祖であるという理由からである。一七三四年、道端で茶を売る老人․売茶翁により始まった煎茶道は、知識人․文人たちの間で流行し、日本の巨大芸能集団としてその地位を確かなものとした。現在、全日本茶道連盟に登録された三十九の流派と未登録流派を合わせ、百余りの流派が活動する煎茶道文化を形成した。 何よりも煎茶道で重要視されるのは茶の精神である。茶の湯の規範化された形式は排除しないけれども、文人高士たちが楽しんだ孤高な茶の精神は煎茶道が求める大切な中心思想である。また煎茶道は儒仏道の思想が内在する総合芸術であると言える。文房裝飾で鮮卑たちが好んだ筆, 硯などを茶室に取り揃え, 梅蘭菊竹等鮮卑の趣向の花を飾ることで茶の湯と差別化した。また、多様な花、木、果物等の自然を室内に取り入れ不老不死の道教思想を表現し、道教が目指す不老長生の丹藥がまさに茶であったがゆえに、茶を喫むことで不老長生を夢見る道教思想が内在する。又お茶席で香を焚き周りを清める仏教思想も煎茶道に見ることができる。 しかし煎茶道も家元制度を取り入れたことによって本来の意味が薄れてしまい、批判を浴びるようになった。形式に凝り固まらないことを掲げた煎茶道は、多くの茶道具の所持を強いられるなど形式化された。毎年開かれる煎茶道大会場は茶道具促販を思わせるなど、茶の湯のような形式化への道を歩むこととなった。 その思想的背景を見れば、江戸時代になると、身分による差別をなくし平等思想を主唱した仏教思想の延長線上にあった千利休の侘茶精神は薄れ、茶道の思想は幕府の政治理念にあわせ、仏教的茶道観から儒教的茶道観に変わった。そして朝鮮朱子学の形而上学的要素を取り入れたが定着せず、それを形而下学的形態に変えて日本に定着した朱子学は、言い換えれば性善説的思惟形態を取り入れ、それを性悪説的思惟形態に変えた形で定着したのだといえる。それが今日格式を重んじる日本の独特の茶道文化を形成したのである。 しかしながら煎茶道は、日本の茶道文化の一つの流れとして堂々と受け継がれ、韓国と中国の鮮卑(徳の高い文人層)が自然と共に風流として楽しんだ茶文化と相通ずる面がある。 日本の四百年も受け継がれてきた煎茶道の背景には家元制度があり、日本の思想の根幹を成している。外部から見る整った美意識の裏には家元制度という巨大なピラミッド型の組織体があって、組織内部の人々は多かれ少なかれ気付かぬうちに本来の茶の精神から遠ざかり、形式化された茶道に陥っていくのである。また今日、日本の代表的文化として茶道が挙げられるのも家元制度のおかげであるといえる。 本硏究では日本の煎茶道文化を家元制度を中心に考察することによって、日本の茶道文化発展の背景を究明するのに役立てたい。The term Japanese tea culture often brings to mind chanoyu, a tea ceremony of preparing and drinking matcha with strict formalities. But Japanese tea ceremony is composed of largely two types, which are chanoyu and senchado. The history of Japanese tea culture traces back to tea rituals brought in along with other Chinese civilizations by Buddhist priests such as Saich?(767-822), K?kai(774-835) and Eich?(743-835) in the early Heian period(794-1192), which took root as tea ceremony within Buddhist temples. But Japanese tea culture took off on a full scale when My?an Eisai(1141-1215), a Buddhist priest of the Kamakura period returned from China during the Song Dynasty after studying tea seeds and the making of matcha and sent a batch of tea seeds to his disciple My?e(1173-1232) so that he may plant them in Togano'o in Kyoto. Since then, chanoyu has continued a long history, developing over 40 main schools including Noami(?-1476), Murata Shuko(1422-1502), Takeno Jo-o(1502-1555) and Sen Rikyu(1522-1591). As of July 2008, Urasenke, the largest school of Japanese tea ceremony, has 165 branches and 2 regional offices within Japan and 99 overseas offices in 35 countries, as is explained in the Urasenke homepage. The driving force behind this growth lies in the system of iemoto, within which chanoyu, same as other traditional art forms of Japan, has succeeded and developed itself. Iemoto refers to the system of familial generations of a school of traditional Japanese art, led by iemoto, who is the head of the family or house through which the art is preserved and handed down. A primary characteristic of this system is that there is a network of instructors called natori, who take charge of the passing down of the art from iemoto to the lower level students. The natori were authorized to instruct the art in place of iemoto, but did not have the right to issue a certificate. The natori system allowed the iemoto to oversee the lowest levels of students, since certificates were only issued by the iemoto. And when the number of the middle instructors grew, so did the income of the iemoto. There are positive views of the iemoto system, such as its role in preserving Japanese traditional arts for the amount of time it has, but there are critical views as well. One criticism is that the iemoto system contributes to the pursuit of worldly benefits, which is far from the essential spirit of tea ceremony, or