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6차 당 대회에서 베트남 공산당이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 베트남은 경제적으로는 아직 저개발국 또는 저소득국으로 분류되지만 정치․사회 질서와 안전 수준은 상당히 높고, 절대적 빈곤에서도 성공적으로 탈출했다. 베트남의 GDP규모는 2006년 현재 중국과 인도의 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1인당 GDP는 673달러(구매력 기준 3,393달러)로 인도에 크게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활동 참가율은 인도보다 훨씬 높은 75%이다. 베트남이 시장경제로 갈 것인지의 유무는 이제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며 오히려 어떤 시장경제로 갈 것인지가 관심이다. 문제는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시장경제로 갈 것인지, 역동적이고 효율적인 시장경제로 갈 것 인지이다.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가 베트남의 정치적 힘과 경제적 힘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 것처럼 베트남의 미래도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 글은 도이모이라는 베트남 체제의 전환이 일어난 이유를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밝히려고 노력했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베트남 지도집단의 고유한 특성을 밝혀내어 베트남 사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정책적 능력을 확장하는 토대로 삼고자 했다. 이 글은 전국적 사회주의화를 시도한 1976년부터 2001년 9차 전당대회에서 ‘사회주의 지향의 시장경제’를 베트남이 지향해야 할 체제로 공식화한 시점까지를 연구범위로 했다. 글의 순서는 체제전환의 개념을 정리하고, 베트남 체제전환 과정을 부분개혁, 시장화, 사유화의 3단계로 서술한 다음, 체제전환론에 입각해서 베트남 체제전환의 요인을 초기조건과 정책적 특징, 행위 주체인 공산당의 역할과 특성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향후 베트남이 경제적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1976년 전국적 사회주의화를 선언한 이후, 채 몇 해가 지나기도 전에 베트남 공산당은 극심한 인플레이션, 투기, 전반적 사회부조리가 심각하게 드러나면서 도이모이라는 체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도이모이는 주민들이 정부의 ‘계획 밖’에서 진행한 행동들을 당과 정부가 허용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도이모이가 목표로 하는 시장 경제의 모델은 명확하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하나하나씩 풀어 나갔다. 또한 국유기업의 비중이 오히려 증가한 것은 베트남 기업개혁의 독특한 점이다. 베트남의 체제전환은 점진적으로 추진되었는데, 이는 체제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준비된 인력집단의 부족, 내부의 반대, 시행착오 접근법(trial-error approach)등에 기인한다. 경제적 위기가 체제전환의 일차적 원인이지만, 비슷한 위기에 처한 모든 나라가 모두 체제전환을 모색한 것은 아니다. 체제전환이 가져다 줄 이익에 대한 베트남 공산당원들의 기대감이 추진력을 제공했고, 짧은 사회주의 경험은 오히려 사회주의를 벗어나는데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했다. 베트남이 신식민지로 비판했던 주변 동남아시아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앞서가는 현실 앞에서 이들을 따라 잡으려는 경제발전의 열망과 정치적 실패가 있어도 정치적 지배력을 상실할 수 있는 내․외부의 정치적 경쟁상대가 없다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황도 체제전환을 시도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도이모이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는 베트남 공산당이 사회주의를 실행할 수 있는 경제 관리상의 능력 뿐 아니라, ‘개발국가’를 경영할 능력도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혁파와 보수파의 권력관계, 개혁과 안정에 대한 당의 인식, 시장을 사회주의 원리 하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관점에 의해 개혁파와 보수파가 나누어지고, 이들의 논쟁과 긴장이 체제전환정책의 선택과 경로를 결정지었다. 베트남 공산당의 ...
1986년 6차 당 대회에서 베트남 공산당이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 베트남은 경제적으로는 아직 저개발국 또는 저소득국으로 분류되지만 정치․사회 질서와 안전 수준은 상당히 높고, 절대적 빈곤에서도 성공적으로 탈출했다. 베트남의 GDP규모는 2006년 현재 중국과 인도의 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1인당 GDP는 673달러(구매력 기준 3,393달러)로 인도에 크게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활동 참가율은 인도보다 훨씬 높은 75%이다. 베트남이 시장경제로 갈 것인지의 유무는 이제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며 오히려 어떤 시장경제로 갈 것인지가 관심이다. 문제는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시장경제로 갈 것인지, 역동적이고 효율적인 시장경제로 갈 것 인지이다.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가 베트남의 정치적 힘과 경제적 힘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 것처럼 베트남의 미래도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 글은 도이모이라는 베트남 체제의 전환이 일어난 이유를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밝히려고 노력했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베트남 지도집단의 고유한 특성을 밝혀내어 베트남 사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정책적 능력을 확장하는 토대로 삼고자 했다. 이 글은 전국적 사회주의화를 시도한 1976년부터 2001년 9차 전당대회에서 ‘사회주의 지향의 시장경제’를 베트남이 지향해야 할 체제로 공식화한 시점까지를 연구범위로 했다. 