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전후 나타나는 현대 미술의 반 유토피아적 경향을 안젤름 키퍼, 한스 하케, 요셉 보이스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세계대전 이전의 유토피아적 경향이 어떻게 나타났고,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토피아가 반유토피아로 변하는 과정과 그 경향을 중심으로 논문을 이끌어간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인간의 욕망은 늘 존재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가 나타나게 된 것은 16세기에 출간된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서 비롯된다. 그 이후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삶 및 평등한 삶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며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의 연장선에 서게 된다. 미래주의는 이러한 유토피아의 사상을 가장 잘 반영한 미술사조라고 할 수 있다. 미래주의의 시작은 1909년 이탈리아의 시인 필리포 마리네티가 <르 피가로>에 미래주의 선언문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경제는 불안정한 성장이 지속되고 있었고, 특히 지역적 불균형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급진주의자들은 전쟁을 통한 사회재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주의가 탄생하였다. 미래주의는 산업화・기계화된 문명, 속도, 폭력, 전쟁 등을 찬미했는데, 이 경향은 미래주의와 파시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 할 수 있으며 이 둘의 공통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인물이 무솔리니이다. 무솔리니는 자신을 일종의 예술가로 간주하며 새로운 파시스트적 인간을 창조하고자 했다. 미래주의의 영향으로 나타난 러시아 구축주의는, 볼셰비키 혁명 전후 나타났다. 구축주의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를 변화 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예술이 이상이 아닌 삶 자체가 되기 위해서 구축주의자들은 예술을 산업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또한 구축주의자들은 공업제품과 예술적인 생산품을 일치시킴으로서 삶에 예술을 통합하려 했다.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은 미술의 사회적 힘을 믿으며 정치적 혁명을 통해 삶의 근본으로 개혁하려 하였고, 정치홍보물 제작을 통해서 대중의 노동을 독려하고 선진 사회를 이룩하고자 했다.
3장에서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유토피아 사상이 서서히 소멸한 후 나타나는 반유토피아적 경향에 대해서 연구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사람들에게 대량학살, 황폐함, 깊은 상처를 주었다. 예전 전쟁과 다르게 기계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신무기의 발전으로 이어져, 세계대전은 어느 때 보다 길고 수 많은 사상자를 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탄생한 다다이즘은, 이 전쟁에 반발하며 무정부주의, ...
본 논문은 전후 나타나는 현대 미술의 반 유토피아적 경향을 안젤름 키퍼, 한스 하케, 요셉 보이스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세계대전 이전의 유토피아적 경향이 어떻게 나타났고,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토피아가 반유토피아로 변하는 과정과 그 경향을 중심으로 논문을 이끌어간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인간의 욕망은 늘 존재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가 나타나게 된 것은 16세기에 출간된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서 비롯된다. 그 이후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삶 및 평등한 삶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며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의 연장선에 서게 된다. 미래주의는 이러한 유토피아의 사상을 가장 잘 반영한 미술사조라고 할 수 있다. 미래주의의 시작은 1909년 이탈리아의 시인 필리포 마리네티가 <르 피가로>에 미래주의 선언문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경제는 불안정한 성장이 지속되고 있었고, 특히 지역적 불균형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급진주의자들은 전쟁을 통한 사회재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주의가 탄생하였다. 미래주의는 산업화・기계화된 문명, 속도, 폭력, 전쟁 등을 찬미했는데, 이 경향은 미래주의와 파시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 할 수 있으며 이 둘의 공통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인물이 무솔리니이다. 무솔리니는 자신을 일종의 예술가로 간주하며 새로운 파시스트적 인간을 창조하고자 했다. 미래주의의 영향으로 나타난 러시아 구축주의는, 볼셰비키 혁명 전후 나타났다. 구축주의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를 변화 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예술이 이상이 아닌 삶 자체가 되기 위해서 구축주의자들은 예술을 산업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또한 구축주의자들은 공업제품과 예술적인 생산품을 일치시킴으로서 삶에 예술을 통합하려 했다.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은 미술의 사회적 힘을 믿으며 정치적 혁명을 통해 삶의 근본으로 개혁하려 하였고, 정치홍보물 제작을 통해서 대중의 노동을 독려하고 선진 사회를 이룩하고자 했다.
