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시대와 체험, 체험과 인식, 인식과 문학, 다시 문학과 시대의 연쇄적인 관계망 안에서 이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양상을 통해 이문구의 문학이 이동하는 궤적을 살펴보았다. 개인의 체험은 시대의 자장 안에 속한 것이며, 여러 논자들이 지적했듯이 이문구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겹쳐지는 자신의 체험을 작품에 적극 투영시킨 작가이다. 그리고 본고는 이문구의 체험과 작품을 매개하는 인식을 ‘방외인의 인식’으라 보았다. 소재의 차용 수준을 넘어 작가의 체험과 작품의 밀착한 관계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체험을 근간으로 형성된 특정한 인식이 무엇인지, 이 인식이 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정형성에서 벗어난 이문구의 문학 특성을 이해하는 데 유효한 개념이기도 한 ‘방외인의 인식’이, 그의 문학과 그가 처한 시대 상황 사이에 ‘하고 싶은 말’과 ‘말할 수 없음‘의 길항관계를 설정하고 이의 관계 양상에 따라 문학의 궤적을 추동하였다는 것이 본고의 관점이다. 이에 본고는 ‘방외인의 인식’을 기반으로, 이문구의 초기 소설에서 후기 소설까지를 대상으로 (체험과 인식에 따른) ‘하고 싶은 말’과 (시대의 압력에 의해) ‘말할 수 없음’ 사이의 길항관계를 고구함으로써 이문구 문학의 궤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였다. 그리고 이의 과정에서 그간의 연구사에서 소외되었던 작품들의 의의와 ‘의고체 문장’의 의미를 함께 규명하고 작품에 나타난 이문구의 날카로운 사회 비판 의식을 조명하였다. 작가의 체험과 시대적 상황, 문학의 관련성에 주목하여 Ⅱ장은 ‘한국전쟁’과의 관련 하에서 1965년~1971년으로, Ⅲ장은 ‘독재정권’과의 관련 하에서 1972년~1982년으로, Ⅳ장은 민주화와의 관련 하에서 1984년~2003년으로 시기를 구분하여 진행하였다. Ⅱ장에서는 이문구의 초기 단편소설들에 한국 전쟁과 관련한 작가의 체험이 가족의 해체로 나타남을 고찰하였다. ‘하고 싶은 말’이 가족들의 죽음, 가족의 해체였다면 ‘말할 수 없음’은 연좌제의 대상이었던 자신을 냉대와 감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대의 눈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문구는 이후 자신이 경험했던 죽음의 위기 체험이 투영된 「이삭」에서 화해로 나아간다. 이어 『장한몽』에서는 ‘김상배’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와 ‘교섭’하며 “보통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에 앞서 Ⅱ-1에서는 작가의 등단작인 「다갈라 불망비」(1965)를 세 층위로 분석하였다. 등단작임에도 연구사에서 주목 받지 못하고 연보 상의 작품으로 남아 있는 「다갈라 불망비」는 첫째, 바위에 ‘입’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연묘가 소통할 수 있는 ‘입’을 갖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이 작품으로 등단한 이문구가 소설이라는, 말할 수 있는 ‘입’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 이 작품이 취한 ‘액자식 구성’에는 일상의 관찰을 통해 ‘이야기’를 포착해 전하는 ‘나’와 소설가 지망생인 ‘문학청년’이 등장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문학청년’의 존재는 미미하고 1인칭 화자로 작품을 끌어가는 것은 ‘나’이다. ‘문학청년’과 일상을 세밀히 관찰하는 작가적 태도를 공유하는 ‘나’가 실질적인 작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일상의 관찰에 대한 강조와 ‘이야기’를 곧 소설화하는 이문구의 작법 특성이 드러난다. 셋째, ‘서울 청년’과 ‘성초스님’ 사이의 언쟁에서 ‘시명피안是名彼岸’과 ‘구경삼매究竟三昧’의 가치관이 대립하는데, 소설이 ‘연묘’의 환속으로 귀결됨으로써 종내엔 ‘시명피안’의 가치관에 중점이 실린다. ‘옳은 이름’ 또는 ‘이름을 옳게 바꾸다’로 해석할 수 있는 ‘시명是名’은 소설에서 ‘연묘’가 ‘성월’로 나아가지 않고 환속함으로써 ‘국희’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세상의 이치와 질서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담고 있는 이 ‘시명피안’의 가치관은 후기의 소설에서 특히 중요하게 드러난다. 만물이 타고난 대로 저마다의 옳은 이름으로 사는 것은 세상의 이치에 따르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Ⅱ-2에서는 가족의 해체를 중심으로 초기 단편소설들을 살펴보았다. 좌익 인사였던 아버지로 인해 연좌제의 대상이었던 이문구는 ‘사상문제’에 연루될 위험을 늘 의식하고 있었다. 이 장에서는 먼저, 자전적 소설인 『관촌수필』은 물론 다른 작품에서도 이문구가 가족사의 중요한 부분인 가족들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음을 밝혔다. 그리고 산문을 통해 한국전쟁의 시기와 거리를 두려는 그의 태도와 ‘사상문제’를 항시 염두에 두었던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초기의 단편소설들에서 가족의 해체는, 노년의 화자들일 경우엔 ‘자식 없음’으로 청년 화자들인 경우엔 결혼의 좌절과 연애의 지연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가족 해체의 이면에서는, 무능하고 부도덕하게 형상화된 윗세대와 아래세대 간의 불화가 발견된다. 결국 아래세대가 처한 각박한 현실과 내적 불행은 이 윗세대로부터 오는 것이다. Ⅱ-3에서는 「이풍헌」(1967), 「백의」(1969)에서 긍정적으로 그려진 윗세대의 모습과 세대 간의 화해 징후를 포착하였다. 특히 「백의」에서는 4·19 혁명 때 아들을 잃은 ‘절벽이 영감’과 위수령으로 서울을 떠나온 ‘나’가 소통하며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세대 간 화해의 징후는 작가의 체험이 소재로 활용된 「이삭」(1968)에서 ‘필성’과 ‘일모’ 간의 화해로 나아간다. 그들의 가족은 한국전쟁 때 서로를 죽고 죽이는 사적 복수의 관계에 놓여 있었지만 일모가 진심으로 건네는 도움의 손길에 ‘필성’은 자신이 품었던 대결의식을 버린다. 서로를 향했던 원한이 결국 부모세대와 시대의 비극에서 상속받은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필성’과 ‘일모’의 관계는 첫 장편소설인 『장한몽』(1971)에서 ‘김상배’와 ‘구본칠’의 관계로 다시 나타난다. 한국전쟁 중 비참하게 죽은 형의 기억을 안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김상배’는 이장 공사장의 감독을 맡으며 사회로의 첫 발을 내 딛는다. 그 공간에서 다종한 사람들을 겪으며 ‘김상배’는 무기력감에서 서서히 벗어나 “보통 사람”의 모습을 찾고 사회와의 교섭을 모색한다. 그리고 이 교섭에는 살인을 저지른 ‘구본칠’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이해함으로써 ‘김상배’가 형의 죽음과 관련한 기억을 떨쳐버리는 것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Ⅲ장에서는 ‘독재정권 시기’에 쓰인 중기의 소설들에 ‘사회’를 향한 작가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드러남을 고찰하였다. 「이삭」과 『장한몽』에서 화해와 교섭의 모색으로 개인의 체험에서 비롯된 내면의 상처를 봉합한 이문구는 이제 ‘가족’이 아닌 ‘사회’로 눈을 돌린다. 작가의 이러한 관심은 같은 해에 발표된 『해벽』(1972)와 『관촌수필』(1972)에 나타난 회상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다. Ⅲ-1-1)에서는 시의적인 맥락을 사건의 배경으로 삼은 「암소」(1970)와 「장난감 풍선」(1970)을 살펴보았다. 「암소」는 ‘황구만’ 개인의 윤리적 파탄으로 그 원인을 ...