글의 순서는 체제전환의 개념을 정리하고, 베트남 체제전환 과정을 부분개혁, 시장화, 사유화의 3단계로 서술한 다음, 체제전환론에 입각해서 베트남 체제전환의 요인을 초기조건과 정책적 특징, 행위 주체인 공산당의 역할과 특성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향후 베트남이 경제적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1976년 전국적 사회주의화를 선언한 이후, 채 몇 해가 지나기도 전에 베트남 공산당은 극심한 인플레이션, 투기, 전반적 사회부조리가 심각하게 드러나면서 도이모이라는 체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도이모이는 주민들이 정부의 ‘계획 밖’에서 진행한 행동들을 당과 정부가 허용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도이모이가 목표로 하는 시장 경제의 모델은 명확하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하나하나씩 풀어 나갔다. 또한 국유기업의 비중이 오히려 증가한 것은 베트남 기업개혁의 독특한 점이다. 베트남의 체제전환은 점진적으로 추진되었는데, 이는 체제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준비된 인력집단의 부족, 내부의 반대, 시행착오 접근법(trial-error approach)등에 기인한다. 경제적 위기가 체제전환의 일차적 원인이지만, 비슷한 위기에 처한 모든 나라가 모두 체제전환을 모색한 것은 아니다. 체제전환이 가져다 줄 이익에 대한 베트남 공산당원들의 기대감이 추진력을 제공했고, 짧은 사회주의 경험은 오히려 사회주의를 벗어나는데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했다. 베트남이 신식민지로 비판했던 주변 동남아시아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앞서가는 현실 앞에서 이들을 따라 잡으려는 경제발전의 열망과 정치적 실패가 있어도 정치적 지배력을 상실할 수 있는 내․외부의 정치적 경쟁상대가 없다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황도 체제전환을 시도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도이모이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는 베트남 공산당이 사회주의를 실행할 수 있는 경제 관리상의 능력 뿐 아니라, ‘개발국가’를 경영할 능력도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혁파와 보수파의 권력관계, 개혁과 안정에 대한 당의 인식, 시장을 사회주의 원리 하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관점에 의해 개혁파와 보수파가 나누어지고, 이들의 논쟁과 긴장이 체제전환정책의 선택과 경로를 결정지었다. 베트남 공산당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집단지도체제이다. 집단지도체제는 당의 오랜 전통으로 국가적 단합을 이루는데 기여하기도 하였으나,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제때에 대책을 세우지 못하게 하는 한계로도 작용하였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은 중국과 같은 대국과 인접한 상황에서 국가의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지리적 특성과 농경문화라는 전통으로부터, 중국과 같이 격렬한 정치적 대립 없이 혁명과 체제전환을 진행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베트남 공산당과 정부는 도이모이를 통해 체제전환에 성공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리하여, 베트남 공산당체제는 여전히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오히려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현상이 포착되기도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은 베트남 공산당의 유연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베트남 공산당은 스스로 체질개선을 통하여 변화되는 현실에 빠르지는 않으나 늦지 않은 적응력을 보여줘 왔다. 베트남 공산당은 대응의 속도가 늦고, 부분적일지라도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수렴하는 방향에서 비교적 효과적으로 대응해 왔다. 주기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과 재정 적자, 실업률 상승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당의 대응은 분파간의 대립, 운용능력의 부족이라는 문제점으로 인해 한계를 보이기도 했지만, 크게는 공산당의 유연한 대응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고, 그리하여 베트남 공산당의 정당성을 유지하고 체제를 발전시켜 왔다. 한 발 더 나가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 통치하에서 당이 국가, 사회를 영도하는 역할을 계속 하지만, 당 조직에 있어서도 권력집중을 완화하여 당내 민주화를 기하고, 소수에 의한 권력 전횡을 막는 등 정치적 변화를 이루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정치 지도자들이 향후 체제의 발전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향후 발생할 경제적 위기가 선제적 조치를 필요로 하는, 즉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갖게 될 국가적 손실이 치명적인 문제일 경우, 집단지도체제의 장점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하면서 적절한 대응 시점을 놓칠 가능성이 존재한다. 베트남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베트남 공산당의 정통성 유지는 베트남 지도부가 선제적 예방조치가 필요한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형태로 대응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1986년 6차 당 대회에서 베트남 공산당이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 베트남은 경제적으로는 아직 저개발국 또는 저소득국으로 분류되지만 정치․사회 질서와 안전 수준은 상당히 높고, 절대적 빈곤에서도 성공적으로 탈출했다. 베트남의 GDP규모는 2006년 현재 중국과 인도의 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1인당 GDP는 673달러(구매력 기준 3,393달러)로 인도에 크게 뒤지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활동 참가율은 인도보다 훨씬 높은 75%이다. 베트남이 시장경제로 갈 것인지의 유무는 이제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며 오히려 어떤 시장경제로 갈 것인지가 관심이다. 문제는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시장경제로 갈 것인지, 역동적이고 효율적인 시장경제로 갈 것 인지이다.