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개념의 도시계획과 계획 가로들이 등장하였고, 대구는 이전의 불규칙한 미로형의 도시조직과 계획된 조직들이 혼재된 도시로 변모하였다. 대구읍성의 철거 이후 그 자리에 형성된 순환도로와 1917년 개통된 中央通(중앙로)은 대구 도심의 현재모습을 형성하는 출발점이자 근대도시로의 전환에 중요한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 또한 中央通은 대구의 최대 상권을 이루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금융자본과 당시 일제의 기업들이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해방된 이후에도 그 영향력은 지속되어 현재까지도 대구의 중심상업지구이자,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1900년대 초반 이후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이 주변으로 형성되면서 새로운 도시로의 이행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 지역이다. 새로운 가로가 생기면서 도시 조직은 변하게 되고 그 조직의 가장 기본 단위가 되는 필지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변화된 필지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본 연구는 구 대구읍성내의 中央通을 중심으로 필지 변화 양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시기별로 필지 상황을 추적하여 도면화한 필지지적도를 통하여 筆地分合방식을 분석하고, ...
근대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개념의 도시계획과 계획 가로들이 등장하였고, 대구는 이전의 불규칙한 미로형의 도시조직과 계획된 조직들이 혼재된 도시로 변모하였다. 대구읍성의 철거 이후 그 자리에 형성된 순환도로와 1917년 개통된 中央通(중앙로)은 대구 도심의 현재모습을 형성하는 출발점이자 근대도시로의 전환에 중요한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 또한 中央通은 대구의 최대 상권을 이루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금융자본과 당시 일제의 기업들이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해방된 이후에도 그 영향력은 지속되어 현재까지도 대구의 중심상업지구이자,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1900년대 초반 이후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이 주변으로 형성되면서 새로운 도시로의 이행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 지역이다. 새로운 가로가 생기면서 도시 조직은 변하게 되고 그 조직의 가장 기본 단위가 되는 필지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변화된 필지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본 연구는 구 대구읍성내의 中央通을 중심으로 필지 변화 양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시기별로 필지 상황을 추적하여 도면화한 필지지적도를 통하여 筆地分合방식을 분석하고, 토지대장을 이용하여 각 시기별 지목, 면적, 소유자 등을 분석하여 필지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연구의 공간적 범위는 구 대구읍성에 해당하는 현재 중구의 일부지역이며, 시간적으로는 필지지적도가 처음으로 작성된 1911년부터 해방이전까지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이를 지적도가 새로 작성된 1929년을 기준으로 크게 2개 시기로 나누어 변화를 추적하였다. 대구읍성 내부의 필지 변화과정을 통해 살펴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로개통은 읍성내부 필지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으며, 도로와 접한 필지뿐 아니라 인근 필지까지 영향을 주었다. 특히 中央通의 경우 상업가로가 되면서 도로와 직교되는 필지선들이 생겨나 세장한 필지가 증가하였다. 또한, 계획된 가로가 도시의 중심공간으로 인식되고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갔다. 둘째, 당시 행정․업무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本町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뉘어 그 변화양상을 살펴보면 북부가 남부에 비해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구역 건설로 인한 북동부의 발달과 당시의 활성화된 상업지인 元町과의 위치관계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필지 소유자의 소유권의 이동에 따라 필지분합이 일어나고, 필지의 지번체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넷째, 필지변화는 1929년 이전까지 부분적으로 나타나다가, 1929년 이후가 되면서 주변과 연계된 변화를 보이게 된다. 도시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되어온 필지와 가로, 가구체계는 도시조직의 중요한 요소이며, 그 도시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대구읍성내부는 도로의 개통으로 인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도시조직들이 변화하여 불규칙한 가로와 가구 체계들이 격자형의 공간구조를 만들어냈다. 또한, 정형화된 필지를 가지는 상업도시로서의 대구를 형성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근대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개념의 도시계획과 계획 가로들이 등장하였고, 대구는 이전의 불규칙한 미로형의 도시조직과 계획된 조직들이 혼재된 도시로 변모하였다. 대구읍성의 철거 이후 그 자리에 형성된 순환도로와 1917년 개통된 中央通(중앙로)은 대구 도심의 현재모습을 형성하는 출발점이자 근대도시로의 전환에 중요한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 또한 中央通은 대구의 최대 상권을 이루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금융자본과 당시 일제의 기업들이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해방된 이후에도 그 영향력은 지속되어 현재까지도 대구의 중심상업지구이자,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1900년대 초반 이후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이 주변으로 형성되면서 새로운 도시로의 이행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 지역이다. 새로운 가로가 생기면서 도시 조직은 변하게 되고 그 조직의 가장 기본 단위가 되는 필지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변화된 필지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본 연구는 구 대구읍성내의 中央通을 중심으로 필지 변화 양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시기별로 필지 상황을 추적하여 도면화한 필지지적도를 통하여 筆地分合방식을 분석하고, 토지대장을 이용하여 각 시기별 지목, 면적, 소유자 등을 분석하여 필지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연구의 공간적 범위는 구 대구읍성에 해당하는 현재 중구의 일부지역이며, 시간적으로는 필지지적도가 처음으로 작성된 1911년부터 해방이전까지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이를 지적도가 새로 작성된 1929년을 기준으로 크게 2개 시기로 나누어 변화를 추적하였다. 