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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정순왕후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의 상징성과 생활문화적 의미에 관한 고찰
Ceremonial Bojagi used in Yeongjo Jeongsun Wanghu's Royal Wedding in Living Culture Perspective 원문보기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 The Journal of the Korea Contents Association, v.18 no.8, 2018년, pp.353 - 365  

김효주 (성신여자대학교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  주영애 (성신여자대학교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초록

본 연구는 1759년 6월에 거행된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에서 사용된 물품 중 보자기에 관련된 내용을 조사하고, 명칭, 옷감, 크기 및 용도, 사용상황, 외형의 특징을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또한 "상방정례"와 "국혼정례"에 기록된 보자기 관련 자료와 "조선왕조실록"의 혼례 관련 기록의 정리를 통해 보자기의 외관 및 사용용도와 당대의 생활상을 비교 분석하여 보자기가 담고 있는 생활 문화적 가치와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였다 .18세기는 유교적 의례문화가 확립되고 실행되던 시기였고 왕실의례는 유교이념을 따르고 실천하려는 왕실의 의지를 백성들에게 보이는 실행의 장이었다. 따라서 왕실의 가례절차에 사용되는 모든 물품은 기능적인 용도 외에 백성들이 본받고 따를 수 있는 유교적 예법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영조는 혼례에 사치를 경계하여 본인의 가례에 사용된 물품에 대하여 사치를 금한 기록이 있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 궤"에 기록된 보자기의 재질은 대부분 홍주(紅紬), 홍초(紅?), 대홍광적(大紅廣的) 등의 무늬가 없는 옷감으로 영조의 검소와 절약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영조 정순왕후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는 우리의 전통 의례용품인 동시에 전통의례에 깃들어 있는 성(誠)과 예(禮)의 가치를 표현하는 문화유산이다.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This study is on the usage of bojagi recorded in Yeongjo Jeongsun Wanghu garye dogam uigwe. Major findings are as follows. The eighteenth century marked a period of entrenchment of Neo-Confucianism in the Joseon dynasty and the royal wedding was a tool to propagate Neo-Confucian values to the people...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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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방법

  •  같은 해 국혼에서 혼례의 풍속이 사치함을 바로잡기 위해 왕실의례에 관한 규정을 정한 『국혼정례』를 발간하여 왕실 지출을 관리함으로써 낭비를 막고자 하였다.
  •  영조는 혼례가 혼례 자체의 의미보다 사치와 과시로 흐르는 사회적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왕실에서 부터의 검소함을 실천하는 방안으로 여러 차례 제도의 정비를 실시하였으며, 1759년에 거행된 본인의 가례에서 혼례 절차를 간소화하여 실천함으로써 솔선수범하였다.
  •  이어 왕실 가례 시 지출 규모에 대해 정해진 규정이 없어 혼수의 규모가 한결같지 못하고, 비용의 낭비가 심한 폐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국혼정례(國婚定例)』를 제정하였다.
  •  침선비들은 상의원과 제용감(濟用監)에 속해져 있었고, 침선비들은 도감이 설치되면 다른 직인들과 더불어 일방, 이방, 삼방에 배치되어, 염색 및 직조와 더불어 궁중에서 소용되는 다양한 물품들을 제작하였다.
  • 본 연구에서는 『영조 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에 기록된 가례 용품 중 보자기를 사용용도, 사용방법, 사용장소 및 사용 시기 등에 따라 분류하고, 시대 상황과 사회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생활 문화적 의미를 파악하였다.
  • 본 연구에서는 조선의 유교적 의례문화가 정착되고 왕실의례가 백성들의 본보기가 된 18세기 영조와 정순 왕후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에 함의된 생활문화적 의미와 상징성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였다.
  • 영조는 당시 왕실의 운영이 방만하여 사치에 흐르고 국고의 낭비 또한 심하므로, 재정 체계를 바로잡고 용도의 절감을 꾀하기 위해 주요 왕실 기관의 재정 운영 규정인 『탁지정례(度支定例)』를 제정하도록 하였다.
  • 왕실의례 중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왕의 가례는 철저한 준비 과정과 계획으로 진행되었는데 특히 가례에 소용되는 용품들은 각 절차별로 필요 품목, 용도 및 수량을 사전에 파악하여 물목의 확보와 제작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였다.
  • 이와 같이 조선왕조 전반에 걸쳐 혼례 시의 사치를 우려하고 국법과 왕명을 통해 혼례 시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을 구체적으로 제한하였다.

