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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체제기 조선총독부의 여성노동력 동원정책과 실태 원문보기


김미정 (高麗大學校 大學院 韓國史學科 국내박사)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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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전시체제기 조선총독부의 노동력 동원 정책의 틀 속에서 여성노동력 동원의 전개와 전시체제기 여성노동력 동원의 특징을 역사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시기 노동관련 정책 중 여성노동력 동원과 관련된 제도를 중심으로 일제의 여성노동력 동원 정책을 검토하고 이와 함께 여성노동력 동원 실태를 함께 분석하였다. 동원정책-동원논리-동원실태의 구조를 통해 전시체제기 여성노동력 동원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하였다.
Ⅰ부에서는 「국가총동원법」 이후 노동정책의 변화와 여성노동력 동원 정책을 살펴보았다. 「국가총동원법」의 조선 적용 이후 조선에서도 물자, 노동력, 자금 등을 동원하기 위한 하위법령과 시책 등이 마련되었다. 근로보국대의 조직 역시 그 일환으로 진행되었는데 일반여성과 여학생도 근로보국대 조직을 통해 ‘勤勞奉任’의 대상이 되었고, 여성노동력 활용 방안 모색이 이루어지면서 군수공장 및 토목사업장 등으로 여성노동력이 동원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41년 여성노동력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여자광부갱내취업허가제」와 「국민근로보국협력령」을 실시하여, 그동안 금지해왔던 여성들의 갱내작업을 허가하고 여성 노동의 작업 범위도 농촌노동력의 보조적 수준이 아니라 총동원의 직접 대상인 노동으로 범위를 확대하였다.
1943년 10월 「생산증강노무강화대책」이 발표되면서 모든 계층의 여성들에게 노동력 동원이 확대되기에 이른다. 1944년 8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여자정신근로령」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법령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자정신근로령」은 이미 시행되고 있던 여성노동력 동원에 대한 사후법제적 성격을 가졌다. 조선인들은 1943년 이후 조선 여성에 대한 강제차출이 노골화되고 이전과 달리 정책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여성노동력 동원에 대해 ‘가지 않을 수 없는 것, 거부할 수 없는’ 사실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혼여성들 가운데는 동원되지 않기 위해 결혼을 하는 등 나름의 생존전략을 마련하기도 하였지만 대다수의 여성들은 ‘사회적 강제’ 속에서 강요받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가부장적 사회의 말단 지위에 놓여 있던 여성들은 전시기 식민권력의 강제노동·강제동원의 대상이 되었다.
Ⅱ부와 Ⅲ부에서는Ⅰ부에서 다룬 전시기 여성노동력 동원 정책의 전개 과정 속에서 진행된 여성동원 논리와 동원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과 국내외 동원 유형 및 양상을 살펴보았다. 조선총독부가 내세운 ‘전시여성상’의 내용과 이러한 논리 속에서 수행된 여성노동력 동원 내용을 통해 전시기 식민지 조선 여성에 대한 노동력 동원이 여성성 동원과 결합된 노동력 동원의 형태였다는 점을 밝혔다.
일제의 여성교육은 현모양처주의의 교육이념에 따라 식민지체제에 순응할 수 있는 순종적인 식민지 여성을 양성하는 데 주력하였다. 식민통치 초기부터 가정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주목하여 이를 식민통치에 이용하였고, 전시체제기 식민통치에 활용된 모성상은 ‘賢母’에서 ‘軍國의 母’로 변화되었다. 전쟁 동원의 수단으로 모성을 이용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조선 여성에 대한 모성보호와 유유아(乳幼兒) 보건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은 없었다. 일제는 일본 여성에 대해서는 모성으로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지만, 조선 여성은 단지 동원의 대상으로 파악하였다.