3장에서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유토피아 사상이 서서히 소멸한 후 나타나는 반유토피아적 경향에 대해서 연구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사람들에게 대량학살, 황폐함, 깊은 상처를 주었다. 예전 전쟁과 다르게 기계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신무기의 발전으로 이어져, 세계대전은 어느 때 보다 길고 수 많은 사상자를 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탄생한 다다이즘은, 이 전쟁에 반발하며 무정부주의, 허무주의, 반 예술을 표방하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이, 제 1차 세계대전의 종식 후 유토피아 사상은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된다. 더 나은 삶을 약속했던 기계문명은 전쟁이 끝난 후 공허함과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전쟁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현재를 뛰어넘는 미래 세계에 대한 꿈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상실되며 반유토피아의 개념이 나타나게 된다. 하버마스에게 있어서 현대성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유토피아를 현실적 조건에서 비판하는 ‘역사적 사유’와 현실적 조건을 넘어 대안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유토피아적 사유’가 결합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하버마스가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바로 이와 같은 유토피아적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징후이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현대를 진단하는 논의에서 ‘유토피아적 에너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종말에 이른 유토피아’는 다름 아닌 ‘노동사회의 잠재력을 중심으로 결정화되었던 유토피아’라고 주장하며 다시 이 사회는 유토피아적 에너지를 가지고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4장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반유토피아적 경향의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본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는 전쟁에 대한 회의감과 반성으로 반유토피아 경향이 만연해졌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 찼던 20세기 초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예술작품들도 변화를 겪었는데, 본 논문에서는 안젤름 키퍼, 한스 하케, 요셉 보이스의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경향을 살펴본다. 안젤름 키퍼는 전후 독일 사회를 살며 역사에 문제성을 느끼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독일의 정신적 영웅들>을 통해서 정신적인 영웅들은 일시적이고 그들의 이상도 공격받기 쉽다는 태도를 가진다. 고정되고 안정된 역사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란 끊임없이 해체당하며 합리성에 의해 변화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키퍼는 마가레트와 슐라미스 연작을 통해서는 과거 아우슈비츠의 끔찍했던 과오를 되집어 보기도 한다. 한스 하케의 작품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중심이 된다. 하케는 <헬름스보로 컨트리>와 <담배 피우는 카우보이>를 통해서 기업이 겉으로는 예술을 후원하지만, 사실은 예술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또한 하케의 다른 작품 <자유는 기업의 잉여금으로 스폰서 되어졌다>와 <연속성>을 통해 독일 최대의 예술 후원기업으로 꼽히는 기업이 사실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또 현재는 불법으로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자본을 축척했다는 사실을 비난한다. 요셉 보이스는 퍼포먼스와 설치 미술, 개념미술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작업을 하였지만, 본 논문에서는 그의 정치 참여를 중심으로 한 작품을 살펴보았다. 보이스는 독일학생당 창당에 참여하기도 하고, 1972년에는 카셀 도큐멘타에서 직접민주주의 조직했으며, 환경을 생각하는 정당인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자유 민주 사회주의 국가 ‘유라시아’의 창립을 제안하며 퍼포먼스와 설치작품 연작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세 작가의 작품을 통하여 예술이 전후 사회의 반유토피아적 경향을 어떻게 해석하였는지를 본 논문에서 알아보았다. 안젤름 키퍼는 역사주의의 관점에서의 비판의 경향을 나타냈다면 한스 하케는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입장의 작품을 만들었고 요셉 보이스는 정치적인 경향을 드러내는 작품 활동을 했다. 세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 사회에 만연한 반유토피아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작품들을 통해 사회가 반성하고 발전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 그 의의를 가진다.
본 논문은 전후 나타나는 현대 미술의 반 유토피아적 경향을 안젤름 키퍼, 한스 하케, 요셉 보이스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세계대전 이전의 유토피아적 경향이 어떻게 나타났고,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토피아가 반유토피아로 변하는 과정과 그 경향을 중심으로 논문을 이끌어간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인간의 욕망은 늘 존재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가 나타나게 된 것은 16세기에 출간된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서 비롯된다. 그 이후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삶 및 평등한 삶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며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의 연장선에 서게 된다. 미래주의는 이러한 유토피아의 사상을 가장 잘 반영한 미술사조라고 할 수 있다. 미래주의의 시작은 1909년 이탈리아의 시인 필리포 마리네티가 <르 피가로>에 미래주의 선언문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경제는 불안정한 성장이 지속되고 있었고, 특히 지역적 불균형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급진주의자들은 전쟁을 통한 사회재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주의가 탄생하였다. 미래주의는 산업화・기계화된 문명, 속도, 폭력, 전쟁 등을 찬미했는데, 이 경향은 미래주의와 파시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 할 수 있으며 이 둘의 공통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인물이 무솔리니이다. 무솔리니는 자신을 일종의 예술가로 간주하며 새로운 파시스트적 인간을 창조하고자 했다. 미래주의의 영향으로 나타난 러시아 구축주의는, 볼셰비키 혁명 전후 나타났다. 구축주의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를 변화 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예술이 이상이 아닌 삶 자체가 되기 위해서 구축주의자들은 예술을 산업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또한 구축주의자들은 공업제품과 예술적인 생산품을 일치시킴으로서 삶에 예술을 통합하려 했다.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은 미술의 사회적 힘을 믿으며 정치적 혁명을 통해 삶의 근본으로 개혁하려 하였고, 정치홍보물 제작을 통해서 대중의 노동을 독려하고 선진 사회를 이룩하고자 했다.