the idea of 'tea and Zen are one taste,' meaning that the world of Zen and the tea ceremony are the same. A student has to pay a considerable amount of money in unofficial remunerations and costs for various events and utensils, aside from official fees for lessons and certificate. The system of hakogaki, in which the value of a utensil escalates tremendously with iemoto's writing on the box is pointed out as a particular problem. Senchado was born out of criticisms of the negative aspects of chanoyu developed under the iemoto system and the corruptness of Zen monks. The source of senchado can be found in "The Classic of Tea" by Lu Yu, based on the idea of 'clean behavior and thrifty virtue.' Throughout the Tang, Song and Ming Dynasties, the tea drinking practices in "The Classic of Tea" manner continued on, and drinking tea surrounded by an enchanted scenery came to be idealized by scholars and artists. Such customs were succeeded by the Tang poet Lu Tong( -835) and passed on to Japan by the Zen priest Yinyuan Longqi who was the founder of the Obaku sect, one of the three Japanese Zen sects. This new sencha style was popularized among Zen priests and literary men by a person named Baisao(1675-1763). Baisao is said to have originated the sencha style, which reached its prime in the late Edo period(1603-1868) through the Meiji period(1868-1912). Compared with earlier tea ceremony practices, senchado has developed greater freedom in form. Today, there are many schools of senchado bearing a title that includes 'Baisa' because he was the founder of Japanese senchado. Begun by an old man who used to sell tea on the streets, senchado has spread among scholars and artists, to take root as an enormous network of arts in Japan. Adding the 39 schools registered in the National Japanese Senchado Union and all the other unregistered schools of senchado, there are currently about 100 schools which are active, manifesting the extent to which the senchado culture has grown. The essence of senchado is in its spirit. Even though the formal standards of chanoyu have not been excluded, the proud spirit carried by scholars and artists is central to senchado. Senchado is also a synthetic form of art incorporating the ideas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Stationery tools treasured by scholars such as brushes and ink stones were placed in the tea rooms which were decorated with patterns of flowers preferred by the scholars such as the plum, orchid, chrysanthemum and bamboo. Various elements of nature such as flowers, trees and fruits were applied on the interior to express the Taoist thought of eternal life and the drinking tea of tea was a way of seeking eternal youth, since it was considered a sacred medicine. A Buddhist idea of burning incense to purify the surroundings can also be found in senchado. Nevertheless, when senchado adopted the iemoto system, it began to lose its initial motive and came to be criticized. While it had once stood for not adhering to a set form, it became formality-driven with all sorts of utensils and the annual senchado convention became somewhat of a tea utensil market. In this way, senchado became just as bound in convention as chanoyu. Why does formality matter so much to the Japanese? In the Edo period, the wabi tea ideas of Sen Rikyu which were in accordance with Buddhist thoughts grew weak and tea ceremony came to be ruled by Confucian thoughts, following the political ideology of the shogunate government. Rather than accepting the metaphysical elements of the Chu-tzu doctrines