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신과 진화론, 그리고 생명 이해의 확장 현대 사회는 다양성과 다원주의가 존중받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이다. 그러나, 진화론에 대한 과학과 종교간의 논쟁의 격렬함은 그 강도가 줄어들고 있지 않다. 진화론은 과학과 종교 사이를 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 사이의 적대감은 모호한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며, 또한 상당히 감정적인 것이다. 만약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알게 된다면 분명히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의 2장에서는 진화론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시도하였다. 진화론이 발표되기 이전에 신의 선택, 즉 신에 의해 결정되는 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한 비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연과 인간의 자율성은 극도로 제한된 것이며 근본적인 선택과 목적은 신에 의한 것이라는 이해는 깊은 회의에 빠졌다. 신의 자리는 점점 더 축소되어 이신론적 신 이해가 만연하게 되었고, 극단적인 유물론이 나타나 신을 세상에서 쫓아내고자 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목적론을 제거했고 점진주의적 신조를 확립했다. 진화론이 이해하는 생명은 ...
5.1. 신과 진화론, 그리고 생명 이해의 확장 현대 사회는 다양성과 다원주의가 존중받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이다. 그러나, 진화론에 대한 과학과 종교간의 논쟁의 격렬함은 그 강도가 줄어들고 있지 않다. 진화론은 과학과 종교 사이를 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 사이의 적대감은 모호한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며, 또한 상당히 감정적인 것이다. 만약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알게 된다면 분명히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의 2장에서는 진화론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시도하였다. 진화론이 발표되기 이전에 신의 선택, 즉 신에 의해 결정되는 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한 비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연과 인간의 자율성은 극도로 제한된 것이며 근본적인 선택과 목적은 신에 의한 것이라는 이해는 깊은 회의에 빠졌다. 신의 자리는 점점 더 축소되어 이신론적 신 이해가 만연하게 되었고, 극단적인 유물론이 나타나 신을 세상에서 쫓아내고자 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목적론을 제거했고 점진주의적 신조를 확립했다. 진화론이 이해하는 생명은 자연선택과 돌연변이에 의존하는 철저히 우연에 의한 것이며 진화는 진보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 창조의 주도권은 신으로부터 자연과 생명체로 옮겨졌다. 20세기 유전자의 발견으로 인해 진화론은 신다윈주의로 발전하게 되었고, 다윈보다 훨씬 더 유물론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최근에는 에이즈(AIDS) 바이러스가 진화론자들에게 강력한 진화의 증거가 되고 있다. 모든 학문 분야에서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여 자신들의 연구를 수정, 확대했지만 종교 분야에서는 그런 노력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그러나, 일부 신학자들은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고, 서로를 협력관계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꾸준히 지속하여 왔다. 떼이야르 드 샤르댕는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신과의 조화를 추구한 선구자이다. 그는 생명을 복잡화 추구 과정에서 나타난 특정한 형태의 물질로 이해한다. 떼이야르는 유물론이나 생기론과 같은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 전우주적인 일원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적인 발전 과정은 최종적인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를 지향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오메가 포인트를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바로 ‘신’이라고 언급하며 진화를 이끌고 있는 근본적인 힘은 바로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떼이야르의 주장은 과정신학자들의 사상으로 깊이 스며들어갔다. 대표적인 과정신학자 캅은 떼이야르의 일원론적 물질 이해를 받아들인다. 그는 생명에 대한 생태학적 모델을 확립하는데, 이는 생명체와 무생물의 관계는 상호적이며 둘 사이를 구분할 수 있는 뚜렷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덧붙여 캅은 생명의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는 볼드윈 효과(Baldwin Effect)를 이용해 진화 과정에서 생명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캅은 오메가 포인트에 있어서는 떼이야르와 의견을 달리한다. 그에게 있어서, 우주 역사의 확실한 종착 지점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진화의 방향은 순간순간 ‘아름다움의 증가’에 있다. 현재 진화론과 종교의 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신학자 존 호트의 사상은 떼이야르, 그리고 과정신학적 이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신다윈주의는 유물론적 환원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생명은 그것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호트는 지나치게 과학 쪽으로 치우친 과정신학과는 달리 성서를 통해 진화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는 진화론을 하나님의 자기 비움의 증거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철저히 우연에 의한 진화 사건을 성서적 시간 이해, 즉 현재를 미래의 도래로 이해하는 시간 이해와 연결시킨다. 이와 같은 시간 이해를 통해 진화를 통해 나타나는 새로운 생명의 출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떼이야르의 미래를 오메가 포인트로 인해 완전히 닫혀 있는 미래라고 한다면, 캅의 미래는 지극히 불안정하고 모험이 가득 찬 완전히 열려 있는 미래라고 할 수 있으며, 호트의 미래는 근본적으로 열려 있지만, 미래를 약속하고 미래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어느 정도 닫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진화론, 그리고 진화 신학은 세상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삶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진화론이 신의 섭리(Divine Providence)에 의한 반대로 나타나게 되었지만 사실 진화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으로 생명의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얼핏 보면 진화로 인해 인간을 비롯한 생물이 생명의 주도권을 쥔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존속을 결정하는 것은 자연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또 다른 종속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진화 신학은 이와 같
