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는 한 사회의 생활 전반에 걸친 모든 행동양식이나 체계를 뜻하며, 세대를 이어 축적되고 변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 중 의례문화는 한 집단의 정체성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나타내는 생활방식이며 이러한 의례에 사용된 용품 역시 한 집단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투영된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의례에 사용되는 물품 중에서 보자기는 과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사용방식이 일관성 있게 유지되어 왔다. 유교적 전통사회의 최고 행사인 왕실의례에 사용된 보자기는 물건을 보호하고, 싸고, 나르는 기능 외에 왕실 의례의 모습과 생활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왕실 의례용 보자기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기록과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국혼정례(國婚定例)』,『상방정례(尙方定例)』등의 왕실가례 관련 규범, 왕실가례의 기록서인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등의 사료를 통하여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에는 가례의 준비과정, 가례의 절차와 내용, 소요경비, 참여인원, 포상내역 등에 관한 기록과 반차도 등의 도설이 포함되어 있으며, 왕실가례에 사용된 보자기에 관한 상세한 기록도 포함하고 있다. 영조(英祖)와 정순왕후(貞純王后)의 가례를 기록한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는 국혼에서 혼례의 풍속이 사치하고 국고의 낭비가 심한 것을 경계하여 왕실 혼사에 관한 예를 정한 『국혼정례(國婚定例)』와 왕명을 받아 왕실 제반 소요 물품에 관한 규제를 기록한 『상방정례(尙方定例)』가 편찬된 후 영조 자신이 그 규정에 따라 가례를 몸소 실천한 기록물로 왕실의 가례에 사용된 물품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1759년 6월에 거행된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 기록인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서 사용된 물품 목록 중 보자기에 관련된 내용을 조사하고, 육례의 절차로 구분하여 명칭, 옷감, 크기 및 용도, 사용상황, 외형의 특징을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또한 『상방정례』와 『국혼정례』에 기록된 보자기 관련 자료와 『조선왕조실록』의 혼례 관련 기록의 정리를 통해 보자기의 외관 및 사용용도와 당대의 생활상을 비교분석하여 보자기가 담고 있는 생활문화적 가치와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영조정순왕후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의 생활문화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상기 연구과정을 통한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 나타난 보자기의 종류는 홑보자기[단보], 겹보자기[겹보], 상건(床巾), 부건(覆巾) 및 싸개용 핫보자기[유보], 옥책(玉冊)사이에 끼우거나 옥책사이를 막는 막이용 핫보자기[격유보] 및 옥책을 싸는 갑(匣) 등이 있다. 이들 보자기는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 시에 필요한 용품을 싸서 나르는 용도로 쓰이거나 예물의 보호를 위해 솜을 넣어 제작 후 예물사이에 끼워 넣거나 예물을 싸는 용도 혹은 의례에 사용된 상을 덮거나 두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영조는 혼례에 사치를 경계하여 본인의 가례 시에도 보자기 재질에 대하여 사치를 금한 기록이 있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 기록된 보자기의 재질은 대부분 홍주, 홍초, 대홍광적 등의 무늬가 없는 옷감으로 영조의 검소와 절약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둘째, 18세기는 유교적 의례문화가 확립되고 실행되던 시기였고 왕실의례는 유교이념을 따르고 실천하려는 왕실의 의지를 백성들에게 보이는 실행의 장이었다. 따라서 왕실의 가례절차에 사용되는 모든 물품은 기능적인 용도 외에 백성들이 본받고 따를 수 있는 유교적 예법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는 그 자체가 의례도구로서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가례의 절차마다 중요 물품과 상징물을 싸서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혼례용품 사치의 폐단을 바로 잡는 본보기로써 절(節))과 검(儉)의 가치를 나타내며 동시에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의례용품이었다. 셋째, 영조정순왕후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는 우리의 전통 의례용품인 동시에 전통의례에 깃들어 있는 성(誠)과 예(禮)의 가치를 표현하는 문화자산이다. 현대 혼례에서도 전통혼례의 요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함 보내기, 폐백 및 예단 등의 절차에 모두 보자기를 사용함으로써 내용물의 상징성을 구현하고 있으며, 의례에 포함된 예절과 정성의 정신을 표출하고 있다. 따라서 왕실 의례용 보자기에 대한 연구는 현대의 혼례용, 의례용 ...