it had imported from Joseon, Japan transformed them into physical dimensions, and the theory of human nature as good was converted into the theory of human nature as evil. This is the background against which the unique Japanese tea culture of emphasizing formalities was shaped. Senchado proudly continues its tradition as a stream of Japanese tea culture and has parallels with the tea practices of Korean and Chinese scholars who used to enjoy the elegance of tea in the company of nature. Behind the history of senchado of over 400 years, there is the iemoto system, which is at the basis of Japanese thought structure. And the restrained aesthetic of the Japanese that is shown on the outside is actually under the constant influence of a gigantic pyramidal organization that is the iemoto system. Japan's continuing efforts to gain recognition as the world's country of tea also derives from the iemoto system. This study aims to contribute to illuminating the history of Japanese tea cultural development by examining the Japanese senchado culture with a focus on the iemoto system.
一般的に日本の茶道といえば、厳格な形式に従い抹茶を点てて喫む茶の湯が思い浮かぶ。しかし、日本の茶道は“茶の湯”だけではなく“煎茶道”というもうひとつの大きな茶道形式がある。 日本の茶文化の歴史は平安時代の初め、最澄․空海․永忠など、遣唐僧たちにより先進文明とともにもたらされ、禅院茶礼として始まった。鎌倉時代の僧、明庵栄西が宋に留学し、二度目の帰国時にお茶の種と抹茶の製造方法を持ち帰った。そして弟子の明恵にお茶の種を送り京都の栂尾に植えさせたのが本格的な日本茶文化の始まりだ。 茶の湯は能阿弥、村田珠光、武野紹鷗、千利休を経て現在に至るまで、主な流派だけでも四十を超える発展を重ねた長い歴史を持つだけでなく、日本茶道会で一番大きい裏千家流派の場合、二00八年七月現在、日本国内に一六五支部と二支所、海外三十五カ国に九十九の海外支部を置く程、国際的な発展を遂げた。この成長の源は日本の他の伝統芸能と同じく、茶の湯が家元制という制度の下にその思想と作法を継承․発展させてきたからだ。 家元制度は日本の芸道を家伝として継承する家計の家元が流派を統率する制度である。家元制度の大きな特徴は、家元と呼ばれる大師匠と末端の弟子との間に家元の芸能を伝授する代行機関、つまり「名取」という師匠が置かれている点である。名取師匠は家元の代わりに芸能を教授することは出来ても、免許の発行権限は認めない制度である。名取を定めることによってどんなに多くの弟子がいても、家元を通してのみ免許状を発行するので、末端の弟子まで統制が可能なのである。従って中間の師匠の数が増える程、家元の収入が増えるのである。古い日本の伝統芸能が今まで温存されてきたのは、家元制度のおかげであるという肯定的な面がある反面、その問題点も指摘されている。その一つが茶道本来の姿、つまり禅の世界と茶道が同一であるという「茶禅一味」の精神とは遠い俗世の利益を求める部分が家元制度にはあるという点である。弟子は家元に月謝と免状の公の謝礼とは別に、非公式な謝礼金と各種行事の出費、道具の購入費用などで相当な出費を余儀なくされている。特に家元のサイン一つに茶道具の評価が高まる「箱書き」というシステムも問題点として挙げられる。このような家元制度の元で発展してきた茶の湯の腐敗を批判し、腐敗した禅宗を批判し、その反発で生まれたのが煎茶道である。この煎茶道の源流は静行倹徳のお茶の精神に基づく陸羽の『茶経』に見出せる。 唐․宋の時代、明代にも茶経流の喫茶の風流は受け継がれ、文人高士の間で仙境に遊ぶ境地を理想とする風習があった。この風習は唐代の詩人慮仝を通して受け継がれた。またこれを日本に伝えたのは、日本の三大禅宗の一つである黄檗宗の始祖隠元禅師と言われている。 禅僧たちの間で流行した煎茶風習は売茶翁という人物によって当時の知識人層に拡まり、売茶翁は煎茶道の始祖と呼ばれ、江戸末期から明治時代に全盛期を迎える。従来の茶道に比べ、形式の面で自由を追求する点が発展の契機となった。現在、煎茶道の流派の名前に「売茶」という文字が多いのは、彼が煎茶道の始祖であるという理由からである。一七三四年、道端で茶を売る老人․売茶翁により始まった煎茶道は、知識人․文人たちの間で流行し、日本の巨大芸能集団としてその地位を確かなものとした。現在、全日本茶道連盟に登録された三十九の流派と未登録流派を合わせ、百余りの流派が活動する煎茶道文化を形成した。 何よりも煎茶道で重要視されるのは茶の精神である。茶の湯の規範化された形式は排除しないけれども、文人高士たちが楽しんだ孤高な茶の精神は煎茶道が求める大切な中心思想である。また煎茶道は儒仏道の思想が内在する総合芸術であると言える。文房裝飾で鮮卑たちが好んだ筆, 硯などを茶室に取り揃え, 梅蘭菊竹等鮮卑の趣向の花を飾ることで茶の湯と差別化した。また、多様な花、木、果物等の自然を室内に取り入れ不老不死の道教思想を表現し、道教が目指す不老長生の丹藥がまさに茶であったがゆえに、茶を喫むことで不老長生を夢見る道教思想が内在する。又お茶席で香を焚き周りを清める仏教思想も煎茶道に見ることができる。 しかし煎茶道も家元制度を取り入れたことによって本来の意味が薄れてしまい、批判を浴びるようになった。形式に凝り固まらないことを掲げた煎茶道は、多くの茶道具の所持を強いられるなど形式化された。毎年開かれる煎茶道大会場は茶道具促販を思わせるなど、茶の湯のような形式化への道を歩むこととなった。 その思想的背景を見れば、江戸時代になると、身分による差別をなくし平等思想を主唱した仏教思想の延長線上にあった千利休の侘茶精神は薄れ、茶道の思想は幕府の政治理念にあわせ、仏教的茶道観から儒教的茶道観に変わった。そして朝鮮朱子学の形而上学的要素を取り入れたが定着せず、それを形而下学的形態に変えて日本に定着した朱子学は、言い換えれば性善説的思惟形態を取り入れ、それを性悪説的思惟形態に変えた形で定着したのだといえる。それが今日格式を重んじる日本の独特の茶道文化を形成したのである。 しかしながら煎茶道は、日本の茶道文化の一つの流れとして堂々と受け継がれ、韓国と中国の鮮卑(徳の高い文人層)が自然と共に風流として楽しんだ茶文化と相通ずる面がある。 日本の四百年も受け継がれてきた煎茶道の背景には家元制度があり、日本の思想の根幹を成している。外部から見る整った美意識の裏には家元制度という巨大なピラミッド型の組織体があって、組織内部の人々は多かれ少なかれ気付かぬうちに本来の茶の精神から遠ざかり、形式化された茶道に陥っていくのである。また今日、日本の代表的文化として茶道が挙げられるのも家元制度のおかげであるといえる。 本硏究では日本の煎茶道文化を家元制度を中心に考察することによって、日本の茶道文化発展の背景を究明するのに役立てたい。