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심리학의 등장과 함께 사람의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내적 치유가 발전되었다. 그 이후 기독교 내에서도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역자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이러한 학문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새로운 방향이 전문화되었다.
치유는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치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에서 전능하심을 보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영적인 잣대가 되기도 했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치유와 함께 이루어졌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은 이들의 영적인 필요뿐만이 아니라 육체적 필요도 함께 채워 주셨다. 육신의 고통은 정신적 고통을 함께 포함하는데, 예수님의 치유는 영적, 혼적, 육적 치유를 함께 일어나게 했다.
내적 치유는 “상한 감정들의 치유”(beating of wounded emotions), “기억의 치유”(...
19세기 말 심리학의 등장과 함께 사람의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내적 치유가 발전되었다. 그 이후 기독교 내에서도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역자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이러한 학문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새로운 방향이 전문화되었다.
치유는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치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에서 전능하심을 보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영적인 잣대가 되기도 했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치유와 함께 이루어졌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은 이들의 영적인 필요뿐만이 아니라 육체적 필요도 함께 채워 주셨다. 육신의 고통은 정신적 고통을 함께 포함하는데, 예수님의 치유는 영적, 혼적, 육적 치유를 함께 일어나게 했다.
내적 치유는 “상한 감정들의 치유”(beating of wounded emotions), “기억의 치유”(healing of memories), “속사람의 치유”(healing of innerman)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 안에서 일하신다. 내적 치유는 인간의 기억들, 깊은 마음들, 인간 삶의 경험들 안에서 잘못된 부분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래서 인격, 성격의 변화도 여기에 포함된다. 내적 치유는 다시 말해서 영혼의 참 자아를 불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적 치유는 자기 자신을 살아가지 못하는 영혼을 자유하게 하여 자신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성경의 진리는 심리학 이론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를 진정으로 알고 변화될 수 있도록 진리를 말씀하신다. 이것은 어떻게 유전자가 눈의 색깔을 결정하고, 어떻게 막힌 하수구를 고치는가에 대한 진리가 아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드러내고 삶의 목적을 변화시킨다. 그는 또한 우리의 사는 모습을 변화시킨다. 사람의 인격을 다루는 성경의 ‘이론’은 사람에 대한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대한 다른 개념체계들은 ‘가장 근본적인 거짓말’에서 파생된 변종들일 뿐이다. 이러한 사고 체계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이며, 그 분 앞에 자신의 책임을 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도록 막는다.
성경적인 모델은 단순히 많은 성격 이론들 중에 또 하나의 ‘모델’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살아 역사하시는 구원자 한 분을 가리킨다. 사람답게 된다는 것은 구원자요 아버지 되시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신병리학’이나 ‘신드롬’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대항하여 저질러진 ‘죄들’을 본다. 우리는 사람들의 수고와 고통이 사실 ‘시련과 시험’이며 이것이 우리가 진정한 구원자를 필요로 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정신분석적인 통찰, 동기이론, 자기대화(self-talk)의 변화, 행동주의적 변화(behavioral rehabituation)와 같은 것이 우리를 치료한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은혜가 있어야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변화를 단순히 심리내면적(intra-psychic), 심리사회적, 생물학적인 ‘치료’와 ‘성장’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한 변화란 그 분께로 가서 그를 신뢰하고 그를 두려워하며 그에게 순종하고 그를 기쁘게 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건강’이라고 설정함으로써 우리의 모델이 의료행위인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와 관계하시는 하나님, 그 분의 형상을 닮도록 변화하는 것이다. 성경이 가지고 있는 개념적인 틀(con-ceptual framework)은 분명히 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동적’이며 ‘감정적’이고 ‘대인관계적’인 현상을 다룬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관계를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바라본다. 이것은 일반문화가 인간을 바라보는 방법과 기준들을 부수고 새롭게 변화시킨다. 성경이 제시하는 체계는 관계중심적이며, 도덕적이고, 언약적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은 개인의 심리현상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치유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만이 궁극적 치유자이시다. 단지 사람을 도구로 쓰실 뿐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상한 감정의 기억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도록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의 숨겨진 죄와 상처와 옛 자아가 함께 십자가 앞에서 개인적으로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치유가 이루어 질 때, 치유를 통한 회복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갈 수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시91:14)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91:15)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시91:16)”
절망(Disappointment)…
그분의 약속(His appointment),
철자 하나만 바꾸면 그때는 알게 된다네,
내 계획이 틀어진 것은
나를 위한 하나님의 더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그분의 약속은
다른 옷을 입고 올지라도
축복을 가져옴이 틀림없다네.
처음부터 그 결말은
그분의 지혜 속에 열린 채로 있기 때문에.
고단한 삶의 무게로 인하여 그분이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어떻하지! 라는 두려움과 공포가 올 때 이 글을 이해하고 기도함으로 나를 위로하여 주시고 축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을 수 있다.