생활문화는 한 사회의 생활 전반에 걸친 모든 행동양식이나 체계를 뜻하며, 세대를 이어 축적되고 변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 중 의례문화는 한 집단의 정체성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나타내는 생활방식이며 이러한 의례에 사용된 용품 역시 한 집단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투영된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의례에 사용되는 물품 중에서 보자기는 과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사용방식이 일관성 있게 유지되어 왔다. 유교적 전통사회의 최고 행사인 왕실의례에 사용된 보자기는 물건을 보호하고, 싸고, 나르는 기능 외에 왕실 의례의 모습과 생활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왕실 의례용 보자기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기록과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국혼정례(國婚定例)』,『상방정례(尙方定例)』등의 왕실가례 관련 규범, 왕실가례의 기록서인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등의 사료를 통하여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에는 가례의 준비과정, 가례의 절차와 내용, 소요경비, 참여인원, 포상내역 등에 관한 기록과 반차도 등의 도설이 포함되어 있으며, 왕실가례에 사용된 보자기에 관한 상세한 기록도 포함하고 있다. 영조(英祖)와 정순왕후(貞純王后)의 가례를 기록한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는 국혼에서 혼례의 풍속이 사치하고 국고의 낭비가 심한 것을 경계하여 왕실 혼사에 관한 예를 정한 『국혼정례(國婚定例)』와 왕명을 받아 왕실 제반 소요 물품에 관한 규제를 기록한 『상방정례(尙方定例)』가 편찬된 후 영조 자신이 그 규정에 따라 가례를 몸소 실천한 기록물로 왕실의 가례에 사용된 물품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1759년 6월에 거행된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 기록인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서 사용된 물품 목록 중 보자기에 관련된 내용을 조사하고, 육례의 절차로 구분하여 명칭, 옷감, 크기 및 용도, 사용상황, 외형의 특징을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또한 『상방정례』와 『국혼정례』에 기록된 보자기 관련 자료와 『조선왕조실록』의 혼례 관련 기록의 정리를 통해 보자기의 외관 및 사용용도와 당대의 생활상을 비교분석하여 보자기가 담고 있는 생활문화적 가치와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영조정순왕후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의 생활문화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상기 연구과정을 통한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 나타난 보자기의 종류는 홑보자기[단보], 겹보자기[겹보], 상건(床巾), 부건(覆巾) 및 싸개용 핫보자기[유보], 옥책(玉冊)사이에 끼우거나 옥책사이를 막는 막이용 핫보자기[격유보] 및 옥책을 싸는 갑(匣) 등이 있다. 이들 보자기는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 시에 필요한 용품을 싸서 나르는 용도로 쓰이거나 예물의 보호를 위해 솜을 넣어 제작 후 예물사이에 끼워 넣거나 예물을 싸는 용도 혹은 의례에 사용된 상을 덮거나 두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영조는 혼례에 사치를 경계하여 본인의 가례 시에도 보자기 재질에 대하여 사치를 금한 기록이 있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 기록된 보자기의 재질은 대부분 홍주, 홍초, 대홍광적 등의 무늬가 없는 옷감으로 영조의 검소와 절약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둘째, 18세기는 유교적 의례문화가 확립되고 실행되던 시기였고 왕실의례는 유교이념을 따르고 실천하려는 왕실의 의지를 백성들에게 보이는 실행의 장이었다. 따라서 왕실의 가례절차에 사용되는 모든 물품은 기능적인 용도 외에 백성들이 본받고 따를 수 있는 유교적 예법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는 그 자체가 의례도구로서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가례의 절차마다 중요 물품과 상징물을 싸서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혼례용품 사치의 폐단을 바로 잡는 본보기로써 절(節))과 검(儉)의 가치를 나타내며 동시에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의례용품이었다. 셋째, 영조정순왕후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는 우리의 전통 의례용품인 동시에 전통의례에 깃들어 있는 성(誠)과 예(禮)의 가치를 표현하는 문화자산이다. 현대 혼례에서도 전통혼례의 요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함 보내기, 폐백 및 예단 등의 절차에 모두 보자기를 사용함으로써 내용물의 상징성을 구현하고 있으며, 의례에 포함된 예절과 정성의 정신을 표출하고 있다. 