The term Japanese tea culture often brings to mind chanoyu, a tea ceremony of preparing and drinking matcha with strict formalities. But Japanese tea ceremony is composed of largely two types, which are chanoyu and senchado. The history of Japanese tea culture traces back to tea rituals brought in along with other Chinese civilizations by Buddhist priests such as Saich?(767-822), K?kai(774-835) and Eich?(743-835) in the early Heian period(794-1192), which took root as tea ceremony within Buddhist temples. But Japanese tea culture took off on a full scale when My?an Eisai(1141-1215), a Buddhist priest of the Kamakura period returned from China during the Song Dynasty after studying tea seeds and the making of matcha and sent a batch of tea seeds to his disciple My?e(1173-1232) so that he may plant them in Togano'o in Kyoto. Since then, chanoyu has continued a long history, developing over 40 main schools including Noami(?-1476), Murata Shuko(1422-1502), Takeno Jo-o(1502-1555) and Sen Rikyu(1522-1591). As of July 2008, Urasenke, the largest school of Japanese tea ceremony, has 165 branches and 2 regional offices within Japan and 99 overseas offices in 35 countries, as is explained in the Urasenke homepage. The driving force behind this growth lies in the system of iemoto, within which chanoyu, same as other traditional art forms of Japan, has succeeded and developed itself. Iemoto refers to the system of familial generations of a school of traditional Japanese art, led by iemoto, who is the head of the family or house through which the art is preserved and handed down. A primary characteristic of this system is that there is a network of instructors called natori, who take charge of the passing down of the art from iemoto to the lower level students. The natori were authorized to instruct the art in place of iemoto, but did not have the right to issue a certificate. The natori system allowed the iemoto to oversee the lowest levels of students, since certificates were only issued by the iemoto. And when the number of the middle instructors grew, so did the income of the iemoto. There are positive views of the iemoto system, such as its role in preserving Japanese traditional arts for the amount of time it has, but there are critical views as well. One criticism is that the iemoto system contributes to the pursuit of worldly benefits, which is far from the essential spirit of tea ceremony, or the idea of 'tea and Zen are one taste,' meaning that the world of Zen and the tea ceremony are the same. A student has to pay a considerable amount of money in unofficial remunerations and costs for various events and utensils, aside from official fees for lessons and certificate. The system of hakogaki, in which the value of a utensil escalates tremendously with iemoto's writing on the box is pointed out as a particular problem. Senchado was born out of criticisms of the negative aspects of chanoyu developed under the iemoto system and the corruptness of Zen monks. The source of senchado can be found in "The Classic of Tea" by Lu Yu, based on the idea of 'clean behavior and thrifty virtue.' Throughout the Tang, Song and Ming Dynasties, the tea drinking practices in "The Classic of Tea" manner continued on, and drinking tea surrounded by an enchanted scenery came to be idealized by scholars and artists. Such customs were succeeded by the Tang poet Lu Tong( -835) and passed on to Japan by the Zen priest Yinyuan Longqi who was the founder of the Obaku sect, one of the three Japanese Zen sects. This new sencha style was popularized among Zen priests and literary men by a