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가 베트남의 정치적 힘과 경제적 힘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 것처럼 베트남의 미래도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이 글은 도이모이라는 베트남 체제의 전환이 일어난 이유를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밝히려고 노력했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베트남 지도집단의 고유한 특성을 밝혀내어 베트남 사회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정책적 능력을 확장하는 토대로 삼고자 했다. 이 글은 전국적 사회주의화를 시도한 1976년부터 2001년 9차 전당대회에서 ‘사회주의 지향의 시장경제’를 베트남이 지향해야 할 체제로 공식화한 시점까지를 연구범위로 했다. 글의 순서는 체제전환의 개념을 정리하고, 베트남 체제전환 과정을 부분개혁, 시장화, 사유화의 3단계로 서술한 다음, 체제전환론에 입각해서 베트남 체제전환의 요인을 초기조건과 정책적 특징, 행위 주체인 공산당의 역할과 특성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향후 베트남이 경제적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1976년 전국적 사회주의화를 선언한 이후, 채 몇 해가 지나기도 전에 베트남 공산당은 극심한 인플레이션, 투기, 전반적 사회부조리가 심각하게 드러나면서 도이모이라는 체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도이모이는 주민들이 정부의 ‘계획 밖’에서 진행한 행동들을 당과 정부가 허용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도이모이가 목표로 하는 시장 경제의 모델은 명확하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하나하나씩 풀어 나갔다. 또한 국유기업의 비중이 오히려 증가한 것은 베트남 기업개혁의 독특한 점이다. 베트남의 체제전환은 점진적으로 추진되었는데, 이는 체제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준비된 인력집단의 부족, 내부의 반대, 시행착오 접근법(trial-error approach)등에 기인한다. 경제적 위기가 체제전환의 일차적 원인이지만, 비슷한 위기에 처한 모든 나라가 모두 체제전환을 모색한 것은 아니다. 체제전환이 가져다 줄 이익에 대한 베트남 공산당원들의 기대감이 추진력을 제공했고, 짧은 사회주의 경험은 오히려 사회주의를 벗어나는데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했다. 베트남이 신식민지로 비판했던 주변 동남아시아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앞서가는 현실 앞에서 이들을 따라 잡으려는 경제발전의 열망과 정치적 실패가 있어도 정치적 지배력을 상실할 수 있는 내․외부의 정치적 경쟁상대가 없다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황도 체제전환을 시도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도이모이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는 베트남 공산당이 사회주의를 실행할 수 있는 경제 관리상의 능력 뿐 아니라, ‘개발국가’를 경영할 능력도 부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혁파와 보수파의 권력관계, 개혁과 안정에 대한 당의 인식, 시장을 사회주의 원리 하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관점에 의해 개혁파와 보수파가 나누어지고, 이들의 논쟁과 긴장이 체제전환정책의 선택과 경로를 결정지었다. 베트남 공산당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집단지도체제이다. 집단지도체제는 당의 오랜 전통으로 국가적 단합을 이루는데 기여하기도 하였으나,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제때에 대책을 세우지 못하게 하는 한계로도 작용하였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은 중국과 같은 대국과 인접한 상황에서 국가의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지리적 특성과 농경문화라는 전통으로부터, 중국과 같이 격렬한 정치적 대립 없이 혁명과 체제전환을 진행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베트남 공산당과 정부는 도이모이를 통해 체제전환에 성공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리하여, 베트남 공산당체제는 여전히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오히려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현상이 포착되기도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은 베트남 공산당의 유연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베트남 공산당은 스스로 체질개선을 통하여 변화되는 현실에 빠르지는 않으나 늦지 않은 적응력을 보여줘 왔다. 베트남 공산당은 대응의 속도가 늦고, 부분적일지라도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수렴하는 방향에서 비교적 효과적으로 대응해 왔다. 주기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과 재정 적자, 실업률 상승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당의 대응은 분파간의 대립, 운용능력의 부족이라는 문제점으로 인해 한계를 보이기도 했지만, 크게는 공산당의 유연한 대응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고, 그리하여 베트남 공산당의 정당성을 유지하고 체제를 발전시켜 왔다. 한 발 더 나가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 통치하에서 당이 국가, 사회를 영도하는 역할을 계속 하지만, 당 조직에 있어서도 권력집중을 완화하여 당내 민주화를 기하고, 소수에 의한 권력 전횡을 막는 등 정치적 변화를 이루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정치 지도자들이 향후 체제의 발전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향후 발생할 경제적 위기가 선제적 조치를 필요로 하는, 즉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갖게 될 국가적 손실이 치명적인 문제일 경우, 집단지도체제의 장점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하면서 적절한 대응 시점을 놓칠 가능성이 존재한다. 베트남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베트남 공산당의 정통성 유지는 베트남 지도부가 선제적 예방조치가 필요한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형태로 대응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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