대구읍성 내부의 필지 변화과정을 통해 살펴본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로개통은 읍성내부 필지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으며, 도로와 접한 필지뿐 아니라 인근 필지까지 영향을 주었다. 특히 中央通의 경우 상업가로가 되면서 도로와 직교되는 필지선들이 생겨나 세장한 필지가 증가하였다. 또한, 계획된 가로가 도시의 중심공간으로 인식되고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갔다. 둘째, 당시 행정․업무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本町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뉘어 그 변화양상을 살펴보면 북부가 남부에 비해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구역 건설로 인한 북동부의 발달과 당시의 활성화된 상업지인 元町과의 위치관계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필지 소유자의 소유권의 이동에 따라 필지분합이 일어나고, 필지의 지번체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넷째, 필지변화는 1929년 이전까지 부분적으로 나타나다가, 1929년 이후가 되면서 주변과 연계된 변화를 보이게 된다. 도시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되어온 필지와 가로, 가구체계는 도시조직의 중요한 요소이며, 그 도시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대구읍성내부는 도로의 개통으로 인해 이전에 가지고 있던 도시조직들이 변화하여 불규칙한 가로와 가구 체계들이 격자형의 공간구조를 만들어냈다. 또한, 정형화된 필지를 가지는 상업도시로서의 대구를 형성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As new concepts of the urban and street planning have emerged in Korea since entering the modern age, Daegu has transformed into the city where the existing irregular urban tissues like a maze and the planned urban tissues are mixed. After demolition of Daegu-eupseong(the Daegu fortress), the circul...
As new concepts of the urban and street planning have emerged in Korea since entering the modern age, Daegu has transformed into the city where the existing irregular urban tissues like a maze and the planned urban tissues are mixed. After demolition of Daegu-eupseong(the Daegu fortress), the circulation road constructed in the place and JungAngno opened in 1917 became a starting point to form the present appearance of downtown Daegu and one of the most important factors to convert Daegu into a modern city. In addition, JungAngtong became the largest commercial area in Daegu. As a result, financial capital and Japanese companies were attracted to this area which became the center of culture and arts. This area remained an influential place after gaining independence and remains the key commercial district and symbolic space even in modern times. As residences for Japanese have been formed near this area, transformation into the new city has been more remarkable in JungAngtong than any other area since the early 1900s. As new streets were constructed, the urban tissues were transformed, which caused lots, the most basic unit of the urban tissue to experience various changes. As a variety of studies on the changed lots have been carried out and this study was aimed at investigating the aspects of lots change, focused on JungAngtong in Daegu-eupseong. In addition, the study aimed to identify characteristics of lots by analyzing the methods for subdivision and amalgamation of lots through lot cadastral maps which were drawn after tracking the lots' situation by period and by searching for land category, area and owner by period through land register. The spatial range of this study included some areas of the present Daegu, or the old Daegu-eupseong. The research was conducted after dividing the period from 1911 to 1945 into two sections on the basis of the year 1929 when cadastral maps were revised newly, in order to investigate lots change from 1911 when a lot cadastral map was made for the first time to 1945 when Korea gained independence. The results from this study on the process of lots change inside Daegu-eupseong are the followings. First, the opening of roads was the most important factor to change lots in Daegu-eupseong and had an effect on lots near roads as well as lots joining along roads. In particular, as JungAngtong was transformed into a commercial street, lot lines at right angles to roads were created, increasing deep and narrow lots. Also, planned streets were recognized as a center space of the city, leading to continuous development of the city. In addition, the aspects of lots change in the northern and southern areas on the base of BonJung that played a role as the center of administration and business were investigated in the study. The results showed that the northern area experienced more changes than the southern. It is considered that the causes of these changes were development of the northeast area by constructing Daegu station and geographical proximity to WonJung that was a major commercial area at that time. Third, the transfer of lot ownership triggered subdivision and amalgamation of lots and changed the system of parcel identification number in many cases. Finally, lots were partially changed until 1929 but lots change connected with surroundings has taken place since 1929. The systems of lot, street and household which have been changed in the city are important components of urban tissue and involve the nature of the city. The existing urban tissues were transformed inside Daegu-eupseong by opening of roads and irregular street and household systems were changed into the grid shaped space structures, which provided the foundation to develop Daegu as a commercial city with uniform lots.
