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다도(茶道)는 교양의 하나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단어이다. 일부정규교과과정에서도 다도가 학습되고 있으며, 일반시민들을 위한 문화강좌나 평생교육원 교육과정에서도 다도교육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것은 차가 기호음료로써의 기능뿐 아니라 ‘茶’를 통하여 건강한 정신을 수양하고 더불어 올바른 예절을 익히는 과정이 요즈음 열풍인 ‘Well-being’바람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 다. 현대 사회는 과학적 지식·기술의 발달, 정보의 급증, 경제적 수준의 향상 등의 사회변화에 의해 개인주의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
오늘날 다도(茶道)는 교양의 하나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단어이다. 일부정규교과과정에서도 다도가 학습되고 있으며, 일반시민들을 위한 문화강좌나 평생교육원 교육과정에서도 다도교육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것은 차가 기호음료로써의 기능뿐 아니라 ‘茶’를 통하여 건강한 정신을 수양하고 더불어 올바른 예절을 익히는 과정이 요즈음 열풍인 ‘Well-being’바람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 다. 현대 사회는 과학적 지식·기술의 발달, 정보의 급증, 경제적 수준의 향상 등의 사회변화에 의해 개인주의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은 정서적 불안과 정신적 빈곤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대사회가 낳은 병폐를 올바르게 치유할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전통적인 한국의 차문화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차는 군자와 같아 사악함이 없다고 여겼기에 차를 즐겨 마셨다. 또한 차를 통해 예의와 규범을 배우고 익히며 공경의 정신을 기르고 아름다운 전통문화로 이어왔으며 차원 높은 차문화로 승화시켜왔다. 이러한 차문화는 현대에 이르러서 인간의 심성을 순화하고 사회병리 현상의 치유를 위한 도덕성 회복의 한 교과로 주목받고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문화에 대한 이해가 그 바탕이 되어야 하며, 더불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진정한 세계화를 위한 필수요건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볼 때 전통차문화는 많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차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역사를 함께하며 문화의 근간을 이루어왔기 때문에 전통사회의 윤리관과 교유한 문화를 내포하고 있다. 둘째, 자체적으로 지닌 성분이 건강증진에 좋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 인간을 건강하게 해주는 음료로 기호와 보건이라는 효과를 갖고 있다. 셋째, 차는 인간과 자연의 대화매개체로 차를 마심으로써 자연의 현묘한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건강한 신체를 형성해나간다. 또한 신과 인간의 대화매체로 제사에서 차를 올림으로써 신과의 대화통로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매개체로 차를 우려 마심으로써 정견(正見)을 가지게 되고 남을 사랑하고 자신과 대화를 시작하며 정신수양을 하게 된다. 넷째, 종합예술로써 예로부터 선비들은 대자연에 묻혀 그 속에서 차를 마시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감상하는 등 예술의 흥취에 빠져 차를 예찬하거나 차를 마시며 시나 글을 지었다. 또 차회를 할 때는 음악과 더불어 춤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가 즐기고 마시는 차는 그 시대의 정신과 풍속, 의, 식, 주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문화가 한반도에 처음 전래된 시기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때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新羅本記)에 따르면 흥덕왕(興德王 3년 828년) 때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당으로부터 차 씨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후 성행 하였다고한다. 이후 우리나라의 차문화(茶文化)는 고려시대에 와서 활짝 꽃 피웠는데 이는 태조 왕건의 불교숭상과 더불어 주변국인 북송(北宋), 남송(南宋), 명(明)나라 등이 차문화가 크게 발전한 나라였기 때문에 그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태조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차문화 또한 쇠퇴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차문화를 즐기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의 차문화는 정형화되지 못하고 은둔(隱遁)형 다도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조 이후 미약하게나마 명맥을 유지해오던 한국의 전통적인 차문화는 내선일조론에 의하여 일본의 정신문화까지 한반도에 주입하고자 했던 일본 제국주의 식민정책(植民政策)에 의해 또 다시 위기를 겪게 된다. 이에 반해 일본의 다도는 나라시대 전래되어 선종(禪宗)의 발전과 더불어 사무라이계급을 중심으로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센노리큐(千利休)에 의해 집대성 된 다도는 이에모토(家元)제도로 인해 더욱 계승 발전되었다. 메이지유신시기 잠시 쇠퇴하는 듯 하였으나 근대 지식인들 사이에서 전통문화 특히 다도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면서 대중화 되었다. 