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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이 논문은 조선후기 크게 유행했던 가체와 영․정조대의 가체금지령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먼저 중앙 정부와 왕실에서 가체를 사용한 예와 조달방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가체가 민간에까지 널리 확산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또 가체 유행으로 여러 가지 폐단이 발생하자, 정부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체 금지령을 내리는 과정을 정리하였다. 가체는 부녀자들이 머리에 가발을 사용해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하여 모양을 내는 것이다. 본래 가체는 그것을 소비할 만한 여유가 있는 계층에서 소비되던 사치품이었다. 따라서 주로 상류층에서 소비되었고, 조선시대 가체 사용 또한 왕실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조선시대 국가․왕실에서 가체를 사용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우선 하나는 중국에 보내는 조공품, 혹은 사신에게 주는 선물과 같이 외교에 사용되는 것이다. 조선 정부는 중국과의 문물교류를 통해 경제․문화적 실리를 꾀하려는 목적으로 사대조공정책을 실시하였는데, 가체는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된 조공품목 중 하나였다. 혼례와 같은 왕실 행사에서도 가체가 사용되었다. 왕실 혼례에 사용하거나 중국에 보내는 조공 물품으로 필요한 髢髮은 국고의 쌀과 콩을 지출하여 전국 각 지역에서 사들이거나, 공납으로 충당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가체는 민간에까지 널리 퍼져 나갔다. 일반 서민들은 혼례를 할 때 왕실의 수발 양식을 차용하여 가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 특히 18세기에 들어서는 혼례나 聖裝할 때 뿐 아니라 평소에도 가체머리를 했다. 경제력을 갖춘 서민들은 지배층만이 전유하던 가체를 ...
저자 | 이윤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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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수여기관 |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
학위구분 | 국내석사 |
학과 | 사회과교육학과 역사교육 전공 |
지도교수 | 이병희 |
발행연도 | 2011 |
총페이지 | v, 56장 |
키워드 | 역사교육 가체 조선후기 조선사 |
언어 | kor |
원문 URL | http://www.riss.kr/link?id=T12334009&outLink=K |
정보원 | 한국교육학술정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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