본고는 시대와 체험, 체험과 인식, 인식과 문학, 다시 문학과 시대의 연쇄적인 관계망 안에서 이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양상을 통해 이문구의 문학이 이동하는 궤적을 살펴보았다. 개인의 체험은 시대의 자장 안에 속한 것이며, 여러 논자들이 지적했듯이 이문구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겹쳐지는 자신의 체험을 작품에 적극 투영시킨 작가이다. 그리고 본고는 이문구의 체험과 작품을 매개하는 인식을 ‘방외인의 인식’으라 보았다. 소재의 차용 수준을 넘어 작가의 체험과 작품의 밀착한 관계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체험을 근간으로 형성된 특정한 인식이 무엇인지, 이 인식이 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정형성에서 벗어난 이문구의 문학 특성을 이해하는 데 유효한 개념이기도 한 ‘방외인의 인식’이, 그의 문학과 그가 처한 시대 상황 사이에 ‘하고 싶은 말’과 ‘말할 수 없음‘의 길항관계를 설정하고 이의 관계 양상에 따라 문학의 궤적을 추동하였다는 것이 본고의 관점이다. 이에 본고는 ‘방외인의 인식’을 기반으로, 이문구의 초기 소설에서 후기 소설까지를 대상으로 (체험과 인식에 따른) ‘하고 싶은 말’과 (시대의 압력에 의해) ‘말할 수 없음’ 사이의 길항관계를 고구함으로써 이문구 문학의 궤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였다. 그리고 이의 과정에서 그간의 연구사에서 소외되었던 작품들의 의의와 ‘의고체 문장’의 의미를 함께 규명하고 작품에 나타난 이문구의 날카로운 사회 비판 의식을 조명하였다. 작가의 체험과 시대적 상황, 문학의 관련성에 주목하여 Ⅱ장은 ‘한국전쟁’과의 관련 하에서 1965년~1971년으로, Ⅲ장은 ‘독재정권’과의 관련 하에서 1972년~1982년으로, Ⅳ장은 민주화와의 관련 하에서 1984년~2003년으로 시기를 구분하여 진행하였다. Ⅱ장에서는 이문구의 초기 단편소설들에 한국 전쟁과 관련한 작가의 체험이 가족의 해체로 나타남을 고찰하였다. ‘하고 싶은 말’이 가족들의 죽음, 가족의 해체였다면 ‘말할 수 없음’은 연좌제의 대상이었던 자신을 냉대와 감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대의 눈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문구는 이후 자신이 경험했던 죽음의 위기 체험이 투영된 「이삭」에서 화해로 나아간다. 이어 『장한몽』에서는 ‘김상배’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와 ‘교섭’하며 “보통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에 앞서 Ⅱ-1에서는 작가의 등단작인 「다갈라 불망비」(1965)를 세 층위로 분석하였다. 등단작임에도 연구사에서 주목 받지 못하고 연보 상의 작품으로 남아 있는 「다갈라 불망비」는 첫째, 바위에 ‘입’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연묘가 소통할 수 있는 ‘입’을 갖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이 작품으로 등단한 이문구가 소설이라는, 말할 수 있는 ‘입’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 이 작품이 취한 ‘액자식 구성’에는 일상의 관찰을 통해 ‘이야기’를 포착해 전하는 ‘나’와 소설가 지망생인 ‘문학청년’이 등장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문학청년’의 존재는 미미하고 1인칭 화자로 작품을 끌어가는 것은 ‘나’이다. ‘문학청년’과 일상을 세밀히 관찰하는 작가적 태도를 공유하는 ‘나’가 실질적인 작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일상의 관찰에 대한 강조와 ‘이야기’를 곧 소설화하는 이문구의 작법 특성이 드러난다. 셋째, ‘서울 청년’과 ‘성초스님’ 사이의 언쟁에서 ‘시명피안是名彼岸’과 ‘구경삼매究竟三昧’의 가치관이 대립하는데, 소설이 ‘연묘’의 환속으로 귀결됨으로써 종내엔 ‘시명피안’의 가치관에 중점이 실린다. ‘옳은 이름’ 또는 ‘이름을 옳게 바꾸다’로 해석할 수 있는 ‘시명是名’은 소설에서 ‘연묘’가 ‘성월’로 나아가지 않고 환속함으로써 ‘국희’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세상의 이치와 질서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담고 있는 이 ‘시명피안’의 가치관은 후기의 소설에서 특히 중요하게 드러난다. 만물이 타고난 대로 저마다의 옳은 이름으로 사는 것은 세상의 이치에 따르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Ⅱ-2에서는 가족의 해체를 중심으로 초기 단편소설들을 살펴보았다. 좌익 인사였던 아버지로 인해 연좌제의 대상이었던 이문구는 ‘사상문제’에 연루될 위험을 늘 의식하고 있었다. 이 장에서는 먼저, 자전적 소설인 『관촌수필』은 물론 다른 작품에서도 이문구가 가족사의 중요한 부분인 가족들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음을 밝혔다. 그리고 산문을 통해 한국전쟁의 시기와 거리를 두려는 그의 태도와 ‘사상문제’를 항시 염두에 두었던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초기의 단편소설들에서 가족의 해체는, 노년의 화자들일 경우엔 ‘자식 없음’으로 청년 화자들인 경우엔 결혼의 좌절과 연애의 지연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가족 해체의 이면에서는, 무능하고 부도덕하게 형상화된 윗세대와 아래세대 간의 불화가 발견된다. 결국 아래세대가 처한 각박한 현실과 내적 불행은 이 윗세대로부터 오는 것이다. Ⅱ-3에서는 「이풍헌」(1967), 「백의」(1969)에서 긍정적으로 그려진 윗세대의 모습과 세대 간의 화해 징후를 포착하였다. 특히 「백의」에서는 4·19 혁명 때 아들을 잃은 ‘절벽이 영감’과 위수령으로 서울을 떠나온 ‘나’가 소통하며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세대 간 화해의 징후는 작가의 체험이 소재로 활용된 「이삭」(1968)에서 ‘필성’과 ‘일모’ 간의 화해로 나아간다. 그들의 가족은 한국전쟁 때 서로를 죽고 죽이는 사적 복수의 관계에 놓여 있었지만 일모가 진심으로 건네는 도움의 손길에 ‘필성’은 자신이 품었던 대결의식을 버린다. 서로를 향했던 원한이 결국 부모세대와 시대의 비극에서 상속받은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필성’과 ‘일모’의 관계는 첫 장편소설인 『장한몽』(1971)에서 ‘김상배’와 ‘구본칠’의 관계로 다시 나타난다. 한국전쟁 중 비참하게 죽은 형의 기억을 안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김상배’는 이장 공사장의 감독을 맡으며 사회로의 첫 발을 내 딛는다. 그 공간에서 다종한 사람들을 겪으며 ‘김상배’는 무기력감에서 서서히 벗어나 “보통 사람”의 모습을 찾고 사회와의 교섭을 모색한다. 