person named Baisao(1675-1763). Baisao is said to have originated the sencha style, which reached its prime in the late Edo period(1603-1868) through the Meiji period(1868-1912). Compared with earlier tea ceremony practices, senchado has developed greater freedom in form. Today, there are many schools of senchado bearing a title that includes 'Baisa' because he was the founder of Japanese senchado. Begun by an old man who used to sell tea on the streets, senchado has spread among scholars and artists, to take root as an enormous network of arts in Japan. Adding the 39 schools registered in the National Japanese Senchado Union and all the other unregistered schools of senchado, there are currently about 100 schools which are active, manifesting the extent to which the senchado culture has grown. The essence of senchado is in its spirit. Even though the formal standards of chanoyu have not been excluded, the proud spirit carried by scholars and artists is central to senchado. Senchado is also a synthetic form of art incorporating the ideas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Stationery tools treasured by scholars such as brushes and ink stones were placed in the tea rooms which were decorated with patterns of flowers preferred by the scholars such as the plum, orchid, chrysanthemum and bamboo. Various elements of nature such as flowers, trees and fruits were applied on the interior to express the Taoist thought of eternal life and the drinking tea of tea was a way of seeking eternal youth, since it was considered a sacred medicine. A Buddhist idea of burning incense to purify the surroundings can also be found in senchado. Nevertheless, when senchado adopted the iemoto system, it began to lose its initial motive and came to be criticized. While it had once stood for not adhering to a set form, it became formality-driven with all sorts of utensils and the annual senchado convention became somewhat of a tea utensil market. In this way, senchado became just as bound in convention as chanoyu. Why does formality matter so much to the Japanese? In the Edo period, the wabi tea ideas of Sen Rikyu which were in accordance with Buddhist thoughts grew weak and tea ceremony came to be ruled by Confucian thoughts, following the political ideology of the shogunate government. Rather than accepting the metaphysical elements of the Chu-tzu doctrines it had imported from Joseon, Japan transformed them into physical dimensions, and the theory of human nature as good was converted into the theory of human nature as evil. This is the background against which the unique Japanese tea culture of emphasizing formalities was shaped. Senchado proudly continues its tradition as a stream of Japanese tea culture and has parallels with the tea practices of Korean and Chinese scholars who used to enjoy the elegance of tea in the company of nature. Behind the history of senchado of over 400 years, there is the iemoto system, which is at the basis of Japanese thought structure. And the restrained aesthetic of the Japanese that is shown on the outside is actually under the constant influence of a gigantic pyramidal organization that is the iemoto system. Japan's continuing efforts to gain recognition as the world's country of tea also derives from the iemoto system. This study aims to contribute to illuminating the history of Japanese tea cultural development by examining the Japanese senchado culture with a focus on the iemoto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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