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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유사(有事) 이래로 세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보수와 진보의 충돌과 교체를 반복해 왔다. TV광고의 문구처럼 모두가 ‘예스(Yes)’라고 할 때 혼자서 ‘노(No)’라고 말하기에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는 겪지 않은 사람도 느낄 만큼, 보편적인 현실을 거스르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세계는 이런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은 소수의 사람에 의해 크게 변화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알듯이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그랬고, 오늘 여기서 살펴볼
박지원 역시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조선이라는, 성리학이 뿌리 깊이 박혀 그 외에는 그 어떤 타협점도 제공하지 않던 강직된 현실에서 그는 실학을 주장하며 지배층의 허울과 과장을 버리기를 촉구했다. 이 논고에서 그의 소설에 나타난 연암 박지원의 문학사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소설을 살펴보기에 앞서, 박지원이 누구인지 먼저 살펴보자. 연암 박지원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를 지낸 조부 슬하에서 자라 16세에 결혼, 처의 숙부인 이군문(李君文)에게 수학하고 학문의 전반을 연구하던 중 서양의 신학문을 접한다. 1777년(정조1년)에 권신 홍국영(洪國榮)에 의해 벽파(僻派)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껴 황해도 금천으로 이사하여 학문에 전념하다가 1780년(정조4년)에 청나라로 사신이 되어 간 청나라의 실제적인 생활과 기술을 눈여겨보았다. 귀국 후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통해 청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면서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 걸쳐 비판과 개혁을 논한다. 홍대용, 박제가 등과 함께 청나라의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파(北學派)의 영수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했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을 발표하였는데, 당시의 양반계층의 타락과 허세를 고발하고 근대사회를 위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 글로써 많은 파문과 영향을 끼쳤다. 저서로는 《연암집(燕巖集)》, 《과농소초(課農小抄)》, 《한민명전의(限民名田義)》 등이 있고, 대표 작품에 <허생전(許生傳)>, <호질(虎叱)>, <마장전(馬傳)>,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민옹전(閔翁傳)>, <양반전(兩班傳)> 등이 있다. 연암 박지원은 소설이나 문집으로 유명한 문장가일 뿐 아니라 북학파의 당수이며 학문적 스승으로서 실학을 구체화시켜 제시하였으며 <허생전>, <양반전>, <호질> 등의 소설 속에 풍자와 해학을 작품 속에 잘 살려 자신의 이러한 정치관과 문학관을 뚜렷이 나타냈다. 이러한 연암의 문학사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저자 | 강미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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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수여기관 | 전주대학교 교육대학원 |
학위구분 | 국내석사 |
학과 | 국어교육학과 |
발행연도 | 2011 |
총페이지 | 10 p. |
언어 | kor |
원문 URL | http://www.riss.kr/link?id=T12424389&outLink=K |
정보원 | 한국교육학술정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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