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에 있어 문화의 흐름은 중국대륙의 문화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유입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복제를 그대로 일본에 전해주지는 않았고, 일본 역시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으므로 양국의 의복에서는 유사성과 함께 각 민족 고유의 독자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한, 중, 일 삼국의 복제 중 상고시대부터 공통적으로 착용하였으며 표의로 사용되었던 포(袍)는 왕 이하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모두 착용하였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다는 점 외에도 한자 문화권이라는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활발한 교류를 통해 각각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으며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양국의 생활문화에 있어 큰 맥이 되는 의복문화에서는 많은 유사성을 보이는 경우도 있는 반면 민족마다 고유의 독자성을 지니므로 문화적 차이가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조선시대는 억불숭유와 유교주의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며, 농업중심의 경제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면서 중앙집권적 봉건관료주의 국가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
동북아시아에 있어 문화의 흐름은 중국대륙의 문화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유입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복제를 그대로 일본에 전해주지는 않았고, 일본 역시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으므로 양국의 의복에서는 유사성과 함께 각 민족 고유의 독자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한, 중, 일 삼국의 복제 중 상고시대부터 공통적으로 착용하였으며 표의로 사용되었던 포(袍)는 왕 이하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모두 착용하였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다는 점 외에도 한자 문화권이라는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활발한 교류를 통해 각각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으며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양국의 생활문화에 있어 큰 맥이 되는 의복문화에서는 많은 유사성을 보이는 경우도 있는 반면 민족마다 고유의 독자성을 지니므로 문화적 차이가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조선시대는 억불숭유와 유교주의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며, 농업중심의 경제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면서 중앙집권적 봉건관료주의 국가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임진왜란(1592~1598), 병자호란(1636~1637)의 양란을 계기로 후기에는 사회 전역에서 국가제도의 문란이 가속화 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실학사상이 가장 큰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대두되었다. 정치적으로는 16세기 집권층의 귀족화로 권력과 부의 독점현상으로 인한 양반층 대립이 노골화되어감에 따라 사화, 당쟁이 일어나면서 양반층 내부의 세력에 균형이 깨어지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함으로써 국가적으로 통제하던 상업체제가 무너지고 도매상인 층이 형성되었으며, 관장제(官匠制)는 독립자영수공업의 형태로 변화하였고, 시설의 발달로 이모작이 보급됨에 따라 많은 토지가 일부 경작자에게 집중되어 부농이 형성되었고 이농현상이 발생하였다. 전쟁 중 노비문서가 소각됨으로써 신분제의 파악이 불가능해졌고, 재정확보를 위해 납속책(納贖策)이 시행되어 신분체제에 변화가 일어났다. 전쟁으로 인한 문화적 피폐와 재건의 움직임이 일어났고, 기존의 성리학 풍토에 대한 반발의식이 대두되었다. 이로 인하여 성리학과는 다른 실증을 추구하는 실학이라는 사상이 성립 되면서 상품과 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해 부를 축적한 중인 계층이 등장하였다. 이와 동시대의 일본은 모모야마·에도시대로 일본 무사 계층을 정점으로 하여 농민, 직인, 상인을 두는 계급제도의 변화와 함께 이를 확립하여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였고, 농민은 쌀을 생산한다는 이유로 직인보다 존중되었고, 상인은 사회에 대해 어떠한 가치생산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였다. 