따라서 왕실 의례용 보자기에 대한 연구는 현대의 혼례용, 의례용 문화콘텐츠 개발에 주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본 논문은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를 토대로 가례에 관련된 왕실규범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참고하여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를 각 육례의 절차에 따른 명칭, 옷감, 크기 및 용도, 사용상황, 외형의 특징을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이를 통해 보자기에 깃든 생활문화적 가치와 상징적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현대 의례에 활용되는 보자기에 전통적인 상징성을 일깨우고 생활문화 속에 전통문화 콘텐츠의 소재로서 개발 가능성을 확인한 데 연구의 의의를 두고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현대 의례에 사용되는 보자기의 실용적 가치에 더해 고유문화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보자기가 전통성을 지닌 생활문화의 콘텐츠로 재해석되어 자리매김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생활문화는 한 사회의 생활 전반에 걸친 모든 행동양식이나 체계를 뜻하며, 세대를 이어 축적되고 변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 중 의례문화는 한 집단의 정체성과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나타내는 생활방식이며 이러한 의례에 사용된 용품 역시 한 집단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투영된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의례에 사용되는 물품 중에서 보자기는 과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사용방식이 일관성 있게 유지되어 왔다. 유교적 전통사회의 최고 행사인 왕실의례에 사용된 보자기는 물건을 보호하고, 싸고, 나르는 기능 외에 왕실 의례의 모습과 생활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왕실 의례용 보자기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기록과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국혼정례(國婚定例)』,『상방정례(尙方定例)』등의 왕실가례 관련 규범, 왕실가례의 기록서인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등의 사료를 통하여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에는 가례의 준비과정, 가례의 절차와 내용, 소요경비, 참여인원, 포상내역 등에 관한 기록과 반차도 등의 도설이 포함되어 있으며, 왕실가례에 사용된 보자기에 관한 상세한 기록도 포함하고 있다. 영조(英祖)와 정순왕후(貞純王后)의 가례를 기록한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는 국혼에서 혼례의 풍속이 사치하고 국고의 낭비가 심한 것을 경계하여 왕실 혼사에 관한 예를 정한 『국혼정례(國婚定例)』와 왕명을 받아 왕실 제반 소요 물품에 관한 규제를 기록한 『상방정례(尙方定例)』가 편찬된 후 영조 자신이 그 규정에 따라 가례를 몸소 실천한 기록물로 왕실의 가례에 사용된 물품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1759년 6월에 거행된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 기록인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서 사용된 물품 목록 중 보자기에 관련된 내용을 조사하고, 육례의 절차로 구분하여 명칭, 옷감, 크기 및 용도, 사용상황, 외형의 특징을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또한 『상방정례』와 『국혼정례』에 기록된 보자기 관련 자료와 『조선왕조실록』의 혼례 관련 기록의 정리를 통해 보자기의 외관 및 사용용도와 당대의 생활상을 비교분석하여 보자기가 담고 있는 생활문화적 가치와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영조정순왕후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의 생활문화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상기 연구과정을 통한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 나타난 보자기의 종류는 홑보자기[단보], 겹보자기[겹보], 상건(床巾), 부건(覆巾) 및 싸개용 핫보자기[유보], 옥책(玉冊)사이에 끼우거나 옥책사이를 막는 막이용 핫보자기[격유보] 및 옥책을 싸는 갑(匣) 등이 있다. 이들 보자기는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 시에 필요한 용품을 싸서 나르는 용도로 쓰이거나 예물의 보호를 위해 솜을 넣어 제작 후 예물사이에 끼워 넣거나 예물을 싸는 용도 혹은 의례에 사용된 상을 덮거나 두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영조는 혼례에 사치를 경계하여 본인의 가례 시에도 보자기 재질에 대하여 사치를 금한 기록이 있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 기록된 보자기의 재질은 대부분 홍주, 홍초, 대홍광적 등의 무늬가 없는 옷감으로 영조의 검소와 절약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둘째, 18세기는 유교적 의례문화가 확립되고 실행되던 시기였고 왕실의례는 유교이념을 따르고 실천하려는 왕실의 의지를 백성들에게 보이는 실행의 장이었다. 따라서 왕실의 가례절차에 사용되는 모든 물품은 기능적인 용도 외에 백성들이 본받고 따를 수 있는 유교적 예법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는 그 자체가 의례도구로서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가례의 절차마다 중요 물품과 상징물을 싸서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혼례용품 사치의 폐단을 바로 잡는 본보기로써 절(節))과 검(儉)의 가치를 나타내며 동시에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의례용품이었다. 셋째, 영조정순왕후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는 우리의 전통 의례용품인 동시에 전통의례에 깃들어 있는 성(誠)과 예(禮)의 가치를 표현하는 문화자산이다. 현대 혼례에서도 전통혼례의 요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함 보내기, 폐백 및 예단 등의 절차에 모두 보자기를 사용함으로써 내용물의 상징성을 구현하고 있으며, 의례에 포함된 예절과 정성의 정신을 표출하고 있다. 