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주의적이고 물신주의적인 풍조가 만연하는 과학 시대에서 인간의 정신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혼란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인식적 혼란과 연결되는데, 여기서 자기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과 삶의 의미 부재(不在)가 뒤따른다. 과학의 발전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현상을 초래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논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그 원인으로 삼고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자연과학적인 시각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있는 떼이야르의 진화 ...
다원주의적이고 물신주의적인 풍조가 만연하는 과학 시대에서 인간의 정신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혼란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인식적 혼란과 연결되는데, 여기서 자기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과 삶의 의미 부재(不在)가 뒤따른다. 과학의 발전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현상을 초래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논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그 원인으로 삼고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자연과학적인 시각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있는 떼이야르의 진화 현상론을 분석의 주제로 설정하고, 그의 인간이해가 신학적 측면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제1장에서는 떼이야르의 진화 현상론은, 여럿이 하나됨으로 나아가려는 물질계의 현상을 통해 복잡함(외면)과 의식의 증대(내면)라는 법칙으로 규정된다는 것을 밝혔다. 이 법칙은 진화의 흐름을 물질계에서 정신계로 이어지게 하는 중요한 원리가 된다. 진화의 시각이 차츰 영적인 흐름으로 확장되는 가운데, 정신계의 진화를 상정함에 있어서 떼이야르가 진화의 원동자 곧, 원인을 신(神)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으로부터 자연계에 대한 신의 계시의 개연성이 유출되는데, 이는 진화의 시각을 그리스도교 현상으로 이끄는데 매우 중요한 전제가 된다. 떼이야르는 진화의 끝자락, 곧 완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며 인간 현상에서 도출된 법칙과 흐름을 전제로 그리스도교의 현상을 서술한다. 육화(肉化)한 그리스도를 근거로, 우주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가 모든 진화의 꽃이요 문(門)으로 드러나게 된다. 우주의 진화 과정에 함께 놓여 있는 인간은 오메가 포인트 곧, 신적 중심으로 수렴되는 가운데 그 안에서 하나됨에 이른다.
제2장에서는 우주 안에 있는 인간과 그리스도교의 관계성 그리고 과학적 인간 이해와 교회의 전통적인 신학적 인간 이해의 상호소통 가능성을 물으면서, 먼저 의식의 주체자로서의 진화의 문(門)인 인간을 중심으로 떼이야르의 진화 현상론을 재고(再考)하였다. 과학적인 시각으로 전개된 떼이야르의 진화 현상론을 신학적 관점으로 조명함으로써,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인간이 출현하게 된 경위와 인간 본성(영혼과 육체)의 상호 관계성이 인간과 우주 그리고 그리스도의 긴밀한 관계성 안에서 규명되면서 우주의 모든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탁월한 가치가 부각되었다.
과학적 시각에서의 인간 이해와 전통적인 신학적 시각에서의 인간 이해가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내는 논증 안에서 떼이야르가 사용하는 중요한 개념인 ‘진화’에 집중하였다. 거기서 그의 ‘진화’ 개념이 일반적인 진화론자들의 견해와는 상이한 점이 드러났는데, 인간의 존엄성과 수렴을 향한 정향진화(正向進化) 양상이 그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그리스도가 진화의 원인으로 규명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삶 전반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진화의 종교요, 수렴의 종교로써 이해되는 것이다. 여기서 수렴을 향해 나아가는 힘은 참다운 보편 사랑에 의거한 사랑에너지의 작용임이 드러난다.