그리고 이 교섭에는 살인을 저지른 ‘구본칠’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이해함으로써 ‘김상배’가 형의 죽음과 관련한 기억을 떨쳐버리는 것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Ⅲ장에서는 ‘독재정권 시기’에 쓰인 중기의 소설들에 ‘사회’를 향한 작가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드러남을 고찰하였다. 「이삭」과 『장한몽』에서 화해와 교섭의 모색으로 개인의 체험에서 비롯된 내면의 상처를 봉합한 이문구는 이제 ‘가족’이 아닌 ‘사회’로 눈을 돌린다. 작가의 이러한 관심은 같은 해에 발표된 『해벽』(1972)와 『관촌수필』(1972)에 나타난 회상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다. Ⅲ-1-1)에서는 시의적인 맥락을 사건의 배경으로 삼은 「암소」(1970)와 「장난감 풍선」(1970)을 살펴보았다. 「암소」는 ‘황구만’ 개인의 윤리적 파탄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박선출’의 불행이 실은 1961년 박정희 정권이 시행한 ‘농어촌고리채 및 정리사업’에 있음을 보여준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한 달 만에 농어촌 인구의 민심을 얻기 위해 시행된 ‘농어촌고리채 사업’은 농촌의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졸속으로 시행된 법령이다. 이 법령의 허술함은 황구만과 ‘박선출’이 맺은 계약서의 허술함에 빗대어 나타난다. 또한 암소의 죽음은, ‘황구만’이 역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밀주금지 정책을 위반했기에 발생한 것이다. 그로써 「암소」는 정부가 졸속으로 시행한 정책에 의해 ‘박선출’의 불행이 야기됨을 보여준다. 「장난감 풍선」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민주적이지 못한 선거의 혼탁한 양상을 야심찬 청년 한긍식을 통해 보여준다. 후에 선거에 출마해 권력을 잡겠다는 ‘한긍식’의 야심은 애초에 현실에 적극적으로 야합하며 정치를 “취직 운동”으로 여긴 천박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한긍식’이 선거 유세에서 시대의 흔한 구호를 혈서로 쓰는 장면을 통해 비정상적인 선거 유세의 현장과 한낱 우스갯거리로 전락하는 국가의 계도작업을 고발한다. 그리고 ‘가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후보의 연설을, “유색분자”라 소리 지르며 색깔 프레임을 씌어 중단시키는 장면은 당시의 정치 현실을 비추고 있다. 다음으로 『해벽』은 사포곶의 몰락을 막으려는 조등만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 변화의 의미를 읽어 낸다. 미군의 주둔과 간척 사업은 ‘천재지변’과도 같은 시류이기에 개인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서 조등만은 사포곶의 몰락을 감지하고 마을은 그의 예감대로 점차 몰락의 길을 걷는다. 눈앞의 경제적 이득에만 눈이 먼 마을의 사람들에게는 앞날까지 내다볼 수 있는 통찰과, 사회 변화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분별력이 없다. 통찰력과 분별력을 갖춘 ‘방외인’적인 인물인 조등만만이 사회 변화의 의미를 감지하고 이를 막아보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인재’와도 같은 무지한 사람들의 태도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Ⅲ-1-2)에서는 『관촌수필』의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3년의 시간차를 두고 그 성격이 달라지는 이유를 먼저 설명하였다. 흔히 이 작품을 이문구의 자전소설이라 칭할 때, 그 대상은 유년기의 화자가 등장하는 1~5편까지의 전반부를 의미한다. 작가의 다른 자전소설인 「남의 하늘에 묻어 살며」가 한국전쟁 시기 유년기의 곤경과 가족의 비극을 담고 있다면, 『관촌수필』의 전반부는 안온하고 풍족했던 유년기의 기억을 담고 있다. 연작의 첫 편인 「일락서산」에서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이문구는 자신이 속했던 세계가 할아버지의 그것임을 선언하듯 보여준다. 그리고 “그 해 겨울”이라고만 표현하는 1950년과 가족의 죽음은 「화무십일」의 윤영감 일가의 짧았던 행복과 비극으로 대신한다. 전작인 『해벽』과 이후에 발표한 『오자룡』(1975)의 작품 경향에 비추어 보았을 때 『관촌수필』의 전반부는, 김지하의 필화 사건을 보며 “뒤탈”을 남기지 않기 위해 생략의 편법으로 “집안의 이야기”를 썼다는 작가의 진술에 충실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1950년, 아버지의 이야기는 「화무십일」로 대신함으로써 생략된다. 그러나 「녹수청산」과 「공산토월」에서는 이문구가 의도한 생략의 편법에도 감출 수 없는 의미들이 발견된다. 「녹수청산」의 ‘대복’에게서는 「행운유수」의 ‘옹점’이나 「공산토월」의 ‘신현석’이 가진, 타인에게 귀감이 될 만한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 비행과 절도, 부역, 강간 미수를 저지르는 ‘대복’은 오히려 악인에 가깝다. 그런데 사소한 비행에서 시작한 대복이 더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그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냉담함과 무시의 시선 때문이다. ‘대복어메’를 꺼렸던 마을 사람들은 ‘대복어메’의 아들이라는 이유를 ‘대복’을 더욱 싫어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대복’을 가족과도 같이 여겼던 화자도 ‘대복 어메’의 그악스럽고 후안무치한 모습을 보며 결국 ‘대복’을 멀리했다. 이 ‘대복’과 ‘대복어메’를 향한 연좌의 시선은 화자와 아버지의 연좌를 은유한다. 가장 많은 분량이 할애된 「공산토월」은 현재의 작가가 화자로 설정된다. 수필처럼 현재 작가의 일상으로 시작되며 풀어놓는 “객담”은 복잡한 구조를 지녔다. 정교한 연쇄로 이루어진 이 “객담”은 “신현석”이 아버지를 대리하고, 화자가 이 두 인물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신현석의 면모에 대한 예찬은 곧 작가의 아버지를 향한 것이다. 또한 화자는 자신이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살았던 두 인물, ‘신현석’과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빈산이 토해 낸 달’은 ‘신현석’이면서 아버지이고 작가인 ‘나’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화자가 보는 「공산토월」의 끔찍한 환영은 ‘신현석’과 아버지의 길을 뒤따르기로 한,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의 예기로 이해할 수 있다. 『해벽』에서 사회로 시선을 돌려 현실 인식을 표출하는 한편, 『관촌수필』의 전반부로 ‘사상문제’에 뒤탈이 없도록 준비한 이문구는 1975년 『오자룡』의 연재를 시작한다. ‘의고체’ 문장으로 쓴 「죽으면서」(1974)와 「백면서생」(1974)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조롱했던 이문구는 『오자룡』에서 ‘그믐산이’의 행로를 따라가며 사회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인다. ‘그믐산이’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별종”으로 불리는 선비 ‘초여’는 정갈한 논조로 부패한 정치화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면천의 행운을 얻은 ‘그믐산이’가 최마름의 계략에 빠져 겪게 되는 고초는 ‘초여’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최마름이 ‘그믐산이’를 고문하며 그 배후로 ‘초여’를 댈 것을 강요하는 장면은,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지식인들을 ‘색깔론’으로 처리했던 권력의 폭력적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할 것이다. 