그러나 상인들은 직인들과 함께 도시를 활성화시켜 경제적인 부를 가진 쵸닌(町人)으로 불리는 계급이 생겨나 당시 서민문화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조선시대는 실학이 에도시대는 쵸닌문화가 주류를 이루어 서민문화가 많이 발달되었으며, 복식에 있어서도 외래의 영향을 따르기 보다는 민족 고유의 특성이 강하게 반영된 고유의 복식으로 국속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로 한국과 일본의 복식 비교 분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근세 한·일간 복식을 비교해 보면, 조선시대는 포의 종류가 분화되고 다양한 형태가 성립되었으므로 남자포가 계급과 용도를 나타내고 발전하는 시기였다. 또한 모모야마와 에도시대도 서민문화의 활성화로 관복포와 편복포의 형태적인 차이를 나타내어 한·일간에도 공통점을 보이는 시기이다. 양국의 남자포는 상고시대부터 공통적으로 표의(表衣)로 사용해왔고, 왕 이하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보편적으로 입는 겉옷이었다. 처음에는 방한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가 점차 예를 갖추기 위한 의례용으로 변해갔고, 그 기능과 형태는 근세로 넘어오면서 계급과 용도에 따라 각각의 독자성을 반영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한국의 남자포는 크게 관복과 편복으로 나누어져, 관복포인 단령포는 형태가 단일하며 관료들에게만 입혀졌고, 편복포는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신분의 계통에서 착용되어 왔다. 특히 편복포는 문양이나 색채의 변화보다는 형태에 있어 소매나 깃, 도련의 모양을 달리하면서 여러 종류의 포가 존재했고, 외래적인 영향을 받은 것과 국속화 된 것도 포함되어 그 종류는 다양하다. 복색은 백색을 주로하고, 이에 오방 원색의 복색을 더하였다. 그러나 엄격한 신분사회 제도의 영향으로 직물의 색채, 문양, 소재는 엄격히 규제되어졌다. 일본의 남자포는 헤이안시대를 기점으로 생긴 속대장속을 시작으로 겉옷포의 분화가 이루어졌고 장속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헤이안시대 복제의 제정에 따라 남자포의 종류를 다양하게 만들었고 이 때 정착된 일본의 장속은 이후 에도시대까지 이어져 갔다. 일본의 남자포의 종류는 공식적인 행사에 착용하는 장속의 일구(一具)로서의 관복포와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편복포의 종류인 고소데(小袖)형 포로 나눌 수 있다. 장속의 일부로서의 포는 헤이안시대 복식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 착용되었으나, 편복포로서의 고소데는 조선시대의 편복포와 달리 형태보다는 색채나 문양의 변화로 인해 고소데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는 일본 여성복의 변화와도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다. 남자포의 형태에서도 여성의 포처럼 화려하게 장식되었고, 이러게 화려한 형태는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일반서민에게도 사용되어졌다. 전반적으로 의복이 질적으로 향상되고 분화되어 계층마다 특색 있는 의복이 생겨났다. 지금까지의 한국과 일본의 의복에 관한 연구는 양국의 복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한국과 일본의 복식형태의 비교와 관련해서는 색채, 의복의 계통, 문양과 자수 등의 비교 등 의복요소의 부분적 고찰에 한정되어 왔다. 특히 한·일간 남자복식의 비교에 관한 선행연구는 거의 없어 본 논문에서는 양국 간 남자복식 중 겉옷의 역할을 하였던 포에 대한 비교연구를 하고자 한다. 한·일간 복식문화가 양국에 미친 영향에 관련된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지영은 한·일간 의복에 나타난 문양과 표현방법에 대해 비교하였는데, 장지영의 연구는 주로 여성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노수정은 조선시대 후기와 에도시대의 직물에 표현된 식물무늬를 비교 연구하였는데 노수정의 연구는 문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박지희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직물에 나타난 납염(藍染)을 연구하여 직물의 표현기법에 관해서 고찰하였다. 음정선은 한국과 일본의 전통 색채관과 복색에 관해 연구하였고, 문정선은 의복에 나타난 전통색을 비교하여 한일 간의 색채 사용의 차이를 연구하였다. 이상의 선행연구들은 여성복을 중심으로 연구한 내용들이였고 남자포의 형태, 색채와 문양, 소재를 함께 비교 분석한 바는 많지 않았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와 에도시대의 지배계급이 입었던 관복포와 일반의복으로 사용되었던 편복포의 종류, 형태, 색채, 소재의 조형적 특성의 분석을 통해서 한국과 일본의 사회문화적인 현상에 따라서 전통적인 남자포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알 수 있고, 나아가 한국과 일본 양국 간 남자포의 형태비교를 통해 복식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전통복식을 계승, 발전시킴과 동시에 양국의 복식문화를 이해하는데 연구목적을 두고 있다. 본 연구의 구체적인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시대와 모모야마·에도시대 남자포의 종류를 분류한다. 둘째, 조선시대와 모모야마·에도시대 남자포의 형태 특성을 고찰한다. 셋째, 조선시대와 모모야마·에도시대 남자포의 색채·특성을 고찰한다. 넷째, 조선시대와 모모야마·에도시대 남자포의 소재 특성을 고찰한다. 다섯째, 조선시대와 모모야마·에도시대 남자포의 조형적 특성을 비교 분석하고 고찰한다.
