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정신분석학의 탄생, 즉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공동연구인 히스테리 연구와 프로이트의 비공식적인 연구 과학적 심리학 초고를 중심으로 정신분석학의 성립 과정에 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 제1장에서 5장까지는 주로 프로이트의 공식 자료였던 히스테리 연구를 중점적으로 분석했으며, 제6장 “정신분석학의 탄생에 관한 비판적 고찰”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본 논문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연구자는 앞에서 정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하여 정신분석학의 탄생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 철학적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서 세 가지 문제의식을 갖고서 접근하였다. 첫째로, 정신분석의 예비학으로서의 히스테리 연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둘째로,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한 태도의 차이, 특히 그들의 문제의식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었다. 셋째로, 심리학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중적인 태도가 브로이어를 넘어서서 정신분석학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군림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히스테리 연구(1893-1895)에서 꿈의 해석(1900)에 이르는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나타난 ‘물리-심리적 관점’이 그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할 때, 그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인 1887년에서 1902년 사이에 프로이트가 빌헬름 플리스와 주고받았던 원고(과학적 심리학 초고)와 편지들(1950)에는 프로이트의 초기 입장, 즉 ‘물리-기계적’ 또는 ‘생물-신경학적’ 태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는 사실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관심을 갖고서 본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첫째로, 히스테리 연구는 프로이트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정신분석학의 예비학이라는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스스로 자신의 학문적 이력으로 인정했던 방향은 히스테리 연구이다. 정신분석학의 선구적인 저술로서 히스테리 연구에서는 프로이트보다 브로이어가 더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 브로이어는 프로이트가 히스테리 치료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지 않았을 때에 이미 안나 O양의 치료를 통하여 히스테리의 주요 현상과 치료방법을 터득한 상태에 있었으며, 안나 O양의 치료 과정에서 한 인격체 안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프로이트는 샤르코와 브로이어의 치료법에 한계를 느끼면서 독자적인 치료법 개발에 몰두했으며, 결정적으로 자신의 성 이론과 접목시킴으로써 브로이어와 차별화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둘째는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생물학과 생리학적 관점, 즉 기계 인과론적 관점에서 심리학적 관점으로 이행한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의식의 배후에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으며, 최면상태뿐만 아니라 정신집중 상태에서의 ...
본 논문은 정신분석학의 탄생, 즉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공동연구인 히스테리 연구와 프로이트의 비공식적인 연구 과학적 심리학 초고를 중심으로 정신분석학의 성립 과정에 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 제1장에서 5장까지는 주로 프로이트의 공식 자료였던 히스테리 연구를 중점적으로 분석했으며, 제6장 “정신분석학의 탄생에 관한 비판적 고찰”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본 논문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연구자는 앞에서 정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하여 정신분석학의 탄생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 철학적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서 세 가지 문제의식을 갖고서 접근하였다. 첫째로, 정신분석의 예비학으로서의 히스테리 연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둘째로,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한 태도의 차이, 특히 그들의 문제의식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었다. 