근대시기에는 여성이 중심이 되어 다도가 근대여성의 교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반면 조선조 이후 근근히 명맥을 이어오던 한국의 다도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후 일본인에 의해 차의 생산과 보급, 연구에 이르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된다. 또한 1930년대에 들어서면 조선여성들을 대상으로 일본식 다도를 교육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식민지시기 행해진 일본식 다도교육은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다도가 사장되고 일본식 다도가 한국식 다도로 잘 못 알려져 성행하게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한국 다도학계에서는 일제강점기 행해진 다도교육애 대하여〔다도교육은, 순수한 의미의 예의작법교육이 아닌 일본의 다도를 조선반도에 심기 위한 식민지교육의 일환이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다도를 교육했던 사실이 어떠한 의미로 식민지 교육의 일환이었으며, 다도의 기본 이념인 예의작법교육을 제외하고 어떠한 교육을 실시하였는지에 대한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일본이 식민지였던 조선에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다도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왜 교육대상을 여성을 중점으로 설정하였는지에 대한 규명과 함께, 피지배민이었던 조선여성들에게 다도의 전통적 교육목적외에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다도교육을 실시하였는지에 대한 연구를 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고는 다음과 같은 연구과정을 거치려고 한다. 먼저 Ⅱ장에서는 일본 다도의 변천과정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일본다도의 역사를 살펴보고 일본의 다도가 어떠한 이유로 발전하게 되어 한반도에 교육되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Ⅲ장에서는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교육했던 목적을 고찰해 보려 한다. 제 1차 조선교육령을 비롯해서 4차로 개정된 조선교육령을 통해 일제의 조선교육정책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또한 일제의 식민지 교육 중에서도 여성들의 교육에 관하여 알아보려한다. 당시 여성들은 남성들과 다른 교육을 받았는데 일제가 조선여성들에게 가르치려 했던 내용은 무엇이며 어떤 사상을 심어주려 했는지 조사해보도록 한다. Ⅳ장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도출된 역사적 사실과 필자의 의견을 종합하여 일본이 조선여성들을 대상으로 행하였던 다도교육이 다도의 순수한 목적을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말하고자 한다. 또한 제국주의 지배이데올로기를 피지배민들에게 합리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닌 채 전파 및 교육되었던 일본식 다도의 태생적 비순수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오늘날 다도(茶道)는 교양의 하나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단어이다. 일부정규교과과정에서도 다도가 학습되고 있으며, 일반시민들을 위한 문화강좌나 평생교육원 교육과정에서도 다도교육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것은 차가 기호음료로써의 기능뿐 아니라 ‘茶’를 통하여 건강한 정신을 수양하고 더불어 올바른 예절을 익히는 과정이 요즈음 열풍인 ‘Well-being’바람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 다. 현대 사회는 과학적 지식·기술의 발달, 정보의 급증, 경제적 수준의 향상 등의 사회변화에 의해 개인주의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은 정서적 불안과 정신적 빈곤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대사회가 낳은 병폐를 올바르게 치유할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전통적인 한국의 차문화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차는 군자와 같아 사악함이 없다고 여겼기에 차를 즐겨 마셨다. 또한 차를 통해 예의와 규범을 배우고 익히며 공경의 정신을 기르고 아름다운 전통문화로 이어왔으며 차원 높은 차문화로 승화시켜왔다. 이러한 차문화는 현대에 이르러서 인간의 심성을 순화하고 사회병리 현상의 치유를 위한 도덕성 회복의 한 교과로 주목받고 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문화에 대한 이해가 그 바탕이 되어야 하며, 더불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진정한 세계화를 위한 필수요건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볼 때 전통차문화는 많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차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역사를 함께하며 문화의 근간을 이루어왔기 때문에 전통사회의 윤리관과 교유한 문화를 내포하고 있다. 둘째, 자체적으로 지닌 성분이 건강증진에 좋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 인간을 건강하게 해주는 음료로 기호와 보건이라는 효과를 갖고 있다. 셋째, 차는 인간과 자연의 대화매개체로 차를 마심으로써 자연의 현묘한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건강한 신체를 형성해나간다. 또한 신과 인간의 대화매체로 제사에서 차를 올림으로써 신과의 대화통로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매개체로 차를 우려 마심으로써 정견(正見)을 가지게 되고 남을 사랑하고 자신과 대화를 시작하며 정신수양을 하게 된다. 넷째, 종합예술로써 예로부터 선비들은 대자연에 묻혀 그 속에서 차를 마시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감상하는 등 예술의 흥취에 빠져 차를 예찬하거나 차를 마시며 시나 글을 지었다. 