따라서 왕실 의례용 보자기에 대한 연구는 현대의 혼례용, 의례용 문화콘텐츠 개발에 주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본 논문은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를 토대로 가례에 관련된 왕실규범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참고하여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를 각 육례의 절차에 따른 명칭, 옷감, 크기 및 용도, 사용상황, 외형의 특징을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이를 통해 보자기에 깃든 생활문화적 가치와 상징적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현대 의례에 활용되는 보자기에 전통적인 상징성을 일깨우고 생활문화 속에 전통문화 콘텐츠의 소재로서 개발 가능성을 확인한 데 연구의 의의를 두고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현대 의례에 사용되는 보자기의 실용적 가치에 더해 고유문화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보자기가 전통성을 지닌 생활문화의 콘텐츠로 재해석되어 자리매김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Culture is defined as social behaviors or norms that distinguish one society from others. As culture is transmitt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t builds and often changes. Ritual culture, in particular, represents the identity and ideology of a society, and the objects used in rituals are symbol...
Culture is defined as social behaviors or norms that distinguish one society from others. As culture is transmitt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t builds and often changes. Ritual culture, in particular, represents the identity and ideology of a society, and the objects used in rituals are symbols reflective of that society’s lifestyle.
Bojagi is a cloth used to wrap, cover, and carry objects. When used by the royal family, it was also used to demonstrate the dignity and power of royalty. Therefore, studying ceremonial bojagi will help to understand the history and lifestyle of the royal family.
Records on ceremonial bojagi can be found in Gukjo orye ui (Five Rites of the State, 1474), Kukhon jeongrye (Exemplar Regulations of Royal Weddings, 1749), Sangbang jeongrye (Exemplar Regulations of Royal Attire, 1750) about the customary formalities of the royal family, and also in Garye dogam uigwe (Royal P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 Uigwe) and Joseon Wangjo Sillok (Veritable Records of the Joseon Dynasty), which show how bojagi were used.
Yeongjo Jeongsun wanghu garye dogam uigwe is the complete record of the royal marriage between King Yeongjo and Queen Jeongsun in the sixth month of 1759 and is another important document that provides detailed information on the bojagi used in royal rituals.
This dissertation studies the usage of bojagi recorded in Yeongjo Jeongsun Wanghu garye dogam uigwe by sorting them into the six distinct rites of the wedding ceremony and classifying them according to their name, material, size, usage, and design. Also, in order to explore more about the cultural characteristics of bojagi used during King Yeongjo’s reign, the Kukhon jeongrye, Sangbang jeongrye, and Joseon wangjo sillok are studied to analyze cultural values and symbolic meanings of bojagi by comparing their design and usage, as well as the lifestyle of the time in which these documents were compiled.
Major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the names of bojagi used in Yeongjo Jeongsoon wanghu garye dogam uigwe are hot bojagi (single-layered bojagi), gyeop bojagi (double-layered bojagi), sanggun (bojagi to cover a table), bugun (bojagi to cover goods), hat bojagi (quilted bojagi for wrapping), hat bojagi (quilted bojagi) that is put between okchaek (jade investiture document), and kap (cross-shape bojagi) that wraps the okchaek. These bojagi were used to wrap and cover items. Some of the quilted bojagi were put between valuable objects to protect them.