셋째로, 심리학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중적인 태도가 브로이어를 넘어서서 정신분석학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군림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히스테리 연구(1893-1895)에서 꿈의 해석(1900)에 이르는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나타난 ‘물리-심리적 관점’이 그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할 때, 그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인 1887년에서 1902년 사이에 프로이트가 빌헬름 플리스와 주고받았던 원고(과학적 심리학 초고)와 편지들(1950)에는 프로이트의 초기 입장, 즉 ‘물리-기계적’ 또는 ‘생물-신경학적’ 태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는 사실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관심을 갖고서 본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첫째로, 히스테리 연구는 프로이트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정신분석학의 예비학이라는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스스로 자신의 학문적 이력으로 인정했던 방향은 히스테리 연구이다. 정신분석학의 선구적인 저술로서 히스테리 연구에서는 프로이트보다 브로이어가 더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 브로이어는 프로이트가 히스테리 치료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지 않았을 때에 이미 안나 O양의 치료를 통하여 히스테리의 주요 현상과 치료방법을 터득한 상태에 있었으며, 안나 O양의 치료 과정에서 한 인격체 안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프로이트는 샤르코와 브로이어의 치료법에 한계를 느끼면서 독자적인 치료법 개발에 몰두했으며, 결정적으로 자신의 성 이론과 접목시킴으로써 브로이어와 차별화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둘째는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생물학과 생리학적 관점, 즉 기계 인과론적 관점에서 심리학적 관점으로 이행한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의식의 배후에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으며, 최면상태뿐만 아니라 정신집중 상태에서의 심리치료 기법도 발굴하여, 고의적인 암시를 벗어난 자유연상과 꿈의 분석이라는 치유 방법을 개척하였다. 브로이어와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증상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히스테리의 발병 원인과 치료 방식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 브로이어는 최면법(hypnosis)과 ‘대화 치료’(talking cure), 즉 ‘카타르시스 요법’을 선호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수치료법(水治療法), 전기충격, 최면 암시, 압박법, 카타르시스 요법, 자유연상법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현상의 발병 원인을 무의식 속에 감추어진 성적인 문제로 보았다. 브로이어는 안나 O양의 히스테리가 성적인 것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으나, 프로이트는 안나 O양이 브로이어를 상대로 상상임신을 했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의 출발점은 브로이어의 히스테리 기제였다. 그는 자신의 단독보고서 히스테리의 심리치료 에서 브로이어와 공동으로 제시한 히스테리 기제의 일반화 작업에 매진하였다. 실제로 그는 1892년부터 플리스와의 서신교환을 통하여 히스테리의 원인이 성 문제의 왜곡에서 온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셋째로,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인간 정신을 물리-심리적 태도에 입각하여 심리학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와 함께, 과학적 심리학 초고 에서 물리-기계적 태도에 입각하여 자연과학적 심리학을 정초하려는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였다. 프로이트는 1895년에 공동 저서 히스테리 연구를 발표하면서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것이 프로이트의 공식적인 노선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은밀하게 베를린의 이비인후과 전문의 플리스와 편지를 교환하면서 물리-기계적 태도에 입각한 ‘과학적 심리학’ 구상에 열중하였다. 심리 현상, 즉 뉴런시스템과 심적 장치의 관계에 대한 인과론적 물리적 설명을 시도했다. 이것이 프로이트의 비공식적 노선이다. 그는 정신분석학이 탄생하는 시점에서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입장과 태도 중 어느 것이 옳은지를 정하지 못하여 방황하게 된다. 특히 그가 히스테리 연구에서 표방했던 공식적인 주장은 심리치료의 역사를 일신했으나 행동주의 심리학, 인지심리학, 신경심리학의 출현으로 많은 비판에 직면하여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 순간에 과학적 심리학 초고에서 표방했던 비공식적인 주장은 인지심리학과 신경심리학의 선구적 형태로서 재평가 받게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이와 같은 이중적 태도의 학문적 유산이 프로이트를 실질적인 의미에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가 되게 하였다.