또한 사료에 가까운 옛 어휘들을 쓰면서 이문구는 유독 ‘방위세’만은 현실의 언어로 표현했는데, 이는 다분히 1975년에 방위세를 신설한 박정희 정권을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날카로운 사회 비판 의식을 보여주는 『오자룡』은 12회를 끝으로 연재가 중단된다. 이문구는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이 소설의 ‘방위세’ 장면과 악인을 ‘박씨’로 설정한 것에 대해 문책을 당하고 서울을 떠날 것을 종용받는다. 산문에서 짧게 언급하기는 했으나 이 필화 사건에 대한 전모는 이문구의 사후에나 그의 일기를 통해 밝혀진다. 『오자룡』과 같은 시기에 연재를 시작했던 『단념하면 싫어』도 함께 연재가 중단되었으나 이 작품은 후에 『엉겅퀴 잎새』로 개작되어 완성본으로 출간되었다. 이에 반해 생전에 이 필화사건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오자룡』을 미완으로 남겨둔 것은 이문구가 받은 충격의 정도를 보여준다. 이 사건의 충격은 1975년 11월부터 1년간 절필했던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오자룡』과 같이 사회 비판적 인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이후에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 소설의 ‘의고체’ 문장은 1980년대 말 발표된 『토정 이지함』과 『매월당 김시습』에 가서야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Ⅲ-3에서는 『우리 동네』의 언어와 소설에 담긴 우울한 현실 전망을 살펴보았다. 『오자룡』이후 연재가 재개된 『관촌수필』의 후반부는 『우리 동네』의 연작으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급작스럽게 ‘농촌 공동체’로 선회한다. “서툰 반벙어리 소리일망정 그래도 할 때는 해 가면서 지내는 것이 낫겠다”는 소회와 함께 집필하기 시작한 『우리 동네』는 유배하듯 떠난 발안(화성)에서 쓰인 소설로 재기 넘치는 대화들에서 언뜻 밝은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발안’을 유배지로 비유할 수 있다면, 유독 독해가 어려울 만큼 낯선 어휘들과 호흡이 긴 만연체의 문장을 구사한 『우리 동네』는 언어의 은거隱居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 동네』의 문체와 담론에 대한 연구들이 이미 축적되었으나 본고는 독해의 어려움 자체를 『우리 동네』의 한 특성으로 보았다. 마치 외떨어진 시골길을 찾아가듯 길고 구불구불한 문장의 「우리 동네 김씨」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고립된 마을 공간은 ‘부정적인’ 외부의 것들에게 ‘침입 당한다.’ 그러나 선택의 권한이 없는 이들이 내보이는 정서는 무기력감이다. 이들의 유일한 저항 도구인 ‘대화’마저도 지시 대상을 기호화하지 못하고 어긋나기 일쑤이며 이들의 말에 담긴,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도 자조나 한탄으로 축소될 뿐이다. 말의 향연으로 주조되는 이 소설의 밝은 분위기 이면에는 의미의 전달을 거부하는 말의 무기력함이 있다. 그리고 이 무기력감과 현실에 대한 우울한 전망은 소설에서 몸을 던져 항의하는 ‘류상범’과 ‘강만성’이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Ⅳ장에서는 중기 소설에서 보였던 이문구의 사회 비판적 인식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개인’으로 이동하는 후기소설들을 다루었다. 이문구는 이제 정치적 입장을 떠나 시대적 상황에 대한 비판을 거두고 혹은 제한당하고 자신의 신념을 오롯이 설파하며 밀고 나가는 ‘개인’에 집중한다.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오며 이문구는 또 한 번 독재정권의 탄압을 경험한다. 1980년 이문구는 ‘정치 규제 대상자’에 이름을 올리고 같은 해에 콩트집 『누구는 누구만 못허나』가 판매 금지 조치를 당한 것이다. ‘하고 싶은 말’과 ‘말할 수 없음’은 이 시기에 다시 충돌하고 이문구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한다. 이문구는 『우리 동네』의 연재가 끝난 1981년부터 『토정 이지함』과 『매월당 김시습』을 연속으로 발표한 1988년과 1989년까지 몇 편의 단편소설들과 『산너머 남촌』 외에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가 다시 작품 활동을 재개한 1988년은 1987년의 6월 항쟁으로 대통력 직선제가 결정되며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실현되었던 때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먼저 이문구가 작품에 자신을 그대로 노출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산문적 소설’에서도 작가는 소설의 표면에 등장하지만 이문구는 「鳴川遺事」와 「江東漫筆」연작에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이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문구는 자신의 호인 ‘명천鳴川’을 작품의 제목으로 삼는데, 이는 그가 ‘명천’의 세계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江東漫筆」1,2편은 말로만 ‘민주주의’와 정치적 신념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협잡꾼’의 모습을 보이는 문승권과 이만업을 보여준다. 이는 거창한 신념이나 정치 체제 또는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와 이치를 지키고자 하는 주체성을 지닌 ‘개인’에로 관심을 옮기는 것과 맞물린다. 『산너머 남촌』(1984)의 ‘文正’이 바로 이문구가 지향했던 ‘선비’적 면모를 갖춘 인물이다. ‘의고체’에 가까운 문정의 언어를 통해 이문구는 『산너머 남촌』에서, 줏대 없이 물질을 향해 “악착 같이 뛰는” 도시의 사람들을 병이 든 상태로 묘사한다. “깊이 골몰하고 연구할 겨를이 없는” ‘뛰기’가 오행五行이 상생相生하는 세상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정은 천박한 도시인들과 대비되는 ‘문화인’을 ‘선비’라 이르고 ‘선비’가 신분의 고하나 귀천, 배움의 정도와 상관없이 세상의 이치에 따르는 자라 설명한다. 이후 발표한 역사인물소설 『토정 이지함』(1988)과 『매월당 김시습』(1989)에서 이문구는 ‘의고체’ 문장을 다시 구사한다. 『오자룡』에서도 확인한 바 있듯, 이문구는 ‘의고체’ 문장을 구사할 때 심연의 내면과 의식을 드러내는 경향을 보인다. 다르게 말해,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이문구는 ‘의고체’ 문장을 구사한다. 이는 민주화에의 열망이 실현된 1988년의 시대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말할 수 없음’의 압력이 사라진 이때에 이문구는 작가적 인물로 보이는 두 사람을 통해 상반된 세계를 그린다. 이지함의 14대 직계손인 이문구에게 이지함은 ‘조상’ 즉, 할아버지의 의미를 지닌다. 