동북아시아에 있어 문화의 흐름은 중국대륙의 문화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유입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복제를 그대로 일본에 전해주지는 않았고, 일본 역시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으므로 양국의 의복에서는 유사성과 함께 각 민족 고유의 독자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한, 중, 일 삼국의 복제 중 상고시대부터 공통적으로 착용하였으며 표의로 사용되었던 포(袍)는 왕 이하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모두 착용하였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다는 점 외에도 한자 문화권이라는 문화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활발한 교류를 통해 각각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으며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양국의 생활문화에 있어 큰 맥이 되는 의복문화에서는 많은 유사성을 보이는 경우도 있는 반면 민족마다 고유의 독자성을 지니므로 문화적 차이가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조선시대는 억불숭유와 유교주의에 의하여 건립되었으며, 농업중심의 경제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면서 중앙집권적 봉건관료주의 국가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임진왜란(1592~1598), 병자호란(1636~1637)의 양란을 계기로 후기에는 사회 전역에서 국가제도의 문란이 가속화 되었다. 이로 인해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실학사상이 가장 큰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대두되었다. 정치적으로는 16세기 집권층의 귀족화로 권력과 부의 독점현상으로 인한 양반층 대립이 노골화되어감에 따라 사화, 당쟁이 일어나면서 양반층 내부의 세력에 균형이 깨어지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함으로써 국가적으로 통제하던 상업체제가 무너지고 도매상인 층이 형성되었으며, 관장제(官匠制)는 독립자영수공업의 형태로 변화하였고, 시설의 발달로 이모작이 보급됨에 따라 많은 토지가 일부 경작자에게 집중되어 부농이 형성되었고 이농현상이 발생하였다. 전쟁 중 노비문서가 소각됨으로써 신분제의 파악이 불가능해졌고, 재정확보를 위해 납속책(納贖策)이 시행되어 신분체제에 변화가 일어났다. 전쟁으로 인한 문화적 피폐와 재건의 움직임이 일어났고, 기존의 성리학 풍토에 대한 반발의식이 대두되었다. 이로 인하여 성리학과는 다른 실증을 추구하는 실학이라는 사상이 성립 되면서 상품과 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해 부를 축적한 중인 계층이 등장하였다. 이와 동시대의 일본은 모모야마·에도시대로 일본 무사 계층을 정점으로 하여 농민, 직인, 상인을 두는 계급제도의 변화와 함께 이를 확립하여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였고, 농민은 쌀을 생산한다는 이유로 직인보다 존중되었고, 상인은 사회에 대해 어떠한 가치생산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였다. 그러나 상인들은 직인들과 함께 도시를 활성화시켜 경제적인 부를 가진 쵸닌(町人)으로 불리는 계급이 생겨나 당시 서민문화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조선시대는 실학이 에도시대는 쵸닌문화가 주류를 이루어 서민문화가 많이 발달되었으며, 복식에 있어서도 외래의 영향을 따르기 보다는 민족 고유의 특성이 강하게 반영된 고유의 복식으로 국속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로 한국과 일본의 복식 비교 분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근세 한·일간 복식을 비교해 보면, 조선시대는 포의 종류가 분화되고 다양한 형태가 성립되었으므로 남자포가 계급과 용도를 나타내고 발전하는 시기였다. 또한 모모야마와 에도시대도 서민문화의 활성화로 관복포와 편복포의 형태적인 차이를 나타내어 한·일간에도 공통점을 보이는 시기이다. 양국의 남자포는 상고시대부터 공통적으로 표의(表衣)로 사용해왔고, 왕 이하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보편적으로 입는 겉옷이었다. 