또 차회를 할 때는 음악과 더불어 춤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가 즐기고 마시는 차는 그 시대의 정신과 풍속, 의, 식, 주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문화가 한반도에 처음 전래된 시기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때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新羅本記)에 따르면 흥덕왕(興德王 3년 828년) 때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당으로부터 차 씨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후 성행 하였다고한다. 이후 우리나라의 차문화(茶文化)는 고려시대에 와서 활짝 꽃 피웠는데 이는 태조 왕건의 불교숭상과 더불어 주변국인 북송(北宋), 남송(南宋), 명(明)나라 등이 차문화가 크게 발전한 나라였기 때문에 그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태조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차문화 또한 쇠퇴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차문화를 즐기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의 차문화는 정형화되지 못하고 은둔(隱遁)형 다도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조 이후 미약하게나마 명맥을 유지해오던 한국의 전통적인 차문화는 내선일조론에 의하여 일본의 정신문화까지 한반도에 주입하고자 했던 일본 제국주의 식민정책(植民政策)에 의해 또 다시 위기를 겪게 된다. 이에 반해 일본의 다도는 나라시대 전래되어 선종(禪宗)의 발전과 더불어 사무라이계급을 중심으로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센노리큐(千利休)에 의해 집대성 된 다도는 이에모토(家元)제도로 인해 더욱 계승 발전되었다. 메이지유신시기 잠시 쇠퇴하는 듯 하였으나 근대 지식인들 사이에서 전통문화 특히 다도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면서 대중화 되었다. 근대시기에는 여성이 중심이 되어 다도가 근대여성의 교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반면 조선조 이후 근근히 명맥을 이어오던 한국의 다도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후 일본인에 의해 차의 생산과 보급, 연구에 이르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된다. 또한 1930년대에 들어서면 조선여성들을 대상으로 일본식 다도를 교육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식민지시기 행해진 일본식 다도교육은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다도가 사장되고 일본식 다도가 한국식 다도로 잘 못 알려져 성행하게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한국 다도학계에서는 일제강점기 행해진 다도교육애 대하여〔다도교육은, 순수한 의미의 예의작법교육이 아닌 일본의 다도를 조선반도에 심기 위한 식민지교육의 일환이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다도를 교육했던 사실이 어떠한 의미로 식민지 교육의 일환이었으며, 다도의 기본 이념인 예의작법교육을 제외하고 어떠한 교육을 실시하였는지에 대한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일본이 식민지였던 조선에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다도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왜 교육대상을 여성을 중점으로 설정하였는지에 대한 규명과 함께, 피지배민이었던 조선여성들에게 다도의 전통적 교육목적외에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다도교육을 실시하였는지에 대한 연구를 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고는 다음과 같은 연구과정을 거치려고 한다. 먼저 Ⅱ장에서는 일본 다도의 변천과정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일본다도의 역사를 살펴보고 일본의 다도가 어떠한 이유로 발전하게 되어 한반도에 교육되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Ⅲ장에서는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교육했던 목적을 고찰해 보려 한다. 제 1차 조선교육령을 비롯해서 4차로 개정된 조선교육령을 통해 일제의 조선교육정책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또한 일제의 식민지 교육 중에서도 여성들의 교육에 관하여 알아보려한다. 당시 여성들은 남성들과 다른 교육을 받았는데 일제가 조선여성들에게 가르치려 했던 내용은 무엇이며 어떤 사상을 심어주려 했는지 조사해보도록 한다. Ⅳ장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도출된 역사적 사실과 필자의 의견을 종합하여 일본이 조선여성들을 대상으로 행하였던 다도교육이 다도의 순수한 목적을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말하고자 한다. 또한 제국주의 지배이데올로기를 피지배민들에게 합리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닌 채 전파 및 교육되었던 일본식 다도의 태생적 비순수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This day, Tea ceremony as part of refinement is a familiar word with us. It is because in addition to a function of tea as a beverage, process to make mind healthy and master desirable manners through 'tea' appeals to 'Well-being' trend well. In order to create new values in 21's, we have to underst...