이지함과 김시습 두 사람 모두 이문구와 마찬가지로 10대 후반에 부모를 여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기도 한다. 사상가로서도 이름을 낸 두 사람은 이문구가 생각하는 ‘선비’로서의 작가, ‘방외인’으로서의 ‘선비’이다. ‘쇠갓’을 통해 이지함이 다른 양반들과는 차별되는 인물임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토정 이지함』은 갈등이 없는 세계이다. 인물들은 선과 악으로 뚜렷하게 구분되고 ‘삼개’의 사람들은 이지함을 의심없이 숭상한다. ‘삼개’의 사람들은 이지함이 다른 이들을 평등하게 대하고 조건 없이 자신의 능력을 베풀었음을 증언하며 그를 “신선”으로까지 비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정 이지함』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실천하며 산 개인이 맞이하는, 이상향에 가까운 세계를 담고 있다. 반면 이문구가 역작으로 꼽은 『매월당 김시습』은 ‘본류’에서 벗어난 개인이 맞이하는 파고와 고통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1980년의 광주항쟁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라고 밝히고 있다. 자신에게도 예외 없이 ‘과제’로 남은 ‘광주 문제’를 “어떤 공식이나 해법에 기대지 않고 풀 수 있는 간접적인 방법”이 『매월당 김시습』의 집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로운 ‘방외인’ 김시습을 통해 “부도덕한 정권의 끊임없는 모욕을 비웃는 행위”의 의미를 전달한다. 또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작가 김시습은, ‘본류’에서 벗어나 개성과 독창적인 문학을 구축했던 이문구와 닮아 있기도 하다. 이상향의 세계를 담은 『토정 이지함』과 달리 『매월당 김시습』의 기저에는 마지막까지 ‘방외인’으로 살았던 김시습의 정체성 찾기와 자신의 글을 알아주지 않는 시대에 대한 울분이 깔려 있다. 김시습이 내보이는, ‘오세 신동’의 이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회한과 자신의 글에 대한 온당한 평가를 “천 년 후”에나 기대할 수 있으리라는 쓴웃음은 바로 이문구의 문장과 소설로 위로 받고 평가 받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이문구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와 평가로 이해된다. “수모”와 “모욕”을 견디며 1980년대를 지나온 이문구는 “별종” 이지함과 “물외인” 김시습을 통해 자신의 글쓰기를 정치적 행위로 규정한 정권에게 ‘비웃음’을 날리고, 이들의 길을 따라 나간다. Ⅳ-3에서는 작가의 건강이 악화되던 시기의 작품 세 편을 분석하였다. 「달빛에 길을 물어」와 「장동리 싸리나무」, 「더더대를 찾아서」에는 모두 이문구 본인으로 여겨지는 ‘작가적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의 건강이 악화되던 이 시기에는 수다한 말의 향연이 끝나고 죽음을 예기한 질문들과 침묵의 세계가 그려진다. 기행기 형식의 「달빛에 길을 물어」에서 ‘명천’은 위궤양을 앓는 몸으로 ‘살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지나온 삶의 행적이 제도권이 아닌 주변부에 머물렀음을 인식하며 ‘명천’은 자신이 없는 세계를 암시하며 희미한 달빛 아래로 나아간다. 「장동리 싸리나무」의 노년의 ‘하석귀’는 그가 품었던 의문들의 답을 얻지 못한다. 「더더대를 찾아서」의 ‘이립’은 ‘죽음’과 ‘침묵’을 상징하는 까마귀와 더더대의 행방을 궁금해 하지만 그들이 현실과 언어를 초월한 세계에 존재함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등단작인 「다갈라 불망비」로 ‘소설’이라는 ‘입’을 갖게 되었던 이문구는 「더더대를 찾아서」에서의 ‘죽음’과 ‘침묵’을 통해, ‘하고 싶은 말’과 ‘말할 수 없음’의 지난했던 그의 문학 궤적을 끝맺는다.
본고는 시대와 체험, 체험과 인식, 인식과 문학, 다시 문학과 시대의 연쇄적인 관계망 안에서 이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양상을 통해 이문구의 문학이 이동하는 궤적을 살펴보았다. 개인의 체험은 시대의 자장 안에 속한 것이며, 여러 논자들이 지적했듯이 이문구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겹쳐지는 자신의 체험을 작품에 적극 투영시킨 작가이다. 그리고 본고는 이문구의 체험과 작품을 매개하는 인식을 ‘방외인의 인식’으라 보았다. 소재의 차용 수준을 넘어 작가의 체험과 작품의 밀착한 관계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체험을 근간으로 형성된 특정한 인식이 무엇인지, 이 인식이 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정형성에서 벗어난 이문구의 문학 특성을 이해하는 데 유효한 개념이기도 한 ‘방외인의 인식’이, 그의 문학과 그가 처한 시대 상황 사이에 ‘하고 싶은 말’과 ‘말할 수 없음‘의 길항관계를 설정하고 이의 관계 양상에 따라 문학의 궤적을 추동하였다는 것이 본고의 관점이다. 이에 본고는 ‘방외인의 인식’을 기반으로, 이문구의 초기 소설에서 후기 소설까지를 대상으로 (체험과 인식에 따른) ‘하고 싶은 말’과 (시대의 압력에 의해) ‘말할 수 없음’ 사이의 길항관계를 고구함으로써 이문구 문학의 궤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였다. 그리고 이의 과정에서 그간의 연구사에서 소외되었던 작품들의 의의와 ‘의고체 문장’의 의미를 함께 규명하고 작품에 나타난 이문구의 날카로운 사회 비판 의식을 조명하였다. 작가의 체험과 시대적 상황, 문학의 관련성에 주목하여 Ⅱ장은 ‘한국전쟁’과의 관련 하에서 1965년~1971년으로, Ⅲ장은 ‘독재정권’과의 관련 하에서 1972년~1982년으로, Ⅳ장은 민주화와의 관련 하에서 1984년~2003년으로 시기를 구분하여 진행하였다. Ⅱ장에서는 이문구의 초기 단편소설들에 한국 전쟁과 관련한 작가의 체험이 가족의 해체로 나타남을 고찰하였다. ‘하고 싶은 말’이 가족들의 죽음, 가족의 해체였다면 ‘말할 수 없음’은 연좌제의 대상이었던 자신을 냉대와 감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대의 눈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문구는 이후 자신이 경험했던 죽음의 위기 체험이 투영된 「이삭」에서 화해로 나아간다. 이어 『장한몽』에서는 ‘김상배’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와 ‘교섭’하며 “보통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에 앞서 Ⅱ-1에서는 작가의 등단작인 「다갈라 불망비」(1965)를 세 층위로 분석하였다. 등단작임에도 연구사에서 주목 받지 못하고 연보 상의 작품으로 남아 있는 「다갈라 불망비」는 첫째, 바위에 ‘입’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연묘가 소통할 수 있는 ‘입’을 갖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이 작품으로 등단한 이문구가 소설이라는, 말할 수 있는 ‘입’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 이 작품이 취한 ‘액자식 구성’에는 일상의 관찰을 통해 ‘이야기’를 포착해 전하는 ‘나’와 소설가 지망생인 ‘문학청년’이 등장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문학청년’의 존재는 미미하고 1인칭 화자로 작품을 끌어가는 것은 ‘나’이다. ‘문학청년’과 일상을 세밀히 관찰하는 작가적 태도를 공유하는 ‘나’가 실질적인 작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일상의 관찰에 대한 강조와 ‘이야기’를 곧 소설화하는 이문구의 작법 특성이 드러난다. 