처음에는 방한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가 점차 예를 갖추기 위한 의례용으로 변해갔고, 그 기능과 형태는 근세로 넘어오면서 계급과 용도에 따라 각각의 독자성을 반영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한국의 남자포는 크게 관복과 편복으로 나누어져, 관복포인 단령포는 형태가 단일하며 관료들에게만 입혀졌고, 편복포는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신분의 계통에서 착용되어 왔다. 특히 편복포는 문양이나 색채의 변화보다는 형태에 있어 소매나 깃, 도련의 모양을 달리하면서 여러 종류의 포가 존재했고, 외래적인 영향을 받은 것과 국속화 된 것도 포함되어 그 종류는 다양하다. 복색은 백색을 주로하고, 이에 오방 원색의 복색을 더하였다. 그러나 엄격한 신분사회 제도의 영향으로 직물의 색채, 문양, 소재는 엄격히 규제되어졌다. 일본의 남자포는 헤이안시대를 기점으로 생긴 속대장속을 시작으로 겉옷포의 분화가 이루어졌고 장속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헤이안시대 복제의 제정에 따라 남자포의 종류를 다양하게 만들었고 이 때 정착된 일본의 장속은 이후 에도시대까지 이어져 갔다. 일본의 남자포의 종류는 공식적인 행사에 착용하는 장속의 일구(一具)로서의 관복포와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편복포의 종류인 고소데(小袖)형 포로 나눌 수 있다. 장속의 일부로서의 포는 헤이안시대 복식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 착용되었으나, 편복포로서의 고소데는 조선시대의 편복포와 달리 형태보다는 색채나 문양의 변화로 인해 고소데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는 일본 여성복의 변화와도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다. 남자포의 형태에서도 여성의 포처럼 화려하게 장식되었고, 이러게 화려한 형태는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일반서민에게도 사용되어졌다. 전반적으로 의복이 질적으로 향상되고 분화되어 계층마다 특색 있는 의복이 생겨났다. 지금까지의 한국과 일본의 의복에 관한 연구는 양국의 복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나, 한국과 일본의 복식형태의 비교와 관련해서는 색채, 의복의 계통, 문양과 자수 등의 비교 등 의복요소의 부분적 고찰에 한정되어 왔다. 특히 한·일간 남자복식의 비교에 관한 선행연구는 거의 없어 본 논문에서는 양국 간 남자복식 중 겉옷의 역할을 하였던 포에 대한 비교연구를 하고자 한다. 한·일간 복식문화가 양국에 미친 영향에 관련된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지영은 한·일간 의복에 나타난 문양과 표현방법에 대해 비교하였는데, 장지영의 연구는 주로 여성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노수정은 조선시대 후기와 에도시대의 직물에 표현된 식물무늬를 비교 연구하였는데 노수정의 연구는 문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박지희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직물에 나타난 납염(藍染)을 연구하여 직물의 표현기법에 관해서 고찰하였다. 음정선은 한국과 일본의 전통 색채관과 복색에 관해 연구하였고, 문정선은 의복에 나타난 전통색을 비교하여 한일 간의 색채 사용의 차이를 연구하였다. 이상의 선행연구들은 여성복을 중심으로 연구한 내용들이였고 남자포의 형태, 색채와 문양, 소재를 함께 비교 분석한 바는 많지 않았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와 에도시대의 지배계급이 입었던 관복포와 일반의복으로 사용되었던 편복포의 종류, 형태, 색채, 소재의 조형적 특성의 분석을 통해서 한국과 일본의 사회문화적인 현상에 따라서 전통적인 남자포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알 수 있고, 나아가 한국과 일본 양국 간 남자포의 형태비교를 통해 복식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전통복식을 계승, 발전시킴과 동시에 양국의 복식문화를 이해하는데 연구목적을 두고 있다. 본 연구의 구체적인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시대와 모모야마·에도시대 남자포의 종류를 분류한다. 둘째, 조선시대와 모모야마·에도시대 남자포의 형태 특성을 고찰한다. 셋째, 조선시대와 모모야마·에도시대 남자포의 색채·특성을 고찰한다. 넷째, 조선시대와 모모야마·에도시대 남자포의 소재 특성을 고찰한다. 다섯째, 조선시대와 모모야마·에도시대 남자포의 조형적 특성을 비교 분석하고 고찰한다.