본 논문은 정신분석학의 탄생, 즉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공동연구인 히스테리 연구와 프로이트의 비공식적인 연구 과학적 심리학 초고를 중심으로 정신분석학의 성립 과정에 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한다. 제1장에서 5장까지는 주로 프로이트의 공식 자료였던 히스테리 연구를 중점적으로 분석했으며, 제6장 “정신분석학의 탄생에 관한 비판적 고찰”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본 논문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연구자는 앞에서 정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하여 정신분석학의 탄생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그 철학적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서 세 가지 문제의식을 갖고서 접근하였다. 첫째로, 정신분석의 예비학으로서의 히스테리 연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진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둘째로,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한 태도의 차이, 특히 그들의 문제의식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었다. 셋째로, 심리학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중적인 태도가 브로이어를 넘어서서 정신분석학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군림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히스테리 연구(1893-1895)에서 꿈의 해석(1900)에 이르는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나타난 ‘물리-심리적 관점’이 그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할 때, 그것과 거의 비슷한 시기인 1887년에서 1902년 사이에 프로이트가 빌헬름 플리스와 주고받았던 원고(과학적 심리학 초고)와 편지들(1950)에는 프로이트의 초기 입장, 즉 ‘물리-기계적’ 또는 ‘생물-신경학적’ 태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는 사실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관심을 갖고서 본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첫째로, 히스테리 연구는 프로이트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정신분석학의 예비학이라는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스스로 자신의 학문적 이력으로 인정했던 방향은 히스테리 연구이다. 정신분석학의 선구적인 저술로서 히스테리 연구에서는 프로이트보다 브로이어가 더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 브로이어는 프로이트가 히스테리 치료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지 않았을 때에 이미 안나 O양의 치료를 통하여 히스테리의 주요 현상과 치료방법을 터득한 상태에 있었으며, 안나 O양의 치료 과정에서 한 인격체 안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프로이트는 샤르코와 브로이어의 치료법에 한계를 느끼면서 독자적인 치료법 개발에 몰두했으며, 결정적으로 자신의 성 이론과 접목시킴으로써 브로이어와 차별화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둘째는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생물학과 생리학적 관점, 즉 기계 인과론적 관점에서 심리학적 관점으로 이행한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의식의 배후에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으며, 최면상태뿐만 아니라 정신집중 상태에서의 심리치료 기법도 발굴하여, 고의적인 암시를 벗어난 자유연상과 꿈의 분석이라는 치유 방법을 개척하였다. 브로이어와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증상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히스테리의 발병 원인과 치료 방식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 브로이어는 최면법(hypnosis)과 ‘대화 치료’(talking cure), 즉 ‘카타르시스 요법’을 선호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수치료법(水治療法), 전기충격, 최면 암시, 압박법, 카타르시스 요법, 자유연상법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현상의 발병 원인을 무의식 속에 감추어진 성적인 문제로 보았다. 브로이어는 안나 O양의 히스테리가 성적인 것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으나, 프로이트는 안나 O양이 브로이어를 상대로 상상임신을 했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의 출발점은 브로이어의 히스테리 기제였다. 그는 자신의 단독보고서 히스테리의 심리치료 에서 브로이어와 공동으로 제시한 히스테리 기제의 일반화 작업에 매진하였다. 실제로 그는 1892년부터 플리스와의 서신교환을 통하여 히스테리의 원인이 성 문제의 왜곡에서 온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셋째로,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인간 정신을 물리-심리적 태도에 입각하여 심리학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와 함께, 과학적 심리학 초고 에서 물리-기계적 태도에 입각하여 자연과학적 심리학을 정초하려는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였다. 프로이트는 1895년에 공동 저서 히스테리 연구를 발표하면서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것이 프로이트의 공식적인 노선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은밀하게 베를린의 이비인후과 전문의 플리스와 편지를 교환하면서 물리-기계적 태도에 입각한 ‘과학적 심리학’ 구상에 열중하였다. 심리 현상, 즉 뉴런시스템과 심적 장치의 관계에 대한 인과론적 물리적 설명을 시도했다. 이것이 프로이트의 비공식적 노선이다. 그는 정신분석학이 탄생하는 시점에서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입장과 태도 중 어느 것이 옳은지를 정하지 못하여 방황하게 된다. 특히 그가 히스테리 연구에서 표방했던 공식적인 주장은 심리치료의 역사를 일신했으나 행동주의 심리학, 인지심리학, 신경심리학의 출현으로 많은 비판에 직면하여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 순간에 과학적 심리학 초고에서 표방했던 비공식적인 주장은 인지심리학과 신경심리학의 선구적 형태로서 재평가 받게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이와 같은 이중적 태도의 학문적 유산이 프로이트를 실질적인 의미에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가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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