셋째, ‘서울 청년’과 ‘성초스님’ 사이의 언쟁에서 ‘시명피안是名彼岸’과 ‘구경삼매究竟三昧’의 가치관이 대립하는데, 소설이 ‘연묘’의 환속으로 귀결됨으로써 종내엔 ‘시명피안’의 가치관에 중점이 실린다. ‘옳은 이름’ 또는 ‘이름을 옳게 바꾸다’로 해석할 수 있는 ‘시명是名’은 소설에서 ‘연묘’가 ‘성월’로 나아가지 않고 환속함으로써 ‘국희’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세상의 이치와 질서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담고 있는 이 ‘시명피안’의 가치관은 후기의 소설에서 특히 중요하게 드러난다. 만물이 타고난 대로 저마다의 옳은 이름으로 사는 것은 세상의 이치에 따르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Ⅱ-2에서는 가족의 해체를 중심으로 초기 단편소설들을 살펴보았다. 좌익 인사였던 아버지로 인해 연좌제의 대상이었던 이문구는 ‘사상문제’에 연루될 위험을 늘 의식하고 있었다. 이 장에서는 먼저, 자전적 소설인 『관촌수필』은 물론 다른 작품에서도 이문구가 가족사의 중요한 부분인 가족들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음을 밝혔다. 그리고 산문을 통해 한국전쟁의 시기와 거리를 두려는 그의 태도와 ‘사상문제’를 항시 염두에 두었던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초기의 단편소설들에서 가족의 해체는, 노년의 화자들일 경우엔 ‘자식 없음’으로 청년 화자들인 경우엔 결혼의 좌절과 연애의 지연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가족 해체의 이면에서는, 무능하고 부도덕하게 형상화된 윗세대와 아래세대 간의 불화가 발견된다. 결국 아래세대가 처한 각박한 현실과 내적 불행은 이 윗세대로부터 오는 것이다. Ⅱ-3에서는 「이풍헌」(1967), 「백의」(1969)에서 긍정적으로 그려진 윗세대의 모습과 세대 간의 화해 징후를 포착하였다. 특히 「백의」에서는 4·19 혁명 때 아들을 잃은 ‘절벽이 영감’과 위수령으로 서울을 떠나온 ‘나’가 소통하며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세대 간 화해의 징후는 작가의 체험이 소재로 활용된 「이삭」(1968)에서 ‘필성’과 ‘일모’ 간의 화해로 나아간다. 그들의 가족은 한국전쟁 때 서로를 죽고 죽이는 사적 복수의 관계에 놓여 있었지만 일모가 진심으로 건네는 도움의 손길에 ‘필성’은 자신이 품었던 대결의식을 버린다. 서로를 향했던 원한이 결국 부모세대와 시대의 비극에서 상속받은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필성’과 ‘일모’의 관계는 첫 장편소설인 『장한몽』(1971)에서 ‘김상배’와 ‘구본칠’의 관계로 다시 나타난다. 한국전쟁 중 비참하게 죽은 형의 기억을 안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김상배’는 이장 공사장의 감독을 맡으며 사회로의 첫 발을 내 딛는다. 그 공간에서 다종한 사람들을 겪으며 ‘김상배’는 무기력감에서 서서히 벗어나 “보통 사람”의 모습을 찾고 사회와의 교섭을 모색한다. 그리고 이 교섭에는 살인을 저지른 ‘구본칠’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이해함으로써 ‘김상배’가 형의 죽음과 관련한 기억을 떨쳐버리는 것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였다. Ⅲ장에서는 ‘독재정권 시기’에 쓰인 중기의 소설들에 ‘사회’를 향한 작가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드러남을 고찰하였다. 「이삭」과 『장한몽』에서 화해와 교섭의 모색으로 개인의 체험에서 비롯된 내면의 상처를 봉합한 이문구는 이제 ‘가족’이 아닌 ‘사회’로 눈을 돌린다. 작가의 이러한 관심은 같은 해에 발표된 『해벽』(1972)와 『관촌수필』(1972)에 나타난 회상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다. Ⅲ-1-1)에서는 시의적인 맥락을 사건의 배경으로 삼은 「암소」(1970)와 「장난감 풍선」(1970)을 살펴보았다. 「암소」는 ‘황구만’ 개인의 윤리적 파탄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박선출’의 불행이 실은 1961년 박정희 정권이 시행한 ‘농어촌고리채 및 정리사업’에 있음을 보여준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한 달 만에 농어촌 인구의 민심을 얻기 위해 시행된 ‘농어촌고리채 사업’은 농촌의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졸속으로 시행된 법령이다. 이 법령의 허술함은 황구만과 ‘박선출’이 맺은 계약서의 허술함에 빗대어 나타난다. 또한 암소의 죽음은, ‘황구만’이 역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밀주금지 정책을 위반했기에 발생한 것이다. 그로써 「암소」는 정부가 졸속으로 시행한 정책에 의해 ‘박선출’의 불행이 야기됨을 보여준다. 「장난감 풍선」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민주적이지 못한 선거의 혼탁한 양상을 야심찬 청년 한긍식을 통해 보여준다. 후에 선거에 출마해 권력을 잡겠다는 ‘한긍식’의 야심은 애초에 현실에 적극적으로 야합하며 정치를 “취직 운동”으로 여긴 천박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한긍식’이 선거 유세에서 시대의 흔한 구호를 혈서로 쓰는 장면을 통해 비정상적인 선거 유세의 현장과 한낱 우스갯거리로 전락하는 국가의 계도작업을 고발한다. 그리고 ‘가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후보의 연설을, “유색분자”라 소리 지르며 색깔 프레임을 씌어 중단시키는 장면은 당시의 정치 현실을 비추고 있다. 다음으로 『해벽』은 사포곶의 몰락을 막으려는 조등만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 변화의 의미를 읽어 낸다. 미군의 주둔과 간척 사업은 ‘천재지변’과도 같은 시류이기에 개인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서 조등만은 사포곶의 몰락을 감지하고 마을은 그의 예감대로 점차 몰락의 길을 걷는다. 눈앞의 경제적 이득에만 눈이 먼 마을의 사람들에게는 앞날까지 내다볼 수 있는 통찰과, 사회 변화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분별력이 없다. 통찰력과 분별력을 갖춘 ‘방외인’적인 인물인 조등만만이 사회 변화의 의미를 감지하고 이를 막아보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인재’와도 같은 무지한 사람들의 태도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Ⅲ-1-2)에서는 『관촌수필』의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3년의 시간차를 두고 그 성격이 달라지는 이유를 먼저 설명하였다. 흔히 이 작품을 이문구의 자전소설이라 칭할 때, 그 대상은 유년기의 화자가 등장하는 1~5편까지의 전반부를 의미한다. 작가의 다른 자전소설인 「남의 하늘에 묻어 살며」가 한국전쟁 시기 유년기의 곤경과 가족의 비극을 담고 있다면, 『관촌수필』의 전반부는 안온하고 풍족했던 유년기의 기억을 담고 있다. 연작의 첫 편인 「일락서산」에서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이문구는 자신이 속했던 세계가 할아버지의 그것임을 선언하듯 보여준다. 