‘꿈은 시련을 먹고 자란다’
일시 중단된 꿈들이 반드시 포기해야만 하는 깨어진 꿈들은 아니다. 꿈들은 연기해야 하는, 단지 늦어지기만 하는 꿈들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꿈들은 당신이 그 꿈들을 여하한 열기의 분노로부터도 지켜내는 한, 수용이라는 요지부동의 냉동 상태로 보존될 것이다. 그런 다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당신은 신선하게 덥혀진 소망과 결심의 극초단파로 그것들을 녹일 수가 있다. 바로이것이 하나님의 늦어짐과 우회의 훈련이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초조함과 불안과 우울증으로 인하여 마음에 평안이 없을 때 아래의 시는 나를 사랑하시고 일으켜 세우시는 긍휼하신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당신의 평화가 잔잔한 호수를 굽어보니
나의 부산함은 고요히 가라앉습니다.
당신의 소생시키는 생명의 강이 주변에 흐르니
나의 움츠러드는 의지가 용기를 얻습니다.
당신의 임재하심이 내 고독을 채우시고
당신의 섭리가 모든 것을 선으로 바꿉니다.
당신의 소중한 사랑의 품에 포근히 안기어
당신의 법 안에 묵묵히, 나는 서있습니다.
모든 것들 안에 당신의 손길이 있고
당신의 손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나는 봅니다.
당신이 내가 구하지 않은 길로 저를 인도하시고
저의 슬픔을 찬양으로 바꿉니다. 사무엘 롱펠로우
19세기 말 심리학의 등장과 함께 사람의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내적 치유가 발전되었다. 그 이후 기독교 내에서도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역자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이러한 학문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새로운 방향이 전문화되었다.
치유는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이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치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에서 전능하심을 보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영적인 잣대가 되기도 했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치유와 함께 이루어졌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은 이들의 영적인 필요뿐만이 아니라 육체적 필요도 함께 채워 주셨다. 육신의 고통은 정신적 고통을 함께 포함하는데, 예수님의 치유는 영적, 혼적, 육적 치유를 함께 일어나게 했다.
내적 치유는 “상한 감정들의 치유”(beating of wounded emotions), “기억의 치유”(healing of memories), “속사람의 치유”(healing of innerman)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 안에서 일하신다. 내적 치유는 인간의 기억들, 깊은 마음들, 인간 삶의 경험들 안에서 잘못된 부분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래서 인격, 성격의 변화도 여기에 포함된다. 내적 치유는 다시 말해서 영혼의 참 자아를 불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적 치유는 자기 자신을 살아가지 못하는 영혼을 자유하게 하여 자신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성경의 진리는 심리학 이론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를 진정으로 알고 변화될 수 있도록 진리를 말씀하신다. 이것은 어떻게 유전자가 눈의 색깔을 결정하고, 어떻게 막힌 하수구를 고치는가에 대한 진리가 아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드러내고 삶의 목적을 변화시킨다. 그는 또한 우리의 사는 모습을 변화시킨다. 사람의 인격을 다루는 성경의 ‘이론’은 사람에 대한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대한 다른 개념체계들은 ‘가장 근본적인 거짓말’에서 파생된 변종들일 뿐이다. 이러한 사고 체계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이며, 그 분 앞에 자신의 책임을 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도록 막는다.
성경적인 모델은 단순히 많은 성격 이론들 중에 또 하나의 ‘모델’을 더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살아 역사하시는 구원자 한 분을 가리킨다. 사람답게 된다는 것은 구원자요 아버지 되시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신병리학’이나 ‘신드롬’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대항하여 저질러진 ‘죄들’을 본다. 우리는 사람들의 수고와 고통이 사실 ‘시련과 시험’이며 이것이 우리가 진정한 구원자를 필요로 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정신분석적인 통찰, 동기이론, 자기대화(self-talk)의 변화, 행동주의적 변화(behavioral rehabituation)와 같은 것이 우리를 치료한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은혜가 있어야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변화를 단순히 심리내면적(intra-psychic), 심리사회적, 생물학적인 ‘치료’와 ‘성장’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한 변화란 그 분께로 가서 그를 신뢰하고 그를 두려워하며 그에게 순종하고 그를 기쁘게 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건강’이라고 설정함으로써 우리의 모델이 의료행위인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와 관계하시는 하나님, 그 분의 형상을 닮도록 변화하는 것이다. 성경이 가지고 있는 개념적인 틀(con-ceptual framework)은 분명히 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동적’이며 ‘감정적’이고 ‘대인관계적’인 현상을 다룬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관계를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바라본다. 이것은 일반문화가 인간을 바라보는 방법과 기준들을 부수고 새롭게 변화시킨다. 성경이 제시하는 체계는 관계중심적이며, 도덕적이고, 언약적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은 개인의 심리현상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치유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만이 궁극적 치유자이시다. 단지 사람을 도구로 쓰실 뿐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상한 감정의 기억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도록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의 숨겨진 죄와 상처와 옛 자아가 함께 십자가 앞에서 개인적으로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치유가 이루어 질 때, 치유를 통한 회복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갈 수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시91:14)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91:15)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시91:16)”
절망(Disappointment)…
그분의 약속(His appointment),
철자 하나만 바꾸면 그때는 알게 된다네,
내 계획이 틀어진 것은
나를 위한 하나님의 더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그분의 약속은
다른 옷을 입고 올지라도
축복을 가져옴이 틀림없다네.