Secondly, the eighteenth century marked a period of entrenchment of Neo-Confucianism in the Joseon dynasty and the royal wedding was a tool to propagate Neo-Confucian values to the people. Hence, the bojagi used at King Yeongjo and Queen Jeongsun’s wedding were made of simple red silk produced domestically to avoid extravagance. Uasge of costly flower-patterned silk from China was restricted to comply with the rules of the Kukhon jeongrye, which codified the royal marriage ceremony and the Sangbang jeongrye, which regulated royal attire. This modesty also shows King Yeongjo’s determination to abandon lavishness.
Third, bojagi used in King Yeongjo and Queen Jeongsun’s wedding are traditional cultural assets that represent values of sincerity and courtesy pervasive in their wedding ritual. Since some aspects of the traditional wedding are still practiced today, studying bojagi used in the royal wedding will be an important reference in developing cultural contents of contemporary wedding and ritual processes.
Culture is defined as social behaviors or norms that distinguish one society from others. As culture is transmitt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t builds and often changes. Ritual culture, in particular, represents the identity and ideology of a society, and the objects used in rituals are symbols reflective of that society’s lifestyle.
Bojagi is a cloth used to wrap, cover, and carry objects. When used by the royal family, it was also used to demonstrate the dignity and power of royalty. Therefore, studying ceremonial bojagi will help to understand the history and lifestyle of the royal family.
Records on ceremonial bojagi can be found in Gukjo orye ui (Five Rites of the State, 1474), Kukhon jeongrye (Exemplar Regulations of Royal Weddings, 1749), Sangbang jeongrye (Exemplar Regulations of Royal Attire, 1750) about the customary formalities of the royal family, and also in Garye dogam uigwe (Royal P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 Uigwe) and Joseon Wangjo Sillok (Veritable Records of the Joseon Dynasty), which show how bojagi were used.
Yeongjo Jeongsun wanghu garye dogam uigwe is the complete record of the royal marriage between King Yeongjo and Queen Jeongsun in the sixth month of 1759 and is another important document that provides detailed information on the bojagi used in royal rituals.
This dissertation studies the usage of bojagi recorded in Yeongjo Jeongsun Wanghu garye dogam uigwe by sorting them into the six distinct rites of the wedding ceremony and classifying them according to their name, material, size, usage, and design. Also, in order to explore more about the cultural characteristics of bojagi used during King Yeongjo’s reign, the Kukhon jeongrye, Sangbang jeongrye, and Joseon wangjo sillok are studied to analyze cultural values and symbolic meanings of bojagi by comparing their design and usage, as well as the lifestyle of the time in which these documents were compiled.
Major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the names of bojagi used in Yeongjo Jeongsoon wanghu garye dogam uigwe are hot bojagi (single-layered bojagi), gyeop bojagi (double-layered bojagi), sanggun (bojagi to cover a table), bugun (bojagi to cover goods), hat bojagi (quilted bojagi for wrapping), hat bojagi (quilted bojagi) that is put between okchaek (jade investiture document), and kap (cross-shape bojagi) that wraps the okchaek. These bojagi were used to wrap and cover items. Some of the quilted bojagi were put between valuable objects to protect them.
Secondly, the eighteenth century marked a period of entrenchment of Neo-Confucianism in the Joseon dynasty and the royal wedding was a tool to propagate Neo-Confucian values to the people. Hence, the bojagi used at King Yeongjo and Queen Jeongsun’s wedding were made of simple red silk produced domestically to avoid extravagance. Uasge of costly flower-patterned silk from China was restricted to comply with the rules of the Kukhon jeongrye, which codified the royal marriage ceremony and the Sangbang jeongrye, which regulated royal attire. This modesty also shows King Yeongjo’s determination to abandon lavishness.
Third, bojagi used in King Yeongjo and Queen Jeongsun’s wedding are traditional cultural assets that represent values of sincerity and courtesy pervasive in their wedding ritual. Since some aspects of the traditional wedding are still practiced today, studying bojagi used in the royal wedding will be an important reference in developing cultural contents of contemporary wedding and ritual proce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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