5.1. 신과 진화론, 그리고 생명 이해의 확장 현대 사회는 다양성과 다원주의가 존중받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이다. 그러나, 진화론에 대한 과학과 종교간의 논쟁의 격렬함은 그 강도가 줄어들고 있지 않다. 진화론은 과학과 종교 사이를 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 사이의 적대감은 모호한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며, 또한 상당히 감정적인 것이다. 만약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알게 된다면 분명히 화해와 공존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의 2장에서는 진화론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시도하였다. 진화론이 발표되기 이전에 신의 선택, 즉 신에 의해 결정되는 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한 비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연과 인간의 자율성은 극도로 제한된 것이며 근본적인 선택과 목적은 신에 의한 것이라는 이해는 깊은 회의에 빠졌다. 신의 자리는 점점 더 축소되어 이신론적 신 이해가 만연하게 되었고, 극단적인 유물론이 나타나 신을 세상에서 쫓아내고자 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목적론을 제거했고 점진주의적 신조를 확립했다. 진화론이 이해하는 생명은 자연선택과 돌연변이에 의존하는 철저히 우연에 의한 것이며 진화는 진보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 창조의 주도권은 신으로부터 자연과 생명체로 옮겨졌다. 20세기 유전자의 발견으로 인해 진화론은 신다윈주의로 발전하게 되었고, 다윈보다 훨씬 더 유물론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최근에는 에이즈(AIDS) 바이러스가 진화론자들에게 강력한 진화의 증거가 되고 있다. 모든 학문 분야에서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여 자신들의 연구를 수정, 확대했지만 종교 분야에서는 그런 노력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그러나, 일부 신학자들은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고, 서로를 협력관계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꾸준히 지속하여 왔다. 떼이야르 드 샤르댕는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신과의 조화를 추구한 선구자이다. 그는 생명을 복잡화 추구 과정에서 나타난 특정한 형태의 물질로 이해한다. 떼이야르는 유물론이나 생기론과 같은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 전우주적인 일원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적인 발전 과정은 최종적인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를 지향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오메가 포인트를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바로 ‘신’이라고 언급하며 진화를 이끌고 있는 근본적인 힘은 바로 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떼이야르의 주장은 과정신학자들의 사상으로 깊이 스며들어갔다. 대표적인 과정신학자 캅은 떼이야르의 일원론적 물질 이해를 받아들인다. 그는 생명에 대한 생태학적 모델을 확립하는데, 이는 생명체와 무생물의 관계는 상호적이며 둘 사이를 구분할 수 있는 뚜렷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덧붙여 캅은 생명의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는 볼드윈 효과(Baldwin Effect)를 이용해 진화 과정에서 생명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캅은 오메가 포인트에 있어서는 떼이야르와 의견을 달리한다. 그에게 있어서, 우주 역사의 확실한 종착 지점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진화의 방향은 순간순간 ‘아름다움의 증가’에 있다. 현재 진화론과 종교의 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신학자 존 호트의 사상은 떼이야르, 그리고 과정신학적 이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신다윈주의는 유물론적 환원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생명은 그것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호트는 지나치게 과학 쪽으로 치우친 과정신학과는 달리 성서를 통해 진화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는 진화론을 하나님의 자기 비움의 증거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철저히 우연에 의한 진화 사건을 성서적 시간 이해, 즉 현재를 미래의 도래로 이해하는 시간 이해와 연결시킨다. 이와 같은 시간 이해를 통해 진화를 통해 나타나는 새로운 생명의 출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떼이야르의 미래를 오메가 포인트로 인해 완전히 닫혀 있는 미래라고 한다면, 캅의 미래는 지극히 불안정하고 모험이 가득 찬 완전히 열려 있는 미래라고 할 수 있으며, 호트의 미래는 근본적으로 열려 있지만, 미래를 약속하고 미래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어느 정도 닫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진화론, 그리고 진화 신학은 세상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삶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진화론이 신의 섭리(Divine Providence)에 의한 반대로 나타나게 되었지만 사실 진화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으로 생명의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얼핏 보면 진화로 인해 인간을 비롯한 생물이 생명의 주도권을 쥔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존속을 결정하는 것은 자연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또 다른 종속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진화 신학은 이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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