전시기 여학생의 노동력 동원은 노동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시기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다. 노동력 제공 뿐 아니라 군대에 출정하는 병사를 환송하고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위문하는 역할 등 남성을 위한 ‘위안’과 ‘위문’, ‘위로’, ‘환송’의 역할도 함께 수행하도록 강요되었다. 간호부의 경우도 전장에서의 노동 수행 뿐 아니라, 병사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존재로 표상되었다. 여성에 대한 노동력 동원은 단순노동력 동원과 여성성과 결합된 노동력 동원으로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보통 미혼여성에게 여성성 동원과 결합된 노동력 동원이 요구되는 경향을 보인다. 여학생과 종군간호부의 동원의 경우도 노동력 동원과 여성성 동원이 결합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일제는 ‘전시여성상’으로 기혼여성에게는 ‘군국의 모’가 될 것을 요구하고, 미혼여성에게는 남성을 ‘위로’하고 ‘위안’하고 ‘환송’하기 위한 존재가 될 것을 강요하였다. 이와 더불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조선 여성들에게 ‘노동전사’가 될 것을 강조하며 여성노동력 동원을 강화해갔다. 노동력 동원을 강화하기 위해 전시기 이전의 여성 조직 단체를 확대하고자 하였으며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을 조직하여 시국인식의 주입 및 단체훈련 등을 실시하였다. 1944년에는 ‘조선여자청년연성소’를 개소하는데 이는 조선 여성에 대한 노동력 동원을 염두한 조치의 일환이다. 조선총독부는 신문이나 잡지 등을 통한 선전을 계속해나가며 학교를 통해서도 여성 모집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러한 과정에서 종군간호부 모집을 빙자해 일부 여성들이 위안부로 동원되기도 하였다.
여성노동력 동원에는 면서기, 순사, 구장 등 지역 내 행정기관과 행정담당자 등이 직접 관계하고 있었다. 일제는 효율적으로 여성을 동원하기 위해 지역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그들을 적극 활용하였고, 직업소개소를 통해 여성의 집결지로서의 중간 역할이나, 동원 대상에 대한 감독을 하였다. 행정기관을 통한 직접적인 동원이은 어느 한 지역에서만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는 식민권력의 정책 방침에 따라 동원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행정기관 뿐 아니라 군(軍)에서도 여성노동력 동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육군과 해군 등에 의해 동원된 여자군속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시기 여학생들에게는 근로능력강화를 위한 신체단련이 강조되었다. 단순히 여학생의 체력단련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는 행군 등도 실시되고 있었다. 1942년 9월 조선총독부는 체력장 검정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대상, 연령, 종목, 기간 등을 마련해 해당자 전원이 검정을 받게 했다. 전쟁수행국의 식민지라는 상황 속에서 여학교의 체육교육은 총동원 체제 하에서 동원 노동력의 현황을 파악하고,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전시기초반 여학생들은 주로 ‘가사’와 관련한 근로작업에 동원되었는데, 전시가 본격화되면서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던 노동은 교외의 공장 노동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학교의 수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전쟁 수행을 위해 여학생들의 노동력 동원은 일상화 되었다.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조사를 통해 여성노동력 동원의 몇 가지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일본의 비인도적 강제동원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둘째, 직종별 동원연령 현황을 보면 공장의 경우 10대~20대 미혼여성이 주로 동원되었고, 탄광산과 농장의 경우 기혼여성이 주로 동원되었다. 탄광산과 농장의 경우 가족단위의 노동이 이루어는 경향이 있었고, 취사노무나 잡역 등의 노동을 하였다. 셋째, 1942년 이후 여성노동력 동원이 증가하면서 1943년, 1944년에 동원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시기 여성 노동력 동원은 단순히 노동동원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노동력 동원과 여성성 동원이 결합되어 나타났다. 이는 여학생 및 간호부의 동원에 있어서 그들에게 노무의 수행 뿐 아니라 남성들에게 위안과 위로의 존재 역할을 강요하는 것에서 확인되었다.

주제어

#강제동원 전시체제기 여성노동력 

학위논문 정보

저자 김미정
학위수여기관 高麗大學校 大學院
학위구분 국내박사
학과 韓國史學科
지도교수 鄭泰憲
발행연도 2015
총페이지 209 p.
키워드 강제동원 전시체제기 여성노동력
언어 kor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3837184&outLink=K
정보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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