3장에서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유토피아 사상이 서서히 소멸한 후 나타나는 반유토피아적 경향에 대해서 연구한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사람들에게 대량학살, 황폐함, 깊은 상처를 주었다. 예전 전쟁과 다르게 기계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신무기의 발전으로 이어져, 세계대전은 어느 때 보다 길고 수 많은 사상자를 냈다.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중립국인 스위스에서 탄생한 다다이즘은, 이 전쟁에 반발하며 무정부주의, 허무주의, 반 예술을 표방하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이, 제 1차 세계대전의 종식 후 유토피아 사상은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된다. 더 나은 삶을 약속했던 기계문명은 전쟁이 끝난 후 공허함과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전쟁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현재를 뛰어넘는 미래 세계에 대한 꿈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상실되며 반유토피아의 개념이 나타나게 된다. 하버마스에게 있어서 현대성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유토피아를 현실적 조건에서 비판하는 ‘역사적 사유’와 현실적 조건을 넘어 대안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유토피아적 사유’가 결합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하버마스가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바로 이와 같은 유토피아적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징후이다. 하지만 하버마스는 현대를 진단하는 논의에서 ‘유토피아적 에너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종말에 이른 유토피아’는 다름 아닌 ‘노동사회의 잠재력을 중심으로 결정화되었던 유토피아’라고 주장하며 다시 이 사회는 유토피아적 에너지를 가지고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4장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반유토피아적 경향의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본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는 전쟁에 대한 회의감과 반성으로 반유토피아 경향이 만연해졌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 찼던 20세기 초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예술작품들도 변화를 겪었는데, 본 논문에서는 안젤름 키퍼, 한스 하케, 요셉 보이스의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경향을 살펴본다. 안젤름 키퍼는 전후 독일 사회를 살며 역사에 문제성을 느끼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독일의 정신적 영웅들>을 통해서 정신적인 영웅들은 일시적이고 그들의 이상도 공격받기 쉽다는 태도를 가진다. 고정되고 안정된 역사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란 끊임없이 해체당하며 합리성에 의해 변화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키퍼는 마가레트와 슐라미스 연작을 통해서는 과거 아우슈비츠의 끔찍했던 과오를 되집어 보기도 한다. 한스 하케의 작품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중심이 된다. 하케는 <헬름스보로 컨트리>와 <담배 피우는 카우보이>를 통해서 기업이 겉으로는 예술을 후원하지만, 사실은 예술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또한 하케의 다른 작품 <자유는 기업의 잉여금으로 스폰서 되어졌다>와 <연속성>을 통해 독일 최대의 예술 후원기업으로 꼽히는 기업이 사실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또 현재는 불법으로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자본을 축척했다는 사실을 비난한다. 요셉 보이스는 퍼포먼스와 설치 미술, 개념미술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작업을 하였지만, 본 논문에서는 그의 정치 참여를 중심으로 한 작품을 살펴보았다. 보이스는 독일학생당 창당에 참여하기도 하고, 1972년에는 카셀 도큐멘타에서 직접민주주의 조직했으며, 환경을 생각하는 정당인 녹색당 창당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자유 민주 사회주의 국가 ‘유라시아’의 창립을 제안하며 퍼포먼스와 설치작품 연작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세 작가의 작품을 통하여 예술이 전후 사회의 반유토피아적 경향을 어떻게 해석하였는지를 본 논문에서 알아보았다. 안젤름 키퍼는 역사주의의 관점에서의 비판의 경향을 나타냈다면 한스 하케는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입장의 작품을 만들었고 요셉 보이스는 정치적인 경향을 드러내는 작품 활동을 했다. 세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 사회에 만연한 반유토피아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작품들을 통해 사회가 반성하고 발전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 그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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