The Po(袍) is an outer garment. That is commonly worn without in class. It had developed according to spiritual culture of the main group embossed newly in those days and reflects the social conditions well at that time. Korea and Japan are near in topographical, besides have something in common with...
The Po(袍) is an outer garment. That is commonly worn without in class. It had developed according to spiritual culture of the main group embossed newly in those days and reflects the social conditions well at that time. Korea and Japan are near in topographical, besides have something in common with Chinese Character cultural area. So there are many differences and common features in clothing culture between the two. The early modern is very important period on this study because the costume of early mordern is an original form of the traditional costume today. It corresponds to Chosŏn dynasty in Korea and Momoyama·Edo period in Japan. This study investigated and compared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represented by Po between Korea and Japan in early modern.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is considered from three categories, the shapes, the color, the material. This study is based on documentary records.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the following. First, the Po of Chosŏn sought after the beauty of shape by composition line and represented a natural pattern in reality. Especially, a cloud pattern mainly used and was symbolic. Second, the Po of Momoyama, Edo sought after the beauty of color by many kinds of dyeing process and technique. and represented particularly a geometrical pattern. The floral pattern represented the family and was actual. Third, the Korean Po is characterized by concealment, body movement does not appear on the right sides because of wrapping in clothes. The other hand, Japanese Po showed unique style and emphasized the exaggerated size by wearing Kosode and Kataginu one over the other. Fourth, the diversification of everyday clothes in Korea and the vogue of Kosode in Japan were due to emphasis of utility according to disorder of social class. Lastly, though both of country, working class turn into a prime mover. The Po from Chosŏn appear the trend of diffusion toward lower side. While on the other the Po from Momoyama·Edo appear the trend of diffusion toward upper side.
The Po(袍) is an outer garment. That is commonly worn without in class. It had developed according to spiritual culture of the main group embossed newly in those days and reflects the social conditions well at that time. Korea and Japan are near in topographical, besides have something in common with Chinese Character cultural area. So there are many differences and common features in clothing culture between the two. The early modern is very important period on this study because the costume of early mordern is an original form of the traditional costume today. It corresponds to Chosŏn dynasty in Korea and Momoyama·Edo period in Japan. This study investigated and compared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represented by Po between Korea and Japan in early modern.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is considered from three categories, the shapes, the color, the material. This study is based on documentary records.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the following. First, the Po of Chosŏn sought after the beauty of shape by composition line and represented a natural pattern in reality. Especially, a cloud pattern mainly used and was symbolic. Second, the Po of Momoyama, Edo sought after the beauty of color by many kinds of dyeing process and technique. and represented particularly a geometrical pattern. The floral pattern represented the family and was actual. Third, the Korean Po is characterized by concealment, body movement does not appear on the right sides because of wrapping in clothes. The other hand, Japanese Po showed unique style and emphasized the exaggerated size by wearing Kosode and Kataginu one over the other. Fourth, the diversification of everyday clothes in Korea and the vogue of Kosode in Japan were due to emphasis of utility according to disorder of social class. Lastly, though both of country, working class turn into a prime mover. The Po from Chosŏn appear the trend of diffusion toward lower side. While on the other the Po from Momoyama·Edo appear the trend of diffusion toward upper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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