그리고 “그 해 겨울”이라고만 표현하는 1950년과 가족의 죽음은 「화무십일」의 윤영감 일가의 짧았던 행복과 비극으로 대신한다. 전작인 『해벽』과 이후에 발표한 『오자룡』(1975)의 작품 경향에 비추어 보았을 때 『관촌수필』의 전반부는, 김지하의 필화 사건을 보며 “뒤탈”을 남기지 않기 위해 생략의 편법으로 “집안의 이야기”를 썼다는 작가의 진술에 충실한 작품이다. 그렇기에 1950년, 아버지의 이야기는 「화무십일」로 대신함으로써 생략된다. 그러나 「녹수청산」과 「공산토월」에서는 이문구가 의도한 생략의 편법에도 감출 수 없는 의미들이 발견된다. 「녹수청산」의 ‘대복’에게서는 「행운유수」의 ‘옹점’이나 「공산토월」의 ‘신현석’이 가진, 타인에게 귀감이 될 만한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 비행과 절도, 부역, 강간 미수를 저지르는 ‘대복’은 오히려 악인에 가깝다. 그런데 사소한 비행에서 시작한 대복이 더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그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냉담함과 무시의 시선 때문이다. ‘대복어메’를 꺼렸던 마을 사람들은 ‘대복어메’의 아들이라는 이유를 ‘대복’을 더욱 싫어하고 무시하는 것이다. ‘대복’을 가족과도 같이 여겼던 화자도 ‘대복 어메’의 그악스럽고 후안무치한 모습을 보며 결국 ‘대복’을 멀리했다. 이 ‘대복’과 ‘대복어메’를 향한 연좌의 시선은 화자와 아버지의 연좌를 은유한다. 가장 많은 분량이 할애된 「공산토월」은 현재의 작가가 화자로 설정된다. 수필처럼 현재 작가의 일상으로 시작되며 풀어놓는 “객담”은 복잡한 구조를 지녔다. 정교한 연쇄로 이루어진 이 “객담”은 “신현석”이 아버지를 대리하고, 화자가 이 두 인물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신현석의 면모에 대한 예찬은 곧 작가의 아버지를 향한 것이다. 또한 화자는 자신이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살았던 두 인물, ‘신현석’과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빈산이 토해 낸 달’은 ‘신현석’이면서 아버지이고 작가인 ‘나’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화자가 보는 「공산토월」의 끔찍한 환영은 ‘신현석’과 아버지의 길을 뒤따르기로 한,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의 예기로 이해할 수 있다. 『해벽』에서 사회로 시선을 돌려 현실 인식을 표출하는 한편, 『관촌수필』의 전반부로 ‘사상문제’에 뒤탈이 없도록 준비한 이문구는 1975년 『오자룡』의 연재를 시작한다. ‘의고체’ 문장으로 쓴 「죽으면서」(1974)와 「백면서생」(1974)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조롱했던 이문구는 『오자룡』에서 ‘그믐산이’의 행로를 따라가며 사회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인다. ‘그믐산이’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별종”으로 불리는 선비 ‘초여’는 정갈한 논조로 부패한 정치화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면천의 행운을 얻은 ‘그믐산이’가 최마름의 계략에 빠져 겪게 되는 고초는 ‘초여’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최마름이 ‘그믐산이’를 고문하며 그 배후로 ‘초여’를 댈 것을 강요하는 장면은,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지식인들을 ‘색깔론’으로 처리했던 권력의 폭력적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할 것이다. 또한 사료에 가까운 옛 어휘들을 쓰면서 이문구는 유독 ‘방위세’만은 현실의 언어로 표현했는데, 이는 다분히 1975년에 방위세를 신설한 박정희 정권을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날카로운 사회 비판 의식을 보여주는 『오자룡』은 12회를 끝으로 연재가 중단된다. 이문구는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이 소설의 ‘방위세’ 장면과 악인을 ‘박씨’로 설정한 것에 대해 문책을 당하고 서울을 떠날 것을 종용받는다. 산문에서 짧게 언급하기는 했으나 이 필화 사건에 대한 전모는 이문구의 사후에나 그의 일기를 통해 밝혀진다. 『오자룡』과 같은 시기에 연재를 시작했던 『단념하면 싫어』도 함께 연재가 중단되었으나 이 작품은 후에 『엉겅퀴 잎새』로 개작되어 완성본으로 출간되었다. 이에 반해 생전에 이 필화사건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오자룡』을 미완으로 남겨둔 것은 이문구가 받은 충격의 정도를 보여준다. 이 사건의 충격은 1975년 11월부터 1년간 절필했던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오자룡』과 같이 사회 비판적 인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이후에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 소설의 ‘의고체’ 문장은 1980년대 말 발표된 『토정 이지함』과 『매월당 김시습』에 가서야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Ⅲ-3에서는 『우리 동네』의 언어와 소설에 담긴 우울한 현실 전망을 살펴보았다. 『오자룡』이후 연재가 재개된 『관촌수필』의 후반부는 『우리 동네』의 연작으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급작스럽게 ‘농촌 공동체’로 선회한다. “서툰 반벙어리 소리일망정 그래도 할 때는 해 가면서 지내는 것이 낫겠다”는 소회와 함께 집필하기 시작한 『우리 동네』는 유배하듯 떠난 발안(화성)에서 쓰인 소설로 재기 넘치는 대화들에서 언뜻 밝은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발안’을 유배지로 비유할 수 있다면, 유독 독해가 어려울 만큼 낯선 어휘들과 호흡이 긴 만연체의 문장을 구사한 『우리 동네』는 언어의 은거隱居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 동네』의 문체와 담론에 대한 연구들이 이미 축적되었으나 본고는 독해의 어려움 자체를 『우리 동네』의 한 특성으로 보았다. 마치 외떨어진 시골길을 찾아가듯 길고 구불구불한 문장의 「우리 동네 김씨」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고립된 마을 공간은 ‘부정적인’ 외부의 것들에게 ‘침입 당한다.’ 그러나 선택의 권한이 없는 이들이 내보이는 정서는 무기력감이다. 이들의 유일한 저항 도구인 ‘대화’마저도 지시 대상을 기호화하지 못하고 어긋나기 일쑤이며 이들의 말에 담긴,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도 자조나 한탄으로 축소될 뿐이다. 말의 향연으로 주조되는 이 소설의 밝은 분위기 이면에는 의미의 전달을 거부하는 말의 무기력함이 있다. 그리고 이 무기력감과 현실에 대한 우울한 전망은 소설에서 몸을 던져 항의하는 ‘류상범’과 ‘강만성’이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Ⅳ장에서는 중기 소설에서 보였던 이문구의 사회 비판적 인식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개인’으로 이동하는 후기소설들을 다루었다. 이문구는 이제 정치적 입장을 떠나 시대적 상황에 대한 비판을 거두고 혹은 제한당하고 자신의 신념을 오롯이 설파하며 밀고 나가는 ‘개인’에 집중한다.