대상 데이터

  •  11세 때(연잉군 시절)인 1704년 (숙종 30)에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 1692〜1757)와 혼인하였으나, 1757년(영조 33)에 세상을 떠나자 2년 뒤인 1759년(영조 35) 6월 당시 15세의 나이인 오흥 부원군 김한구(金漢著)의 딸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 〜1805년)를 계비로 맞이하였다.
  • 영조·정순왕후 가례에 사용된 보자기류는 상의원(尙衣院)에서 제작되었다.
  • 전통 사회에서 보자기에 대한 가치와 비중을 이해하는 예로 표전문(表箋文)을 싸는 보자기를 들 수 있는데 표전문보는 의례용 보자기 중 정성과 예절을 갖추어야 하는 국가 간 의전용품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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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조선 21대 임금 영조의 부모는 누구인가? 조선 21대 임금 영조(英祖, 1694〜1776)은 숙종의 넷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숙빈 최씨(淑嬪 崔氏)이다. 1721 년(경종 1)에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724년 경종의 승하 후 왕위에 올랐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나 왕실의 주요행사에 대한 절차와 내용, 소요 경비, 참가인원의 임무 및 포 상내역 등 의례의 전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엿는데 이것을 뭐라고 불렀는가? 조선시대에는 중요한 국가 의식이나 행사가 끝나면 조직, 예규, 업무, 행사, 결과 등 의식의 전 과정을 기록 한 보고서인 의궤를 남겼다. 의궤(儀軟)란 '의식(儀式) 의 궤범(几範)'이라는 뜻이다. 국가나 왕실의 주요행사에 대한 절차와 내용, 소요 경비, 참가인원의 임무 및 포 상내역 등 의례의 전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필요시 그림을 포함하여 당시의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7].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되었던 의례용품들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되었던 의례용품들은 그 시대가 낳은 최고 수준의 문화를 보여준다. 특히 한민족의 생활문화가 현재와 과거의 사고방식을 비롯한 생활 양식을 모두 포함한다고 가정할 때 유교적 전통사회의 왕실 행사인 의례에 쓰인 용품들은 미적·경제적 가치 외에 신분과 위계질서를 나타내는 당대의 최고의 가치를 지닌 상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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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2)

  1. 신병주, 박례경, 송지원, 이은주, 왕실의 혼례식 풍경, 서울:돌베개, p.114, 2013. 

  2. 한형주, "15세기 祀典體制의 성립과 그 추이-國朝五禮儀편찬과정을 중심으로," 역사교육, Vol.89, pp.127-161, 2004, 

  3. 임민혁, "조선 초기 국가의례와 왕권-국조오례의를 중심으로," 역사와 실학, Vol.43, pp.45-82, 2010. 

  4. 이범직, "朝鮮前期의 五禮와 家禮," 한국사연구, Vol.71, pp.31-61, 1990. 

  5. 강제훈, "조선世宗實錄五禮의 편찬 경위와 성격," 사학연구, Vol.107, pp.169-228, 2012. 

  6. 국립고궁박물관 편저, 조선왕실의 포장 예술, 국립고궁박물관, p.77, 2017. 

  7. 박소동 역, 국역 가례도감의궤 영조.정순왕후, 민족문화추진회, p.2, 1997. 

  8. 이종남,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천연염색, 현암사, p.91, 2009. 

  9. 김수경, "조선 궁보의 기능과 가치," 미술사학회지, Vol.12, pp.5-23, 1998. 

  10. 강서영, "조선말 궁중 보자기 연구," 고궁문화, Vol.5, p.77, 2012. 

  11. 이길표, 주영애, 전통가정생활문화연구, 신광출판사, p.172, 1999. 

  12. 최배영, 家禮書를 통해 본婚禮觀 硏究 : 嘉禮.家禮輯賢.四禮便賢,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pp.8-9,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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