As new concepts of the urban and street planning have emerged in Korea since entering the modern age, Daegu has transformed into the city where the existing irregular urban tissues like a maze and the planned urban tissues are mixed. After demolition of Daegu-eupseong(the Daegu fortress), the circulation road constructed in the place and JungAngno opened in 1917 became a starting point to form the present appearance of downtown Daegu and one of the most important factors to convert Daegu into a modern city. In addition, JungAngtong became the largest commercial area in Daegu. As a result, financial capital and Japanese companies were attracted to this area which became the center of culture and arts. This area remained an influential place after gaining independence and remains the key commercial district and symbolic space even in modern times. As residences for Japanese have been formed near this area, transformation into the new city has been more remarkable in JungAngtong than any other area since the early 1900s. As new streets were constructed, the urban tissues were transformed, which caused lots, the most basic unit of the urban tissue to experience various changes. As a variety of studies on the changed lots have been carried out and this study was aimed at investigating the aspects of lots change, focused on JungAngtong in Daegu-eupseong. In addition, the study aimed to identify characteristics of lots by analyzing the methods for subdivision and amalgamation of lots through lot cadastral maps which were drawn after tracking the lots' situation by period and by searching for land category, area and owner by period through land register. The spatial range of this study included some areas of the present Daegu, or the old Daegu-eupseong. The research was conducted after dividing the period from 1911 to 1945 into two sections on the basis of the year 1929 when cadastral maps were revised newly, in order to investigate lots change from 1911 when a lot cadastral map was made for the first time to 1945 when Korea gained independence. The results from this study on the process of lots change inside Daegu-eupseong are the followings. First, the opening of roads was the most important factor to change lots in Daegu-eupseong and had an effect on lots near roads as well as lots joining along roads. In particular, as JungAngtong was transformed into a commercial street, lot lines at right angles to roads were created, increasing deep and narrow lots. Also, planned streets were recognized as a center space of the city, leading to continuous development of the city. In addition, the aspects of lots change in the northern and southern areas on the base of BonJung that played a role as the center of administration and business were investigated in the study. The results showed that the northern area experienced more changes than the southern. It is considered that the causes of these changes were development of the northeast area by constructing Daegu station and geographical proximity to WonJung that was a major commercial area at that time. Third, the transfer of lot ownership triggered subdivision and amalgamation of lots and changed the system of parcel identification number in many cases. Finally, lots were partially changed until 1929 but lots change connected with surroundings has taken place since 1929. The systems of lot, street and household which have been changed in the city are important components of urban tissue and involve the nature of the city. The existing urban tissues were transformed inside Daegu-eupseong by opening of roads and irregular street and household systems were changed into the grid shaped space structures, which provided the foundation to develop Daegu as a commercial city with uniform lots.
※ AI-Helper는 부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