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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세기 출토직물 분석을 통한 조선시대 섬유산업 연구
(A)study on the textiles industry of Joseon periods by analyzing the exhumed clothing during 15th~18th century 원문보기


박정임 (경성대학교 의상학과 국내박사)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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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와 『후한서(後漢書)』「동이열전」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양잠과 길쌈을 하였고 제사와 제직기술이 뛰어나 실은 가늘고 직물의 폭은 넓게 직물을 짰던 것으로 나타난다. 『한원(翰苑)』의「번이부」 내용에 의하면 우리나라 고대국가들 중의 하나인 고구려에서는 면직물을 자체 생산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일본서기』 9권의 내용에 의하면 일본은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 대에 백제의 뛰어난 양잠법과 직조법을 전수받았으며 29권의 내용에서는 신라가 일본으로 보낸 교역품목 가운데 견직물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의 고문서에서 이러한 내용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우리 조상들은 이미 고대부족국가시대에 직물을 생산하였으며 그 직조기술 또한 뛰어났던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 옛 문헌에서도 선조들의 제사․제직기술에 관련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에 의하면 박혁거세 대부터 양잠을 권장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신라는 당나라에서 생산하였던 30승(升)의 삼베보다 더 섬세하게 제직한 40승(升)의 삼베를 조공물품으로 당나라에 보내기도 하였다. 그 뿐 아니라 당나라에 헌상하는 중요 물품 중에 곱게 짠 30승(升)의 모시나 40승(升)의 면직물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기록들도 나타난다. 「고구려본기」에 의하면 직물에 관련된 내용이 다소 상징적 표현으로 기술되어 있다. 부여를 벗어나고 있던 주몽은 삼베 옷을 입은 자, 면 옷을 입은 자, 마름 옷(水藻衣)을 입은 자 세 명을 우연히 만났으며 그들의 협력으로 고구려를 세울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세 명이 착용하고 있는 의복의 소재가 각기 다른 신분계층을 상징한다고 한다면 주몽은 고구려 지역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주몽의 아들 유리왕이 백성들에게 직물을 짜는 경쟁을 시키면서까지 길쌈을 장려했던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서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데 직조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본기」에 의하면 고이왕 52년(285)에 직공을 일본으로 보내어 직조기술을 가르쳐 주었던 기록이 있으며 「잡지」편에 신라는 일찍부터 견직물을 전문적으로 제직하는 관영공장이 있었고 흥덕왕 9년(834)에 신분에 따라 의복 소재로 직물을 사용하는 규제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견직물의 품질은 다르지만 평민이 입는 겉감으로 면주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은 견직물을 제직하였으며 견직물을 피복소재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4두품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는 모직 보료, 모포, 호피, 중국 담요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지배층은 견직물과 더불어 모직물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사』에 나타나는 고려 초기 혜종 대의 기록을 보면 ‘마저여설(麻紵如雪)’ 즉 진나라로 보낸 세모시가 하얀 눈과 같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고려후기의 기록을 보면 고려 왕실은 모시로 문양을 넣어 제직하거나 익조직으로 제직하여 원나라 공물로 보내었으며 특히 원나라가 이와 같은 고려의 마직물을 선호하여 여러 번 조공을 요구했으며 고려 충렬왕의 기록에 의하면 어느 한 여승은 원나라 공주에게 꽃문양이 들어가 있는 모시를 선물로 바쳤다는 내용도 있다. 더불어 『고려사』의 내용에 직조를 담당하던 잡직서(雜織署) 중 모직물을 전문적으로 관장하는 ‘계장(罽匠)’이 따로 있었고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기록에 모직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국가 소속 모의장(毛衣匠)과 모관장(毛冠匠) 등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면 왕이 특별한 신하들에게 하사하던 물품 중에서 모직물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견직물과 마찬가지로 지배계층에서 주로 사용하던 직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주변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여러 문헌자료를 종합해보면 우리 선조들은 면․마․견․모 네 가지 ...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textile industries shown up on the historical records and analyze the exhumed textiles by the types and the weaving. This research was done by picking out the total 2,598 textiles among the good exhumed textiles of Joseon periods from the 15th to the ...

주제어

#직물 섬유산업 섬유무역 

학위논문 정보

저자 박정임
학위수여기관 경성대학교
학위구분 국내박사
학과 의상학과
발행연도 2010
총페이지 ⅷ,169p.
키워드 직물 섬유산업 섬유무역
언어 kor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1948168&outLink=K
정보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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