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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마약문제 연구
A Study on the Drug Issue in Modern Korea 원문보기


조석연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국내박사)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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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개항기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사회 변화과정 속에서 나타난 마약문제의 현상과 원인, 사회적 인식변화와 통제과정을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해보았다. 그리고 각각의 시기 속에서 마약문제가 한국사회에 어떻게 형상화되고 의식화되었는지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다.
한국의 마약문제를 살펴보면서 본고는 크게 세 가지 지점에 주목하였다. 첫째는 한국사회의 변화과정 속에서 마약문제가 어떻게 형상화되어 왔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는 그 과정 속에서 한국의 마약통제 방식이 갖는 특성을 평가해보는 것, 셋째는 마약에 대한 국가와 민간 사이 권리-책임의 이동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는 단절적이기 보다 각 시기별 마약문제의 전개양상을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문제로 연속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각 장의 검토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Ⅱ장에서는 전통사회의 아편 인식과 사용, 개항기 나타난 아편문제와 당국의 문제의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식민지시기 일본에 의해 아편생산지로 기능한 조선의 아편계 마약 확산문제와 조선인들의 대응을 검토하였다.
전통사회에서 마약은 주로 농가 약재의 개념에서 이해되어 민간에서 갖출 수 있는 가정상비약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개항기 이미 아편 흡연이 만연한 청국인들에 의해 조선에서의 아편 흡연이 확산되었다.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을 침탈한 일제는 아편을 식민지 재원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였고, 조선은 일제의 아편생산지이자 모르핀 소비지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 마약중독자들이 양산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일제의 아편정책과 별개로 조선사회 내에서는 자체적으로 아편문제를 경계하고 그 사용을 근절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아편근절운동이 전개되었고, 일제에 대항해 해외에서 활동하던 조선의 민족해방운동 단체들은 아편을 열악한 환경 속 부족한 군자금 충당 등의 자금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하면서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Ⅲ장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1957년 「마약법」 제정까지 마약문제가 사회문제로 부상하는 과정과 정부 수립 과정에서 마약이 어떠한 모습으로 대중에 형상화되고 규정되어 갔는지를 추적하였다.
해방 직후 일제가 남기고 간 다량의 아편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사회문제를 안겨주었다. 한편 해방 후 급격히 증가하던 귀환동포와 행정공백으로 인한 열악한 통제환경은 한국의 마약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정부 수립 후 마약문제의 해결은 예산과 인력 투입을 최소하면서도 그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색되었다. 그것은 마약을 친일 또는 공산주의문제와 연결하면서 그 사용을 민족의 생존과 대치되는 문제로 치환시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마약사용자들은 서서히 ‘비국민화’ 되어갔다.
이후 3년간 이어진 한국전쟁은 마약문제를 더욱 근절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입법을 통한 정부의 구체적 대안 마련이 요구되었고 1957년 「마약법」이 제정되어 비로소 마약에 관한 규제 법규의 독립이 실현되었다.
Ⅳ장에서는 1960년대 등장한 군사정부가 바라본 마약문제와 이후 한층 강화된 마약통제의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1970년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던 대마초문제가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는지에 주목하여 당대 대마초문제의 현상과 원인, 당국의 문제의식과 통제방향을 다각적으로 검토해보았다.
마약문제는 1960년대 자립경제 육성과정에서 우리사회가 극복해야할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부각되었다. 1961년 출발한 군사정부는 경제개발을 위한 국내노동력 동원의 기초 과제로 ‘건강한 국민’을 생산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마약문제는 사회개혁과 경제개발이라는 새 정부의 목표에 대치되는 이전 정부가 낳은 병폐의 상징으로 형상화되었다. 마약 근절을 위한 정부의 단호한 의지 표현은 지난 정부와의 단절과 함께 그들의 선명한 개혁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정부에게 이러한 논리는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확보해 줄 수 있는 중요한 명분을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때문에 정부는 ‘마약’을 국가의 산업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조국근대화’를 저해하는 ‘사회악’으로 공식화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까지 주로 사용되던 아편계 마약의 생산과 사용은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당시 「마약법」 상 규제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대마초가 한국사회에 빠르게 번져나갔다. 1960년대 중반부터 주한미군들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대마초는 1970년대부터 이른바 ‘해피스모크(happy smoke)’로 불리며 한국의 청년층을 중심으로 소비되었다. 한국산 대마초에 함유된 월등한 환각성분과 1970년대 형성된 자유주의적 청년문화는 대마초를 단숨에 한국사회의 주요 ...

학위논문 정보

저자 조석연
학위수여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학위구분 국내박사
학과 사학과
지도교수 이영학
발행연도 2018
총페이지 236
언어 kor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4696312&outLink=K
정보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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