‘진화’ 개념에 이어 떼이야르의 ‘창조’ 개념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그 긴밀한 연관성이 창조적 합일과 인격적 상호성으로 드러나게 된다. 창조를 철저하게 과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그의 고유한 방식에서, 창조 개념에 대한 새로운 지평의 확장이 이루어진다. 즉, 그가 바라보는 무(無)는 무한 다량 혹은 무한 다수로써, 진화 현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물질의 출현 곧 ‘통일’을 창조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실상, 무한 다량과 무한 다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것도 없는 의미의 무(無)와 다를 것이 없다는 측면에서 그가 사용하는 과학적 시각에서의 창조가 교의적 창조와 다르면서도 상호 보완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인간과 우주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상호소통 가능성에 대한 측면에서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인 우주성이 포착되었다. 인간은 이미 그리스도를 통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께서 알려주신 사랑을 바탕으로 하나된 모습으로 나아가려는 공동체 형성의 삶을 이루고 있다. 행복의 궁극인 그리스도를 근원으로 영적인 영원한 행복을 지향하며 이미 인간의 삶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곧, 인간 안에 있는 ‘우주성’은 모든 이와 함께 사랑 에너지의 통교로써 하나 되는 흐름 안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불투명했던 인간의 미래가 투명해지고 인간 삶의 의미가 확실해진다. 인간의 미래는 선(善)을 본성으로 하는 하느님께로 정향되어 있다. 그곳에서 누리게 될 지복직관(至福直觀)이 인간에게 희망으로 주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인간이 행하는 모든 삶의 요소는 이미 하느님께로 정향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서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인간 삶의 전반이 탁월한 가치로 재정
다원주의적이고 물신주의적인 풍조가 만연하는 과학 시대에서 인간의 정신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혼란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인식적 혼란과 연결되는데, 여기서 자기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과 삶의 의미 부재(不在)가 뒤따른다. 과학의 발전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현상을 초래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논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그 원인으로 삼고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자연과학적인 시각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있는 떼이야르의 진화 현상론을 분석의 주제로 설정하고, 그의 인간이해가 신학적 측면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제1장에서는 떼이야르의 진화 현상론은, 여럿이 하나됨으로 나아가려는 물질계의 현상을 통해 복잡함(외면)과 의식의 증대(내면)라는 법칙으로 규정된다는 것을 밝혔다. 이 법칙은 진화의 흐름을 물질계에서 정신계로 이어지게 하는 중요한 원리가 된다. 진화의 시각이 차츰 영적인 흐름으로 확장되는 가운데, 정신계의 진화를 상정함에 있어서 떼이야르가 진화의 원동자 곧, 원인을 신(神)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으로부터 자연계에 대한 신의 계시의 개연성이 유출되는데, 이는 진화의 시각을 그리스도교 현상으로 이끄는데 매우 중요한 전제가 된다. 떼이야르는 진화의 끝자락, 곧 완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며 인간 현상에서 도출된 법칙과 흐름을 전제로 그리스도교의 현상을 서술한다. 육화(肉化)한 그리스도를 근거로, 우주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가 모든 진화의 꽃이요 문(門)으로 드러나게 된다. 우주의 진화 과정에 함께 놓여 있는 인간은 오메가 포인트 곧, 신적 중심으로 수렴되는 가운데 그 안에서 하나됨에 이른다.
제2장에서는 우주 안에 있는 인간과 그리스도교의 관계성 그리고 과학적 인간 이해와 교회의 전통적인 신학적 인간 이해의 상호소통 가능성을 물으면서, 먼저 의식의 주체자로서의 진화의 문(門)인 인간을 중심으로 떼이야르의 진화 현상론을 재고(再考)하였다. 과학적인 시각으로 전개된 떼이야르의 진화 현상론을 신학적 관점으로 조명함으로써,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인간이 출현하게 된 경위와 인간 본성(영혼과 육체)의 상호 관계성이 인간과 우주 그리고 그리스도의 긴밀한 관계성 안에서 규명되면서 우주의 모든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탁월한 가치가 부각되었다.
과학적 시각에서의 인간 이해와 전통적인 신학적 시각에서의 인간 이해가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내는 논증 안에서 떼이야르가 사용하는 중요한 개념인 ‘진화’에 집중하였다. 거기서 그의 ‘진화’ 개념이 일반적인 진화론자들의 견해와는 상이한 점이 드러났는데, 인간의 존엄성과 수렴을 향한 정향진화(正向進化) 양상이 그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그리스도가 진화의 원인으로 규명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삶 전반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진화의 종교요, 수렴의 종교로써 이해되는 것이다. 여기서 수렴을 향해 나아가는 힘은 참다운 보편 사랑에 의거한 사랑에너지의 작용임이 드러난다.
‘진화’ 개념에 이어 떼이야르의 ‘창조’ 개념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그 긴밀한 연관성이 창조적 합일과 인격적 상호성으로 드러나게 된다. 창조를 철저하게 과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그의 고유한 방식에서, 창조 개념에 대한 새로운 지평의 확장이 이루어진다. 즉, 그가 바라보는 무(無)는 무한 다량 혹은 무한 다수로써, 진화 현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물질의 출현 곧 ‘통일’을 창조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실상, 무한 다량과 무한 다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무것도 없는 의미의 무(無)와 다를 것이 없다는 측면에서 그가 사용하는 과학적 시각에서의 창조가 교의적 창조와 다르면서도 상호 보완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인간과 우주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상호소통 가능성에 대한 측면에서 인간의 또 다른 본성인 우주성이 포착되었다. 인간은 이미 그리스도를 통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께서 알려주신 사랑을 바탕으로 하나된 모습으로 나아가려는 공동체 형성의 삶을 이루고 있다. 행복의 궁극인 그리스도를 근원으로 영적인 영원한 행복을 지향하며 이미 인간의 삶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곧, 인간 안에 있는 ‘우주성’은 모든 이와 함께 사랑 에너지의 통교로써 하나 되는 흐름 안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불투명했던 인간의 미래가 투명해지고 인간 삶의 의미가 확실해진다. 인간의 미래는 선(善)을 본성으로 하는 하느님께로 정향되어 있다. 그곳에서 누리게 될 지복직관(至福直觀)이 인간에게 희망으로 주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인간이 행하는 모든 삶의 요소는 이미 하느님께로 정향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서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인간 삶의 전반이 탁월한 가치로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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