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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상향은 ‘정신없음’이다. ‘마구 뒤섞여 있어 정리되지 않은 상태(混沌)’는 파편적이고 모호하지만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상태이다.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을 지니고 단계적인 절차에 따른 규정과 틀을 만드는 것과 거리가 멀다. 만약 뚜렷한 목표가 있어 그 목표를 차근차근 이뤄내고자 한다면 혼돈은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보다 어떠한 유동적인 틀 안에서 개체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그려 보자. 그리고 그 개체들은 틀이라는 관념 자체를 변화시킬 힘을 내포하...

현재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상향은 ‘정신없음’이다. ‘마구 뒤섞여 있어 정리되지 않은 상태(混沌)’는 파편적이고 모호하지만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상태이다.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을 지니고 단계적인 절차에 따른 규정과 틀을 만드는 것과 거리가 멀다. 만약 뚜렷한 목표가 있어 그 목표를 차근차근 이뤄내고자 한다면 혼돈은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보다 어떠한 유동적인 틀 안에서 개체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그려 보자. 그리고 그 개체들은 틀이라는 관념 자체를 변화시킬 힘을 내포하고 있다 해두자. 이런 전제 안에서 혼돈은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상태이다. 이 ‘광활한 구멍 chaos’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건망증 forgetfulness'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기억하고, 그 기억을 축적하다 보면 그 과정에 따르는 노력과 목적의식을 져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노력의 대가에 대한 기대와 욕심은 인간을 집착하게 하여 자유와 가벼움을 앗아갈 것이다. 축적보다는 분배 내지는 비움을 지향하는 태도는 현실에 안주한다기보다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함으로써 현재를 살아나갈 힘을 얻는다. 순간에 안주하지 않고 쉼 없이 이동하는 것이다. 이동하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마주하는 대상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닿기가 무섭게 튀어 올라 도망친다. 이러한 본능적인 저항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허무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지만, 반대로 도망가려는 의지는 또 다른 양상의 에너지를 만든다. 그리고 가벼워지기 바라는 마음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마음, 즉 규정되기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모호한 경계의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미지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존재한다.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들, 생각의 흐름 그리고 이것들이 어우러져 드러나는 감정의 변화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이들은 그 순간의 즐거움과 몰입 그리고 그것을 금방 잊고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는 데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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