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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의 儀式茶禮 硏究
Study on Tea Ceremony of the Joseon Dynasty 원문보기


안연춘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예문화와다도학과 국내석사)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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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현대인들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하나의 방편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 차 문화의 기원을 고찰하고, 이를 현대인들의 차 문화와 비교 분석하는 일이 전통문화의 지향과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여 시작 하였다. 특히 차 문화의 전승과 역사라는 측면에서 조선시대의 차를 이용한 의식다례에 대한 고찰은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다례 중 의식다례를 고찰하여 의식다례가 조선시대의 차 문화 형성에 미친 영향과 현대의 차 문화와의 연결고리를 맺어주는 가교 역할이라는 틀 안에서 새롭게 조망해 보고자 하였다. 이에 본 연구의 범위는 한국의 차 의례를 전반적으로 살펴본 후 그 중 조선시대의 의식다례를 궁중의식다례와 민간의식다례를 중점적으로 고찰하는 것으로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선시대 차 의례와 관련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며, 민간의례보다는 궁중의례의 자료가 편중되어 있다. 이는 다양한 전란을 통해 자료의 손실이 원인일 것이다. 또한 숭유억불정책의 결과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차가 쇠퇴함에 따라 그에 수반된 차 의례가 성하지 못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본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동안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한국의 차 의례의 역사를 조선시대에 이르기 이전의 차 문화와 차 의례를 천착하여 그 배경으로 삼았다. 특히 사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그리고 고려시대의 사상적 주류를 이루었던 불교의 차 문화와 의례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불교의례와 차 문화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조선시대의 주류문화인 유교문화와 차와의 관계, 궁중의례에 미친 차의 영향 혹은 그 의례에서 차지하는 차의 위상 및 궁중 차 의례의 성격을 고찰하고 이를 민간의 차 의례와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이는 차가 생활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고, 그 생활은 민간의 생활과 습속을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민간의 차 생활과 그 문화를 고찰함으로써 기반문화로써의 차 문화에 접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접근한 연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국시대는 귀족과 고승들의 차 생활 흔적을 볼 수 있다. 고구려의 벽화 속에서 귀족과 고승들이 차를 마셨고, 최치원이 부모님께 차를 선물하였으며, 화랑들은 산천을 유람하며 심신을 단련하면서 차 생활을 하였다. 고려의 문인사회에서의 접빈이나 사원의 승려들과 교유하면서 차를 마시며 차시(茶詩)를 나누며, 차를 칭송하고 다선일미의 경지에 들기도 하였다. 또한 찻자리에 술과 거문고가 함께하는 풍류를 즐기기도(安貧樂道) 하였으나, 술에 취하거나 예에 어긋남이 없게 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일반 백성들이 차를 사서 마실 수 있는 다점이 생겨나면서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가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의 차 문화가 이어지면서 늘어난 차의 수요로 백성들은 더욱 어려움에 처하고, 그것을 걱정하는 관리들이 차밭을 손수 만들어 공납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청렴하고 소박한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차 생활, 예술적 승화를 이루는 다인들의 차 생활이 있었으나 고려에 비해 차 문화가 성행하지는 못하였다. 양란 이후 차 문화는 조금씩 쇠퇴해져 갔으며, 일반 서민들의 차 생활은 찾아보기 힘들고 벽사와 기원을 담는 첩자(帖子)와 차 민요로 남아서 전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다례문화는 비록 고려시대를 이어서 계속 진행되고는 있었지만, 점점 쇠퇴하는 양상을 띠고 있으며 다례 문화의 한 축을 형성하였던 문인들의 다례 문화도 역시 고려시대만큼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다만 소박하면서도 운치 있는 방식으로 개인적으로, 또는 소모임의 형식으로 나름대로의 차 생활을 향유하고 있었다. 특히 유교 사상의 영향 속에서 음다를 통해서 청빈과 안일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차인의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초의(草衣) 장의순(張意恂, 1786~1866), 그리고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 등 세 사람의 시(詩), 서(書), 화(畵),의 차(茶)에 얽힌 격조 높은 친교는 차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선승 초의(草衣)는 일지암(一枝庵)을 엮고 주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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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started with the idea that understanding the origin of tea culture which sure is a means to improve quality of modern people's health and life and comparing and analyzing the origin with modern tea culture are very important in the aspect of pursuing and preserving traditional culture. Es...

학위논문 정보

저자 안연춘
학위수여기관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학위구분 국내석사
학과 예문화와다도학과
발행연도 2013
총페이지 P116
언어 kor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3097959&outLink=K
정보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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