This day, Tea ceremony as part of refinement is a familiar word with us. It is because in addition to a function of tea as a beverage, process to make mind healthy and master desirable manners through 'tea' appeals to 'Well-being' trend well. In order to create new values in 21's, we have to understand our culture and succeeding to and developing our traditional culture are necessities for a true globalization. At this point, traditional tea culture has lots of significances. Tea culture in Korea was prevalent with prosperity of Buddhist culture since it was first introduced when the 27th Queen, Sonduk ruled Silla and it blossomed in Koryo Period. However, it gradually decayed due to a policy to prohibit Buddhism and worship Confucianism of Joseon Dynasty. Because of this historical background, tea culture of Korea was not standardized contrary to other countries that enjoyed tea culture a lot and it became secluded culture. But after Joseon Dynasty, Korean traditional tea culture that barely kept its tradition, faced another crisis due to a colonial policy of Japanese imperialism that tried to put Japanese moral culture into the Korean Peninsula. At that time, Japanese imperialism that merged Joseon, controlled everything including production and supply of tea and research. Also, in 1930's, they instructed Japanese style tea ceremony to women of Joseon. In relation to this, the academic world of tea ceremony argues that 'it was part of colonial education to inculcate Japanese tea ceremony in the Joseon Peninsula, not a well-intentioned manner education'. However, they have not yet suggested clear opinions of why it was part of colonial education. This paper, therefore, aims to examine why Japan implemented education of tea ceremony in Joseon and why they selected women as educational targets.
This day, Tea ceremony as part of refinement is a familiar word with us. It is because in addition to a function of tea as a beverage, process to make mind healthy and master desirable manners through 'tea' appeals to 'Well-being' trend well. In order to create new values in 21's, we have to understand our culture and succeeding to and developing our traditional culture are necessities for a true globalization. At this point, traditional tea culture has lots of significances. Tea culture in Korea was prevalent with prosperity of Buddhist culture since it was first introduced when the 27th Queen, Sonduk ruled Silla and it blossomed in Koryo Period. However, it gradually decayed due to a policy to prohibit Buddhism and worship Confucianism of Joseon Dynasty. Because of this historical background, tea culture of Korea was not standardized contrary to other countries that enjoyed tea culture a lot and it became secluded culture. But after Joseon Dynasty, Korean traditional tea culture that barely kept its tradition, faced another crisis due to a colonial policy of Japanese imperialism that tried to put Japanese moral culture into the Korean Peninsula. At that time, Japanese imperialism that merged Joseon, controlled everything including production and supply of tea and research. Also, in 1930's, they instructed Japanese style tea ceremony to women of Joseon. In relation to this, the academic world of tea ceremony argues that 'it was part of colonial education to inculcate Japanese tea ceremony in the Joseon Peninsula, not a well-intentioned manner education'. However, they have not yet suggested clear opinions of why it was part of colonial education. This paper, therefore, aims to examine why Japan implemented education of tea ceremony in Joseon and why they selected women as educational targets.
주제어
#조선여성 다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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