처음부터 그 결말은
그분의 지혜 속에 열린 채로 있기 때문에.
고단한 삶의 무게로 인하여 그분이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어떻하지! 라는 두려움과 공포가 올 때 이 글을 이해하고 기도함으로 나를 위로하여 주시고 축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을 수 있다.
‘꿈은 시련을 먹고 자란다’
일시 중단된 꿈들이 반드시 포기해야만 하는 깨어진 꿈들은 아니다. 꿈들은 연기해야 하는, 단지 늦어지기만 하는 꿈들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꿈들은 당신이 그 꿈들을 여하한 열기의 분노로부터도 지켜내는 한, 수용이라는 요지부동의 냉동 상태로 보존될 것이다. 그런 다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당신은 신선하게 덥혀진 소망과 결심의 극초단파로 그것들을 녹일 수가 있다. 바로이것이 하나님의 늦어짐과 우회의 훈련이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초조함과 불안과 우울증으로 인하여 마음에 평안이 없을 때 아래의 시는 나를 사랑하시고 일으켜 세우시는 긍휼하신 하나님의 아버지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당신의 평화가 잔잔한 호수를 굽어보니
나의 부산함은 고요히 가라앉습니다.
당신의 소생시키는 생명의 강이 주변에 흐르니
나의 움츠러드는 의지가 용기를 얻습니다.
당신의 임재하심이 내 고독을 채우시고
당신의 섭리가 모든 것을 선으로 바꿉니다.
당신의 소중한 사랑의 품에 포근히 안기어
당신의 법 안에 묵묵히, 나는 서있습니다.
모든 것들 안에 당신의 손길이 있고
당신의 손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나는 봅니다.
당신이 내가 구하지 않은 길로 저를 인도하시고
저의 슬픔을 찬양으로 바꿉니다. 사무엘 롱펠로우
This period when we are living is too fast-paced in creating pain and injuries. People tend to judge by one′s outer appearance, and people are all imperfect, nor do they meet the standard other people set up.
People began to be ignored from childhood and they are living while undergoing the disgrace...
This period when we are living is too fast-paced in creating pain and injuries. People tend to judge by one′s outer appearance, and people are all imperfect, nor do they meet the standard other people set up.
People began to be ignored from childhood and they are living while undergoing the disgrace of comparison, criticism, distrust, and violence.
Due to the ill-stricken love by parents who are eager to possess and dominate their children at home, the relationship between children and parents has been already broken while people are stifled because of too excessive sense of rivalry at work. After all, such aspects cause people to suffer internal injuries and disability in life. This age is endlessly leaving deep scars.
Internal healing includes ″healing of wounded emotions″, ″healing of memories″, and ″healing of innerman.″
Internal healing is a recovery from the misguided parts in memories of humans, deep-seated mind, and in the life experiences of humans, and thus the change of character and personality are also included in here.
Internal healing, in other words, invokes a real self of one′s spirit. Therefore, internal healing helps oneself to live oneself in health by freeing a self that cannot live wholly as a real self.
The problems in the present have grown out of private roots of the wounds in the past, so it takes a long time for one to escape from such symptoms only after getting rid of the roots of wounds.
Only when healing is completed by privately meeting wity Jesus Christ in front of the Cross together with our concealed guilt, wounds and an old ego can it be possible for us to make continuous recovery and growth through healing.
This period when we are living is too fast-paced in creating pain and injuries. People tend to judge by one′s outer appearance, and people are all imperfect, nor do they meet the standard other people set up.
People began to be ignored from childhood and they are living while undergoing the disgrace of comparison, criticism, distrust, and violence.
Due to the ill-stricken love by parents who are eager to possess and dominate their children at home, the relationship between children and parents has been already broken while people are stifled because of too excessive sense of rivalry at work. After all, such aspects cause people to suffer internal injuries and disability in life. This age is endlessly leaving deep scars.
Internal healing includes ″healing of wounded emotions″, ″healing of memories″, and ″healing of innerman.″
Internal healing is a recovery from the misguided parts in memories of humans, deep-seated mind, and in the life experiences of humans, and thus the change of character and personality are also included in here.
Internal healing, in other words, invokes a real self of one′s spirit. Therefore, internal healing helps oneself to live oneself in health by freeing a self that cannot live wholly as a real self.
The problems in the present have grown out of private roots of the wounds in the past, so it takes a long time for one to escape from such symptoms only after getting rid of the roots of wounds.
Only when healing is completed by privately meeting wity Jesus Christ in front of the Cross together with our concealed guilt, wounds and an old ego can it be possible for us to make continuous recovery and growth through hea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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