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오며 이문구는 또 한 번 독재정권의 탄압을 경험한다. 1980년 이문구는 ‘정치 규제 대상자’에 이름을 올리고 같은 해에 콩트집 『누구는 누구만 못허나』가 판매 금지 조치를 당한 것이다. ‘하고 싶은 말’과 ‘말할 수 없음’은 이 시기에 다시 충돌하고 이문구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한다. 이문구는 『우리 동네』의 연재가 끝난 1981년부터 『토정 이지함』과 『매월당 김시습』을 연속으로 발표한 1988년과 1989년까지 몇 편의 단편소설들과 『산너머 남촌』 외에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가 다시 작품 활동을 재개한 1988년은 1987년의 6월 항쟁으로 대통력 직선제가 결정되며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실현되었던 때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먼저 이문구가 작품에 자신을 그대로 노출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산문적 소설’에서도 작가는 소설의 표면에 등장하지만 이문구는 「鳴川遺事」와 「江東漫筆」연작에서 자신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이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문구는 자신의 호인 ‘명천鳴川’을 작품의 제목으로 삼는데, 이는 그가 ‘명천’의 세계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江東漫筆」1,2편은 말로만 ‘민주주의’와 정치적 신념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협잡꾼’의 모습을 보이는 문승권과 이만업을 보여준다. 이는 거창한 신념이나 정치 체제 또는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와 이치를 지키고자 하는 주체성을 지닌 ‘개인’에로 관심을 옮기는 것과 맞물린다. 『산너머 남촌』(1984)의 ‘文正’이 바로 이문구가 지향했던 ‘선비’적 면모를 갖춘 인물이다. ‘의고체’에 가까운 문정의 언어를 통해 이문구는 『산너머 남촌』에서, 줏대 없이 물질을 향해 “악착 같이 뛰는” 도시의 사람들을 병이 든 상태로 묘사한다. “깊이 골몰하고 연구할 겨를이 없는” ‘뛰기’가 오행五行이 상생相生하는 세상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정은 천박한 도시인들과 대비되는 ‘문화인’을 ‘선비’라 이르고 ‘선비’가 신분의 고하나 귀천, 배움의 정도와 상관없이 세상의 이치에 따르는 자라 설명한다. 이후 발표한 역사인물소설 『토정 이지함』(1988)과 『매월당 김시습』(1989)에서 이문구는 ‘의고체’ 문장을 다시 구사한다. 『오자룡』에서도 확인한 바 있듯, 이문구는 ‘의고체’ 문장을 구사할 때 심연의 내면과 의식을 드러내는 경향을 보인다. 다르게 말해,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이문구는 ‘의고체’ 문장을 구사한다. 이는 민주화에의 열망이 실현된 1988년의 시대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말할 수 없음’의 압력이 사라진 이때에 이문구는 작가적 인물로 보이는 두 사람을 통해 상반된 세계를 그린다. 이지함의 14대 직계손인 이문구에게 이지함은 ‘조상’ 즉, 할아버지의 의미를 지닌다. 이지함과 김시습 두 사람 모두 이문구와 마찬가지로 10대 후반에 부모를 여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기도 한다. 사상가로서도 이름을 낸 두 사람은 이문구가 생각하는 ‘선비’로서의 작가, ‘방외인’으로서의 ‘선비’이다. ‘쇠갓’을 통해 이지함이 다른 양반들과는 차별되는 인물임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토정 이지함』은 갈등이 없는 세계이다. 인물들은 선과 악으로 뚜렷하게 구분되고 ‘삼개’의 사람들은 이지함을 의심없이 숭상한다. ‘삼개’의 사람들은 이지함이 다른 이들을 평등하게 대하고 조건 없이 자신의 능력을 베풀었음을 증언하며 그를 “신선”으로까지 비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정 이지함』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실천하며 산 개인이 맞이하는, 이상향에 가까운 세계를 담고 있다. 반면 이문구가 역작으로 꼽은 『매월당 김시습』은 ‘본류’에서 벗어난 개인이 맞이하는 파고와 고통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1980년의 광주항쟁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라고 밝히고 있다. 자신에게도 예외 없이 ‘과제’로 남은 ‘광주 문제’를 “어떤 공식이나 해법에 기대지 않고 풀 수 있는 간접적인 방법”이 『매월당 김시습』의 집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로운 ‘방외인’ 김시습을 통해 “부도덕한 정권의 끊임없는 모욕을 비웃는 행위”의 의미를 전달한다. 또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작가 김시습은, ‘본류’에서 벗어나 개성과 독창적인 문학을 구축했던 이문구와 닮아 있기도 하다. 이상향의 세계를 담은 『토정 이지함』과 달리 『매월당 김시습』의 기저에는 마지막까지 ‘방외인’으로 살았던 김시습의 정체성 찾기와 자신의 글을 알아주지 않는 시대에 대한 울분이 깔려 있다. 김시습이 내보이는, ‘오세 신동’의 이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회한과 자신의 글에 대한 온당한 평가를 “천 년 후”에나 기대할 수 있으리라는 쓴웃음은 바로 이문구의 문장과 소설로 위로 받고 평가 받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이문구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와 평가로 이해된다. “수모”와 “모욕”을 견디며 1980년대를 지나온 이문구는 “별종” 이지함과 “물외인” 김시습을 통해 자신의 글쓰기를 정치적 행위로 규정한 정권에게 ‘비웃음’을 날리고, 이들의 길을 따라 나간다. Ⅳ-3에서는 작가의 건강이 악화되던 시기의 작품 세 편을 분석하였다. 「달빛에 길을 물어」와 「장동리 싸리나무」, 「더더대를 찾아서」에는 모두 이문구 본인으로 여겨지는 ‘작가적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의 건강이 악화되던 이 시기에는 수다한 말의 향연이 끝나고 죽음을 예기한 질문들과 침묵의 세계가 그려진다. 기행기 형식의 「달빛에 길을 물어」에서 ‘명천’은 위궤양을 앓는 몸으로 ‘살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지나온 삶의 행적이 제도권이 아닌 주변부에 머물렀음을 인식하며 ‘명천’은 자신이 없는 세계를 암시하며 희미한 달빛 아래로 나아간다. 「장동리 싸리나무」의 노년의 ‘하석귀’는 그가 품었던 의문들의 답을 얻지 못한다. 「더더대를 찾아서」의 ‘이립’은 ‘죽음’과 ‘침묵’을 상징하는 까마귀와 더더대의 행방을 궁금해 하지만 그들이 현실과 언어를 초월한 세계에 존재함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등단작인 「다갈라 불망비」로 ‘소설’이라는 ‘입’을 갖게 되었던 이문구는 「더더대를 찾아서」에서의 ‘죽음’과 ‘침묵’을 통해, ‘하고 싶은 말’과 ‘말할 수 없음’의 지난했던 그의 문학 궤적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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